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lyuen.egloos.com/4882869
그 많던 고구려인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2> - lyuen  http://tadream.tistory.com/151
그 많던 고구려인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3> - lyuen  http://tadream.tistory.com/153



그 많던 고구려인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1>

귀주성 동교전투에서 최후를 맞은 발해상온 고청명

1019년 2월1일 태주에서 귀주쪽으로 후퇴하던 10여만명의 요제국 군대 앞에 고려군이 나타났다. 상원수 강감찬이 지휘하는 고려군 주력방어부대였다. 거의 20만에 육박하는 고려군 대병력이 눈앞에 나타난만큼 요나라군도 강행 돌파를 망설였다.

요나라 북부추밀원사 야율팔가는 정면공격에 반대하며 귀주성 앞의 두갈래 강 사이로 고려군을 유인하자고 소배압에게 제안했다. 소배압이 그의 의견을 받아 들여 신중하게 고려군과 접전을 시작했으나 승패는 쉽게 갈리지 않았다. 

강감찬이 지휘하는 고려군 주력부대와 소배압이 지휘하는 요나라 군대가 귀주 동쪽 벌판에서 격전을 벌이던 그 순간 병마판관 김종현이 지휘하는 또다른 고려군 집단이 정주에서 귀주로 접근하는 통로를 따라 요나라군의 좌측방 배후에 나타났다. 전편위의 유재성 선생은 마침 그 무렵 요나라군을 뒤에서 추격하던 부원수 강민첨의 군대도 태주방면에서 귀주 전장으로 도착했다고 추정하고 있다. 

정면에는 강감찬이 지휘하는 고려군 주력부대, 좌측방에선 병마판관 김종현의 고려군, 우측방에선 부원수 강민첨이 지휘하는 고려군이 나타남에 따라 요나라 군대는 3면 포위 상황으로 빠져 들었다. 때마침 거센 비바람이 남쪽으로부터 북쪽으로 몰아쳐 왔다. 
 


고려군이 비바람과 함께 요나라군 진영으로 일제히 육박해 강타하자 요나라군은 전의를 상실하고 서북쪽으로 탈출로를 찾기 위해 몸부림쳤다. 하지만 3면 포위상태에서 탈출은 쉽지 않은 법, 10만이 넘었던 요나라 침공군 병력의 80% 이상이 귀주성 동쪽 벌판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뼈를 묻어야했다. 

귀주에서 결사적인 전투 끝에 1만명이 넘는 요나라군이 포위망을 뚫고 귀주성 북쪽 10km 지점의 반령까지 후퇴했으나 실날같은 행운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강민첨군의 추적에 걸려 또다시 최후의 일격을 당한 것. 요군은 갑옷을 버리고 창을 던지며 맨몸으로 탈출을 시도했으나 목숨을 건져 요나라로 돌아갔던 이는 불과 수 천명 뿐. 전사, 포로 1만명을 남긴 반령 전투를 끝으로 고려를 침공했던 요나라 침공군은 사실상 전멸 당했다. 

그렇게 고려 귀주성 동쪽 벌판과 반령은 동북아를 호령했던 요제국 군대의 무덤이 됐다. 이 두 차례의 전투를 통해 요제국의 최정예 부대인 4대 피실군 중에 하나인 우피실군이 전멸했다. 역시 요제국 주력부대 중에 하나인 천운군도 전멸의 치욕을 당했다. 

피실은 거란어로 금강(金鋼)을 뜻한다. 자부심 넘치는 부대 이름을 가진 전통에 빛나는 피실군의 날개 하나가 적국 고려의 영토 안에서 뜯겨져 나간 것이다. 고려의 입장에선 과거 2차 여요전쟁 때 적의 선봉에 섰던 우피실군에게 회심의 보복을 가한 셈이다. 

특히 천운군의 경우 부대가 전멸함과 동시에 지휘관인 상온 해리도 전사했다. 요련장 상온 아과달 등 수많은 요나라 장수들이 이 전투에서 전사했지만 전사자 명단에 나란히 이름을 올린 것 자체가 무척이나 운명의 장난처럼 느껴지는 인물도 있다. 가장 비감한 최후을 맞은 인물, 바로 발해군 상온 고청명이었다. 

발해군은 요나라에 항복한 발해군 유민을 모아 만든 종족기반 부대였다. 요나라 발해군의 지휘자는 발해 유민 출신이 지휘하는 것이 관례였다. 당연히 발해상온 고청명도 발해 유민 출신일 것이다. 발해 유민 출신에 고씨 성을 가진 인물이라면 발해를 거슬러 올라가 고구려 왕족 고씨 혈통의 소유자일 가능성이 높다.

668년 고구려가 멸망한 때로부터 351년, 발해가 멸망한지 93년. 고구려 왕족의 후예일지도 모르는 고청명은 압록강을 건너 고려를 침공한 요나라군의 일원으로 종군했다. 그가 생전 요나라 침공군의 일환으로 마탄에서 대동강을 건너 진격할 때 조금만 강을 따라 하류로 내려가면 그들의 조상이 살았을지도 모르는 옛터-고구려의 평양-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침략군의 신분으로 조상의 나라에 돌아왔던 요나라 발해군 상온 고청명의 일그러진 운명이 마음 한구석을 무겁게 한다. 

고청명은 그와 피를 나누었을지도 모르는 고려군과의 결전에서 패배해 귀주성 동쪽 벌판에서 그가 지휘했던 요나라 발해군과 함께 최후을 맞았다. 요나라 발해상온 고청명의 비참한 최후는 고구려 멸망이후 복잡다단한 경로를 거치면서 서서히 종족의식을 잃고 사라져간 고구려인들의 서글픈 운명을 보여주는 하나의 거울이다. 

* 참고자료
고려사,고려사절요,요사,중국군사통사, 여요전쟁사,고려거란전쟁
그림출처-여요전쟁사



Posted by civ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