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bit.ly/1FZQleW

고한전쟁

기원전 109년에 전개되었던 고조선과 한나라와의 전쟁

개요 : 위만조선(衛滿朝鮮)은 고조선의 마지막 왕조로, 기원전 194년 이주민 출신 장수 위만이 준왕의 왕위를 찬탈함으로서 세워졌다. 이 시기에 고조선은 철기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주변 지역을 활발히 정복하며, 주변 국가들 간의 무역을 방해. 중계 무역으로 막대한 이익을 취했다. 그러나 기원전 109년 전한 무제가 고조선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두려워하여 사신 섭하가 고조선 군에 살해된 것을 빌미로 대대적인 침공을 가해 1년 간의 전쟁 끝에 내분이 발생. 위만의 손자이자 고조선의 마지막 왕인 우거왕이 살해 당하고, 수도 왕검성이 함락되면서 기원전 108년 멸망했다. 

내용 : 기원전 109년 한나라는 사신 섭하를 보내 고조선 우거왕을 꾸짖고 회유하였으나 우거왕은 끝내 천자(중국왕, 한나라 무제)의 명을 받들려고 하지 않았다. 섭하가 돌아가면서 국경인 패수에 이르렀을 때 마부로 하여금 배웅하던 고조선의 비왕 장을 죽이게 하고서는 곧바로 패수를 넘어 요새로 들어가서는 천자에게 보고하기를 “고조선의 장수를 죽였습니다”라고 하였다. 천자가 이 일을 꾸짖지 않고 섭하를 요동동부두위로 삼았다. 조선은 섭하를 원망하여 군사를 일으켜 기습 공격해 섭하를 죽였다. 이로 인해 천자는 죄인을 모집하여 고조선을 공격토록 하였다.

이해 가을 한나라는 누선장군 양복을 파견하여 제나라로부터 발해를 건너 조선을 치게 하니 군사는 5만이었다. 또 좌장군 순체로 하여금 요동으로부터 출발하여 우거왕을 공격토록 하였다. 우거는 군사를 움직여 험한 곳에서 그들을 막았다. 누선장군은 제마라 병력 7천을 거느리고 왕검성에 이르렀는데, 우거는 성을 지키다가 누선의 군사가 적은 것을 알고 곧나아가 공격을 하니 누선의 군사가 패하여 도망을 하였다. 양복은 군사를 잃고 산속으로 몸을 피하여 겨우 목숨을 무지하였다. 좌장군 순체도 패수 서쪽을 공격하였으나 능히 깨뜨리지 못하였다. 

우거왕이 끝내 성을 굳게 지킴으로 몇 달이 지나도 함락시킬 수 없었다. (중략) 제남태수 공손수를 보내어 이를 누선장군과 좌장군의 불화를 바로 잡고 상황에 맞도록 처리하였다. 그러나 공순수는 좌장군 휘하에 명하여 곧 누선장군을 체포하고 군사를 합친 뒤 무제에게 보고하자 무제는 오히려 공손수를 죽였다. 좌장군이 이미 양군을 합하여 맹렬히 고조선을 공격하자 고조선의 상 노인, 상 한음, 니계상 삼, 장군 왕협이 서로 모의하여 “처음 누선에게 항복하려고 하였으나 누선은 지금 잡혀있고, 좌장군 단독으로 장족을 합하여 전투가 더욱 맹렬하여 맞아 싸우기 두려운 데도 왕은 항복하려 하지 않는다”하고 한음, 왕협, 노인이 모두 도망하여 한나라에 항복하였다. 노인은 도중에서 죽었다. 

기원전 108년 여름 니계상 삼이 사람을 시켜 고조선왕 우거를 죽이고 항복하여 왔으나, 왕검성은 함락되지 않았다. 죽은 우거왕의 대신 성기가 한나라에 대항하였다. 좌장군은 우거의 아들 장항과 상 노인의 아들 최로 하여금 그 백성을 달래고 성기를 죽이도록 하였다. 이로써 한은 고조선을 평정하였다.

출처 : 『사기』 권 115, 『조선열전』『제55, 『삼국유사』 기이 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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