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20111211225106

건축가 출신 김진애 의원 "건축은 저주받은 분야"
<인간의 조건>서 밝힌 '건축과 정치에 대한 근본 의심'
기사입력 2011-12-12 오후 2:13:58

2009년 11월 5일 민주당 김진애 의원이 등원한 첫 날, 본회의장에서 등원 연설을 위해 입을 뗐다. 한나라당 의원들의 야유가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이 연설 기사에는 "초선 의원의 화끈한 신고식"이라는 제목들이 붙었다.

"이명박 정부의 온갖 삽질 정책에 결연히 맞서고자 한다. 지금의 국회는 묻지마 통법부다. 국회가 이명박 정부의 불도저 국정운영을 제대로 견제하고 있느냐...4대강 사업은 국토를 절단낸다, 먹는 물을 썩게 만든다, 국가 재정을 파탄낸다. 우리 국회는 4대강 재앙 사업에 브레이크를 걸 용기가 있느냐."

4대강 사업은 이 대통령 임기 중 최고의 업적임에 분명하다. 물론 이 대통령 입장에서 봤을 때다. 그러나 4대강 사업만큼 이 정부 들어 갈등을 일으킨 이슈도 없다. '대운하 공약의 변형'이라는 비판과 함께 각종 비리 의혹의 진원지라는 평이 나왔다. 김 의원은 '화끈한' 대뷔 연설 이후 기자들에게 숱한 '4대강 특종'을 제공했다.

김 의원은 지난달 5일 낸 자신의 책 <김진애가 쓰는 인간의 조건>을 통해 4대강 사업에 "열정적으로" 반대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첫째, '건설이란 근본적으로 자연에 죄를 짓는 일이고 가능한 한 죄를 덜 짓는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는 나의 철학에 위배되는 일이다...둘째, 4대강 사업은 비리, 부실, 변칙, 편법의 온상이니 반대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다...셋째, '검증되지 않은 방식은 신중하게 써본 후 부작용을 살펴보고 범용 적용을 한다'는 가장 근본적인, 최소한의 '공학적 정직성'을 4대강 사업은 철저히 무시하고 있다."

▲ 김진애가 쓰는 '인간의 조건' ⓒ웅진

그렇다고 이 책은 4대강 사업을 비판하기 위한 책이 아니다. 김 의원의 이미지는 '4대강 사업'에 못 박혔지만, 그는 사실 건축가 출신이다. 그는 또 산본 신도시를 기획한 도시 계획 전문가이고 인문학자이며 언제나 비주류에 머무는 정치가이자, 활동가다. 그는 인간이 사는 공간을 얘기하고, 공간이 쓰이는 방식을 꿰뚫으며, 공간 속에 감춰진 권력의 속성을 들춰낸다. 그런 의미에서 4대강 사업은 '건축의 정치성'을 드러낼 수 있는 정치인 김진애의 '좋은 소재'다.

김 의원의 '건축'에 대한 태도는 독특하다. <인간의 조건>에서 김 의원은 "건축 분야는 사회적으로나 직능으로는 참으로 저주받은 분야다. 나는 건축이 이렇게 저주를 잉태하고 있는 분야인 줄은 전혀 몰랐다. 실무를 하면서 점점 더 깨닫는 저주의 원인은 첫째 건축이 주문 산업 이라는 것, 둘째, 발붙인 땅에다 단 하나밖에 없는 단품을 생산하는 일이라는 것, 그리고 첫째와 둘째 이유 때문에 셋째, 권력과 자본에 휘둘리기 십상인 분야라는 사실"이라고 설명한다.

건축에 대한 근본적인 의심이 건축가를 낳는다. 정치에 대한 근본적인 의심이 정치가를 낳듯. 김 의원은 <인간의 조건>을 선택에 관한 이야기로 봐달라고 주문한다. 선택에 앞서 자신을 둘러싼 '조건'을 살피고, 그것을 부정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후에 행동에 나설 '동기'를 스스로 부여할 수 있다고 호소한다. 통찰 후에 나오는 행동은 정치가 될 수도 있고, 건축이 될 수도 있고, 우리 모두가 일상적으로 하는 '밥벌이', 즉 노동이 될 수도 있다.

'읽을만한 책' 쓰는 정치인의 '아렌트 읽기'

김 의원이 쓴 <인간의 조건>은 독일 유대계 정치철학자로 평생 '전체주의의 기원'과 '악의 평범성'을 고발한 한나 아렌트의 저서 <인간의 조건>에 대한 오마주다. 정치인 김진애가 바라본 <인간의 조건>에 대한 성찰을 담아냈다. 최근 <나는 꼼수다>로 인기 상종가를 치고 있는 정봉주 전 의원처럼 직접 책을 쓰는 정치인이 늘어났다지만, 이 책은 '정치인 김진애'를 스스로 설명하는 정도의 수준을 넘어선다.

그는 "왜 지금 나는 인간의 조건에 대해 쓰는가. 지극히 비상식적인 상황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쓴다.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치밀어오르기 때문에 쓴다. 지금 이 시대에 다시 한번 인간의 조건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쓴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한나 아렌트에 대한 책은 아니다. 그는 자신이 '아렌티안(아렌트의 사상을 공부하고 해석하고 따르고 이어가는 사람들)'이라고 불릴 수 없다고 설명한다. 한나 아렌트의 말을 곱씹으며 자신의 정치 철학을 다듬어 갈 뿐이라고 말한다. 아렌트의 수많은 '아포리즘' 사이에서 그는 '우리는 어떻게 사고해야 하는가' 하는 생철학적 질문을 던져준다. 고민하는 청춘들에게 좋은 양식이 될 수도 있다.

김 의원은 다른 정치인들과 달리 '읽을만한 책'을 쓰는 국회의원으로 유명하다. 그가 쓴 <도시 읽는 CEO>나, <우리 도시 예찬>은 전문가의 식견과, 알기 쉬운 설명, 그리고 미처 생각지 못한 도시의 속성을 드러내고 있다. <오마이뉴스>에 2007년 8월부터 연재해 온 '김진애의 공간정치 읽기'와 월간지 <인물과 사상>에 2005년 7월부터 12월까지 연재한 '도시에 대한 태도' 엮어 낸 <공간정치읽기>도 그의 '필력'을 보여준다.
 
/박세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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