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21710
김연철 : 이명박 정부의 경우 남북관계를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외교적 필요성의 측면보다는 이념에 기반한 측면이 매우 강했다. 그러다 보니 이명박 정부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진보-보수라는 이분법적인 기준으로 평가한 측면이 있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초기부터 이러한 경향이 나타난 것 같다.
"천안함 사건이 '북한 소행'이 된 까닭은…"
[MB의 비용 2부] <1> 이명박 정부 남북관계 5년
이재호 기자(정리) 2014.11.13 09:58:17
'경제 대통령'이 되겠다던 이명박 대통령이 추진한 경제 정책은 과연 어떤 결과를 가져왔고, 향후 우리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한 정권이 추진한 정책에 대한 사후적 평가는 그 집권세력의 정치적 성향을 떠나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국민 혈세를 제대로 썼는지에 대한 평가이기 때문이다.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과 지식 협동조합 '좋은나라'(이사장 유종일)는 이런 문제의식에서 직전 정부인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주요 경제 정책에 대한 평가로 'MB의 비용'을 공동 기획, 연재하고 있다. 1부에서는 4대강, 자원외교, 기업 비리, 원자력 발전소 비리, 한식세계화 등 주요 정책이 끼친 손실과 관련해 구체적인 비용을 추산해봤다.
2부에서는 비용으로 추산하기는 힘들지만 명백하게 '손실'을 끼친 정책에 대해 논의한다. 경제정책 범주를 넘어서 통일외교, 정치 등 국가 시스템과 관련된 정책 의제들에 대해 전문가들이 어떤 평가를 하고 있는지 들어보고자 한다. 첫 번째 대담으로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과 김연철 인제대학교 교수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평가했다.
이명박 정부 시기 대표적인 대북정책 실패 사례로 5.24조치를 꼽을 수 있다. 천안함 사건 이후 북한에 대한 대응으로 시작된 5.24조치는 남북 교류와 경제협력을 중단시키면서 북한에 경제적인 압박을 가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행됐다. 하지만 본래의 목적과는 달리 북한보다 오히려 남한이 고통을 받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났다.
김연철 교수는 "2011년 기준으로 5.24조치로 인한 직접 손실액만 45억 달러, 우리 돈으로 4조가 넘었다. 여기에 교역이나 위탁가공이 중단되면서 국내적으로 일자리가 줄어든 부분까지 포함하면 손실액은 124억 달러, 우리 돈으로 13조 원이 넘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남북경협이 끊기지 않고 진행됐다면 얻을 수 있는 이익, 즉 기회비용까지 고려하면 손실액은 이보다 훨씬 커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세현 전 장관은 "남북관계 악화로 한미동맹이 강화되면서 생겨난 비용도 고려해봐야 한다"면서 "이명박 정부가 남북관계는 틀어막은 채 북쪽 때문에 정세가 불안하니 한미동맹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미국의 비싼 무기를 사들이는 것과 표리의 관계에 있다"고 강조했다. 북한의 위협을 구실로 삼은 한미동맹의 강화는 곧 고가의 무기 수입으로 이어진다는 지적이다.
그런데 5.24조치는 천안함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시행됐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김 교수는 "이명박 정부 집권 1년차인 2008년 하반기부터 남북 민간교류가 이미 굉장히 위축"됐고 "남북 경협 기업들 역시 2009년에 들어서면서 대체로 북한을 방문하는 기회나 숫자가 줄어들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이로 미루어볼 때 5.24조치는 비핵개방3000이라는 기본 철학을 갖고 있는 이명박 정부가 남북 경협과 교류를 완전히 중단시킬 수 있는 하나의 중요한 명분으로 작동했다고 판단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진단했다.
정 전 장관 역시 "천안함 사건이 결국 남북관계를 끊고 싶었던 이명박 정부에게 좋은 구실로 이용당한 셈"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 초기 청와대 모 비서관이 통일부에 와서 6개월 안에 북한을 무릎 꿇린다고 공언했던 것을 보면 5.24조치와 같은 대북정책은 언제든 나올 수 있는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명박 정부의 실패한 대북정책 유산을 이어받은 박근혜 정부가 이명박 정부보다 더 경직된 사고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는 분석도 나왔다. 정 전 장관은 "경제적으로 상호의존성이 생기면 군사적 긴장은 자연히 완화된다. 경제공동체 확립 이후에 사회문화 공동체를 만들 수 있게 되면서 정치공동체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것"이라며 "남북 양 사회에 충격을 덜 주고 효과적으로 통일로 갈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도 통일대박을 이야기하고 통일준비위원회를 출범시킨 것은 너무 앞서가는 이야기"라고 단언했다.
정 전 장관은 "박근혜 정부가 북한의 붕괴를 전제로 한 흡수통일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에 교류협력은 하지 않으면서 통일 대박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까"하고 우려했다.
대담은 지난 9일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의 사회로 진행됐다. 다음은 대담 주요 내용이다. 편집자.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이명박 정부는 집권 5년간 남북관계를 사실상 단절시켰다. 이에 대한 부작용이 컸기 때문에 2012년 대선 당시 여야를 막론하고 북한과 관계개선을 주요 공약으로 포함시키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 대북정책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무엇이었나?
