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2500&key=20071214.22017202119

이영식교수의 이야기 가야사 여행 <45> 비사벌의 가야-중
굽다리접시·대형 고분군은 창녕 가야 독창성의 진면목
접시의 다리부분 축소 뚜껑에 거꾸로 붙여 색다른 토기로 주목
일본 목재로 만든 목관 활발한 해외교역 증명
국제신문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2007-12-13 20:22:24/ 본지 17면

경남 창녕지역의 독창성을 보여주는 가야시대 굽다리접시. 다리를 축소해 뚜껑에 갖다 붙인 듯하다.

전기가야의 불사국

창녕에서도 고인돌의 청동기시대를 지나, 기원전후가 되면 철기가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가야시대의 막이 열립니다. 그러나 그 사정을 알 수 있는 자료는 거의 없습니다. 창녕지역의 고고학 발굴조사가 적었던 것도 아니지만, 일제시대부터 지금까지 교동·계성·영산에 모여 있는 늦은 시기의 대형고분만 조사되었던 탓입니다. 앞으로의 조사에서 초기철기시대의 유적은 반드시 확인될 것이고, 그러한 유적들은 창녕에서 처음 나라가 형성되던 모습을 보여주게 될 것입니다.

가야 성립기 자료가 거의 없는 가운데, 운 좋게도 처음 등장했던 나라의 이름만은 전해지고 있습니다. '삼국지' 동이전 변진(弁辰) 조에 보이는 불사국(不斯國)입니다. 정말 불사조(?)처럼 남은 이름입니다. 불사국이 속해 있는 변진은 변한(弁韓)입니다. 변한은 김해의 구야국과 함안의 아야국이 함께 속해 있었던 삼한(三韓)의 하나입니다. 구야국이 가야국이고, 아야국이 아야가야임은 이미 몇 차례 말씀드렸습니다. 따라서 이들과 함께 변한에 속해 있는 창녕의 불사국 역시 가야의 나라였습니다.

다만 '삼국지'는 변한 12국과 진한 12국의 24국을 한꺼번에 기술하면서, 변한의 나라 이름 앞에는 '변진'을 부쳐 구별하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불사국에는 없습니다. 진한(辰韓)의 나라 경주의 사로국(斯盧國)과 울진의 우유국(優由國) 처럼 '변진'이 붙어 있지 않습니다. 낙동강 동쪽이기 때문이라든지, 종족이 달랐을 것이라는 해석도 있으나, 읍내의 교동·송현동고분군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가야국으로 성장했다고 보는 데는 이견이 없습니다. 더구나 불사(不斯)는 비사벌국의 비사(比斯)와 같습니다. 지난 주에 살펴본 것처럼 비사도 빛이고, 불사의 불(fire)도 빛입니다. 아닐 불(不)은 아닐 비(非)와 통합니다. 또한 불사국은 밀양으로 생각되는 변진미리미동국(弁辰彌離彌凍國) 옆에 기술되고 있습니다. 지금도 창녕과 밀양은 이웃사촌이고, 같은 선거구이며, 낙동강 동쪽에 있으면서도 함께 경상남도에 속해 있습니다.

'메이드 인 창녕'

창녕의 가야 사람들은 개성이 아주 강했던 모양입니다. 창녕만의 토기가 있습니다. 국립김해박물관이나 교동고분군에 있는 창녕박물관에 가시면 창녕형 꼭지를 가진 굽다리접시들을 따로 모아놓았습니다. 굽다리접시의 다리를 아주 작게 축소하여 토기뚜껑에 거꾸로 세워 붙였다 하여 대각도치형(臺脚倒置形)의 꼭지를 가진 굽다리접시(高杯)입니다. 때문에 이 토기에는 '메이드 인 창녕'의 도장이 찍혀 있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더구나 이러한 '메이드 인 창녕' 토기들은 창녕 밖에서도 출토됩니다. 서쪽으로 낙동강을 건너 합천의 옥전고분군, 남쪽으로 낙동강을 건너 함안 칠원의 오곡리고분군, 밀양 삼랑진에서 낙동강을 건너 김해 북쪽의 안양리고분군 등에서도 창녕형 꼭지의 토기들은 출토되고 있습니다. 개성만 강했던 것이 아니라, 주변지역과의 교류도 활발했고, 교류를 추진할만한 힘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교동, 송현동, 계성, 영산 등에 떼를 이루고 있는 높고 커다란 봉분의 고분들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창녕만의 토기와 대규모의 고분군은 독자적이면서 강력한 비사벌국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2004년 10월에 공개되었던 송현동 7호분은 비사벌국의 실력과 활발한 대외교류를 다시 한 번 보여주었습니다. 5세기 말~6세기 초에 만들어진 무덤의 주인공은 배 모양의 목관(木棺)을 타고(?) 있었습니다. 해외교류를 상징하는 듯한 배 모양의 목관은 녹나무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아열대 산의 녹나무는 우리나라에는 나지 않습니다. 일본에서는 '쿠스노키(樟)'라 불리는데, 벌레가 먹지 않는 다해서 불상조각이나 장롱제작에 곧잘 사용되는 귀중한 목재입니다. 일본산 금송(金松)으로 만들어진 백제 무령왕의 목관에서 백제와 왜국 왕실 간의 교류가 복원되었듯이, 일본산의 녹나무 목관은 가야국왕의 장례에 보내졌던 왜국왕의 선물이나, 왜가 수입해 간 가야의 철에 대한 답례품으로 보려는 생각도 있습니다. 

인제대 인문사회대학 학장·역사고고학과 교수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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