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40726

"대통령직 걸고 승조원 구출 그게 내가 대통령된 이유니까"
2010년 드라마 <대물> '대통령' 고현정의 발언 화제... 세월호 참사와 오버랩
14.10.06 18:29 l 최종 업데이트 14.10.06 18:29 l 손지은(93388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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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대물>의 한 장면 드라마 속 주인공인 혜림(고현정 분)의 남편은 아프간으로 취재를 갔다 피랍되어 목숨을 잃는다. 정부의 허술한 대응 때문에 남편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혜림은 장례식장에 찾아온 정부 관계자에게 매섭게 쏘아붙인다. ⓒ SBS <대물> 갈무리

"정부에서도 최선을 다했지만 구해드리지 못해 유감입니다. 대통령께서도 유가족 여러분께 위로의 말씀을 전해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최선이요? 지금 최선이라고 하셨어요?"

SBS 드라마 <대물> 속 주인공인 아나운서 혜림(고현정 분)의 남편은 카메라 기자다. 남편은 아프간으로 취재를 나갔다 반정부세력에게 피랍되어 목숨을 잃었다. 장례식장을 지키고 있던 혜림에게 정부 관계자가 찾아와 대통령이 보낸 조화와 함께 위로의 말을 건넨다. 하지만 정부 관계자 입에서 '최선'이라는 단어가 언급되자 혜림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진다.

"일본 취재진은 모두 풀려났는데 우리 그이만 시신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근데 지금 최선이라고 하셨어요? 저깟 조화로 최선을 다하셨다고요?"

혜림은 취재진이 보는 앞에서 대통령이 보낸 조화를 바닥으로 내팽개쳐 버린다. 그리고 짓밟는다. 조화로 난장판이 된 장례식장 바닥에 주저앉아 혜림은 통곡한다. 옆에서 말리던 아이도 엄마 품에 안겨 엉엉 울고 만다. 

"이딴 거 필요 없어, 갖고 가요. 내 남편 살려내라고요!"

"도대체 국가가 왜 존재하는 겁니까"... 드라마 <대물> 다시 화제

슬픈 드라마가 현실이 되어 버렸다. 지난 2010년에 방영된 SBS 드라마 <대물>의 한 장면이 인터넷에서 다시 회자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 직후 한 동영상 공유사이트에 올라와 화제가 됐던 이 영상은 참사 174일인 오늘(6일)까지 누리꾼의 관심을 받고 있다. 이 영상은 페이스북에서만 2500여 차례 공유됐다. 또 2만5천여 명이 '좋아요'를 눌렀다. 

드라마 속에서 남편을 잃은 고현정은 "최선을 다했다"는 정부의 말에 분을 삭이지 못한다. 이 장면은 세월호 참사 이틀 뒤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한 희생자 가족들의 모습과 완벽하게 일치한다. 당시 가족들은 호소문에서 "대한민국 재난본부에서는 인원 투입 555명, 헬기 121대, 배 169척으로 우리 아이들을 구출하고 있다고 거짓말 했습니다"라고 비판했고, 가족들이 제기한 의혹은 후에 사실로 드러났다. (관련기사: "잠수사 532명 투입"... 실제론 76명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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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BS <대물>의 한 장면 "이런 국가가 국민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중략) 정부가 도대체 왜 존재해야 하는 겁니까?” 장례를 마치고 회사로 복귀한 혜림은 라디오 생방송에서 결국 사고를 치고 만다. ⓒ SBS <대물> 갈무리

참사 후 열흘이 지나도 살아 돌아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해경은 '구조 0명'이라는 수치스러운 기록을 남겼다. 동시에 희생자 가족과 국민은 '국가가 누굴 위해 존재하느냐'고 정부에게 따져 물었다. 국가의 존재 의미를 묻는 건 드라마 속 고현정도 마찬가지다. 장례를 마치고 회사로 복귀한 혜림은 라디오 생방송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프간에서 일본 취재진들은 다 풀려났는데, 왜 한국 취재진들은 풀려나지 못했을까요? 정부가 무능한 건가요, 미국 눈치만 보는 건가요? 이런 국가가 국민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중략) 정부가 도대체 왜 존재해야 하는 겁니까?"

