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11221150451&code=910100
최경환, 그때 당신이 한 일을 알고 있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 입력 : 2014-11-22 11:50:45ㅣ수정 : 2014-11-22 11:50:45
2조원 투자해 200억원에 매각한 캐나다 정유사 ‘날’ 인수계약 당시 지경부 장관…
산하 기관인 석유공사로부터 보고 받아 모종의 역할 가능성 제기돼
2조원을 투자하고 200억원에 매각. 석유공사가 캐나다 하베스트의 계열 정유사인 날(NARL)을 인수한 결과다. MB 자원외교의 대실패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날’ 인수과정에 박근혜 정부의 ‘왕장관’으로 불리는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2009년 10월 21일 하베스트 인수계약을 할 당시 지식경제부 장관(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최경환 부총리였다. 최 부총리는 2009년 9월부터 2011년 1월까지 지경부 장관직을 수행했다. 당시 지경부 산하 공공기관인 석유공사가 대규모 계약을 하는 데 있어 절차상 모종의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게 의혹의 단서였다.
“최 장관이 잘 검토해 해보라고 했다”
지난 10월 23일 국회 산업위의 석유공사 국정감사에서는 강영원 전 석유공사 사장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강 전 사장을 증인으로 신청한 박완주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의 첫 번째 질의가 끝나고 두 번째 증인 질의에 나선 홍영표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이 강 전 사장의 ‘폭탄’ 발언을 이끌어냈다.
홍 의원 : 이 문제는 실무적으로 (최 장관에게) 보고도 하고…, 아주 중요한 결정이니까. 강 전 사장이 혼자서 결정했습니까?
강 전 사장 : 제가 의문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지식경제부에서 하류사업, 소위 정유공장 사업에 대해서도 해도 좋은 건지 알고 싶어 말씀을 드렸던 것입니다.
홍 의원 : 그랬죠? 장관에게 말씀 드렸죠?
강 전 사장 : 네.
홍 의원 : 그것에 대해 다른 이견이 없었죠?
강 전 사장 : “잘 검토해서 해보라”고 했습니다.
홍 의원 : 이건 사실상 승인한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좀 더 검토하라고 했다면 강 사장이 혼자서 결정할 수 있었습니까? 없었습니까?
강 전 사장 : 정유공장 인수건은 델리케이트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석유공사법에도 적시돼 있지 않기 때문에 지경부의 의견을 구하고 싶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홍 의원 : 자원외교의 부실이 드러나니까 가스공사와 석유공사의 실무자들만 나쁘게 만들었습니다. 명확하게 최 장관이 승인한 것입니다. 그래서 최경환 장관의 증인 출석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홍 의원과 강 전 사장의 질의응답에서 드러난 책임소재 문제는 하베스트를 인수하면서 계열 정유사인 ‘날’을 끼워넣는 것이었다. 강 전 사장이 혼자 결정할 수 없는 과정에서 위에서 누군가 계약 체결을 하도록 압력 또는 승인을 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하베스트 인수건은 2009년 7월께 캐나다 소재 석유회사의 상류부문(원유 탐사·생산부문) 자산 인수를 추진하면서 시작됐다. 상류부문 인수금액을 28억5000만 캐나다 달러로 산정해 이해 10월 14일 석유공사 이사회의 승인을 얻어 인수계약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하베스트 이사회에서는 이를 승인하지 않고 하류부문(원유 정제·판매 부문)까지 전부 인수해달라고 석유공사에 요청했다.