정세현 : 이명박 정부가 국제정세와 우리의 국익 등을 생각해서 대북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지 않았다는 것이 심각한 문제였다. 물론 그간 대북정책과 남북관계는 정권에 따라 심하게 요동치는 측면이 있었다. 장기적인 방향성이 없었다는 것인데, 그래도 이명박 정부 전까지는 국제정세와 국익 등을 고려해서 판단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그리고 현재의 박근혜 정부로 들어오면서 이러한 경향이 없어지고 있다.
박정희, 전두환 정권 때는 북한과 대결을 정당화하는 분위기 속에서 군사 정권의 필요성을 인식시키면서 남북관계나 통일 문제를 국내 정치에 써먹었다. 그래도 그때까지는 국제정세도 이를 허용하는 분위기로 흘러갔다. 냉전 시대였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정부에서 추구하는 대북정책이 안팎으로 소위 '쿵짝'이 잘 맞는 측면이 있었다.
노태우 정부 때는 사회주의권이 흔들리고 전 세계적으로 탈냉전의 흐름이 있었다. 당시 정권은 이를 놓치지 않고 중국, 소련 등과 수교하면서 국제정세 흐름에 올라탔다. 또 노태우 대통령은 1988년 7월 7일 이른바 '7.7선언'이라고 불리는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특별선언'을 통해 남한은 소련·중국과, 북한은 미국·일본과 관계개선을 해나가자고 제안했다.
노 대통령은 군인 출신 대통령이었음에도 국제정세 변화를 잘 활용해서 소련, 중국과 수교를 맺었다. 이는 대단히 큰 업적이다. 국제정세의 가시적 흐름이 분명해진 뒤에 일을 추진하면 이미 늦는 경우가 많은데 적시에 국제정세 변화를 포착해 과감한 외교 전략을 썼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 시기에 외교·안보 분야에서 일했던 실무자들은 두고두고 칭송받아야 한다고 본다.
특히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당시 외교·안보의 최전선에 있었던 실무진의 존재가 더욱 가치 있게 여겨진다. 지금 국제정세를 보면 남북, 한미 관계를 이렇게 끌고 가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박정희, 전두환 정권 시절에는 남북 화해협력이 정권에 도움이 되지 않고 국제정세도 냉전시기였기 때문에 통일을 핑계 삼아 안보 장사를 했던 시기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다. 그런데도 똑같은 패턴으로 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대박론, 통일준비위원회 출범 등도 통일 핑계로 안보 장사를 하겠다는 건데 이러한 접근은 복잡한 동북아 정세를 헤쳐 나가는데 바람직하지 않다.
프레시안 : 남북관계에서 남한 대통령의 의지도 중요하지만 미국과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도 이에 못지않은 중요한 변수 아닌가?
정세현 : 그렇다. 예를 들어 김영삼 정부 때는 남북관계가 모두 멈췄는데, 이는 YS 혼자만의 철학이나 정책적 입장 때문만은 아니었다. 북핵문제를 빙자해서 남북관계의 속도를 조절하려는 미국의 움직임이 작용한 것인데, 이러한 움직임은 전임 정부인 노태우 정부 시절, 즉 1991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당시 미국은 북한이 핵 활동을 하는데 남북관계만 개선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니냐며 제동을 걸었다. 그래서 1991년 12월 31일 남북한이 함께 한반도의 비핵화를 약속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이 나왔다.
기본적으로 미국은 남북관계가 개선되면 동북아 지역에서 자국의 우월적 위치가 흔들린다고 생각한다. 동북아 지역의 국제정치를 통제하는 레버리지로서 북핵 문제를 활용하는 것이다.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채택은 노태우 정부 시기 남북관계 개선 의지가 상당히 강했음에도 미국의 압박을 뿌리치기가 쉽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후 1992년 연말 한미안보연례회의(SCM)에서는 중단됐던 한미 연합 군사훈련인 '팀스피릿'을 재개하기로 결정하기에 이른다.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가 도출되는 과정에서 1992년 팀스피릿 훈련을 중단하기로 했는데 이것이 뒤집힌 것이다.
미국은 한미 연합 군사훈련인 팀스피릿이 중단된 것에 상당한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미국 국방부나 군산복합체 입장에서 볼 때 남북관계를 개선하려는 한국 정부의 독자 행보, 그리고 이로 인한 팀스피릿 중단이 미국의 주요 수입원인 무기 판매를 어렵게 한다는 점에서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노태우 정부는 남북관계 개선을 밀어붙였지만, 정권 말기가 되면서 레임덕 현상으로 결국 1993년 팀스피릿이 재개되는 것으로 결정돼버렸다. 미국 군부의 영향권에 있다고 볼 수 있는 남한 군부가 미국의 이익에 합당하게 결정해 버린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후 정권인 김영삼 정부는 팀스피릿 훈련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던 측면이 있다. 대통령의 대북관도 중요하지만 이처럼 미국의 군산복합체나 국방부 등 강경론자들의 입김도 한반도 정책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미국 군 세력의 주장을 타고 넘을 수 있는 대통령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변수가 되는 것이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은 이들의 주장을 타고 넘어가려 했다. 또 일정 부분 이들을 극복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확실한 철학이 없는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미국 군부와 군산복합체의 이익에 봉사하는 줄도 모르고 그들의 주장에 일방적으로 끌려가기만 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미국은 기본적으로 한반도 정세가 계속 불안한 상태로 가야만 무기 장사를 해먹을 수 있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 대통령이 이러한 미국의 의도에 일정 정도 협조하거나 동조해주면서도 자기 목소리를 챙길 수 있으면 남북관계가 개선될 수 있는 것이고, 아니면 계속 대결적인 상태로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프레시안 : 남북관계의 개선이나 안정이 남북만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과 연결돼있다는 설명인 것 같은데, 국내정치적인 측면도 있지 않나? 이명박 정부가 '비핵개방 3000'이라는 정책을 들고 나온 것도 국내 정치와 연결돼 있다고 생각하는데
▲ 김연철 인제대학교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김연철 : 이명박 정부의 경우 남북관계를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외교적 필요성의 측면보다는 이념에 기반한 측면이 매우 강했다. 그러다 보니 이명박 정부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진보-보수라는 이분법적인 기준으로 평가한 측면이 있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초기부터 이러한 경향이 나타난 것 같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초기 통일부 업무보고 때부터 남북관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명박 정부는 그동안 억눌려 있었던 대북 포용정책에 대한 보수층의 반감을 동원해 북한 문제를 이념적으로 접근했다.
