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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괴한 원세훈 판결…“정치엔 개입했지만 선거에 개입하진 않았다”
‘국정원법 위반’만 유죄…朴대통령 정통성 직결 선거법 위반엔 면죄부
강경훈 기자 qwereer@vop.co.kr 발행시간 2014-09-11 20:29:55 최종수정 2014-09-11 23:28:33

집행유예 선고 입장 밝히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
집행유예 선고 입장 밝히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11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으로 선고 공판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를 받고 법정을 떠나기 전 입장을 밝히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이범균 부장판사)는 공직선거법과 국정원법위반 혐의로 기소된 원세훈 전 원장에게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 자격정지 3년을 선고한다고 밝혔다.ⓒ김철수 기자

국정원 대선·정치개입 혐의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1심에서 공직선거법 위반은 무죄·국정원법 위반은 유죄 판결을 받았다. 원 전 원장이 정치에 개입한 것은 맞지만 대선에 개입하진 않았다는 판결로 박근혜 정권의 정통성과 직결되는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면죄부를 준 셈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이범균 부장판사)는 11일 원 전 원장에게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 자격정지 3년을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이종명 전 국정원 3차장과 민병주 전 심리전단장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과 자격정지 1년을 각각 선고받았다.

재판부 판결 요지는 국정원 직원들이 원 전 원장 등 피고인들의 지시로 매일 시달받은 이슈 및 논지에 따라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을 지지·비방하는 정치 행위를 한 점은 인정되지만 선거법상 선거운동을 했다고는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들이 제18대 대통령선거 시기에 선거운동을 했고, 이와 같은 선거운동을 피고인들이 지시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드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국정원 직원들이 수행한 사이버 활동이 능동적.계획적 행위로서 선거운동에 해당한다거나, 피고인들이 그러한 목적으로 직원들에게 선거운동 지시를 해 그에 따라 선거운동이 이뤄졌음을 인정하기 부족하고,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판시했다.

재판부가 원 전 원장 등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린 근거는 공직선거법 제 58조 1항이 규정하고 있는 ‘선거운동’의 정의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선거운동’의 성립 요건에 대해 “특정 후보자의 당선이나 낙선을 위해 유리한 모든 행위로 당선 또는 낙선을 도모한다는 목적 의사가 객관적으로 인정될 수 있는 능동적·계획적 행위를 말하는 것”이라고 전제했다.

이어 “피고인들의 행위가 단순히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라는 사실 만으로 유죄로 판단할 수 없다”며 “피고인들의 행위가 특정 후보자의 당선 또는 낙선을 도모한다는 목적 의사가 객관적으로 인정될 수 있는 능동적·계획적 행위에 해당한다는 것이 입증돼야 비로소 공소 사실을 유죄로 인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정원법 위반과 관련해서는 심리전단 직원들이 인터넷 사이트에서 2012년 8월~2012년 12월 1천215건의 찬반 클릭을 하고, 2009년 2월~2012년 12월 2천125건의 글을 게시한 혐의를 국정원법 위반으로 인정해 유죄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국정원 심리전단 활동이 원 전 원장의 구체적 업무 지시에 따른 것이며, 작성된 내용을 볼 때 정치관여 의도가 명백하다고 판단했다. 심리전단 직원들이 원 전 원장의 '지시·강조 말씀'을 바탕으로 한 이슈 및 논지를 매일 시달받아 업무용 노트북으로 댓글과 트위터 활동을 했고, 작성한 글에서도 국정 성과는 긍정적으로 묘사하면서 정부정책에 반대하는 세력에 대해서는 비방할 의도를 드러냈다는 것이다.

다만 재판부는 “이 사건의 범행이 국정원의 직무범위를 일탈한 위법한 방법으로 이뤄진 것이기는 하나, 원 전 원장을 비롯한 심리전단 직원들의 주된 목적은 북한의 사이버상 허위사실 유포 및 흑색선전 활동에 대한 대응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므로, 범행 동기를 참작했다”고 양형 사유를 밝혔다.

또 “원 전 원장이 국정원 직무 범위에 관한 판단을 그르쳐 사이버 활동이 적법한 직무 범위에 속한다고 오인함해 범해진 것으로 보일 뿐 적극적으로 위법성을 인식하고 정치적 공작을 벌일 목적으로 범행을 지시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인터넷 게시글과 찬반 클릭에 대해 재판부는 검찰 공소사실 전부를 유죄로 인정했으나, 트위터 활동에 대한 공소사실에 대해서는 상당수 유죄로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검찰은 국정원 직원이 사용한 계정으로 1천157개를 특정했지만, 이 중 175개만 국정원 직원이 사용한 것으로 인정되고, 나머지 982개 계정들의 경우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국정원 직원들이 이 사건 사이버 활동에 사용한 계정임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국정원의 일상적 국정홍보 행위가 선거기간과 겹쳤을 뿐”
“오히려 국정원장은 선거개입 하지 말라고 지시”
재판부, 검찰 공소사실 반박하며 원세훈 혐의에 정당성 부여?

