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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란과 분노 대신 화합과 단결을 마시라
<혼돈의 시대, 리더십을 말하다> 박종평 이순신 이야기 ⑤
홍준철 기자  |  mariocap@ilyoseoul.co.kr  [1018호] 승인 2013.11.04  10:15:05

자신이 술취한 모습도 꼼꼼히 기록
위대한 영웅도 술 취해 쓰러지는 인간미
 


이순신은 술을 많이, 아주 많이 마셨다. 그래서 《난중일기》에는 술에 관한 기록이 많다.  부하 장수들과 함께 화합을 위한, 단결을 위한 술자리를 자주 가졌다. 또한 군사들을 위로하기 위한 술자리도 만들어 잠시라도 근심과 걱정을 덜어내게 했다. 이순신에게 술은 모두의 마음을 하나로 묶는 튼튼한 동아줄이었다.

1595년 8월 15일. 삼도의 사수와 본도의 잡색군에게 음식을 먹이고, 종일 여러 장수들과 함께 술에 취했다.
1596년 3월 3일. 삼짇날이라 방답 첨사, 여도 만호, 녹도 만호, 남도포 만호 등을 불러 술과 떡을 먹게 했다.

꼼꼼하게 온갖 일을 기록했던 이순신이었기에 자신의 술 취한 모습도 기록해 놓았다. 때때로 보통 사람들처럼 술에 흠뻑 취하기도 했다. 토하고, 엎어지기도 하고, 대청에 쓰러져 자기도 했고, 근무를 못하기도 했다. 그러나 7년 동안의 일기 중에서 그가 그런 모습을 보인 것은 불과 몇 번 되지 않는다. 그는 술을 마실 때도 평상시처럼 언제나 절제했다.

· 1594년 7월 25일. (활을 쏜 후) 크게 취해 돌아와서 밤새도록 토했다.
· 1594년 9월 13일. 어제 취한 술이 아직 깨지 않아서 방문 밖을 나가지 않았다.
· 1596년 3월 5일. 우수사(이억기)와 술자리를 마련하여 잔뜩 취하여 돌아오다가 그길로 이정충의 장막에 들러 조용히 이야기하는데 나도 모르게 취기에 엎어졌다.
· 1596년 3월 9일. 저녁에 좌수사(이운룡)가 왔기에 작별 술잔을 나누었더니 취하여 대청에서 엎어져 잤다. 

최고의 성군이었던 세종과 최고의 학자였던 정약용도 술의 폐해를 지적했었다. 심지어 세종은 술의 폐해와 훈계를 담은 <계주서(誡酒書)>를 써서 주자소에서 인쇄케해 전국 관청에 내려 보낼 정도였다. 세종은 말했다.

“무릇 술의 해독은 매우 크다. 어찌 곡식을 썩히고 재물을 허비하는데 만 그치겠는가. 술은 안으로는 마음(心)과 의지(志)를 손상시키고, 밖으로는 예법에 맞는 몸가짐(威儀)을 잃게 한다. 술로 때문에 부모를 봉양하지 않는가 하면, 남녀의 분별을 문란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 해독이 심하면 나라를 잃고 집안을 망하게 하며, 덜해도 성품을 파괴시키고 목숨을 잃게 만든다. 인간의 윤리를 더럽혀 문란케 하고, 풍속을 타락시키는 일을 이루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세종은 <계주서(誡酒書)>를 쓰고 내린 이유는 술 때문에 죽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세종의 주장은 술을 조금이라도 마시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마시되 절제하라는 것이다. 정약용도 술 취한 사람을 이렇게 묘사했다. 

