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2500&key=20081022.22018211215

한민족의 뿌리 - 단군조선을 찾아서 <10> 한국사 다시 써야 한다
동북공정에 볼모 잡힌 '고조선' 되찾기 행동 나서야
요하문명론 덫으로 고조선과 부여
고구려·발해까지 노골적인 역사침탈
주류든 비주류든 이해관계 모두 접고
상고사 사료 모으기 역사교육 재점검 등
한국사 재정립하는 계기로 삼아야
국제신문박창희 기자 chpark@kookje.co.kr2008-10-21 21:14:09/ 본지 18면

중국 심양에 있는 요령성박물관 정면. 이곳에서 '요하문명전'이 3년째 계속되고 있다. 동북공정의 후속 전략으로 보인다. 박창희 기자

계속되는 요하문명전

중국 심양의 요령성박물관에는 지금도 '요하문명전'이 열리고 있다. 2006년 6월에 시작한 특별전이 상설전으로 바뀌었다. 입장료도 없다. 이 상설전은 이곳의 주요 전시 틀이 될 모양이다.

요하문명전의 주제는 다원일체(多元一體)의 중화. 황하문명에 기초한 중화주의를 동북의 요하지역 문화까지 넓혀 수용한다는 의미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지난 1980년대 이후 발굴되어 나타난 요하 일원의 고고학적 성과는 중국식 표현대로 '굉동(轟動·충격)' 그것이었다.

1982년 사해(査海), 1983년 흥륭와(興隆窪)에서 잇따라 확인된 주거 유적은 신석기 연대를 기원전 6200~기원전 5600년까지 끌어올렸다. 이어 드러난 내몽골 적봉 일대의 홍산문화(기원전 4500~기원전 3000년)와 대릉하 유역의 하가점 하층문화(기원전 2000~기원전 1500년)는 동북아의 고대사 체계를 뒤흔들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중국 학계는 중국사를 새로 쓰고 있다. 사마천의 '사기'가 챙기지 못한 주나라 원년(BC 841) 이전 하(夏)나라의 건국 연대를 BC 2070년(하상주 단대공정)으로 끌어올리고, 전설상의 오제(五帝)시대를 역사로 둔갑시킨다(중화문명탐원공정).

눈여겨 볼 것은, 이들 유적지에서 나온 빗살무늬토기와 옥장식(귀고리), 적석총, 제단, 석성 등을 동이족의 문화로 볼 수 있다는 사실. 우리 고대 문화의 원류를 더듬게 한다는 말이다. 우리가 미처 챙기기 못한 단군조선이 눈을 크게 뜰 상황인 것이다. 일부 학자들은 단군조선 이전의 환국 혹은 배달국의 존재를 성급하게 연결시킨다. 그러나 아직은 누구도 섣불리 예단할 성질이 아니다.

중국이 다급해졌다. 동북공정으로 고구려사를 편입시켰지만, 그 이전의 장구한 문화를 어떻게 할 것인가. 여기서 내세운 것이 요하문명론이란 '그물'이다. 이 그물은 만주 일대에서 전개된 고대사를 저인망식으로 훑는다. 고구려 발해는 물론 그 이전의 부여 고조선까지 다 들어간다. 요령성박물관의 '요하문명전'은 이런 의도를 노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신화에서 역사로

지난 2005년 개관한 서울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 신라 백제 고구려실은 있으나 고조선실이 따로 없어 아쉬움을 준다.
 
서울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 2005년 새로 개관한 이 최신식 박물관에는 '고조선실'이 별도로 없다. 고고관의 '청동기·초기철기실'에 고조선 유물 일부가 전시되고 있다. 국내 여느 박물관도 마찬가지다. 박물관측은 "유물 자료가 별로 없어서…"라고 변명하지만, 속사정은 학계의 소극적 인식과 맞닿아 있다.