이명박 정부의 남북관계를 돌아보면 몇 번의 계기가 있었다. 2008년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 씨 피살사건, 2010년 천안함 사건 이후 5.24조치 등을 꼽을 수 있는데, 이런 우발적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이명박 정부는 남북관계가 가져올 외교·경제 등 여러 부분들에 대한 중장기적인 이익 또는 전략적인 의미를 고려하기보다는 국내정치적 기준에 따라 이를 평가하고 대응했다.
실제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 근무했던 인사들 중 일부는 남북관계 개선을 안 해도 좋다는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했다. 이산가족 상봉 문제가 중요하다고 지적했을 때도 이명박 정부에서는 이산가족 안 만나도 상관없다는 식의 시각이 있었다.
정세현 : 보수 정권인 이명박 정부는 "남북관계 안 하면 어떠냐, 어설프게 해서 지지세력 흩어지는 것은 도움이 안 된다, 남북관계 중단하더라도 지지세력 결집을 통해 5년 동안 힘 있게 권력을 행사하자"는 계산이 있었다고 본다. 그렇지 않고는 비핵개방 3000이라는 순서가 뒤집힌 정책 기조가 나올 수가 없다.
북한이 비핵화를 추진하고 대외적으로 개방조치를 취하면 1인당 국민소득을 3000 달러로 만들어주겠다는 건데, 비핵화가 그렇게 하루아침에 될 것 같으면 그 문제가 왜 지금까지 해결되지 못한 상태로 남아 있겠나.
이명박 정부는 비핵화가 북한의 의지만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 모양인데, 이는 너무 단순한 판단이다. 미국의 군산복합체 입장에서 보면 북한의 비핵화는 곧 자신들이 무기를 내다 팔 시장이 없어지는 상황을 몰고 온다. 따라서 미국은 말로는 비핵화를 이야기하지만 속셈은 그렇지 않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기 전에 선거 캠프에 있던 참모들이 이러한 현장감이 전혀 없었던 것 같다.
외교·안보 현장에서 몇 년 만 일해 보면 큰 나라들, 예를 들어 미국이나 중국의 속셈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이들은 대국이기 때문에 체면치레를 위해서라도 평화지향적인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이들이 말하는 평화는 자신이 우월적인 지위에 있는 상태에서 안정이 유지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팍스 로마나'는 고대 로마의 지배가 확립된 상태에서 저항세력이 없으니까 평화로운 상태가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찬가지로 '팍스 아메리카나' 역시 미국의 절대적인 영향력, 지배 권력이 통하는 상태를 평화라고 규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은 군사적으로 자국의 우월적 위치를 키워가기 위한 정책을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2008년이면 북핵문제가 발생한지 16~17년이 넘은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비핵개방 3000을 들고 나온 것은 당시 정책을 입안한 참모들이 보수결집을 위해 남북관계를 중단해도 좋다는 계산도 있었겠지만, 기본적으로 핵문제나 체제 개방 문제가 북한 당국의 의지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인 이유도 있을 것이다. 북한이 진짜로 비핵화를 추진하려고 하면 미국 군산복합체들은 "쟤들 왜 저러나, 저러면 곤란한데 우리 죽이려고 하나"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개방 문제 역시 북한이 온전히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 개방을 하려면 개방한 결과로 돈이 들어와야 한다. 즉 외국의 투자가 들어와야 하는데 그러려면 아시아개발은행(ADB)이나 세계은행(WB)에 최대 지분을 가지고 있는 미국이 허가해야 한다. 한국에서 북한으로 들어가는 투자는 사실 투자라고 보기도 힘들다. 북한도 나라인데, 우리가 북한의 경제를 부흥시킬 수 있을 만큼의 투자를 할 수는 없다.
개발도상국들은 장기 저리로 차관을 끌고 들어와서 경제를 발전시킨 뒤 10~20년 후에는 명목상으로는 크지만 가치 면에서는 빌린 돈보다 적은 돈을 갚으면서 개발을 해야 한다. 이러한 방식의 차관을 제공해줄 수 있는 곳은 ADB나 WB 정도다. 결론적으로 개방은 미·북 수교가 전제되지 않으면 사실상 불가능하다. 또 미·북 수교는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고치는 문제와 표리의 관계다. 이것이 선행되지 않으면 개방은 사실상 어렵다고 봐야 한다.
