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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평동산성(月坪洞山城)
월평동산성 위치도
대전광역시 서구 월평동 산 12-2 번지 일대의 야산 정상부 해발 137.8m에 위치한다. 이 유적은 대전분지의 서쪽에 치우쳐 남에서 북으로 흐르는 갑천의 동변을 따라 남북으로 길게 뻗은 해발 100m 내외의 능선 북단부에 위치하는 삼국시대 포곡식(包谷式) 석축산성으로, 산성의 둘레는 745m, 면적은 35,700㎡ 정도이다. 1974년 지표조사를 통하여 백제산성으로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1994~1995년에 걸쳐 남동쪽 외곽 능선지역에 대한 발굴조사가 이루어지면서 고구려성곽임이 확인되었다. 특히 목책․호․성벽 등 각종 방어시설을 비롯하여 목곽고․저장공과 같은 저장지설․주거시설 등 대단위 관방유적이 밀집․분포하고, 직구호와 장동호 파편 등 고구려 토기가 출토되었다. 이러한 출토유물을 통하여 대체로 6세기 말에서 7세기 전반 사이에 축성되었을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대전광역시 서구 월평동 산 12-2 번지 일대의 야산 정상부 해발 137.8m에 위치한다. 이 유적은 대전분지의 서쪽에 치우쳐 남에서 북으로 흐르는 갑천의 동변을 따라 남북으로 길게 뻗은 해발 100m 내외의 능선 북단부에 위치하는 삼국시대 포곡식(包谷式) 석축산성으로, 산성의 둘레는 745m, 면적은 35,700㎡ 정도이다. 1974년 지표조사를 통하여 백제산성으로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1994~1995년에 걸쳐 남동쪽 외곽 능선지역에 대한 발굴조사가 이루어지면서 고구려성곽임이 확인되었다. 특히 목책․호․성벽 등 각종 방어시설을 비롯하여 목곽고․저장공과 같은 저장지설․주거시설 등 대단위 관방유적이 밀집․분포하고, 직구호와 장동호 파편 등 고구려 토기가 출토되었다. 이러한 출토유물을 통하여 대체로 6세기 말에서 7세기 전반 사이에 축성되었을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특히 산성 축조 이전의 유구 및 원지표층에서는 옹 ․장동호․동이․시루․완․접시 등의 고구려 토기 편 수점이 출토되었다. 이와 같이 고구려 토기가 월평동산성이 조영되기 이전부터 월평동유적을 포함한 일정 범위 내에서 지속적으로 출토된 점, 이와 관련 있을 것으로 보이는 별도의 방어시설이 확인된 점은 당시 군사적 요충지였던 이 일대가 한동안 고구려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을 가능성을 높여준다. 월평동유적의 가장 이른 단계 방어시설의 축조 주체를 고구려로 본다면, 이 방어시설의 존속 시기는 대체로 고구려가 한성을 함락한 475년 이후부터 대략 5세기 말경에 해당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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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평동유적 발굴조사 전경 | 월평동산성 남서쪽 성벽 노출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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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평동산성 목곽고 | 월평동산성 성벽의 영정주 시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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