우리 민족 최초의 나라 고조선은 박물관에서조차 찬밥 신세다. 사학계의 다수는 여전히 단군을 신화처럼 생각한다. 일제시대 식민 사학자 이마니시류(今西龍)와 그의 제자인 이병도 전 서울대 교수 등에 의해 단군조선이 신화로 규정된 이래 이는 통설 아닌 통설이 돼 있다. 반면, 일부 역사학자들과 재야 연구자들은 끈질기게 단군을 역사무대로 올리려 애써왔다.

그 결과인지 천시인지, 지난해 초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다. 고교 1학년생들이 배우는 2007학년도 '국사' 교과서에 한반도의 청동기 등장 시기를 종전의 '기원전 10세기경'에서 '기원전 2000년경~기원전 1500년경'으로 끌어올린 것이다. 단군의 건국 사실도 명확해졌다. '삼국유사와 동국통감의 기록에 따르면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건국하였다고 한다(기원전 2333년)'라는 부분을 '…건국하였다'로 정리했다. 단군이 신화의 허울을 벗고 마침내 역사 무대에 오른 것이다. 일제가 날조 왜곡한지 100여년 만의 복원이다. 학계에 비판 기류가 있지만, 대세를 바꿀 정도는 아닌 것 같다.

교과서 수정 배경에 동북공정이 있음은 잘 알려진 바다. 한규철(경성대 교수) 고구려발해학회 회장은 한 사석에서 "동북공정이 어떨 땐 고마울 때가 있다. 잊혀진 역사를 다시 보게 하고 일자리까지 만들어 주니까…"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고맙다'는 역설은 우리 스스로를 아프게 되돌아보게 한다.

단군조선이 왜 중요한가

'단군조선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하는 것은 한국사 전체의 틀을 결정하는 요체다. 단군조선을 '역사'로 보면 한국사를 2000년 이상 끌어올릴 수 있지만, '신화'로 해석하면 기자조선(기원전 1100년), 또는 위만조선(기원전 194년) 이후가 한국사의 출발점이 된다.

논란의 중심에 기자조선이 있다. 기자(箕子)는 중국에서 은(殷)·주(周) 교체기에 고조선으로 망명했다는 인물이다. 고려와 조선 시대에는 기자조선의 실체를 인정했지만, 광복 이후 사학계는 허구라 하여 이를 부정하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국사 교과서에도 기자조선이 빠진 채 고조선과 위만조선만 언급돼 있다.

반면 윤내현 단국대 명예교수는 색다른 주장을 편다. "기자가 망명한 곳은 한반도 북부가 아니라, 고조선의 서부 변경인 지금의 북경 동쪽의 난하 유역이다. 기자는 그곳에 있던 고조선의 거수국(渠帥國·제후국)으로 볼 수 있다." 고조선의 강역을 요서지역까지 넓히면 가능해지는 해석이다.

중국의 동북공정은 기자조선의 맹점을 공격 포인트로 삼는다. 최근 발표된 '기자(箕子)와 기자조선'이란 논문에서 중국 학자 장벽파(張碧波)는 "은나라의 기자가 한반도에 처음 기자조선을 세웠으며, 기자조선이 고구려·발해 역사의 시발점"이라고 주장한다. 한국사는 기자로부터 시작되므로, 출발부터 중국의 식민지가 아니냐는 논리다.

기자조선은 한국사의 딜레마다. 기자조선을 역사의 실재로 인정하지 않으면 단군조선이 부정될 위험이 있고, 인정하면 고조선이 중국의 식민지처럼 되니 말이다.

중국측 논리에도 함정은 있다. 그들은 단군(조선)을 의도적으로 생략한다. 다시 말해 단군조선의 실재를 증명하면 중국의 동북공정 논리는 기초부터 허물어질 수 있다. 단군조선을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한 윤 명예교수의 연구가 탁견인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식민·분단·냉전사관 벗을 때

지난 7월의 뜨거웠던 답사길을 반추해본다.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학술답사단 24명은 나라의 혼을 찾아 북경에서 심양까지 혼이 빠져라 돌아다녔다. 둥두렷한 반달 모양의 오한기 성자산, 그 아래의 곰(토템) 바위와 제단, 태집둔의 임둔군 봉니, 우하량의 여신묘, 삼좌점의 석성 고국, 조양에서 마주친 아사달, 홍산에서 확인한 붉은 마음까지…. 눈으로 확인한 모든 것이 벅차고 아리다. 소리 소문없이 저 홀로 달빛에 젖은 채 수천 년을 지낸 우리 역사에 가슴이 미어졌고, 중국의 우격다짐 공정을 목도하곤 잠이 오지 않았다.

