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ikoreanspirit.com/news/articleView.html?idxno=43487

사신(四神)이 무덤을 지키는 오회분 5호묘
중국 속 우리 역사 기행 13
승인 2014.10.14  22:25:52  글/사진=정유철 기자  |  hsp3h@ikoreanspirit.com

장수왕릉에서 출발하여 간 곳은 우산하고분군. 고구려 벽화고분은 현재 모두 106개가 있는데 그 가운데 집안, 환인지역에 30개가 있다. 집안 우산묘구에는 각저총, 무용총, 사신총, 오회분 4호, 오회분 5호묘 등 10기가 있다. 관광객이 묘실까지 들어가 벽화를 볼 수 있는 곳은 오회분 5호묘이다. 

고분군 초입에서 걸어가니 곳곳에 고분이 보인다. ‘집안은 무덤의 도시’라고 하는 말이 실감이 난다. 오회분 4호묘, 사신분………. 우리는 사신총(四神冢)이라는 이름에 익숙한데 중국에서는 사신분(四神墳)이라고 한다.
   

▲ 고구려 고분이 밀집되어 있는 우산하고분군. 통구고분군이라는 안내석을 세웠다.

오회분 5호묘에 이르러 묘도(墓道)를 따라 들어가니 기온이 내려가 시원하다. 용도(甬道)로 접어들면 곧이어 묘실(墓室)이 나온다. 묘실 벽에는 벽화, 고구려 고분에서 보는 벽화가 화려한 색채를 발한다. 6~7세기 고구려인들이 그린 벽화다! 집안박물관에도 이와 같은 형태로 재현해놓았지만,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전등불을 환하게 밝힌 가운데 벽면을 하나하나 바라보고 천장을 올려다보니 사방팔방이 다 그림으로 둘러싸였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사신도다. 좌청룡 우백호, 남주작, 북현무. 동쪽 벽에 청룡이 날고 있는데 용의 머리는 남쪽을 향해 엎드려 뛰는 자태다. 이 사신도는 무엇을 의미할까. 학자들은 사신이 죽은 자의 세계를 지키는 우주적 수호신이라고 설명한다. 6세기 중엽에서 7세기 전반에 걸치는 후기 고분벽화는 사신이 중심주제로 택해지며, 사실상 예외 없이 외방무덤에 그려진다. 사신은 널방의 벽면 전체를 차지하는 사실상 유일한 제재로 단순히 하늘별자리가 형성화된 방위신 정도가 아닌 죽은 자의 세계를 지켜주는 우주적 수호신이다. 
 

▲ 중국 집안 우산하고분군 가운데 묘실까지 들어가 볼 수 있는 곳은 오회분 5호묘이다.

3세기 중엽부터 5세기 초에 걸쳐 출현하는 초기 고분벽화에서는 생활풍속이 주로 나온다. 피장자가 살아서 생활하는 모습을 그대로 벽화로 재현한다. 살았을 때 생활이 죽은 뒤에도 이어지리라고 보았던 것이다. 피장자의 모습을 벽화에 그린 이유도 거기에 있다. 이후 삶과 죽음이 다르다는 의식이 생기면서 고분벽화도 변화가 생기는데 피장자의 모습이 사라지고 사신도가 중심 주제로 부각된다. 사후세계를 안전하게 지켜달라는 것이다. 
 
사진을 찍을 수 없어 가이드의 설명에 의존하였으나 많은 그림을 한 번 보고 모두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벽화 가운데 소머리를 한 사람, 우수인(牛首人)이 사지는 선인(仙人) 모습을 하고 발은 묵색(墨色) 가죽신을 타고 왼손을 펴서 앞쪽 꽃을 가리키는 듯하고, 오른손에는 곡물이삭을 쥐었다. 갈색의 뽀쪽한 옷깃에 소매가 넓은 깃털 옷을 입었으며 허리에는 녹색 두건을 두르고 눈에는 동록(銅綠), 녹송석(綠松石)이 끼어져 있다. 이 우수인은 누구인가? 중국에서는 옛 기록을 들어 신농씨(神農氏)라고 한다. ‘사기’(史記) 보삼황본기(補三皇本紀)에 “세상에 전하기를 신농은 사람의 몸에 소 머리를 하고 있다(世傳神農 人身牛首)”라는 기록이 있다. 우수인을 신농씨로 단정하는 것은 고구려 고분벽화가 중화왕조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아닐까. 이 또한 고구려가 중화왕조의 지방정권이라는 논리를 보충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 오회분 4호묘는 벽화를 보호하기 위하여 입구를 폐쇄하였다.

