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contents.nahf.or.kr/id/NAHF.iskc.d_0008_0010
박작성(泊汋城) [附 서안평성(西安平城)]
발해(渤海)와 당(唐)이 교류하던 시절, 압록강을 거슬러 온 당의 사신은 집안(集安)을 거쳐 임강(臨江)에 이르러 배를 두고, 육로로 발해의 수도에 오곤 하였다. 고구려의 경우에도 압록강은 주요한 교통로로 활용되었다. 이를 알려주는 것이 서안평성과 박작성이다.
단동시(丹東市) 동쪽으로 애하(靉河)가 압록강에 합류하는 지점의 애하첨촌에는 애하첨고성(古城)으로 불리는 토성(土城)이 하나 있다. 동서 500m, 남북 600m 길이의 성벽을 흙으로 다져가며 쌓은 성이다. 서기 2세기 고구려의 공격으로 잘 알려진 요동군(遼東郡) 서안평현성(西安平縣城)임에 틀림없다.
234년에 이르면 고구려는 남중국의 오(吳)나라와 통교하게 되는데, 손권(孫權)이 보낸 사자가 이르렀다고 하는 ‘안평구(安平口)’에서도 서안평성의 존재를 짐작하여 볼 수 있다. 그 뒤 고구려는 서안평성을 둘러싸고 위(魏)나라와 충돌하였고, 침공해온 위나라군에게 수도 국내성(國內城)이 함락되는 위기를 겪기도 하였다. 그러나 4세기 초반에 이르면 서안평은 확실히 고구려의 차지가 되었고, 토성은 그대로 고구려의 평지성으로 활용되었다. 서안평 성터 여기저기에 흩어진 고구려 기와의 조각들이 그러한 사실을 알려준다.
침공에 앞서 고구려의 내정을 탐지해 간 당사(唐使) 진대덕(陳大德)도 『고려기(高麗記)』에서 이 성을 언급했던 것으로 보아, 고구려 말기까지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토성을 그대로 운용하였지만, 고구려가 세운 ‘서안평성’ 일원의 지배와 방어체계는 전혀 새로운 것이었다. 이를 알려주는 것이 현재 단동시의 주요 관광명소로 ‘호산장성(虎山長城)’이라 불리우고 있는 성이다. 고구려가 쌓은 성으로 정확한 명칭은 박작성이다. 박작성은 가탐(賈耽)이 남긴 『도리기(道里記)』에서도 압록강 루트의 중요 지명으로 등장하고 있다. 서안평성에서 동북으로 3km 떨어진 애하와 압록강의 합류점에 돌출한 구릉에 자리잡고 있어, 평지성과 산성의 결합이라는 고구려 특유의 방어체계가 그대로 드러난다. 강 건너편은 의주(義州)이고 그 배후에 있던 백마산성(白馬山城)을 바라보는 것도 가능하다.
이 성은 명(明)나라 장성의 동쪽 끝단으로 알려져 조사되었고, 그 결과 고구려 성벽을 하단부에서 발견하였다. 남쪽 성벽에 비교적 양호한 구간이 남아 있다고 했으나, 보고 당시에 비해 초라한 규모로 남아 있다. 이밖에도 고구려 당시의 건축터와 우물터가 발견되었다. 현재 ‘역사박물관’의 왼편에서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본래의 박작성은 2개의 봉우리와 그 정상부분을 둘러싼 소규모 산성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규모는 작지만, 이곳에서는 압록강 하구로부터 들어오는 적군의 움직임을 한눈에 볼 수 있어, 군사적 거점으로서의 가치가 매우 높다. 대당전쟁이 한창이던 648년, 압록강 하구로 침입한 당의 수로군에 의해, 고구려의 요동방어선은 배후에서 위협을 받게 되었다. 이때 침공군의 앞을 가로막은 곳이 바로 박작성이었다. 박작성이 적의 진출을 저지하는 사이, 오골성(烏骨城) 등지에서 보내온 증원군이 도착하여 적을 격퇴할 수 있었던 것이다.
황해로 흘러 들어가는 압록강
호산의 전경
압록강 하구에서 바라본 단동시
서안평성 터에서 바라본 호산
호산에서 내려다 본 압록강과 애하의 합류지점
호산에 남아 있는 박작성의 흔적Ⅰ
호산에 남아 있는 박작성의 흔적Ⅱ
박작성의 흔적(호산 남쪽)과 중국측이 복원해 놓은 장성
압록강 건너편의 통군정(북한 의주)
근접 촬영한 통군정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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