따라서 미·북 대화도 막으면서 북한이 개방하면 남북 교류 협력을 하겠다고 하니, 인과관계나 선후관계를 모르는 사람들이 만든 정책이 비핵개방 3000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의 본심에 대한 이해가 없던 측면도 있고.
천안함 아니었어도 5.24조치는 나왔을 것
프레시안 : 이명박 정부의 남북관계에서 2010년 천안함 사건과 그에 따른 5.24조치가 가장 중요한 포인트였던 것 같다. 지금까지 이 조치가 유지되고 있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김연철 : 이명박 정부 대북정책 기조가 비핵개방 3000이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5.24조치가 남북 경협이 잘 이뤄지다가 천안함 사건이 일어나서 이에 대한 대응 차원으로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다. 비핵개방 3000에 이미 남북경협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기본 정책이 잘 드러나 있다.
이명박 정부 집권 1년 차인 2008년 하반기부터 남북 민간교류가 이미 굉장히 위축되고 있었다. 이때부터 정부가 방북승인을 굉장히 엄격하게 하면서 대체로 민간교류가 중단되기 시작했다. 남북 경협 기업들 역시 2009년에 들어서면서 대체로 북한을 방문하는 기회나 숫자가 줄어들었다. 이로 미루어볼 때 5.24조치는 비핵개방 3000이라는 기본 철학을 갖고 있는 이명박 정부가 남북 경협과 교류를 완전히 중단시킬 수 있는 하나의 중요한 명분으로 작동했다고 판단하는 것이 타당하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정세현 : 천안함 사건이 결국 남북관계를 끊고 싶었던 이명박 정부에게 좋은 구실로 이용당한 셈이다. 물론 이명박 정부는 천안함보다 파장이 크지 않은 사건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5.24조치와 같이 남북관계를 사실상 단절시키는 조치를 취했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 당국자들의 성향을 봤을 때 집권 3년 차에 나온 5.24조치는 어떤 측면에서는 좀 늦은 감도 있다. 이명박 정부 초기 청와대 모 비서관이 통일부에 와서 6개월 안에 북한을 무릎 꿇린다고 공언했던 것을 보면 5.24조치와 같은 대북정책은 언제든 나올 수 있는 것이었다.
금강산 관광도 마찬가지다. 박왕자 씨 피살 사건 이후 이명박 정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사건 다음날부터 금강산 관광을 중단했다. 비핵개방 3000을 입안한 사람들이 금강산 관광을 끝내야겠다고 생각하고 정책을 만들었는데 이 사건이 설득력 있는 관광 중단의 명분이 된 것이다.
한편으로는 천안함 사건의 성격 규정에 미국의 입김이 작용한 측면도 있다고 본다. 천안함 사건 발발 이후 주한미군사령관의 첫 멘트는 이를 북한의 소행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입장이 조금씩 뒤집어지기 시작했다.
미국의 입장이 변한 배경으로 당시 일본 오키나와(沖繩島)에 위치한 후텐마(普天間) 미군 공군기지 이전 문제가 있었다는 점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당시 이 문제로 미·일 간 갈등이 상당히 심화되고 있었다. 일본 내부에서는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당시 총리가 상당히 강하게 후텐마 기지를 옮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일본 내 외무성 현직 관리들과 퇴직 외교관들은 미국에 후텐마 기지를 잔류시키라고 강하게 이야기했다.
이 때 후텐마 기지 잔류파들에게 천안함 사건이 기지를 이전할 수 없는 명분으로 절묘하게 쓰여졌다. 미국의 원안대로, 즉 기지 이전을 하지 않는다는 목적에 부합하게 천안함 사건이 활용된 측면이 있다. 이 때문에 미국 입장이 '천안함은 북한의 소행'으로 바뀌게 됐다.
미국은 후텐마 기지를 이전하면 동중국해 부근에서의 미국의 군사력이 약화된다고 판단했다. 이를 막기 위해 천안함 사건이 이용된 것인데, 미국은 북한의 도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후텐마에 비행장이 있어야 한다는 논리를 펼쳤다. 또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미국은 이명박 정부의 강경론을 뒷받침해줄 필요가 있었다. 결국 미·일 간의 안보 문제가 천안함 사건이 북한의 소행으로 결론 나는 데 중요한 배경이 된 것이다.
프레시안 : 5.24조치가 북한에 압박을 주겠다는 목적으로 취해졌는데, 4년이 지난 현시점에서 보면 결과적으로 우리에게만 손해를 끼친 상황이 됐다.
김연철 : 5.24조치는 일반적으로 국제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경제제재의 유형과는 매우 다르다. 크게 보면 세 가지 측면에서 다르다. 첫째로 어떤 경제제재도 인적교류 자체를 막지는 않는다. 전 세계에서 미국이 북한에 대해 가장 강력하고 포괄적인 제재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재미교포들이나 미국인들이 북한을 왕래하고 있지 않나? 하지만 5.24조치는 이러한 인적교류까지 막아버렸다.