우수인 뒤에는 비천(飛天)이 있는데 이 비천은 머리를 풀어헤치고 코밑수염이 있다. 황색 뾰쪽한 옷깃에 넓은 소매인 두루마기를 입고 오른손에는 횃불을 쥐고 있다. 비천은 하늘을 나는 천인(天人), 천녀(天女)를 말한다. 이 비천 그림을 중국 자료에서는 도화자(盜火者)라고 설명하다. 오른손에 쥐고 있는 횃불이 인간에게 훔쳐다 주기 위한 것이니 도화자라는 거다. 이 비천은 불을 맡은 신, 또는 부뚜막 신-부엌에 있으면서 집안의 길흉을 주관하는 신, 조신(竈神)이라고 본다. 근거는 ‘산해경(山海經)’ 해외서경(海外西經) “남방을 맡은 신인 축융은 짐승의 몸에 사람 얼굴을 하고 두 용을 탄다(南方祝融, 獸身人面, 乘兩龍)”라는 내용의 곽박 주(郭璞 注)에 “불의 신이다(火神也)”라고 한 부분이다. 또 좌전(左傳) 소공(昭公) 29년조에 “화정은 축융을 말한다(火正曰祝融)”라는 구절이 있다. 화정(火正)은 불을 맡은 관리, 화신을 말한다. 그 외 수인씨(燧人氏)가 나무를 비벼 불을 얻었다는 전설이 있다. 이런 것을 거론하는 것은 중화민족은 예로부터 화신(火神)을 받들어왔는데, 해외에서도 그와 같이 불을 훔쳐온 사람을 숭모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설명이 길어지니, 장수왕릉을 찾은 울산 중학생들이 오회분 5호묘 앞으로 들어와 묘실 밖에서 기다린다. 묘실 안이 시원하여 나가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사진으로 담을 수 없는 벽화를 눈으로 마음으로 담고 학생들에게 자리를 비켜주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고분 사이를 걸었다. 오회분 4호묘는 입구를 봉했고, 사신총은 입구조차 없는 듯했다. 사람의 발길을 막아야 고분을 보존할 수 있을 것이다.
   

▲ 중국 집안 우산하고분군에 있는 사신묘.

동북공정 이후 중국에서는 고구려 고분이 중화왕조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았다는 점을 강조하는 추세다. 또 최근 중국의 연구자들은 평양 천도 이후의 고구려 왕릉도 모두 집안에 소재하고 있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오회분 4호묘를 영류왕릉, 오회분 5호묘를 대양왕릉으로 비정한다.  평양 천도를 했어도, 국내성 즉 집안이 고도(古都)로서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에 왕릉도 집안에 두었다는 주장이다. 유적으로 6세기 중반 이후의 고분 가운데 평양에는 왕릉급 고분이 강서대묘나 강서중묘 이외에는 찾기 어렵다는 점, 집안 오회분 4호묘, 오회분 5호묘 등은 대형 석실봉토분이면서 사신도 무덤이라는 점을 들고 있다. 
 
이러한 주장에 우리 학계는 현재로는 적어도 평양 천도 이전 시기의 고구려 왕릉은 주로 집안권에, 평양 천도 이후 고구려 왕릉은 평양권에 존재한다고 본다.

고구려 고분, 고분벽화는 어떻게 보면 중국이 동북공정에 치밀하게 이용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우리 학계의 치밀하고 줄기찬 연구와 함께 국민의 관심과 사랑이 매우 필요한 분야라는 생각이 든다. 오회분 5호묘 관람을 끝으로 집안에서 일정을 마감했다.


 
Posted by civ2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