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머리 외국인’, 성공보수 받았다?
금융위원회가 내린 외환은행 지분 매각 명령이 론스타의 ‘먹튀’를 도와줬다는 비난이 거세다.
투자 구조를 살펴보니 론스타가 은행을 인수할 자격이 없는 ‘산업자본’이라는 증거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기사입력시간 [221호] 2011.12.15 08:49:14 이종태 기자 | peeker@sisain.co.kr
2004년 봄 장화식 투기자본감시센터 운영위원장은 어떤 경로를 통해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의 내부 문건 한 장(아래 표 참조)을 입수했다. 오른쪽 상단에 ‘론스타 4호(Lone Star Fund Ⅳ)’라는 문구가 있었다. 론스타가 어떻게 자금을 조달해 외환은행을 인수했는지 축약한 그림이었다. 왼쪽 하단에는 ‘외환은행 투자구조 계획(Planned KEB Structure)’과 함께 대외비(Confidential)라고 적혀 있었다. 이 문건을 훑다가 장화식 위원장은 아연해졌다.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하기 위해 금융감독원(금감원)에 신고한 투자 구조와 결정적으로 다른 내용이 있었기 때문. 더욱이 바뀐 내용 중에는 그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한 영문 ‘단어’가 들어가 있었다.
존 그레이켄 론스타 회장(앞)이 2008년 1월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 공판에 증인으로 참석했다. ⓒ뉴시스
론스타는 외환은행 위해 인수를 2003년 9월2일 금감원에 투자 구조를 신고한다(승인은 9월26일). 론스타가 시중은행을 인수할 자격이 있는지 확인하는 절차다. 어떤 나라든 ‘누가 은행의 주인이 되는지’에 대해 엄격히 규제한다. 은행은 천문학적 규모의 예금과 대출이 교차하는 지점으로 통화량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공공성 강한 기관이기 때문. 그래서 은행을 인수하는 자금이 부정하게 마련된 것은 아닌지 혹은 산업자본에 연관되어 있지 않은지 엄밀히 따진 다음에야 인수 자격(=대주주 자격)을 주는 것이다. 계열사 중 산업자본이 있는데 이를 숨긴 사실이 발각되면 엄중한 제재가 불가피하다. 그런데 론스타의 신고 내용과 장 위원장이 입수한 문건의 내역이 달랐던 것이다.
수수께끼의 문건
이후 장화식 위원장은 이 수수께끼의 문건에 대한 의혹을 공개적으로 제기해왔다. 임종인 전 의원과 2008년 초에 출간한 <법률사무소 김앤장>에는 문건을 그대로 게재했다. 그러나 장본인인 론스타와 이 사모펀드를 심사했던 금융 당국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할 뿐이었다. 이 퍼즐을 풀 실마리가 나온 것은 몇 년 뒤였다. 지난 11월9일과 17일, 한나라당 조문환 의원이 국회 정무위에서 김석동 금융위원장에게 론스타 투자 구조에 대한 질의를 하는 가운데 관련 내용을 밝힌 것이다.
조문환 의원의 질의에서 주목할 수 있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론스타가 2003년 10월29일 돌연 ‘주주변경 신고’를 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투자 구조(주주 명단)에 새로 들어온 펀드의 이름이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노조원들이 11월9일 ‘론스타 징벌 촉구 촛불한마당’에서 피켓을 들고 있다. ⓒ뉴시스
어떻게 변경되었는지 보려면 2003년 9월26일 승인된 신고 내용(9·26 신고서)부터 확인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는 투자 구조의 최정점에 ‘Lone Star Partners Ⅳ(Bermuda)’가 있다. ‘론스타 4호’를 운영하는 회사라는 의미다. 세금 피난처인 버뮤다에 등록되어 있다. 이 ‘Lone Star Partners Ⅳ(버뮤다)’는 법인 세 개를 통해 운용자금(투자금)을 모집했다. 미국 델라웨어 주에 등록된 ‘Lone Star Fund Ⅳ(US)’가 왼쪽엔 ‘KEB Inves– tors(Bermuda_‘외환은행 투자자들’)’, 오른쪽엔 ‘Lone Star Fund Ⅳ(Bermuda)’를 거느리고 있다. 이 세 법인에 모인 돈이 복잡한 가지치기를 하면서 외환은행 인수자금으로 사용되었다.
2003년 10월29일 변경된 신고서(10·29 신고서)는 이 부분이 다르다. ‘외환은행 되찾기 범국민운동본부(외은국본)’가 조문환 의원실로부터 입수해 밝힌 내용에 따르면 변경 내역은 이렇다. 먼저 KEB Investors(Bermuda) 이외에 KEB Investors Ⅱ·Ⅲ·Ⅳ가 추가되었다. 이와 함께 ‘Lone Star Fund Ⅵ(Bermuda)’가 빠졌다. 그 대신 다른 법인 세 개가 신고서에 들어왔다. 그 이름을 보면 장화식 위원장을 놀라게 한 영문 단어가 들어가 있다. 바로 ‘Korea’.
‘LSF Ⅳ B KoreaⅠ, LSF Ⅳ B KoreaⅡ, HudCo Partners Ⅳ Korea.’
