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bit.ly/1pUCHm1 (문서파일) 
"해동성국 발해 : 제2부 발해의 문화 - 김동우" 중 "1. 발해의 건축" 부분만 가져왔습니다.

1. 발해의 건축
김동우 (국립춘천박물관 학예연구사)
 
발해인들은 성을 쌓고 그 안팎에 집을 짓고 살았다 발해의 번성했던 수도인 상경성은 당나라 장안성을 본떠서 만들었다 성안에는 외성(外城), 궁성(宮城), 황성(皇城) 등 7개의 궁전이 있고 각 건물들은 회랑으로 연결되었다. 모두 기와 지붕인데 유약을 발라 화려하게 만든 기와를 사용했다 이 중 외성은 전체둘레가 약 17km에 해당하여 서울 도성과 맞먹는 규모이고 당시에는 동아시아에서 당나라 장안성 다음으로 큰 제2의 도시였다.

도성 이외의 건축물로는 궁궐이나 관청 사원 집 등이 있는데 터만 남아 있어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없다 대부분 주춧돌이나 기단만 남아 있기 때문에 상층구조를 알아내기가 어렵지만 상경성에서 출토된 바 있는 건물의 기둥받침돌(柱礎石), 기둥 밑을 장식하던 기둥장식(座), 기둥 기단을 장식하던 돌사자머리(石獅子頭) 등은 발해 건축의 우수성을 보여주고 있다.

일반인들의 주거 형태는 2가지로 나뉘는데 하나는 지상에 설치된 가옥이며 다른 하나는 반지하식 가옥이다. 발해 시기 이전의 말갈족들은 이런 움집에 산다고 하였는데 구덩이를 파고 그 위에 나무를 걸치고 흙으로 덮어 그 모양이 무덤과 같다고 하였다. 아무래도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선 땅을 파고 그 안에서 거주하는 것이 유리했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발해인들이 살았던 집의 난방시설로 주목되는 것이 온돌이다. 온돌은 아궁이에서 불을 지펴 나온 열기를 구들방고래로 통과시켜 구들 전체 또는 일부분을 따뜻하게 하는 실내 난방방식이다. 고구려에서는 겨울철에 구덩이를 길게 파서 밑에다 불을 지펴 방을 따뜻하게 하였는데 중국에는 없는 고구려만의 특색 있는 난방시설이었다. 이러한 온돌 시설이 상경성 궁성 서쪽 침전터에 7개가 발견되었고 북한의 함남 신포시 오매리 절터 그리고 말갈유적으로 보는 흑룡강성 동령현 단결유지에서 발견된 4개의 평민 집자리 뿐만 아니라 러시아 연해주의 여러 곳에서도 발견되었다. 즉 온돌은 왕족과 같은 상류층에서부터 평민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주거문화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며 발해의 주민구성이나 주거문화에 있어서 고구려 계승성을 증거하는 근거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건축 재료로 가장 많이 전해진 것은 기와이다 기와의 종류에는 수키와 암키와 막새 등의 일반 기와와 치미 귀면와 기둥밑장식기와 등 장식와가 있다 그리고 녹유를 입힌 녹유와도 있는데 수키와 암키와 막새가 가장 많이 출토되었다. 상경성에서 출토된 녹유귀면장식와는 마루기와의 일종으로 커다란 눈과 코 크게 벌린 입과 큰 송곳니 쭉 내민 혀를 역동적으로 표현해 잡귀를 쫓는 사나운 기운이 가득 차 있다. 수키와는 대부분 언강이 있으며 암키와의 경우 기와의 끝부분을 손가락으로 누른 지두(頭)무늬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수막새의 문양은 연화문이 대다수를 차지하는데 연화문수막새는 고구려의 것과 관련이 깊다 암막새는 아래로 드리워진 드림새가 없이 앞면에 문양을 표현하여 막새의 효과를 내고 있는데 앞면을 상중하 세 개의 시문단위로 구분하여 가운데는 작은 원 모양의 시문구로 찍어서 연주문(聯珠文)과 같은 모양을 만들고 그 위아래에는 짧은 사선을 넣어 장식하였다.
 
한편 표면에 문자가 찍혀있는 기와도 발견되는데 대체로 한 글자를 찍은 경우가 많다. 간혹 기호와 비슷하여 뜻을 알 수 없는 한자가 찍혀 있기도 하다 이 때문에 발해에도 고유한 문자가 있었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지만 아직까지 발해가 고유의 문자를 발명했다고 인정하기에는 자료의 부족으로 속단할 수는 없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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