두 번째로 대체로 제재라는 것은 군사적 목적의 물품이나 군사적 목적으로 전용될 수 있는 물품을 막는 형태로 진행된다. 산업 목적의 무역 자체를 막는 경제제재는 유례를 찾기 어렵다. 하지만 5.24조치는 교역과 위탁가공 자체를 중단시켰다. 대단히 이례적이다.
마지막으로 5.24조치의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것이 압력을 가한 쪽이라는 사실이다. 보통 '제재'라는 것은 상대방에 대해 일종의 벌칙이나 압력을 가하는 것인데 황당하게도 5.24조치로 인해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쪽은 상대방인 북한이 아닌 우리 중소기업들이었다. 일반적인 경제제재는 가능하면 자국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상대방에 압력을 행사하는 것인데 5.24조치는 북한에 별다른 압력이 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자국의 피해를 최소화하지도 못했다. 북한 입장에서 교역이나 위탁가공 등은 남한이 아닌 중국과 함께해도 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5.24조치가 끼친 직접적인 경제 손실도 만만치 않은 수준이다. 2011년 당시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서 손실을 체계적으로 조사하기 위한 팀을 만들고 백서를 발간했는데 직접 손실액만 45억 달러, 우리 돈으로 4조가 넘었다. 여기에 교역이나 위탁가공이 중단되면서 국내적으로 일자리가 줄어든 부분까지 포함하면 손실액은 124억 달러, 우리 돈으로 13조 원이 넘는다. 남북경협이 끊기지 않고 진행됐다면 얻을 수 있는 이익, 즉 기회비용까지 고려하면 손실액은 이보다 훨씬 커질 것으로 보인다.
▲ 2010년 5월 24일 이명박 대통령이 전쟁기념관에서 천안함 사건과 관련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세현 : 기회비용의 측면에서 보자면 남북관계 악화로 한미동맹이 강화되면서 생겨난 비용도 고려해봐야 한다. 우리를 포함해 미국과 동맹국인 나라들을 보면 동맹국이 비싼 무기를 팔아주는 경우가 많다. 즉 동맹국이 미국에 "비싼 무기 좀 우리한테 팔아주세요"라고 빌어대다시피 하는 형태인데, 일본이나 이스라엘 등이 이런 식으로 동맹을 유지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남북관계는 틀어막은 채 북쪽 때문에 정세가 불안하니 한미동맹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미국의 비싼 무기를 사들이는 것과 표리의 관계에 있다. 즉 쓰지 않아도 되는 돈을 쓰는 것이다.
임기 1년차였던가? 이명박 대통령 방미 결과 한미동맹이 더욱 강화됐다고 정부가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확장억제(extended deterence)만 해도 대단한 건데, 이번 한미정상에서 미국으로부터 'extended & extended deterrence'(더욱 확장된 억제)를 보장받았다고 역설했다. 이 부분은 언론사에 대서특필된 반면, 미국이 한국에 파는 무기의 등급을 올려줬다는 건 조그맣게 기사화됐었다.
미국이 한국에 판매하는 무기의 등급을 올려준다는 건 비싼 무기를 팔아주는 것이 동맹 강화의 민낯이라는 걸 의미한다. 결국 남북관계를 막아놓고 불안하니까 미국으로부터 비싼 무기를 사들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놓고도 이명박 정부는 미국의 이런 조치에 기뻐했고 마치 무슨 역사적 업적이라도 낸 것처럼 홍보해댔다.
남북관계에 들어가는 돈은 분단관리비용, 평화비용이라고 볼 수 있다. 남북경협이 활성화되고 북한이 경제적으로 남한에 의존하게 되면 대남도발이 어려워진다. 북한의 군사적 움직임을 어렵게 만드는 효과가 있는데도 그 돈 내는 것이 아깝다며, 북한 '퍼주기' 안 하겠다며 남북경협과 교류를 끊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고 나서 대북지원이나 경협에 들어가는 돈보다 훨씬 많은 돈을 들여가면서 미국이 '팔아주는 은혜를 베푸는' 비싼 무기를 사들인 것이다.
프레시안 : 북한에 돈을 주면서 평화를 살 수 있는데 오히려 미국에 돈을 주면서 전쟁을 만든 측면이 있는 것 같다.
정세현 : 그렇다. 금강산, 개성공단 확장, 민간교류 활성화, 남북 간 경제협력 등이 활성화되고 구조화되면 북한이 경제적 이득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군사적 긴장도를 현격히 낮춘다. 실제 김대중-노무현 정권 당시 경험했던 일이다. 한반도의 안보 상황이 안정적으로 관리돼왔던 것이다. 그런데 북한에 돈 주는 것이 아깝다고 막아놓으니까 북한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미국에 의존해야 하고, 미국에 의존하면 북한으로 건너가는 현금이나 현물보다 훨씬 많은 액수의 돈을 들여서 미국의 무기를 사야 하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무기는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고철이 될 수밖에 없다. 고성능 무기가 끊임없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확장억제 받아냈다고, 무기 구매 자격 높여줬다고 좋아했던 이명박 정부의 당시 입장을 보면 평화비용이라는 개념이 아예 없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김연철 :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와 관련된 비용도 낭비됐다. 2007년 대선 당시 미국 국방부의 차관보를 단장으로 하는 대표단이 각 후보 캠프를 돌았다. 이들은 각 후보에게 2012년으로 예정돼있던 전작권 환수 일정을 지킬 것이냐는 점을 확인했다. 당연히 당시 여권에서는 지킨다고 했는데, 미 대표단은 만약 일정이 연기되면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그 책임은 한국에서 져야 한다고 말했다. 자기들은 계획대로 예산을 책정해놨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집권 이후 2015년으로 전작권 환수 시점을 연기했고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아예 무기한으로 연기해버렸다. 이렇게 되면 당장 주한미군의 방위비분담금부터 상당 부분 인상할 수밖에 없다.
