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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길 평봉산에서 옛 장성을 발견하다"과 "평봉산 옛 장성은 고구려 장성?" 두 기사를 합쳤습니다.


연길 평봉산에서 옛 장성을 발견하다
연변 내 고향 여행 (1)
05.12.16 21:50 l 최종 업데이트 05.12.16 21:51 l 리광인(guangren33)

연변조선족자치주 수부 연길시에 살면서 그 주변과 외곽세계를 모른다는 것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연길분지의 북부와 서북부를 가로 지른 평봉산과 그 이음산인 병풍산이 그러하다. 이럴 때 연우산악회에서 평봉산, 병풍산 산행을 한다고 하니 나는 무척이나 들뜬 기분이었다. 

12월 3일, 눈 내린 뒤의 바깥세계는 어딜 보나 눈 속 세계. 아침 8시 연길시 공원다리 서쪽 가에서 25번 중형버스를 잡아타고 종착점에서 내리니 시안의 원 연집향 대암8대다. 연길~도문구간 고속도로에서 서쪽으로 5km는 잘 되는 것 같았는데 대암골에 첫발을 들여놓는 나로서는 모든 것이 신나기만 했다. 

대암8대 버스정류소에서 일행을 점검하니 도합 남녀 10명이다. 그들로는 연우산악회 회원들인 리경호씨, 김수영씨, 박춘실씨, 김삼씨, 리용남씨, 리화씨, 송문자씨에 새로 가담하는 공원소학교의 리희란씨, 지방세무국의 조미선씨 그리고 필자. 

금방 마을을 벗어났는데 이 고장에 익숙해 보이는 송문자씨가 저기 북쪽 산 밑에 불교사원이 있다고 말꼭지를 뗐다. 연길시 북쪽 변두리에 연변 최대의 불교사원이 일어선다더니 대암골 어디인지는 딱히 모르는 일행들이었다. 벌써부터 맘이 들뜬 일행은 마을 서쪽골 등산코스를 대암 마지막 마을 뒤 북쪽골로 바꾸었다. 

눈 온 뒤의 맵짠 추위는 얼굴을 베어갈듯 기승을 부리었다. 그래도 스적스적 걷기만 하는데 처음에는 민둥산을 방불케 하는 주변 산들과 그 기슭들이 스산하기만 하더니 그게 아니었다. 몇 리 길을 조여 산 밑에 대이니 참나무 등으로 쫘악 덮친 산천은 별유세계였다. 

그런 골안어구에 집 몇 채와 함께 허물어져 가는 우리 식 가옥 한 채가 일행의 발목을 잡았다. 보매 광복전의 옛집 같았다. <연변문학> 주필 김삼씨는 그런 모습을 사진렌즈에 담았다. 훗날 그 어느 때일까, 이 고장 기념이 될만한 사진이었다. 

이 곳에서 골안은 왼쪽 서쪽골과 오른쪽 북쪽골로 갈라졌다. 오른쪽 북쪽골을 따라 조금 더 들어가니 골안어구에 임시로 만든 산문이 나타났다. 가까이 다가서니 <연변대각사(大覺寺)>라고 쓴 글발과 한자로 된 커다란 불(佛)자가 시선에 잡혀왔다. 

이제부터 대각사-불교사당구역이다. 산문 뒤 왼쪽 가는 산발 따라 이미 굉장한 터전을 잡아놓았는데 그 밑에 기다란 단층집이 보이었다. 집지기는 리씨성을 가진 60대 미만의 어른이었는데 몸도 녹일 겸 휴식하는 사이 대각사의 내력과 그 건설 전망 얘기를 듣게 되었다. 연변 최대의 불교 사찰로 일어설 그 전망이 눈앞이었다. 아직 산 밑 터전에 단층집 하나를 달랑 가진 현실이지만 지난 8월에 이미 정초식을 가진 상태였다. 

리씨 어른은 우리를 언덕 위의 불교 사찰터로 안내하였다. 그 때에야 우리는 이제 인민폐 3억 위안이 투자된다는 이곳 불교사찰은 이미 산기슭을 깎아 터를 닦았고 사면이 산으로 둘러사인 아늑한 산 속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연길시의 상징으로 떠오른 멀리 하늘가 모아산이 정남쪽에 위치했고 서남쪽 산기슭엔 소나무들이 가득하였다. 소나무는 영원불변과 장생불로의 상징이라더니 곧 일어설 대각사에 정기를 더해줄 것은 기정 사실이였다. 

송문자씨께 감사한 마음이다. 문자씨 덕분에 불교사찰-대각사터를 돌아보게 된 우리 일행은 이씨어른과 작별하고 숫눈길을 헤치며 석인골이 보인다는 뒷산 산정에 올랐다. 북쪽산 아래 석인골은 서남쪽으로 깊이깊이 뻗었는데 이골 따라 들어가면 지난 30년대 초반 연변의 항일근거지의 하나로 이름난 연길현 팔구항일유격근거지에 이르게 된다. 