세 법인 모두에 Korea(한국)가 들어가 있다. LSF Ⅵ B KoreaⅠ에 대해서는 ‘미국 이외 지역 투자자(Non-US Limited Partners)’라는 설명까지 첨부되어 있다. ‘장화식 입수 문건’에만 나오던 법인명이 2011년 11월에 이렇게 확인된 것이다. ‘장화식 문건’의 신빙성은 다른 경로를 통해서도 입증된 바 있다. 지난 4월 KBS가 네덜란드의 대형 은행인 ABN암로가 외환은행의 실질적 대주주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을 때 론스타 측이 반박한 보도자료를 통해서다. 이에 따르면, ABN암로가 투자한 규모는 1억 달러로 전체 투자자금(약 12억 달러)의 8.2%를 차지한다. ‘장화식 문건’에도 ABN암로 홍콩지점이 KEB Investors에 8.227%를 투자했다고 되어 있다. 이쯤 되면 ‘장화식 문건’은 론스타의 ‘10·29 신고서’를 축약한 내용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Korea가 들어간 저 세 개 법인에 투자한 사람들은 누구일까. HudCo Partners Ⅵ Korea의 정체는 론스타 재판 과정에서 이미 밝혀졌다. 론스타의 한국인 직원들이 투자한 펀드다.
‘검은 머리 외국인’은 실존하나
그렇다면 다른 두 개는? 장화식 위원장은 한국인 투자자, 즉 ‘검은 머리 외국인’의 펀드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론스타가 ‘9·26 신고서’에서 뺐다가 나중에 집어넣어 알려지지 않게 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외은국본 김준환 위원장(유한대 교수)의 주장은 좀 더 충격적이다.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할 수 있게 도와준 한국인들에게 제공한 ‘성공 보수’라는 것이다. “비금융 주력자(산업자본)라고 볼 수밖에 없는 론스타에게 인수 자격을 만들어주고 돈을 갈취한 것이라고 본다.”
론스타가 무리하게 외환은행을 인수할 수 있었던 배경에 ‘검은 머리 외국인’들의 사적 이해관계가 깔려 있었다고 보는 시각이다. 이런 의혹이 나올 정도로 관련 인맥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장화식 위원장은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직후인 2004년, 이헌재 전 부총리의 아들이 ABN암로 홍콩지점으로 이직했으며, 장녀 역시 2008년 ABN암로의 서울지점 고문으로 영입된 바 있다”라고 말한다. 이미 봤듯이 ABN암로는 론스타의 주요 투자자이다. 이헌재 전 부총리는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협상이 한창 진행될 당시 론스타의 법정 대리인인 김앤장의 고문이었다. ‘이헌재 사단의 핵심 멤버’로 주로 거론되는 인물로는, 변양호 보고펀드 대표(재경부 전 국장), 김석동 금융위원장(전 금감위 국장) 등이 있다. 모두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와 관계 있는 인물이다(오른쪽 상자 기사 참조). 이런 인맥이 얽히면서 의혹을 양산하고 있다.
외환은행 노조가 서울 중구 을지로2가 외환은행 본관 로비에 합병을 반대하는 선전 벽보를 붙여놓았다. ⓒ시사IN 조남진
이에 더해 최근 론스타가 숨겨뒀던 자회사들 또한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은행법을 적용하면, 론스타(엄밀히는, 외환은행을 직접 지배하고 있는 LSF-KEB 홀딩스, SCA) 계열사 중 비금융 회사의 자산 총액 합계액이 2조원 이상이거나 전체의 25% 이상이면 론스타는 비금융 주력자에 해당된다. 원천적으로 시중은행의 주인이 될 수 없었다는 의미다.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등 다른 계열사 때문에 은행 인수에 나서지 못하는 이유와 같다.
최근 드러난 론스타의 자회사는 일본의 골프 사업 지주회사인 PGM홀딩스다. 일본 내 골프장 자산만 3조7000억원 규모인데 이 사실만으로도 론스타는 외환은행의 주인 자격을 잃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금융위원회는 “PGM홀딩스는 금융회사다”라고 주장해왔다. PGM홀딩스가 금융회사여야 론스타는 지난 몇 년 동안의 ‘대주주 자격’을 잃지 않는다. 그래야 이후 외환은행 지분을 자유롭게 거래하며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받고 나갈 수 있다. 금융위는 지난달 중순 론스타에 6개월 안에 41%의 지분을 매각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다른 조건은 없다. 론스타가 쉽게 외환은행 지분을 팔고 나가는 것을 돕기 위한 ‘면죄부’라는 비난이 들끓는 이유다.
이에 대해 외환은행 노조는 보도자료(11월21일)에서 “일본의 산업 분류에도 PGM은 금융업이 아니라 ‘서비스 업종’으로 분류되어 있다”라고 반박한다. 이 노조가 제시한 ‘도쿄 도고 회계사무소’ 자료를 보면 PGM홀딩스의 자회사들은 “골프 코스 소유와 운영이 주요 사업이며 공동묘지, 호텔, 레스토랑, 고속도로 휴게소 등을 보유·운영하고 있다”.
지난 11월29일 민변과 참여연대는 미국증권감독위원회(SEC) 등을 통해 찾아낸 론스타의 특수관계 회사 196곳을 밝혔다. 이에 따르면, ‘론스타 투자 구조’에 등장하는 ‘Lone Star Global Holdings(Bermuda)’는 모두 65개의 회사와 지분 관계로 연결되어 있다. PGM도 그중 하나다. Lone Star Fund Ⅵ(US)는 식료품·잡화점 등 금융과는 전혀 관계 없는 자회사 8곳을 보유하고 있다. 심지어 민변·참여연대는 ‘론스타 투자 구조’에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은 Lone Star Funds를 찾아내기도 했다. 이 회사는 지분 관계로만 123개 자회사를 보유하고 있다. 미국 전역에서 114개 숙박업체를 운영 중인 Logian INC도 그중 하나다. 심지어 ‘10·29 신고서’까지 불충분한 자료였던 셈이다. 민변·참여연대는 “론스타에 대한 비금융 주력자 여부 등을 판단하지 않은 채 금융위가 내린 론스타의 주식 처분 명령에는 심각한 결격 사유가 생긴 것이다. 론스타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다시 실시하고 이에 따른 후속 조치를 취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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