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21982

박근혜 정부 '분열통치'와 행복의 하향평준화
[기자의 눈] 대립·갈등 조장하면서 '100% 대한민국'이라니
곽재훈 기자 2014.11.26 09:52:53
    
기획재정부 이찬우 경제정책국장이 지난 24일 기자들에게 "(정부의 비정규직 종합대책으로 인한) 기업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정규직 정리해고 요건 완화를 검토 중"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한 차례 거센 파장이 일었다. (☞관련기사 : 정부, '정규직 정리해고 요건 완화' 검토)

이에 대해 노동계가 '정권 퇴진 투쟁도 불사하겠다'고 강경하게 나오자, 결국 기재부는 "정리해고 요건 완화 검토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일단 꼬리를 내렸다. 그러나 기재부는 "노동시장 개혁은 비정규직 차별 해소와 정규직 보호 합리화를 균형있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뒤끝'을 부렸다. 소나기는 피해 가되, 비정규직 대책 문제를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제로-섬 게임'으로 보는 시각에서는 물러서지 않은 것이다. 

비정규직 해법 마련에서의 전선(戰線)은, 원래대로라면 경제당국·기업과 비정규직 노동자 사이에 그어지는 것이 정상이다. 이를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노-노 갈등'으로 치환하려는 것은 실로 유서깊은 통치 기법이다. '쪼개어 다스리라'는 권모술수, 분할통치(divide and rule) 말이다. 

문제는 이게 먹힌다는 것이다. 이찬우 국장의 발언에서 엿보이는 시각은 일부 비정규직 노동자나 취업준비생 등에게서 일정한 공감을 얻고 있다. 정규직이 지나치게 많은 권리를 누리고 있고, 이 때문에 기업이 비정규직에게 나쁜 처우를 하거나 신규 고용을 꺼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정규직들이 받고 있는 대접을 줄여야 그들보다 하위 계층에게 이득이 돌아갈 것이라는 논리다. 

이런 논리는 박근혜 정부 들어 갖가지 현안에서 다양하게 변주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표 공약이었던 '기초연금 20만 원' 공약이 용두사미로 끝난 이후, 박근혜 정부는 집권 2년차에 갑자기 '공무원연금 연내 개편'이라는 무리수를 들고 나왔다. 이 역시 '국민 감정'은 나쁘지 않았다. 먹힌 것이다. 지난달 한 여론조사에서는 정부 주도의 공무원연금 개편 방안에 대해 찬성하는 여론이 66%로 나왔다. '나는 국민연금을 이만큼 받는데 공무원들은 저렇게 많이 받아?' 이 한 마디면 끝이었다. 

박근혜 정부의 집권세력은 '무상보육 공약을 지키라'고 하자 '무상급식할 돈을 줄이면 되지 않느냐'며 0~5세 아동을 초중등학생과 맞서게 하고(☞관련기사 : 새누리당, '무상급식' 뒤집나?), 세월호특별법 국면에서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과 희생자에 대한 배·보상을 진지하게 논의하는 대신 '천안함 유족들과의 형평성' 운운하며 "천안함 수준을 넘지 말아야 한다"고 하고 있다. (☞관련기사 : 정부, 세월호 책임회피? '배상' 아닌 '보상'으로 가닥)

이런 논리에 따르면 사회가 모두 제로-섬 게임으로만 이뤄진 것처럼 보인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공무원과 국민연금 가입자가, 미취학 아동과 학생이, 세월호 유족과 천안함 유족이 대립한다.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을 해야 할 정부는? 고의적으로 실종된 상태다. 뒤에서 웃고 있을지 어떨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한국사회를 이런 대립과 갈등의 장으로 만들어 놓고 '100% 대한민국', '국민통합'을 참칭하는 것은 되지도 않을 일이다. 

대선 당시 박 대통령의 가장 강력한 정적이었던 문재인 의원은 최근 이를 '두 국민 정치'라고 명명하며 기회가 될 때마다 집요하게 비판하고 있다. 문 의원의 목소리가 얼마나 반향을 얻을지, 그가 얼마나 강력한 지지기반을 가진 정치인이 될지는 역설적으로 박 대통령에게 달려 있다. 

유권자들도 속지 말아야 한다. 비정규직이 힘든 것은 정규직이 많이 받아서가 아니라 국가와 기업이 노동의 대가를 제대로 보장하는 체제를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천안함 유가족들에 대한 보상이 부족하다면 사회가 그만큼 더 해주면 될 일이지 세월호 유가족들을 그 수준으로 '하향평준화' 시키면 안 된다.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의 조합이 만족스런 노후 생계비가 되지 못한다면 '복지·연금제도를 확충하자'고 해야지 '퇴직공무원들도 좀 적게 받으라'고 해서는 누구의 삶도 나아지지 않는다. 

과연 정규직을 해고하기 쉬워지면 비정규직에게 이득일까? 공무원들이 퇴직 후 받는 연금이 깎인다고 해서 다른 이들이 행복해질까? 그렇게 끼리끼리 싸워서야 '어부지리(漁夫之利)'의 고사에 나오는 물새와 조개의 다툼이 될 뿐이다. 대립하는 양 쪽 가운데 한 쪽은 더 나은 상태를 누릴 수 있는 싸움(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모두가 어려워진다(마이너스-섬)는 말이다. 결말에서 기다리는 것은 '행복의 하향평준화'에 지나지 않는다.

곽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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