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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조선 심장부를 가다 - 제3부 고조선인의 ‘마사다 요새’인 성자산성" 중 "
홍산문화" 내용 부분만 가져왔습니다.

일본인이 발견한 홍산 문화



적봉시 홍산구에 있는 홍산. 이 산은 철을 비롯한 광물질이 많아 붉은색을 띤다. 광물질이 많은 산이 있었기에 이곳에서는 황하 문명보다 먼저 청동기 문화를 꽃피울 수 있었다. 1935년 일본인 학자들이 이 산 뒤쪽에서 청동기 유적을 발견함으로써 홍산문화의 존재가 처음 알려지게 되었다.

요서 문화의 대표인 홍산 문화는 1935년 이 지역을 점령하고 있던 일본의 동아시아 고적조사단 학자들이 발굴에 나섬으로써 처음 확인되었다. 내몽고자치구 적봉시 홍산(紅山)구에는 붉은빛이 도는 바위산이 있는데, 몽골인들은 이 산을 ‘올랑하드’로 불러왔다 올랑하드는 ‘붉은 바위’란 뜻이다.

이 지역으로 들어온 중국인들은 ‘올랑하드’를 한자로 음차해 적지 않고 그 뜻을 따라 ‘홍산(紅山)’으로 적었다. 그 결과 ‘올랑하드’는 사라지고 홍산과 같은 뜻을 가진 적봉(赤峰)이 이곳의 지명이 되고 홍산은 적봉시의 구(區) 이름이 되었다. 적봉시는 그 면적이 한국에 육박하는 9만㎢로 중국에서는 가장 큰 지급시 가운데 하나다.

일본 고적 조사대가 발굴한 곳은 홍산 뒤쪽이었다(紅山後 유적).이곳에서 조사대는 서기전 19세기에서 서기전 8세기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토기와 청동기, 돌무덤 등을 발굴했다. 중국 사서에는 요서 지역에 청동기 문명이 있었다는 기록이 없기에 일본 조사대에 의한 홍산 발굴은 큰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이 문명은 중국이 혼란을 겪다 공산당에 의해 통일되는 사이 잊혀갔다.

1980년대 중국의 역사학계는 홍산 지역을 다시 조사했는데 이때 서기전 4000년의 신석기 문명이 발견되면서 일약 역사학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일본 조사대에 발견된 청동기 문명이 중국 사서에 기록돼 있지 않으니, 이보다 먼저 일어난 신석기 문명도 중국 사서에 기록된 것이 있을 수 없다.

이러한 발굴을 통해 서기전 4000년에 형성된 신석기 문명은 홍산 문화로 불리게 되고, 일본인들이 발굴한 청동기 문화는 ‘홍산 2기 문화’로 수정 명명되었다. 홍산 문화가 발견된 적봉시 홍산구에서 동쪽으로 15㎞쯤 가면 하가점(夏家店)촌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1960년 중국과학원 고고연구소 내몽고 공작대는 이곳에서 서기전 24세기에서 서기전 15세기 사이에 형성된 청동기 유적과 유물을 찾아냈다.

흥미로운 것은 하가점에서는 두 종류의 청동기가 발견되었다는 점이다. 하나는 표층에서 발견되었고 다른 하나는 깊은 곳에서 출토되었다. 깊은 곳에서 나온 것이 서기전 24세기 전후 형성된 초기 청동기 문화였고(하가점 하층 문화), 표층부에서 나온 것은 서기전 14세기에서 서기전 7세기 사이에 형성된 후기 청동기 문화였다(하가점 상층 문화).

이러한 발굴을 통해 중국 역사학계는 적봉시 홍산구 일대에는 오래전부터 신석기 문명이 일어났고 이를 토대로 중원의 황하 문명과는 완전 분리된 또 다른 청동기 문화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 후 발굴에서 더 많은 문화가 발견되었다. 이를 시대순으로 정리하면 서기전 7000여 년에 형성된 소하서(小河西) 문화, 서기전 6200여 년쯤의 흥륭와(興隆·#53851;) 문화, 서기전 5200년경의 부하(富河) 문화, 서기전 5000여 년의 조보구(趙寶溝) 문화, 서기전 4000년 무렵의 홍산 문화, 서기전 2000여 년의 하가점 하층 문화 등이다.

이렇게 발굴해놓고 보니 이 문화를 만든 주인공이 누구냐, 이 문화를 만든 사람들의 후손이 누구냐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중원 문화와 황하 문명을 자랑해온 중국으로서는 복병을 만난 것인데 중국은 당황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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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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