2010년 4월 당시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이 이명박 대통령,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정세균 민주당 대표, 조석래 전경련 회장(오른쪽부터)과 함께 충남 당진 현대제철 공장에서 준공 버튼을 누르고 있다. / 박민규 기자
석유공사는 10월 16일 투자금융회사인 메릴린치에 하류부문 경제성 평가를 의뢰한 지 불과 5일 만인 10월 20일 아무런 검증절차 없이 인수금액을 40억6500만 캐나다 달러(약 4조4958억원)로 상정한 후 다음날 인수계약을 체결했다. 석유공사가 이사회 사후승인을 조건으로 한 계약 체결이었지만 모든 절차는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게다가 석유공사는 석유공사법에 의해 하류부문에 대한 사업을 할 수 없게 돼 있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한 관계자는 “상류부문은 충분히 검토했다고 볼 수 있지만 하류부문인 ‘날’ 인수가 최악이었다”면서 “법을 어겨서까지 이렇게 날림 계약을 하게 된 데에는 강 전 사장의 결정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정권 차원의 승인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베스트 인수에 당시 지경부가 깊숙이 개입했다는 의혹은 계약 체결 당일 대대적으로 뿌린 보도자료를 통해서도 추론해볼 수 있다. 2009년 10월 21일(한국시간 10월 22일) 캐나다 캘거리에서 석유공사 부사장이 최종계약을 체결하자, 22일 지경부는 최경환 장관의 이름으로 인수 성공을 대대적으로 발표했다. 2008년 6월 수립한 지경부의 ‘석유공사 대형화 방안’에 따라 해외석유개발 기업에 대한 M&A를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으며, 하베스트 인수로 대형화의 성공적 추진을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고 자찬했다. 여기에는 매일 5.3만 배럴의 석유·가스 확보, 8.1%로 자주개발률 상승이라는 뜬구름 같은 장밋빛 전망이 펼쳐졌다.
최 “잘 판단해보라는 취지였다” 강력 부인
11월 4일 국회 본회의 질의에서 홍 의원은 최경환 부총리에 대해 강영원 전 사장과의 만남에 대해 따져 물었다. 최 부총리는 “장관으로 취임한 지 채 한 달이 안 되는 시점이지만…, 토요일인 것으로 기억되는데 5분 내지 10분 정도 만났다”고 인정했다. 최 부총리는 “하류부문 즉 정유부문을 끼워 같이 인수하지 않으면 하베스트 이사회에서 팔지 않기로 했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는 취지로 물어왔던 것 같다”며 “내가 ‘석유공사는 하류부문을 해본 경험이 없으니까 굉장히 위험이 높지 않으냐, 그러니까 잘 판단해보라 하는 취지의 답변을 했다”고 대답했다.
“잘 검토해보라”고 들었다는 강영원 전 사장과 “잘 판단해보라”고 대답했다는 최 부총리의 발언은 거의 일치하지만 하류부문에 대한 이야기는 뉘앙스가 전혀 다르다. 강 전 사장은 긍정적인 대답으로 들었고, 최 부총리는 부정적인 대답을 줬다는 것이다.
이날 대정부 질의에서 홍 의원은 “장관님 혼자서 결정한 것이 아니라 이명박 대통령이 있고 이상득·박영준, 이런 사람들이 있는 거지요?”라고 묻자 최 부총리는 “그렇게 너무 추론하지 말라”고 답변했다.
홍 의원과 최 부총리의 입심 대결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홍 의원은 전화통화에서 “앞으로 국정조사가 이뤄진다면 최 부총리는 당연히 증인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국정조사의 칼날이 누구에게 향할지에 여당은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10월 23일 국정감사에서 몇 명의 여당 의원이 최 부총리를 감싸기 위해 부실인수의 최종 책임은 강 전 사장이 아니었느냐고 추궁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또 다른 한 관계자는 “친박쪽에서는 최경환 당시 장관이 한 것이 아니고 박영준 전 차관이 한 것을 다 알면서 왜 최 전 장관을 몰아세우는지 모르겠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박영준 전 차관은 2009년 1월부터 2010년 8월까지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으로 일했고, 2010년 8월부터 2011년 5월까지 지경부 제2차관으로 근무했다.
이 관계자는 “감사원에서 최근 석유공사에 대해 감사를 하고 있고, 하베스트 인수 건으로 강 전 사장을 배임으로 고발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면서 “때문에 여당에서는 강 전 사장이 당시 인수 체결 내막의 전모를 밝혀 그 타깃이 최 부총리에게 향하는 것은 아닐까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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