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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만의 역사책을 이순신처럼 써라!"
<혼돈의 시대, 리더십을 말하다> 박종평 이순신 이야기 ⑥
홍준철 기자  |  mariocap@ilyoseoul.co.kr  [1019호] 승인 2013.11.12  10:50:05

<난중일기> 업무일지이나 개인 다이어리 비망록까지
과거의 추억이 아닌 미래의 자신을 만드는 도구


얼마전 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으로 선정된 《난중일기》는 이순신, 그 자체이기도 하다. 특히 우리가 이순신을 만날 수 있고, 알 수 있는 수많은 이유 중 가장 직접적인 매개체이다. 그에게 일기는 가장 좋은 습관의 꽃이다. 불행했던 사람이 가장 성공한 사람으로 변화할 수 있는 인내력을 키워주고, 마음의 거울을 닦았던 수양기록이다. 또한 전쟁 속에서 고통과 좌절을 겪으면서도 불패의 지휘관이 된 과정을 기록한 리더십 다이어리이다. 죽임과 죽음으로 점철된 고난의 시간을 견디게 해주었고,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의 유서와도 같았다.

되고 싶은 자신을 만들어 주는 일기
 
이순신의 일기는 오늘날의 일기 형식과 거의 같다. 날짜, 간지(干支, 천간(天干)과 지지(地支)를 조합한 것으로 매일 매일 바뀐다) 및 날씨 순으로 시작했고, 그가 그날 했던 공적인 일 혹은 사적인 일, 그가 보고 들은 각종 사건을 기록했다. 그의 일기는 대부분 간략하지만, 들은 말과 자신이 한 말의 핵심을 압축해 기록했고, 때로는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도 기록했다.

이순신은 일기장에 메모의 형식으로 조정에 올릴 장계와 각종 편지 초안, 창작시, 회계장부와 같은 물품 명세 기록은 물론 오늘날의 사인과 같은 의미의 수결(手決) 연습도 해 놓았다. 이순신에게 그의 일기장은 일기는 물론 오늘날의 업무일지나 개인 다이어리이며 메모장, 비망록이었다.

그가 일기를 썼던 시간은 주로 번뇌로 뒤척이다가 깨어 새벽녘에 썼던 것으로 보이지만, 출전 중에도 쓴 것을 보면 때와 장소도 가리지 않았다. 쓸 수 있는 시간이 있을 때는 언제나 기록을 했다. 또한 전날 있었던 일들 가운데 자신이 알지 못했거나, 실수로 기록하지 않은 경우에는 후에 해당 날짜 일기 부분에 작은 글씨로 추가해 놓은 치밀함도 엿볼 수 있다. 그는 일기를 쓰면서 자신의 분노와 게으름 등을 다스렸고. 자신이 해야 할 업무를 세심하게 준비하고 계획을 세웠다. 이순신에게 일기는 자신이 해야 할 매일의 중요한 일의 하나였다.

일기의 힘은 매일 쓰는 것이다
 
이순신은 간략하고 핵심을 중심으로 일기를 썼다. 그 이유는 문장을 많이 쓸 만큼의 공간이 두지 않는 그의 일기쓰기 방식 때문으로 보인다.

1596년 윤8월 28일. 일기의 줄을 고쳐 바로 잡았다.
1597년 4월 13일. 일찍 식사 후에 어머님을 마중하려고 바닷가로 나갔다. … 얼마 후 종 순화가 배에서 와서 어머님의 부고를 전했다. 달려 나가 가슴을 치고 뛰며 슬퍼하니 하늘의 해조차 캄캄해 보였다. 바로 해암으로 달려가니 배는 벌써 와 있었다. 길에서 바라보며 가슴이 찢어지는 슬픔을 이루 다 적을 수가 없다. 후에 대강 적었다.

줄을 고쳐 바로 잡았다는 것은 미리 기록해 두었던 간지(干支)가 잘못된 것을 뒤늦게 알고 수정했다는 것이다. 며칠 분량의 날짜와 간지를 일정한 간격을 두고 써놓았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4월 13일의 일기는 백의종군 중에 갑작스런 어머니의 부고를 듣고 정신없는 상태에서 장례 등의 문제로 일기를 쓰지 못하다 며칠 후에 쓰지 못했던 기간의 일기를 한꺼번에 쓴 사례이다.