역사를 알면 그 산에 대한 느낌이 다르게 느껴진다. 대각사에 이어 접하게 된 팔구항일유격근거지를 지척에 두니 모든 것이 정답기만 하다. 우리 일행은 자연과 역사문화가 어우러진 산야를 걷고 있었다. 눈 덮인 산발 따라 서남쪽으로 나아가니 정다운 느낌은 한결 짙어만 갔다. 

몇 리 산등성이를 조이니 저 앞에 자그마한 바위산이 나타났다. 바위산을 넘으니 그 다음 구간부터는 연해연방 바윗돌들인데 바윗돌은 인위적으로 쌓아놓은 산성인 듯 산발을 쭈욱 주름잡았다. 남쪽과 북쪽은 경사도가 급한 산비탈이라 옛 산성 갔다는 느낌이 보다 강하게 안겨들었다. 인위적 산성은 아니더라도 자연적 산성을 이어놓으면 난공불락의 요새로는 안성맞춤이었다. 

또 북쪽이 깎아지른 듯한 바위산이 앞을 가로막았다. 다행히 남쪽이 무너져 내린 바윗돌들이어서 그 사이사이를 누비니 탄성이 절로 났다. 한 발만 잘못 디뎌도 바위산아래 굴러 떨어질 수 있는 구간구간들이 연달아 왔다가는 저 뒤로 사라지곤 했다. 김삼씨는 이 시각을 놓칠세라 디지털사진기에 담고 또 담았다.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리광인(리함) 기자는 연변조선족문화발전추진회 학술교류부장으로 뛰고 있습니다.


평봉산 옛 장성은 고구려 장성?
연변 내 고향 여행 (2)
05.12.16 22:04 l 최종 업데이트 05.12.16 22:04 l 리광인(guangren33)

그래도 옛 산성이 아닐까 하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남북 양쪽기슭에 무너져 내려 쌓인 돌덩이들이 이런 느낌에 부채질했다. 생각 밖으로 다닥친 바위산, 바윗돌들 풍경이라 미처 예비지식을 갖추지 못한 나로서는 한식경이나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오리무중이다. 

하긴 부질 없는 느낌만이 아니었다. 몇 리나 뻗어나간 바위산, 바윗돌 산등성이 구간을 지나니 가파른 산등성이가 사라지면서 아득한 산정벌이 이어 선다. 리경호씨는 여기를 평봉산이라 부른다고 했는데 그 말과 같이 사방에 눈 주어도 나무숲으로 덮인 평탄한 산정벌이고 이 산정벌 남쪽은 여러 군데가 등골이 오싹해 나는 낭떠러지 절벽이다. 

산정벌을 또 몇 리 줄이다가 산봉을 이룬 두 낭떠러지 사이 홈을 따라 나무숲을 내리 헤치는데 가로지르며 무너져 내린 바윗돌들이 앞을 막아섰다. 눈에 묻혀버린 세계라 별 생각이 없이 바윗돌 위를 걸어 지나는데 김삼씨가 소리 질렀다. 

"리 선생, 그저 지나칠 돌무지가 아닌데요?!"
"…?"

무심결에 고개를 돌린 필자는 와뜰 놀랐다. 정말이지 순간적으로 숨이 척 멈추어서는 기분이었다. 아래쪽을 보니 인위적 축조가 선명히 안겨들었으니 말이다. 

"아니, 이거 고구려시기 석성(石城)으로 알려지는 고구려 옛 장성이 아닌가!"

급기야 여기저기를 살펴보니 돌무지는 모두가 무너져 내린 채 좌우로 수십m나 뻗었는데 석성의 너비는 2m를 넘기지 않아 보이였다. 나무숲 속에 잔나무가 꽉 서린 데서 그 이상 더 나가보지는 못했지만 북동쪽으로 뻗은 석성은 두 산 사이 골 안 물홈에 이르러 동강났다. 

다시 돌아와 그 높이가 1m도 넘는 석성-돌성벽 아래구간에서 제각기 기념사진을 남기는 필자와 김삼씨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동행한 리경호씨도 그 흥분 속에 젖어들었다. 역사 속에 깊숙이 빠져들며 자연과 하나 되는 순간의 연속이다. 

우리 일행이 이미 산기슭 아래로 사라진 데서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었다. 민가의 점심참이 기다리는 판이라 산을 내려야 했지만 생각은 저 위쪽 두 바위산 사이 석성에로 가 있었다. 때는 점심 12시와 1시 사이었다.

귀가 후 집에 들어서기 바쁘게 <연변문물휘편>(한어문)을 펼쳐든 나는 소리라도 지르고만 싶은 심경이었다. 고대문물편 제5장 고구려시기 제2절 제5부분에는 과연 "옛 '장성' 유적" 조목이 적혀있었는데 고구려장성이라 일컫는 장성은 화룡시 팔가지진 구세동에서 시작하여 화룡시 서성, 용문 구간을 거쳐 용정시 세린하, 로투구, 동불사, 팔도 그리고 연길시의 연집, 도문시의 장안진 계림북산에 이르면서 지금의 연길시 북쪽 산등성이에 수백m 구간의 석성을 남겨놓았다니 그럴 만도 했다. 다른 자료들에서는 하나 같이 옛 장성의 시발점을 화룡시 원 토산진 동산촌 동산구간에서 시작되었다고 밝히고 있었다.

