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kpedia.kr/Contents/ContentsView?contentsId=GC05311794&localCode=krcn


박작성 (泊汋城)


중문 : 泊汋城

지역 : 요령성 단동시 관전만족자치현 호산진 호산촌  

관련인물 : 소부손, 고문, 설만철, 배행방


요령성 단동시 관전만족자치현 호산진 호산촌 호산에 위치한 고구려 산성인 박작성의 흔적이다.



정의


요령성(遼寧省) 단동시(丹東市) 관전만족자치현(寬甸滿族自治縣) 호산진(虎山鎭) 호산촌(虎山村)호산에 위치한 고구려 산성.



위치


박작성은 단동시에서 동북 10㎞ 거리의 애하(靉河)와 압록강(鴨綠江)이 만나는 곳, 호산에 위치한다. 호산 남쪽으로 압록강이 지나고 서쪽으로 애하가 흐르며, 북쪽으로 호산진에 접하고 있다. 호산은 평지에서 돌출한 독립 구릉으로 멀리서 볼 때 범이 엎드려 있는 모양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해발 146.3m이며, 동서 길이가 1000m, 남북 너비가 500m이다. 호산의 사면은 가파르고 꼭대기 부분이 비교적 평탄하다.



건립 경위


박작성이 호산 산성임이 분명하다면, 요동과 한반도 북부를 연결하던 서안평현(西安平縣)[현재 애하첨 고성지]을 고구려가 차지한 뒤 평지성 서안평 현성을 연용하는 한편 이 산성을 쌓아 산성과 평지성의 조합으로 압록강 하구의 요충지를 지키려 했다고 보인다. 축조 시기는 3세기 이후로 보여 진다.



현황


단동시의 압록강 관광 자원 개발 과정에서 이 일대의 조사와 발굴이 진행되던 중 명대(明代) 만리장성 동단 기점 유적이 발견되었고, 그 하부에서 대규모의 고구려 유적이 발견되었다. 장성 동단기점 유구 조사 과정에서 거대한 석축 우물지를 발견, 조사 결과 고구려의 것으로 판정되었다.


우물 내벽 직경은 4.4m, 바닥에서 지표까지의 깊이는 23m. 우물은 원형으로 그 북쪽에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차단하고 흙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쐐기형 돌을 사용하여 긴 벽을 축조하였으며, 우물의 둘레는 돌로 쌓아 반원형의 배수구를 둘렀으며, 물을 길어 산 위로 왕래 하기 위해 2개의 돌계단을 쌓았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우물의 가장자리는 돌로 타원형의 벽을 쌓았는데, 쐐기형 돌로 가지런하고 견고하다. 바깥으로 너비 2m의 구조를 한 줄 둘렀는데 그 안에는 가는 모래와 강자갈로 채워 물을 여과했음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각종 유물이 풍부하게 발견되었는데, 길이 3.7m에 이르는 나무배와 노, 삿대, 통, 구유, 목제완, 널빤지, 바가지, 철제 저울추, 철제 갈고리, 회색 단지, 손잡이가 2개 달린 큰 항아리 등이었다.


호산 북면 정상부 가장자리의 수풀이 무성한 곳, 그 토층 하부에서는 쐐기형 돌로 축조한 성벽이 발견되었다. 성벽은 산세를 따라 축조, 끊어진 곳도 있지만 산 둘레의 반 바퀴 정도로 600m 정도 확인되었다. 그러나 장성 유적의 조사에 부수한 조사결과여서 산성의 전모는 여전히 알 수 없는 채로 남아 있다.


어떤 구간은 상당히 완전한 상태로 남아 있다. 여기에 근거하여 산성의 둘레 길이는 약 1,200m라고 추정되고 있다. 성벽의 안팎 면은 모두 잘 다듬은 쐐기형 돌로 쌓았고, 내부는 거칠게 다듬은 돌을 쌓아 채웠다. 석축 성벽에서는 찰갑 조각, 화살촉, 투겁창, 단지, 솥, 도끼 등 각종 철제 유물이 나왔다. 호산 정상부에서는 청동기 시기, 한대, 고구려, 요금(遼金), 명대 등 서로 다른 시대의 유적과 유물이 풍부하게 발굴되었다.



의의와 평가


박작성은 애하와 압록강이 합류하는 지점의 돌출된 구릉 위에 자리잡고 있어, 애하 건너편의 애하첨 고성지와 함께 평지성과 산성의 결합 형태를 보여준다. 이에 압록강 하구에 위치했던 것으로 문헌에 기재된 박작성으로 비정되고 있다. 압록강 하구에 위치하여 압록강을 거슬러 올라오는 길목을 통제하는 요충이었다. 압록강 남쪽의 의주(宜州)백마 산성(白馬山城)과 함께 압록강 방어의 주요 성곽이었다고 보인다.


648년 당(唐)의 설만철(薛萬徹)과 배행방(裴行方)이 군사 3만을 거느리고 내주(萊州)에서 건너와 공격, 이들은 압록강으로 들어와 박작성 남쪽 40리 지점에 진을 쳤다. 박작 성주 소부손(所夫孫)이 보기 1만으로 막았으나 패하여 퇴각하였다. 당군이 박작성을 포위했으나 지형이 험준하여 함락시키지 못하였다. 고문(高文)이 오골성(烏骨城)과 안시성(安市城) 등의 군사 3만 여명을 거느리고 와서 구원하였으나 패하였다.


현재 호산 남쪽에는 호산 장성 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고구려 우물은 메워졌으며 명(明) 장성유적에 앞서 고구려의 산성이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은 언급되지 않고 있다. 대신 호산 산성을 명대 장성의 동쪽 기점이라 평가하고 여기에 벽돌로 쌓은 명대 장성을 복원하여 관광지로 개발하였다. 박물관의 좌측으로 산 사면에서 고구려 성벽의 흔적을 살필 수 있다.



참고문헌


이성제 편, 『고구려 성 사진 자료집』-요령성·길림성 서부(동북아역사재단, 2006)

王禹浪·王宏北, 『高句麗·渤海古城址硏究滙編』上(哈爾濱出版社, 1994)

馮永謙, 「高句麗泊汋城址的發現與考證」(『北方史地硏究』, 中州古籍出版社, 1997)

王綿厚, 「鴨綠江右岸高句麗山城硏究」(『遼海文物學刊』 1994-2, 1994)



요령성 단동시 관전만족자치현 호산진 호산촌 호산에 위치한 고구려 산성인 박작성의 흔적이다.


단동시에 위치한 호산 산성(박작성) 모습이다. 박작성은 5호 포방루, 6호 담대, 7호 공심 적루, 수가루로 연결되는 성벽이다.


단동시에 위치한 박작성 모습이다. 박작성은 6호 담대, 7호 공심 적루로 연결되는 성벽이다.


단동시에 위치한 호산 산성의 박작성이다. 보행대계에서 바라 본 모습이다.


단동시에 위치한 호산 산성의 박작성이다. 왼쪽에는 압록강이 흐르고, 오른쪽에는 산이 겹쳐져 있다.


단동시에 위치한 호산 산성 표지석과 출입문 모습이다. 표지석에 "호산 장성이 만리 장성 동단"이라고 새겨져 있다. 중국식 성벽을 지어 출입문으로 사용하고 있다.


단동시에 위치한 호산 산성 입구 수가루 모습이다. 수가루 현판에 "호산장성"이라 적혀 있고, 수가루 하단부 오른편에 출입구가 있다.


단동시 관전만족자치현 호산진 호산촌 호산에 위치한 고구려 산성인 박작성의 흔적(호산 남쪽)과 중국측이 복원해 놓은 장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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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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