이 두 사례는 이순신이 매일 일기를 썼고, 불가피할 경우에만 후에 다시 쓰는 철저한 기록습관을 가진 것을 보여준다. 또한 현재 전해져 오는 《난중일기》가 1592년 1월 1일부터 쓴 것을 고려하면 이순신은 임진왜란 이전에도 일기를 써왔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

조선시대 인물에게 일기는 자신의 역사책
 
오늘날은 물론 조선시대에도 일기를 쓴 사람들이 많이 있다. 조선시대 사람들의 일기를 쓴 이유는 13년 동안 일기를 써 24책의 방대한 일기인 《흠영(欽英)》을 남긴 조선시대 문인 유만주(兪晩柱, 1755~1788)의 기록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고, 오늘날과도 다르지 않다.

일어난 일을 날다마 기록하는 것은 고금이 다르지 않다. 무릇 사람의 일이란 가까우면 자세하게 기억하고 조금 멀어지면 헷갈리며, 아주 멀어지면 잊는다. 그러나 일기를 쓴다면 가까운 일은 더욱 자세하게 기억하고, 조금 먼 일은 헷갈리지 않으며, 아주 먼 일도 잊지 않는다. 일기는 이 한 몸의 역사다. 어찌 소홀히 할 수 있을까. 나는 글을 배운 이후 지난해에 이르기까지 3,799일 남짓을 살아왔다. 3,700일 동안 있었던 일을 아무 것도 기록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나간 일을 되돌아보면 꿈을 꾸고 깨어나서는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번개가 번쩍번쩍하여 돌아보면 빛이 사라진 것과 같다. 날마다 기록하지 않아서 생긴 잘못이다.

유만주에게 일기는 자신의 역사였고, 자신의 역사를 스스로 기록해 거울로 삼아 반성하고 삶을 보다 풍요롭게 가꾸기 위한 수양의 방법이었다. 그는 일기를 쓰는 방법까지도 일기에 써놓았다. 하루를 기준으로 하고, 사건과 대화, 문장, 생각을 중심으로 과거와 현재의 일을 포괄하고, 고상한 일에서부터 비속한 것 까지 기록하며, 크게는 성인과 영웅의 사업, 작게는 서민과 미물의 생성까지,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낀 것을 그대로 기록해야 한다고 했다. 구체적으로는 제사에 어떤 물고기와 어떤 과자를 올렸는지, 병을 고치는 데 무슨 약을 처방했는지, 책은 무엇을 편찬했는지, 옷을 며칠 만에 갈아입었는지, 쌀값은 얼마나 오르고 내렸는지 등까지 적어놓아야 한다고 했다.

일기는 삶의 나침반이다
 
조선시대 사람들이 일기를 쓴 이유인 수양과 개인의 역사를 기록한다는 것은 현대사회의 급격한 변화와 치열한 생존경쟁이라는 환경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도 큰 의미가 있다. 자기발전을 위한 가장 좋은 도구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기는 삶의 여행에서 나침반과 같아 항로를 끊임없이 확인시켜주고, 여러 가지 실수를 알 수 있고, 자신의 장점을 키워줄 수 있는 가장 실천하기 쉬운 습관이기 때문이다.

또한 자기 자신에 대한 최고의 카운슬러이며, 부정적인 감정을 순화시켜주고, 잘못된 판단들을 검증하는 기회가 된다. 과거의 나로부터 배우게 해 주고 더 나은 나를 만들어 준다. 때문에 일기는 과거의 추억이 아니라 미래의 자신을 만드는 도구이다. 이순신도 일기를 통해 문과 무를 겸비한 장수가 되었고, 시인이 되었으며, 충성과 효도를 다한 진정한 인간이 되었다. 이순신처럼 한 줄의 일기라도 매일 쓰다보면 새로운 삶이 열린다. 그것이 일기의 힘이다.

※ 이 칼럼은 <그는 어떻게 이순신이 되었나>(스타북스, 2011)에 썼던 원고를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박종평 이순신 연구가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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