필자는 다시 대학동창인 류연산씨가 쓴 기행문 <연변의 고구려 산성>을 펼쳐들었다. 2003년 <연변문학> 5호와 6호에 실린 연속기행인데 고구려장성에 관한 해당 자료연구와 현지답사를 결부하여 쓴 기행이여서 신빙성이 있어보였다. 그중 한 단락은 이러했다. 

"연집 대암촌에서 북으로 10리 되는 곳에 있는 장성을 대암 옛 장성이라고 한다. 지금도 병풍산 동쪽 끝에서부터 동쪽의 돌벼랑사이의 산어구의 남측에는 300메터(m) 길이의 석성이 있다. 그 넓이는 1.8메터, 남아있는 높이는 0.7~0.8메터이다. 돌벼랑의 동쪽으로부터 동남으로 방향을 꺾어서 소연길하골의 서쪽에 이르는 구간의 성벽은 대개 흙으로 쌓은 것인데 그 길이는 5리나 되는데 보이는 곳도 있고 전혀 흔적이 없는 곳도 있다."

그럼 이 장성은 고대 어느 시기의 창조물인가, 이를 두고 <연변문물휘편>은 옛 장성의 연대 문제는 학계의 설법이 서로 다르다면서 고구려시기 설, 발해시기 설, 동하국시기 설, 고려조시기 설을 떠올렸다. 그러면서 편집진은 '고구려 통치시기'로 잡는다면서 그 근거들을 내놓았다. 

또, 이 책에서는 옛 장성은 화룡시 원 토산진 구간부터 도문사 장안진 구간까지 길이 100여km고 훈춘시 경내의 옛 장성과 이어졌는지는 보다 더 깊은 조사와 연구가 있어야겠다고 했다. 1988년까지의 연구결과이다, 했으나 류연산씨는 화룡시, 연길시, 도문시 구간의 옛 장성이 훈춘시 옛 장성과 이어진다고 주장했다. 옛 장성에 관계되는 해당 자료들을 깊이 있게 연구하고 현지답사를 거쳐 내린 주장이었다. 

역사학자인 필자는 류연산씨의 주장에 동조되었다. 전공이 고대역사분야는 아니더라도 이 면에도 흥취를 갖고 많은 책과 자료들을 보며, 현지답사를 하며 일가견을 가진 필자였다. 

연길시 북쪽외곽으로 되는 대암의 서북쪽 산등성이를 따라 걷노라면 사방이 환히 펼쳐진다. 산구인 서북쪽과 북동쪽 구간은 그만두고라도 구릉지대로 되어있는 동서 남쪽구간에 시선을 던지면 옛 장성의 좌우 양측에 수십 자리의 돈대(墩坮)가 세워져 료망대나 봉화대로 쓰이었다는 것이 실감나게 안기여 든다. 

대암 서북쪽 산등성이에서 보이는 돈대만 해도 연길시 주변의 구릉지대에 우뚝 솟은 동쪽 저 멀리의 청차관(清茶馆)돈대, 모아산 돈대, 의란진 동흥촌 구간의 대돈대를 들 수 있는데 연길시 공원의 서쪽 정자자리 소돈대는 직접 한 눈에 볼 수 없을 뿐이다. 

필자 일행이 살고 있는 연변조선족자치주 수부 연길시는 이렇듯 고구려 시기 옛 장성과 그에 속한 옛 돈대도 갖고 있는 역사와 문화가 유구한 고장이다. 누군가 중국의 명산—태산에서는 살아 움직이는 역사를 만날 수 있다고 했지만 우리 연길시 외곽산들인 평봉산은 물론 곳곳에 두루 2000년을 자랑하며 살아 숨쉬는 역사를 만날 수 있으니 인간과 자연이 하나 되는 그 시각이 좋았다. 인간은 항상 자연 속에 존재해왔다는 것을 느끼는 그 시각 시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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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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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장정운 2015.07.16 02: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우연하게 연변의 장성에대한글을 읽엇는데요 참으로감개무량하네요 특히 연길시 연집향태암촌 평봉산 혹은병풍산이라 불리는 그산에 장성이 잇엇다는 글을 읽고깜작놀랏어요 태암촌은 저의고향인데 저는 이런사실을 전혀몰랏으니 기쁘고 한편으론 부끄럽네요

    • civ2 2015.07.26 00: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다 비슷하죠 뭐. 저도 서울,경기에 있는 고구려,백제,신라 성 중에 한두군데 밖에 못 가봤군요. 고향이 태암이라고 쓰신 걸 보니 태암고성(http://tadream.tistory.com/12747) 근처신 듯하군요. 글로만 볼 게 아니라 언제 가봐야 하는데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