답사 마지막 날, 일행은 밤 늦게야 요하(遼河)를 건넜다. 요하는 어둠속에 잠겨 있었다. 우리 역사가 넘으려 했던 강을 거꾸로 넘어온다. 북경에서 출발, 요서땅을 돌아보고 요하를 건너 심양까지 오는 이번 코스는 고조선의 흥망을 따르는 답사가 되었다. 중원세력에 쫓겨 한반도 북부로 들어오는 고조선…. 아니다. 이번 답사에서 본 것은 요동에서 요서로 중원세력을 몰아내고 천년 제국을 이룩한 고조선이다. 아무리 그악스러운 운명을 겪은 제국도 관점과 해석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이번 답사에서 배웠다. 그게 역사라는 것도….

하여, 식민·분단·냉전사관은 이제 요하에 던져버려야 했다. 나아가 국수주의, 순혈주의, 빗나간 민족주의도 버려야 한다. 한민족사의 지평을 저 광대한 동북으로 넓혀 보면, 거기에 무수한 종족이 명멸하고 뒤엉켜 살았음을 알게 된다. 길고 긴 시간 속에 투쟁과 흐름, 변화와 창조라는 수레바퀴를 굴려 한반도로 들어와 정착한 민족이 우리가 아니던가. 한국사의 외연을 넓히면 우리가 설자리는 그만큼 넓어진다.

아울러, 찾아야 할 것이 많았다. 단군조선 이전의 신시와 환국의 역사, 고조선의 중심지와 영역, 민족 고유의 선도문화, 그리고 홍익인간 철학이다. 단군이 세상을 연 큰 뜻이 홍익인간(弘益人間) 재세이화(在世理化)다. 전쟁이 끊이지 않고 가치관의 혼란을 겪는 21세기 지구촌에 이만한 공동체적 평화 지향의 정신철학이 어디에 있던가.

"역사가 곧 희망"

답사단은 요령성박물관에서 한나절을 보냈다. 부여와 고구려실을 박대한 중국측의 행태에 분통이 터지기도 했지만, 세계를 크게 보고 움직이는 모습에선 무서운 생각도 들었다. '요하문명전' 첫머리를 장식한 '금우산인(金牛山人)'이 그랬다. 금우산인은 28만년 전 요하유역에서 활동한 것으로 추정되는 구석기 시대의 호모 사이엔스 유골 화석이다. 중국 언론들의 해석이 가관이다. '…금우산인은 인류의 '아프리카 기원설'에 대한 강력한 도전이다. 모든 인류가 20만 년 전 아프리카에 살았던 한 여성, 이른바 '미토콘드리아 이브'의 후손이라는 가설의 수정을 검토할 때다.' 

올림픽을 치른 중국은 동북아의 문명과 역사는 물론 인류의 기원 문제까지 '중화'라는 용광로 속에 녹이고 있다.

우리는 어떤가. 우리 민족이 어디서 왔는지, 뿌리가 무엇인지조차 별 관심이 없다.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독도 침탈에는 즉각 반응하면서도 고조선 얘기는 귀찮아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디오니소스(술의 신)는 기억하면서도 단군신화의 웅녀는 '그게 뭐지?' 한다. 정부가 교육의 대계를 바로 잡아놓지 못한 탓이다.

답사단을 이끈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복기대 교수는 "중국과의 고조선 쟁탈전은 우리 세대에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면서 연구자들과 학생들이 냉정과 열정을 함께 가질 것을 요구했다.

10차례 시리즈만으로 잊혀진 단군조선 2000년이 되살아날 리는 만무하다.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지금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 공감한다면 다행이다. 시리즈를 관심있게 보아왔다는 부산국학운동시민연합 이성명 대표는 "이제 구체적인 행동과 작은 실천이 중요하다"면서 "상고사의 어두운 부분을 밝히기 위한 사료 모으기 운동을 생각해보자"고 말했다.

