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seoulpost.co.kr/paper/news/view.php?newsno=9935

나설 때와 나서지 말아야할 때-가락국 '수로왕' 편
 임동주 서울대 겸임교수 (발행일: 2009/05/16 17:41:21)  

신라 제5대왕 파사왕 때의 일이다. 
신라의 국력이 커져감에 따라 이웃 가락국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신라가 가락국과 인접한 변경에 가소성과 마두성을 쌓자 가락국의 김수로왕은 분기가 탱천했다. 이후 두 나라는 크고 작은 분쟁을 일으켰다. 

서기 102년 음즙벌국이 신라에 사신을 보내 실질곡국과의 국경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청원했다. 실질곡국의 왕은 신라 6부의 한기부장과 사돈 관계였다. 파사왕이 이일로 고민하자 신하 명선이 간언했다. 

“음즙벌국의 청을 들어주면 한기부장과 실질곡국이 원망할 것이고, 실질곡국의 손을 들어주면 당연히 우리와 음즙벌국 사이가 벌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일에는 관여하지 마시옵소서. 나서기를 좋아하는 가락국의 김수로왕에게 이번 일을 떠넘기십시오. 그러면 문제가 생겨도 가락국을 원망하게 될 것 아니겠사옵니까?” 

파사왕의 얼굴은 대번에 맑아졌다. 파사왕은 즉시 사람을 보내 수로왕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파사왕의 속셈을 알 리 없는 수로왕은 단번에 수락했다. 수로왕은 실질곡국에 사람을 보내 크게 꾸짖었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땅은 수백 년 동안 음즙벌국의 조상들이 살던 땅이다. 그런데 너희 실질곡국이 빼앗고 자기네 땅이라 우기니 도리에 어긋난 행동이다. 실질곡국은 한시라도 빨리 땅을 음즙벌국에게 돌려주도록 해라.” 

실질곡국은 당장 가락국이 두려웠다. 그래서 땅을 돌려주었지만 앙금은 남아 있었기에 그때부터 실질곡국과 한기부장은 가락국을 원망하기 시작했다. 어느날 신라 파사왕이 수로왕을 초대했다. 이때 수로왕의 신하 탐하리가 간했다. 

“신라 파사왕은 우리를 노리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라도 당할까 걱정되옵니다.” 

수로왕은 탐하리의 간언을 일소(一笑)에 부치고 신라 도성으로 떠났다. 잔치마당에 한기부장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좌중이 모두 의아하게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한기부의 사인(舍人)이 와서 ‘어리석은 자와 함께 자리를 하고 싶지 않다’ 는 한기부장의 말을 전했다. 여기서 어리석은 자라면 수로왕을 말한다. 아직 앙금이 남아다는 뜻이었다. 이에 분기가 뻗친 수로왕의 신하 탐하리가 한밤에 한기부장을 찾아가 단칼에 죽이고 음즙벌국으로 달아났다. 

신라 파사왕이 이 좋은 기회를 놓칠 리 만무했다. 파사왕은 이빨을 드러냈다. 당장 군사를 파견해서 음즙벌국을 공격해 자기 땅으로 삼았다. 그러자 크게 겁을 먹은 실질곡국이 신라에 복속을 청했다. 이후로도 파사왕은 동정서벌로 영토를 크게 확장했다. 그후 서기 112년 파사왕이 세상을 뜨자 가락국의 수로왕이 신라를 공격했지만 성공하지는 못했다. 

쓸데없는 일에 관여하는 것은 과히 권장할 만할 일이 아니다. 무릇 사람들은 자기의 분수를 알아야한다. 당시 신라는 훌륭한 왕을 맞이해 비약적으로 커지고 있었다. 신라에 비해 다소 열악했던 수로왕은 공연히 음즙벌국과 실질곡국의 분쟁에 개입해 이 두 나라 중 한나라도 차지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아까운 신하마저 잃어야했다. 나설 때가 아니면 가만히 있어야 한다. 

현실 정치도 같다. 예전의 월남전이나 최근 이라크 전에 개입해 엄청난 손해를 보고 있는 미국을 보면 이런 생각이 더 든다. 대의명분과 실익이 없는 일을 일으켜서는 안될 것이다. 

▣ 서울대학교 겸임교수, 도서출판 마야 대표 (임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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