재판부는 이날 판결에서 공직선거법 위반이라고 주장하는 검찰 공소사실의 세부적인 사안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검찰 공소사실은 크게 세가지로, ▲2010년 1월부터 2012년 11월까지 지방선거·재보궐선거·총선·대선 등 각종 선거와 관련해 북한이나 종북세력, 북한의 동조를 받는 정책이나 의견을 가진 사람들의 국정흔들기에 국민들이 현혹되지 않도록 적극 대처하라는 내용이 담긴 원세훈 전 원장의 지시사항 ▲원 전 원장 지시와 이 전 3차장과 민 전 심리전단장의 지휘계통에 따른 심리전단 직원들의 사이버 활동에 의한 범죄 실행 ▲이러한 조직적 활동을 통해 특정 정당과 정치인에 대한 낙선 목적의 선거운동으로 선거개입 범죄행위를 실행했다는 공직선거법 위반 등이다.

재판부는 먼저 심리전단이 작성해 하달한 한미FTA, 제주 해군기지 건설 사업, 4대강 사업, 북핵 및 미사일 문제, 이명박 대통령의 외교 행보, 부상복지 문제 등에 대한 이슈 및 논지 내용과 관련해 “주제와 논지만 기재돼 있을 뿐 18대 대선과 관련한 사항이나 특정 대선 후보자에 대한 지지 또는 반대의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고 밝혔다.

검찰이 심리전단 활동 기간을 2012년 1월 3일부터 12월 19일까지 특정한 데 대해서도 재판부는 “2012년 1월은 대선 후보자가 누구인지조차 확정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그당시부터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들이 특정 후보자의 당선 또는 낙선을 목적으로 조직적 선거운동을 했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또 국정원이 일상적으로 해온 특정 정책에 대한 지지·반대 행위가 선거 기간 ‘쟁점’과 맞물릴 경우에는 선거운동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는 전교조나 공무원노조의 시국선언 등에 대해 공직선거법위반 판결을 내린 판례와 비교할 때 공직자 선거 개입 행위에 대해 상대적으로 매우 관대한 판결을 내린 셈이다. 과거 법원은 "전교조가 시국선언문에 민주노동당을 직접 명시하지는 않았더라도 민주노동당을 지지한 것이 명백히 인정되는 이상 단순히 그 명칭을 명시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는 지지의사를 표시하지 않았다고 볼 수 없다"며 전교조 시국선언에 대해 선거법 위반 취지의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반면 재판부는 원 전 원장의 구체적인 지시·발언 내용의 취지에 대해 정부 시책이나 정책 기조에 반하는 야당과 정치인을 비판하는 내용으로 이해된다고 하면서도 “원 전 원장 지시 및 발언 내용에서 직접적으로 18대 대선에 관해 선거운동을 지시한 것으로 파악되는 부분을 찾을 수 없고, 특정 후보자를 지지 또는 반대하라는 취지가 포함돼 있지 않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원장님 지시·강조말씀’과 관련해 ▲대선정국을 맞아 휩쓸리지 않도록 직원들을 철저히 관리해야 함 ▲부서장 이하 직원들이 선거과정에서 물의를 야기하지 않도록 긴장감을 유지하고 문제 발생시 연대책임을 물을 것 ▲선거 종료시까지 불필요하게 연루되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유의해주기 바람 등이 언급된 점을 들어 “피고인이 제18대 대선을 앞두고 반복적으로 선거에 개입하지 말 것을 지시했음이 인정될 뿐”이라고 설명했다.

원 전 원장이 국정원장으로 부임한 이후 심리전단 사이버팀을 증편했고, 18대 대선이 있는 2012년 초에 트위터 전담 안보5팀을 신설했다는 사실을 토대로 범죄의 목적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는 검찰 주장에 대해 재판부는 “명확한 근거가 없을 뿐 아니라 논리의 비약이 매우 심해 수긍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원세훈 “공직선거법 위반 무죄 옳은 판단”
국정원 시국회의 “모순되고 정치적으로 편향된 판결”

재판부가 원 전 원장 등의 정치 개입 행위가 여론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인정하면서도 선거개입을 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한 것과 관련해 "모순되고 편향된 판결"이라는 비판 여론이 일고 있다. 특히 선거법 위반이 유죄 판결을 받을 경우 박근혜 대통령이 '관권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국정원 직원들이 대선 직전까지 문재인 후보 등을 비방하는 트위터 활동을 한 사실이 확인된 상황에서 선거법 위반을 인정하지 않은 판단과 관련해서도 논란이 불가피하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과 각계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국정원시국회의 관계자들은 재판 결과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박주민 민변 변호사는 “국정원장 지시에 따른 불법 행위가 국민 여론에 막대한 영향을 행사했다는 것 모두 재판부가 인정해놓고 선거개입은 아니라는 굉장히 모순된 판결을 했다”며 “형식적이고 기계적인, 정치적으로 편향된 판결이라고 판단된다”고 지적했다.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도 “도둑질한 것은 맞지만 절도범으로 처리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은 판결”이라며 “사법부가 박근혜 정권의 관권 부정선거에 의한 부정 당선을 은폐하고 엄호하기 위해 사법정의와 국민주권을 내팽개친 파렴치한 행위를 했다”고 규탄했다.

반면 원 전 원장은 판결 직후 기자들과 만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무죄에 대해 옳은 판단을 했다고 보고 있다”며 “국정원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북한의 우리나라 정책 비난에 대한 대응을 한 것이기 때문에 항소심에서 하나하나 (무죄를 밝혀내기 위해) 잘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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