프레시안 : 남북관계 경색이 남한의 미국 의존도를 높였다면, 반대로 북한의 중국 의존도도 높인 측면이 있지 않나?
정세현 : 남북관계가 막히면서 인도적 차원의 대북지원이 됐든 금강산 관광이든 다 중단됐다. 사람이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살아야 하다 보니, 북한은 자연스럽게 중국 쪽에 손을 벌릴 수밖에 없다. 일단 땜질은 하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중국과 교류협력을 활성화시킨 것이다.
다만 북한에게 있어 중국이 남한을 대체할 수준까지 다다랐는지는 의문이다. 북핵 문제가 풀리지 않는 상황에서 중국이 무턱대고 북한과 교류나 경협을 늘릴 수는 없다. 비록 북한과 중국이 지난 1961년 '조·중 상호 우호협력 조약'을 체결해 상대방이 제3의 국가로부터 공격을 받으면 자동으로 개입하겠다고 합의했지만 현시점에서 이는 명문화된 문서에 불과하다.
현재 중국은 미국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이런 현실 속에 만약 중국이 북한 문제 때문에 미국에 약점을 잡혀서 자국의 동아시아 전략이 틀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중국이 가장 바라지 않는 시나리오가 바로 이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은 때때로 북한을 제재하는 모양새를 취하기도 한다. 이것이 북·중 관계가 남북관계를 온전히 대신할 수 없는 이유다.
하지만 우리는 다르다. 중국은 정치적 판단에 의해 북·중 관계를 조절할 수 있지만 우리한테는 북한과의 교류나 협력이 곧 평화비용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정치적 상황에 의해 왔다갔다 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은 아니다. 북·중 관계가 남북관계만큼 커진다면 나중에 통일이 이뤄지는 시점에서 우리가 치러야 할 비용이 그만큼 많아지게 된다.
김연철 : 남북경협과 북·중 경협의 관계가 선순환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다. 남북중 3각 협력이 되는 모델이다. 현재는 남북 간 경협이 중단된 상황에서 북·중 경협이 진전된 것인데, 북한의 자원이나 인력이 한정돼있는 상황에서 장기적으로 남북경협이 중단되고 북·중 경협이 활성화되면 남북 경협의 공간이 줄어드는 측면이 있다.
우리 경제가 북방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측면에서도 문제가 있다. 경제를 살리려면 남북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남한은 저성장기조가 정착돼있다. 경제성장률은 고착됐고 인구와 일자리는 줄어들고 있다. 그러면 결국 잠재성장률을 어디서 확충할 것인가가 문제로 대두되는데, 잠재성장률을 높이려면 북한이라는 다리를 건너 대륙으로 가야 한다. 그런데 이 길을 이명박 정부가 막아 버렸다.
이후 치러야 할 비용도 생각해봐야 한다. '표준비용'이라는 것이 있는데, TV 전파 방식, 휴대폰 전파 방식 등 기술표준이 이에 해당한다. 웬만한 가전제품에는 이러한 표준이 있는데, 북한에 중국의 표준이 정착하게 되면 이후 남북 경제공동체를 건설하거나 통일 경제를 건설할 때 표준을 다시 통일시키는 데 상당한 비용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부가 막은 북미 관계 정상화…북핵 문제 해결 요원해졌다
프레시안 : 그간 남북관계의 역사를 살펴보면 남한정부와 미국정부의 입장이 달라서 고생한 적이 많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취임했던 2008년 이후를 보면 미국이 북한과 관계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올 때였다. 부시 전 대통령은 2006년 중간선거 참패 이후 북한과 관계에 적극적으로 나섰고 새로 취임한 오바마 대통령도 무엇인가 해보겠다고 나서던 때였다. 따라서 한국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대북정책을 가져갔다면 남북관계, 나아가 북·미 관계를 풀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또 엇박자가 발생했다.
김연철 : 비핵개방3000이 기존의 6자회담 흐름과 충돌됐다. 2005년 9.19공동선언은 북한의 핵포기 과정과 한반도 평화체제 확립 등 나머지 국가들의 이른바 '상응조치'와 병행하는 해결 방식이었는데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은 '선(先)핵폐기론'이었다. 이는 기존의 9.19과 충돌되는 지점이 있다.
▲ 김연철 인제대학교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정세현 : 오바마 정부가 집권 이후에 북한과 관계 개선을 시도했지만 이명박 정부가 적극적으로 막아섰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북핵과 평화협정 체결을 교환하는 구체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했음에도 이명박 정부는 요지부동이었다.