역사를 왜 하는가. 불멸의 '사기'를 쓴 사마천은 '지나간 일을 되돌아보고 다가올 일을 생각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단재 신채호는 더 강한 메시지를 남겼다. '역사만이 희망이다'라고. -끝-

취재 지원 = (사)부산국학원·부산국학운동시민연합


■ 단군을 찾는 사람들
- '홀대받는 시조' 모시는 단체 전국에 70여개

국조 단군을 모셔놓은 밀양 영남루 경내의 천진궁. 오는 31일 개천대제를 지낸다.
 
밀양시 영남루 경내에 천진궁(天眞宮)이라고 있다. 팔작 단층 겹처마로 된 조선 후기 건물이다. 겉 모습은 밋밋하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눈이 번쩍 뜨인다. 우리나라 역대 왕조의 시조 위패를 모셔놓았기 때문이다. 역대 왕조는 단군조선부터 이태조가 세운 조선까지다. 가운데에 국조 단군의 영정과 위패가 봉안되고, 동쪽 벽에 부여, 고구려, 가야, 고려의 시조왕이, 서쪽 벽에 신라, 백제, 발해고왕 그리고 조선 태조의 위패를 모셔놓았다.

경남 지방유형문화재인 천진궁에서는 매년 음력 10월 3일에 개천대제, 3월 15일에 어천대제를 올린다. 어천(御天)은 단군이 하늘로 돌아간 것을 의미한다.

이 대제를 주관하는 단체가 재단법인 단군숭령회(檀君崇寧會)다. 6·25직후인 1953년 창립되어 면면히 단군을 챙겨오고 있다. 박지인(84) 회장은 재미있는 얘기를 해 준다. "단군을 모신다 하여 1910년 경술국치 후 전패(殿牌)가 땅에 묻히는 욕을 안당했나. 그러고는 일본 헌병들의 옥사(獄舍)로 쓰였다고 하더만. 6·25가 난 것도 이런 일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몰라. 미신같은 얘기지만…. 어쨌든 단군을 다시 모시고 나서 휴전이 되었응게."

'왜 단군을 챙기느냐'고 묻자, 박 회장은 "내 뿌리이고 근본이니까"라면서 "오는 31일 개천대제를 지내니까 꼭 보러오라"고 일러준다.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비록 단군이 홀대 받고는 있지만 챙기는 사람들이 있다. 강원도 태백산의 천제단과 강화도 마니산의 참성단에서 해마다 개천제를 지내는 단체가 있는가 하면, 각 지역의 유림들도 단군 제사를 모신다.

(사)국학원, (사)한배달 같은 시민사회단체들은 조직적으로 국조 단군을 챙기면서 민족혼을 고취하려고 애쓴다. 전국적으로 단군을 모시는 민간단체가 70여 개에 이른다고 한다.

단군은 남한과 북한이 공히 모시는 국조로서 한민족 정체성의 출발점에 위치하는 존재다. 한민족은 이러한 동질성을 바탕으로 '근대적 민족'으로 발전했다. 이른바 '단군 민족주의'다.

일제시대와 현대사의 격랑을 지나온 단군 민족주의는 21세기 들어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교과서 서술 변화가 말해주듯, 단군 인식이 점점 개선되고 있다. 특히 북한은 1993년 단군릉 발굴 이후, 단군을 확고한 국조로 자리매김했다.

한편에선 탈민족주의를 내세우며 단군을 불편해하는 세력도 있다. 기독교계 일부가 단군 민족주의를 우상숭배로 여겨 배척하는 현상이 그러한 예다. 북쪽에서 전개되는 단군 민족주의를 불신하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남북한 모두 단군이 한민족의 시조로서 민족 동질성의 뿌리를 형성한다는 인식엔 큰 이견이 없다. 단군을 통해 한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할 수 있다는 거다. 동북아 역사전쟁에서 살아남는 해법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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