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contents.history.go.kr/front/nh/view.do?levelId=nh_007_0080_0010_0030


3) 후기 가야연맹의 영역


5∼6세기 후기가야의 영역을 살펴보기 위한 고고학 자료로는 해당 시기 영남지방의 수혈식 석곽묘를 위주로 한 고분 유적 자료가 있다.


토광목곽묘 문화 말기 이래로 영남지방의 고분 유적·유물의 계통은 크게 2개의 문화권으로 양분되기 시작하며, 그러한 현상은 그에 중복되면서 이어지는 석곽묘 유적에까지 계속된다. 이러한 문화권 양분은 곧 신라·가야 세력권의 분리와 관계가 없지 않을 것이며, 이는 고구려의 배경 아래 경주세력의 주도로 일어나는 신라의 영역 팽창과 가야연맹권의 축소에 따른 결과로 파악된다. 그 시기는 문헌사료에서 신라가 고구려의 강한 영향 아래 있었다고 생각되는 신라 奈勿·實聖·訥祗麻立干代(내물,실성,눌지마립간대) 즉 4세기 중엽에서 5세기 초에 걸치는 시기였으리라고 추정된다. 특히 전기 가야연맹의 일국이었던 瀆盧國(독로국)의 유적으로 추정되는 동래지방이나 6가야와 관련하여 그 연맹권에 포함되었을 것으로 거론되는 창녕·성주지방의 고분군에서 5세기 이후로 신라 계통 일색의 유물들이 출토되는 것은 가야연맹권의 축소를 반영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위하여 지금까지 발굴된 유적을 중심으로 해당 시기의 영남지방 석곽묘관계 유적·유물을 묘제와 토기를 중심으로 구분해보면 다음과 같다.724)


신라문화의 특징은 묘제의 측면에서 積石木槨墳·橫口式(적석목관분,횡구식) 石槨墓·橫穴式(석곽묘,횡혈식) 石室墓·竪穴式(석실묘,수혈식) 石槨墓(석곽묘/짧은 장방형 평면)가 다양하게 나타나고, 토기양식은 二段交列透窓有蓋高杯(이단교열투창유개고배)와 臺附長頸壺(대부장경호)를 기본으로 한다. 이는 진변한 공동 문화기반에서 일단의 변화를 일으킨 것이라고 보인다. 그러한 문화를 공통적으로 보유한 신라 영역은 대체로 낙동강 동안의 경상좌도지역이며, 세부적으로는 경주를 중심으로 하여 의성·안동·경산·대구·칠곡·성주·선산 등의 신라 북부지역과 창녕·울산·양산·부산 등의 신라 남부지역으로 구분된다.


가야문화의 특징은 묘제의 측면에서 좁고 긴 장방형 평면의 수혈식 석곽묘가 보편적으로 나타나고, 토기양식은 이단직렬투창유개고배와 有蓋長頸壺·器臺(유개장경호,기대)를 기본으로 한다. 이는 후기 가야문화가 前代(전대) 이래 진변한 공동의 문화전통을 거의 그대로 계승 발전한 측면을 보여 준다. 그러한 문화를 공통적으로 보유한 가야 영역은 대체로 낙동강 서안의 경상우도지역이며, 세부적으로는 고령을 중심으로 하여 합천·거창·함양 및 남원 동부 등의 가야 북부지역과 함안·고성·사천·진주·산청·하동·김해·창원 등의 가야 남부지역으로 구분된다.


그러므로 후기 가야 문화권을 전기 가야 시기와 비교해 볼 때 문화 성격은 그리 변하지 않았으나, 문화 중심은 김해를 비롯한 경남 해안지대에서 고령을 비롯한 경상 내륙 산간지방으로 옮겨 왔으며, 문화권은 고령 이남의 낙동강 서안지방으로 축소되어, 전기 가야연맹에 속해 있다고 거론되던 지역 중에서 동래·창녕·성주·개령 등이 제외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문화 중심의 이동과 영역의 축소 현상은 전기 가야연맹의 해체를 전후한 4세기 후반부터 5세기 전반 사이에 일어난 것이었다고 하겠다.


위에서 고고학자료에 의하여 구분된 5∼6세기 가야문화권의 범위는 문헌사료를 통하여 추정되는 후기 가야의 세력범위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 살펴 보자. 당시 가야의 세력범위를 알 수 있는 문헌자료로는≪일본서기≫가 있다.≪일본서기≫欽明紀(흠명기) 23년(562)조에「任那 10國(임나10국)」즉 加羅國(가라국)·安羅國(안라국)·斯二岐國(사이기국)·多羅國(다라국)·卒麻國(졸마국)·古嵯國(고지국)·子他國(자타국)·散半下國(산반하국)·乞飡國(걸손국)·稔禮國(임례국)이 나오고, 同 2년(541) 4월조에는 530년대에 이미 멸망한 㖨己呑(탁기탄)·南加羅(남가라)·卓淳(탁순)의 3국이 나온다. 그러므로 한동안 가야지역에 속하였다가 6세기 초에 백제에게 빼앗긴 상·하기문국(남원·임실 등)을 제외하더라도 6세기 전반의 가야지역에는 13소국이 존재하였으며, 이를 지명 비정하면 아래의<표 5>와 같다.