2009년 2월 13일 힐러리 클린턴 당시 미국 국무장관은 아시아 소사이어티 초청 연설에서 북한의 핵을 포기시키기 위해서라면 북미수교, 평화협정 체결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여기에 이명박 정부가 반대했다. 이명박 정부는 자신들의 정책은 '비핵개방 3000' 이라면서 비핵화 관련 북한의 성의 있는 조치가 있어야 6자회담을 재개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명박 정부의 '선 비핵화' 장벽에 막혀 오바마 정부는 평화협정 논의를 시작하지 못했고 결국 6자회담도 못했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동안 2009년 5월 25일 북한이 2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그런데 북한의 핵실험에도 미국은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해 7월 23일 태국 푸켓에서 열린 ARF(아세안 지역 안보포럼, ASEAN Regional Forum)회의에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2월에 한 그 이야기를 또 언급했다. 같은 해 11월에도 아프가니스탄을 방문한 자리에서 힐러리 장관은 2월과 7월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심지어 12월에는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를 평양에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번번이 이명박 정부가 비협조적으로 나오면서 미국도 힘을 쓰지 못하게 됐다.
핵 문제의 핵심 당사국은 미국이다. 하지만 핵문제가 발생했을 때 최대 피해 당사자는 한국 정부다. 그런데 한국이 협조하지 않으니 미국으로서도 별로 나설 이유가 없는 것이다. 6자회담에 한국이 안 나오면 회담을 시작할 수도 없고. 그래서 6자회담 재개 정책은 없었던 것이 되고 오바마 정부도 더 이상 '힐러리 해법'을 추진하지 못했다.
이후 2010년 오바마 정부는 북핵 문제를 방치하는 것을 이른바 '전략적 인내'정책으로 포장해서 비핵화와 관련해 북한의 선제적인 조치가 있어야 6자회담이 가능하다고 언급하기 시작했다. 또 중국이 북한에 압력을 넣어야 한다는 ‘중국역할론’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후 오바마 정부는 핵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는 방향으로 정책을 끌고 갔다.
김연철 : 이 부분 역시 기회비용에 들어가는 것 같다.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미국의 위상과 역할, 협상력 등이 과거와 비교해봤을 때 줄어들었고 반대로 한국의 위상과 역할은 늘어나는 추세였다. 이를 잘 발휘했다면 남북관계도 좋아지고 한국의 외교적 위상도 올라갔을 텐데, 이명박 정부는 이를 정반대 방향으로 행사했다.
미국의 위상과 동북아 질서 등 국제정세는 20세기와 많이 달라졌고 지금도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다. 그런데 1950년대식 안보관으로 국제정세 문제를 대응했으니 얼마나 많은 문제가 드러나고 있나. 안타까운 상황이다.
이명박 정부 때 잘못 꿴 단추, 박근혜 정부에도 이어진다
프레시안 :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살펴보자는 취지인데, 살펴보니 대부분 박근혜 정부에서도 이어지고 있는 문제점들이다. 박근혜 정부 임기 내에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유산들이 청산될 수 있을까?
정세현 : 안타깝게도 박근혜 정부가 이명박 정부보다 더 경직된 사고를 갖고 있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박근혜 대통령이 연초에 통일대박론을 언급한 것이나, 통일준비위원회를 출범시킨 것을 보면 그렇다.
남북이 경제공동체부터 시작해서 사회문화, 정치, 군사 공동체로 이어져야 통일이 가능하다. 우리의 사회변화 과정을 봐도 경제규모가 커지고 국민소득이 올라가면서 사회문화적 변화가 왔고, 이후 1980년대 들어서야 정치적 변화가 가능했다. 중국, 동유럽, 베트남 역시 마찬가지였다. 북한 체제도 이러한 변화를 겪을 가능성이 높은데, 그렇다면 통일은 북한 체제의 변화과정과 궤를 같이하면서 일어나는 것이 자연스럽다. 결국 통일을 위해서는 남북 경제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 정도의 상호 의존관계가 선행돼야 한다. 이를 위해 전 정부들이 남북 교류협력을 시작한 것이다. 북한 퍼주기 위해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그런데 통일의 첫 단추를 꿰는 '남북 경제공동체 확립'이라는 차원에서 시작한 남북 교류협력이 '퍼주기'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고 있다. 하지만 교류협력을 중단시키는 것은 통일의 첫 단추부터 풀어버리는 것이다. 첫 단추를 풀어버렸는데 통일이라는 옷을 어떻게 입을 수 있겠나.
경제적으로 상호의존성이 생기면 군사적 긴장은 자연히 완화된다. 경제공동체 확립 이후에 사회문화 공동체를 만들 수 있게 되면서 정치공동체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통준위는 너무 앞서가는 이야기다.
이렇게 남북 양 사회에 충격을 덜 주고 효과적으로 통일로 갈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도 통일대박을 이야기하고 통준위를 출범한 이유는 무엇인가? 박근혜 정부가 북한의 붕괴를 전제로 한 흡수통일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에 교류협력은 하지 않으면서 통일 대박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까?
이명박 정부는 비핵개방 3000을 기조로 삼았지만 적어도 북한 붕괴론을 공공연히 드러내지는 않았다. 통일대박론은 뒤집어 놓으면 사실상 북한 붕괴론이다. 더 강경해진 것이다. 지난해 말 당시 국정원장이 '2015년 자유민주주의 통일' 이야기를 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 지난 1월 6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통일대박'을 언급한 박근혜 대통령 ⓒ청와대
또 이명박 정부 때는 북한에 안주면 안줬지 북한을 자극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북한에 잘해줄 것 같이 이야기하면서 북한을 자극한다.