혜림이 대본에 없는 이야기를 꺼내자 녹음 부스 밖에서 지켜보고 있던 제작진이 바빠졌다. 놀란 표정의 담당 피디는 혜림을 향해 말을 그만두라는 수신호를 끊임없이 보낸다. 하지만 혜림은 개의치 않는다. 담당 피디를 똑바로 바라보며 또박또박 다음 말을 이어간다. 

"이 나라에 태어난 게 죕니까? 우리가 나라 없는 백성인가요? 국민들 목숨 하나 보호하지 못하는 나라가 도대체 왜 필요합니까? 대한민국은 누굴 위해 존재하는 나라인가요?"

지난 5월 8일은 국가의 존재 이유를 묻던 유족들이 결국 거리로 나온 날이었다. (관련기사:청와대, 대통령 면담 요청 거절 KBS 사장 "상처드려 죄송하다") 시신을 수습하고 장례를 마친 이들은 '진상 규명'과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며 아스팔트 위에서 밤을 지새웠다. 아이들의 영정사진을 품고 무릎 담요 한 장으로 추위를 견뎠지만 대통령은 끝내 만나주지 않았다. 이날 이후 유가족들은 거리를 떠돌았다. 그리고 청와대와 국회 앞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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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대물>의 한 장면 국회를 지나다 비정규직 반대 시위대열에 합류한 혜림은 잠시 머뭇거리다 국회를 향해 쓴소리를 뱉어낸다. "왜 못 살렸습니까? 왜 구해주지 않았습니까?"라고 절규하는 혜림의 모습이 세월호 참사 이후 다시 회자되고 있다. ⓒ SBS <대물>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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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BS <대물>의 한 장면 드라마 속에서 남편을 잃은 혜림은 국회를 향해 소리친다. "대한민국은 대체 누굴 위한 나라입니까. 국회의원들에게 국민은 선거 때 찍어주는 한표, 두표 표밖에 안 되는 겁니까?" ⓒ SBS <대물> 갈무리

농성을 시작한 세월호 유가족처럼 혜림 또한 국회 앞에서 성토한다. 국회 앞을 지나다 비정규직에 반대하는 시위대에 얼떨결에 합류한 혜림은 목이 찢어져라 외친다. 

"대한민국은 대체 누굴 위한 나라입니까. 국회의원들에게 국민은 선거 때 찍어주는 한표, 두표, 표밖에 안 되는 겁니까? 개가 집을 나가도 찾는데, 이 나라 국민은 개만도 못합니까?"

"왜 못 살렸습니까? 왜 구해주지 않았습니까? 미군 여기자가 북한에 피랍됐을 때는 클린턴이 북한에까지 가서 구했는데, 똑같이 납치됐는데 일본 기자들은 살아서 돌아오고, 왜 우리 남편은 죽어 돌아와야 했습니까?"

드라마 속 '여성 대통령'은 "대통령직 걸고 구조하겠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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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BS <대물> 속 한 장면 남편을 지켜주지 못한 국가를 원망하다 정치인으로 거듭난 혜림은 결국 한국 최초 '여성대통령'이 된다. 드라마 속 '여성대통령'은 자신의 정치 생명을 걸고 국민의 생명을 지킨다. ⓒ SBS <대물> 갈무리

혜림은 남편을 지켜주지 못한 국가를 원망하다 정치인으로 거듭난다. 그리고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된다. 임기 중에 중국 영해에서 정보수집 활동을 하던 한국군 잠수함이 좌초돼 승조원들이 목숨을 버려야 하는 사건이 발생하지만, 굴욕 외교라는 비난을 감수하며 승조원을 구해낸다. 구조대 파견을 반대하는 미국 측과 대화하는 장면에서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난 대통령직을 걸고 우리 승조원들을 구해야겠습니다. 대한민국에서 더는 국가가 지켜주지 않는 국민들이 나와서는 안 됩니다. 그게 내가 대통령이 된 이유니까요."

우여곡절을 겪으며 임기를 마친 혜림은 퇴임식에서 정치를 이렇게 정의한다. '유가족이 원하는' 세월호 특별법이 세 번이나 좌초된 지금 시점에서 곱씹어 볼 만한 대사다. 

"정치는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국민 여러분의 보다 나은 살림살이와 인간적인 생활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바로 정치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 번 드라마가 현실이 될 수는 없을까.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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