번호국 명위 치근 거
1加羅國
가라국
고령군
고령읍
古名 大加耶國, 高靈郡 高靈邑 池山里·古衙里·本館里·快賓里·中和里·錦山, 雲水面 月山里, 雙林面 高谷里·龍里, 德谷面 後岩里 고분군, 谷面 桃津里 고분군, 陜川郡 冶爐面 金坪里 고분군
2安羅國
안라국
함안군
가야읍
古名 阿尸良國, 咸安郡 伽倻邑 末山里·道項里·沙內里·新音里 고분군, 郡北面 院北里·沙道里 고분군, 宜寧郡 宜寧邑 西洞·中里·上里, 嘉面 鳳頭里 고분군
3斯二岐國
사이기국
의령군
부림면
古名 辛爾縣, 宜寧郡 富林面 新反里·景山里 고분군, 正谷面 竹田里, 芝正面 柳谷里 고분군
4多羅國
다라국
합천군
합천읍
古名 大良州郡, 陜川郡 陜川邑 陜川里·盈倉里, 龍洲面 城山里·高品里·龍旨里, 栗谷面 文林里, 大陽面 正陽里 고분군, 大幷面 倉里, 鳳山面 苧浦里·鳳溪里·界山里·松林里 고분군
5卒麻國
졸마국
함양군
함양읍
문헌고증 불능, 咸陽郡 咸陽邑 白川里, 水東面 院坪里·上栢里 고분군, 南原郡 阿英面 月山里·淸溪里, 東面 乾芝里 고분군
6古嵯國
고기국
고성군
고성읍
古名 古自郡, 固城郡 固城邑 松鶴洞·栗垈里 고분군, 下一面 悟芳里 고분군, 泗川郡 正東面 禮樹里, 龍見面 松旨里 고분군, 固城郡 東海面 內山里·陽村里, 統營郡 光道面 黃里 고분군
7子他國
자타국
진주시문헌고증 불능, 晉州市 水精洞·玉峯洞·中安洞·新安洞·加佐洞 고분군, 晋陽郡 大谷面 臥龍里, 晋城面 中村里 고분군, 陜川郡 三嘉面 良田里·一部里·소오리 고분군
8散半下國
산반하국
합천군
초계면
古名 草八兮縣, 陜川郡 雙冊面 城山里·多羅里·上浦里·烏西里 고분군
9乞飡國
걸손국
산청군
단성면
古名 闕支郡, 山淸郡 新安面 中村里 고분군, 新等面 丹溪里 고분군, 車黃面 長位里 고분군, 生草面 於西里 고분군
10稔禮國
임례국
의령군
의령읍
古名 獐含縣, 宜寧郡 宜寧邑 中洞里·上里·中里·下里·서동리·정암리·무전리 고분군
11卓淳國
탁순국
창원시낙동강 이남, 新羅와 安羅 사이, 久斯牟羅 부근, 昌原市 加音丁洞·道溪洞 고분군, 馬山市 구암동·玆山洞 고분군, 鎭海市 熊川1洞 고분군, 義昌郡 東面 茶戶里, 北面 花川里·東田里, 鎭北面 新村里·大坪里, 鎭田面 임곡리, 龜山面 內浦里·龜伏里 고분군
12㖨己呑國
탁기탄국
창녕군
영산면
(+밀양?)
加羅(高靈)와 新羅(慶州) 사이, 卓淳國의 北境, 昌寧郡 靈山面 竹紗里·城內里·東里, 桂城面 舍里·桂城里, 都泉面 友江里 고분군, 密陽市 府北面 月山里 고분군
13南加羅國
남가라국
김해시古名 金官國(駕洛國), 金海市 大成洞·龜山洞·七山洞 고분군, 大東面 禮安里 고분군, 酒村面 良洞里 고분군, 釜山市 江西區 生谷洞 고분군

<표 5>후기 가야 13국의 위치비정표


위의<표 5>에서 대다수의 안정적인 지명 비정에 이어 약간 불확실한 임례국·졸마국을 추가하여 보면,≪일본서기≫에 나타나는 6세기 전반의 이른바 「임나 13국」 즉 후기 가야 13국의 위치는 고령·함안·부림·합천·함양·고성·진주·초계·단성·의령·창원·영산·김해 등지에 비정되어, 크게 보아 고령 이남의 낙동강 서안지방으로 한정할 수 있다. 이는 앞에서 본 5∼6세기 무렵의 고고학적 유물·유적에 의한 가야문화권 범위와 그대로 일치하는 것이며, 임나와 관련하여 가야영역을 과대평가하였던 기존설에 비해 어느 정도 그 범위의 축소조정이 이루어진 결과라고 하겠다(<도면 2>참조).





Posted by civ2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