붕괴를 전제하고 하는 통일대박론의 문제로 우선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는 통일 전에 통일 비용을 미리 투자하는 개념으로 남북교류협력을 활성화시켜서 경제공동체, 사회문화공동체를 만들려고 했다. 그리고 이것이 완성돼서 정치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 시점이 되면, 그때 지출될 금액만을 통일비용으로 잡고 있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정치공동체부터 만들고 거꾸로 경제공동체를 시작하려고 한다. 이렇게 되면 초기 투자비용이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프레시안 : 결과적으로 이명박 정부가 남북관계에 끼친 영향으로 들어가고 있는 사회적 비용이 박근혜 정부에서 계속 늘어가고 있는 형국이다.
김연철 : 과정을 이야기하지 않고 결과로서의 통일만 강조하는 것은 박근혜 정부가 이명박 정부 때보다 좀 더 노골적으로 드러내긴 했지만, 사실 이 흐름은 이명박 정부 때부터 나온 것이다. 이명박 정부 때 만들었던 통일항아리, 통일세 논의 등이 이 흐름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남북 간 현안에 관심을 쏟기보다는 지금 현실과 무관한 것을 강조한 측면이 있다.
이명박 정부 때부터 이야기가 나왔던 통일 비용의 핵심은 남북한 경제력 격차를 줄이기 위한 비용이다. 또 통일비용 추산을 남북 간 경제력 격차가 어느 수준일 때 하느냐에 따라, 즉 시점에 따라 달라진다. 통일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남북 간 경제력 격차를 줄여야 하고, 그러려면 교류협력을 해야 하는데 지금 대북정책은 격차를 늘리면서, 즉 통일비용을 확대하면서 통일을 준비한다고 한다. 앞뒤가 맞지 않는 거다.
정세현 :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이 전 세계 꼴찌에서 11~16등 정도라고 하더라. 물론 북한 경제에 대한 판단은 한국은행이 단독으로 하는 것은 아니고 국정원도 개입하지만, 만약 저 수치가 사실과 근접하는 것이라면 통일비용은 이전보다 훨씬 많이 들어갈 것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북한은 없는 걸로 취급하고 통일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 통일을 북한을 흡수하거나 ‘대한민국 헌법 질서의 자동 연장’이라는 개념으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는 박정희 대통령이 가졌었던 '수복'개념이다. 김영삼 정부 들어서 비로소 수복은 아니고 '특별 관리' 정도로 변했다. 독일의 경우를 보니까 우리가 상당기간, 10년 정도 북한 지역을 특별 관리해야 한다는 개념이었다. 이후 경제적 수위가 비슷해질 때 문을 연다는 개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거꾸로 수복 개념으로 통일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통일을 강조하는 것이 보수 결집을 위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박근혜 정부는 남북 간 대화하자고 하면서 북한이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을 요구하거나 북측에서 요구하는 전단문제를 귓등으로도 안 듣고 그대로 밀고 나가고 있다. 그러면서 거창한 소리만 한다. 남북대화를 하겠다는 말의 진정성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김연철 : 박정희 대통령 당시 유신체제를 선포한 이유가 통일이었다. 통일시대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국내 정치적인 갈등을 지속할 수가 없다는 명분으로 선거를 없앴다. 과도하게 통일을 강조했을 때 그것이 가지는 국내정치적 함의에 대해서도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한다.
정세현 : 위기의식을 가지고 지켜봐야 한다. 국가의 정책 방향이 통일이 아니라 오히려 안보를 강화하는 쪽으로 갈 소지가 크다. 통일이라는 말로 국민들의 사고를 마취시키는 방식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북한을 봐도 이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 수 있다. 평양에 사는 사람들은 통일을 입에 달고 살고 있다. 예전에 평양에 있는 호텔에서 젊은 사람들을 보게되면 결혼했냐고, 언제 할거냐고 물었는데 아직 안했다고 하면서 뒤에 붙이는 대답이 걸작이다. "통일되면 할 겁니다". 난 속으로 어느 세월에 결혼하겠다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통일이 언제 되는데요?"라고 물으면 이들은 이렇게 답한다. "장군(김정일)님이 곧 시켜주실 겁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에 갔을 때도 북한 주민들은 "김정일! 김정일! 통일! 통일!" 이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더라. 마치 남북 정상회담 한 번 하면 통일이 가까웠다고 생각하면서. 이렇게 통일만 강조하는 것 자체가 국민을 어리석게 만드는 행위다.
북한에 통일을 위한 준비가 얼마나 됐나? 하나도 돼있지 않으면서 '조국통일 완수'라는 명분하에 북의 체제와 세습도 정당화되고 있는 것 아닌가? 북한 국내정치가 세력이 복잡하고 좌우, 보수·진보가 있는 것도 아닌데 체제에 대한 충성도를 높이기 위해 통일을 남용하고 있다. 이런 점을 생각해보면 지금 시기에 박근혜 정부가 통일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 것이 불안한 측면이 있다.
이재호 기자(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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