“나는 술 취한 사람과 성난 사람의 상태를 참으로 잘 안다. 술 취한 사람과 성난 사람은  술기운이 거나하게 오르거나, 노기가 불길처럼 치솟을 때에는 누가 건드리기만 하면 난동과 파괴를 일삼는다. 제 몸을 스스로 주체하지 못해 혼미한 정신으로 온몸을 멋대로 행동한다.  다른 사람들의 말에 대해 그 잘잘못을 미처 생각하지도 않고 오직 한결같이 반대만 주장한다. 때문에 남이 희다 하면 검다하고, 남이 동(東)이라 하며 서(西)라 하여 오직 남의 기세를 꺾기에만 힘쓴다. 그것이 술 취한 사람과 성난 사람의 상태이다.”

술을 지나치게 마시면 정신이 혼미해져 분란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고, 그 결과는 자신의 파탄의 원인이 된다는 경고이다. 이순신도 취한 사람들의 행동에 대해 세종과 정약용이 경계한 것처럼 아주 부정적이었다. 《난중일기》에는 술에 취해 잘못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나온다.

· 1593년 2월 14일. 다만 우후가 술주정을 망령된 말을 하니, 입에 차마 담지 못할 짓을 어찌 다 말할 수 있겠는가. 어란포 만호 정담수, 남도포 만호 강응표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큰 적을 맞아 토벌을 약속하는 때에 술을 함부로 마셔 이 지경에 이르니, 그 사람됨을 더욱 말로 나타낼 수가 없다. 통분함을 이길 길이 없다.
· 1593년 5월 14일. 영남 우수사 원평중(원균)이 와서 술주정이 심하기가 차마 말할 수 없다. 배 안의 모든 장병들이 놀라고 분개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그의 거짓된 짓을 차마 말로 할 수 없었다. 영산령(원균)이 취하여 쓰러져서 정신을 못 차리니 우습다.
· 1594년 4월 23일. 곤양 군수(이광악)가 몹시 술에 취해서 미친 소리를 마구 해 대니 우습다.

이순신은 수시로, 때와 장소와 관계없이 사람들과 술을 마셨다. 부하들과 활쏘기를 한 뒤, 위로 모임, 환송 모임 등에서 술에 취했다. 그러나 그는 그 자신이 술에 취한 모습을 남긴 것처럼 언제나 정신줄을 놓지 않았다. 또한 술 취해 거칠거나, 무례하거나, 횡설수설하는 등의 행동을 하지 않았다. 평상시의 철저한 자기 관리를 통해 술에 취했을 때까지도 절제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위대한 영웅이 취해 엎어지고, 토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면 웃음도 나고, 인간적인 공감도 간다. 그도 우리와 같은 보통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술을 마시는 법, 술에 취하는 모습도 습관이다. 다른 사람을 괴롭히고, 다른 사람과 다투는 나쁜 술버릇은 결국 나를 망친다.

* 다산 정약용이 아들에게 가르친 술 마시는 법

참으로 술맛이란 입술을 적시는데 있다. 그런데 소가 물을 마시듯 마시는 사람들은 입술이나 혀는 적시지도 않고 곧장 목구멍에다 탁 털어넣는데, 그래서야 무슨 맛이 있겠느냐. 술을 마시는 정취는 살짝 취하는 데 있는 것이지, 얼굴빛이 홍당무처럼 붉고 구토를 해대고 잠에 골아떨어지면 무슨 정취가 있겠느냐. … 무릇 나라가 망하고 가정을 파탄시키거나 흉패한 행동은 모두 술 때문이었다. 그래서 옛날에는 뿔이 달린 술잔을 만들어 조금씩 마시게 했고, 후세에는 뿔 달린 술잔을 쓰면서도 더러 절주(節酒)할 수 없었기 때문에 공자는 ‘뿔 달린 술잔이 술잔 구실을 못하면 뿔 달린 술잔이라 하겠는가!’라고 탄식했다. 경계하여 절대로 술을 입에 가까이 하지 말거라. 제발 이 변방에 있는 애처로운 아비의 근심하는 말을 따르거라.

※ 이 칼럼은 <그는 어떻게 이순신이 되었나>(스타북스, 2011)에 썼던 원고를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 박종평 이순신 연구가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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