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kpedia.kr/Contents/ContentsView?contentsId=GC05311845&localCode=krcn
봉황산산성 (鳳凰山山城)
중문 : 凤凰山山城
지역 : 요령성 단동시 봉성시 변문진 고성리촌 40°22'40.2"N124°5'6.3"E
양식 : 포곡식 석축 산성
크기 : 성벽의 전체 둘레 15,955m
정의
요령성(遼寧省) 단동시(丹東市) 봉성시(鳳城市)봉황산(鳳凰山)에서 고려 성자산(城子山)에 걸쳐 축조된 고구려 최대 규모의 산성.
건립 경위
봉황산 산성은 고구려가 요동(遼東)으로 진출한 5세기를 전후한 무렵 이후에 축조된 것으로 판단된다. 고구려의 연화문 와당을 비롯하여 토기 및 철기 등이 확인되고 있어 고구려가 축조한 성임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된다. 또한 봉황산 산성은 고구려의 최대 규모급 산성으로, 성 내부가 매우 넓어 고구려의 오골성(烏骨城)으로 비정된다. 고구려와 당과의 전쟁 당시 백암성(白巖城)이나 박작성(泊灼城)이 위험에 처했을 때, 오골성에서 군사를 보냈다는 기록이 『자치통감(資治通鑑)』과 『구당서(舊唐書)』에 등장하고 있으며, 명대(明代)의 『요동지(遼東志)』에도 오골성이 1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위치
봉황산 산성은 요령성 봉성시에서 동쪽으로 약 5㎞ 떨어진 봉황산에 위치한다. 애하(靉河)의 좌안으로, 봉황산의 정상부는 찬운봉(攢雲峰)으로 해발 836m이며, 맞은편의 고려 성자산의 정상부인 동대정자는 해발 800m 가량이다. 봉황산 산성은 요동 반도 동남부의 교통 중심지에 자리하고 있다. 서쪽으로는 낭랑 산성(娘娘山城)를 비롯한 수암의 여러 산성을 거쳐 영성자 산성(英城子山城)[안시성(安市城)]에 이르고, 서북쪽으로는 백암성을 지나 요동성(遼東城)과 이어지며, 동남쪽으로는 호산 산성(虎山山城)[박작성]을 거쳐 평양(平壤)에 이를 수 있다.
형태
봉황산 산성은 봉황산과 고려 성자산에 걸쳐 축조된 포곡식(包谷式) 산성으로, 그 둘레는 16㎞에 달한다. 산성을 따라서 우뚝 솟은 산봉우리와 깎아지른 듯 한 거대 절벽들이 이어져 있어 매우 험준한 지형을 이루고 있다. 산성의 평면 형태는 평지를 사이에 둔 두 개의 반원형 산 줄기로 인해 대략적으로 원형을 이룬다.
현황
2000년대 중후반에 이르러 요령성 문물 고고 연구소가 중심이 되어 봉황산 산성에 대한 발굴 조사를 진행하였다. 2006년에는 산성의 북벽 구간을, 2007년에는 산성 주변의 고구려고분 183기, 성 내부의 대형 건물지 1기와 망대를, 2010년에는 3호와 4호 문 터를 발굴 조사 하였다. 그 결과에 따르면 성벽의 전체 둘레는 15,955m이며, 포곡식 석축 산성이다. 성벽은 험준한 자연 절벽을 그대로 성벽으로 이용하기도 하였는데, 석축 구간은 대략 7,525m에 달한다.
산성의 정문은 남문으로, 문 터 앞에는 거대한 차단벽이 설치되어 있다. 차단벽의 겉면은 석축이지만 내부는 흙으로 채워져 있다. ‘八’자형의 북문[1호 문지]은 두 산을 연결하는 능선이 움푹 꺼져 협곡을 이룬 곳에 있는데, 그 좌우 능선으로 정연하게 쌓아올린 성벽이 잘 남아있다. 북문에는 요대(遼代)의 옹성이 설치되어 있다.
북문에서 동쪽으로 약 50m 떨어진 곳에는 치(雉)가 1개 발견되었는데, 성벽과 맞물려 있어 동시기에 축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치와 마주보고 있는 성벽의 안쪽에서는 초소로 추정되는 시설과 함께 성벽으로 오를 수 있는 등성 시설[漫道]도 확인되었다. 이 밖에도 북쪽 성벽에서는 여장과 함께 30여 개가 연속적으로 분포하고 있는 돌 구멍이 발견되었다. 돌 구멍 한 변의 길이는 0.25m, 깊이는 0.5~1.2m로 각각 다르다.
성 내부에서는 지금까지 2곳의 망대가 발견되었는데, 남문의 서쪽에서 확인된 망대는 기초부[護臺], 계단, 망루[主體高臺]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주변에서 연화문 와당을 포함한 다량의 고구려 기와가 발견되었다. 이 외에도 성 내부의 대형 건물지에서는 심발(深鉢), 호(壺) 등과 같은 토기와 낫, 화살촉, 차축두(車軸頭) 등의 철기류, 그리고 승문(繩文) 타날(打捺) 및 무문양 기와와 6세기대의 연화문 와당 등이 출토되었다.
의의와 평가
봉황산 산성은 요동 지역에서 단동(丹東)을 가기 위해 꼭 거쳐야만 하는 교통로의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다. 또한 그 둘레가 16㎞에 달하는 고구려 최대의 포곡식 산성이다. 문헌 기록에 따르면 욕살[褥薩, 고구려의 지방관직]이 파견된 오골성(烏骨城)으로 비정되고 있으며, 고구려요동 남부 방어를 위한 방어성임과 동시에 지방 지배를 위한 치소성(治所城)으로 활용된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王綿厚, 『高句麗古城硏究』(文物出版社, 2002)
王禹浪·王宏北,『高句麗·渤海古城址硏究匯編』上(哈爾濱出版社, 2007)
王禹浪·王文軼, 『遼東半島地區的高句麗山城』(哈爾濱出版社, 2008)
國家文物局,『中國文物地圖集』-遼寧分冊(西安地圖出版社, 2009)
관련글
'고구려 > 성,지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작성 (泊汋城) - 세계한민족문화 (0) | 2021.01.10 |
---|---|
봉황산산성; 옥골성; 오골성(鳳凰山山城; 屋骨城; 烏骨城) - 동북아역사넷 (0) | 2021.01.08 |
오골성(烏骨城) - 동북아역사넷 (0) | 2021.01.08 |
봉황성(鳳凰城) - 민족문화대백과 (0) | 2021.01.08 |
오골성(烏骨城) - 민족문화대백과 (0) | 2021.01.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