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팽목항 머문 20분간 곳곳에서 '야유'
[현장] 희생자 가족 못 만나고 분향소에도 못 들어가
15.04.16 15:20 l 최종 업데이트 15.04.16 17:15 l 이희훈(leeheehoon) 소중한(extremes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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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팽목항 분향소 폐쇄 세월호참사 1주기인 16일 오전 진도 팽목항 분향소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팽목항 방문을 앞두고 붉은 글씨의 현수막으로 입구를 폐쇄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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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호 속 돌아서는 박근혜 세월호참사 1주기인 16일 오전 박근혜 대통령이 남미 해외순방 출발에 앞서 진도 팽목항을 방문해 대국민담화를 발표에 앞서 팽목항 분향소에 들렀으나 분향을 못하고 돌아 서고 있다. ⓒ 이희훈

세월호 참사 1주기인 16일, 진도 팽목항 분향소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대신 붉은 글씨가 담긴 노란 바탕의 현수막 두 개가 분향소 벽에 붙었다.

"진상규명 원천봉쇄 대통령령을 즉각 폐기하라!"
"인양 갖고 장난치며 가족들 두 번 죽이는 정부는 각성하라!"

세월호 참사 유가족·실종자 가족들은 이날 오전 ▲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대통령령) 폐기 ▲ 온전한 선체인양 ▲ 실종자 수습 등을 요구하고, 미진한 정부의 대책에 항의하며 진도 팽목항을 떠났다. 분향소 문과 함께 팽목항 가족식당 문도 굳게 잠겼고, 임시 거처 입구의 신발도 모두 사라졌다. 일부 실종자 가족들은 배를 타고 참사 현장을 찾았다.

전라남도와 진도군이 주최한 1주기 추모행사도 위로받아야 할 희생자 가족들이 빠진 채 진행됐다. 노란 머플러와 노란 풍선을 든 행사 참석자들 사이로 유가족, 실종자 가족 등의 비표가 담긴 빈 의자가 섬처럼 떠 있었다.

굳게 닫힌 분향소 문... 박 대통령, 20여 분 머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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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인양 외친 시민, 경호원에 제압 세월호참사 1주기인 16일 오전 박근혜 대통령이 남미 해외순방 출발에 앞서 진도 팽목항 분향소를 방문하자 한 시민이 피켓을 들고 "세월호를 인양하라"고 외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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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안에 사람이 있다" 세월호참사 1주기인 16일 오전 진도 팽목항 분향소 앞에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 이희훈

분향소 입구 유리문에는 누군가가 '정치인 분향금지, 세월호를 즉각 인양하라, 배보상 운운 즉각 중단, 시행령 즉각 폐기, 실종자를 가족 품에'라고 붉은 글씨로 적었다. '정치인 분향금지'라는 글귀는 노란 현수막에도 선명히 담겨 있었다. 분향소 옆엔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의 조화가 담배꽁초와 함께 내팽개쳐져 있었다.

이날 낮 12시께 팽목항을 찾은 박근혜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었다. 분향소에 들어가지 못한 박 대통령은 분향소 앞 실종자 9명의 얼굴이 담긴 손팻말을 지켜보다가 곧바로 방파제로 이동했다. 

방파제 곳곳에 놓인 추모 물품을 바라보던 박 대통령은 방파제 중간에 멈춰 약 7분 30초 분량의 대국민 발표문을 읽었다(관련기사 : 박 대통령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세월호 인양"). 그는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선체 인양에 나서도록 하겠다"고 말했지만 시행령과 관련해선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약 20분 동안 팽목항에 머문 박 대통령은 희생자 가족들 대신 시민들의 거센 항의와 마주했다. 굳은 표정의 박 대통령이 차에서 내려 팽목항 임시 숙소에 들어서자, '세월호 인양하라'고 적힌 손팻말을 든 시민들이 다가서며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책임져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민들의 항의는 대통령이 방파제로 이동하는 와중에도, 담화문을 발표하고 팽목항을 떠나는 순간에도 계속됐다. 경호원들이 항의하는 시민들을 저지했지만 곳곳에서 "이곳이 어디라고 찾아왔냐", "진정성을 담아 사과하라", "대통령은 퇴진하라"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시행령 폐기, 왜 한 마디도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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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은 세월호를 인양하라" 세월호참사 1주기인 16일 오전 전남 진도 팽목항에서 대국민담화를 마치고 떠나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한 시민이 "세월호를 인양하라"고 외치고 있다. ⓒ 이희훈

이날 박 대통령이 팽목항을 다녀간 직후, 기자와 만난 시민 A(광주 남구)씨는 "희생자 가족들은 선체 인양과 시행령 폐기를 요구함과 동시에 대통령과 정부에 항의하는 뜻을 담아 팽목항을 떠났다"며 "그럼에도 팽목항을 일방적으로 찾은 것은 보여주기식 1주기 쇼 혹은 세월호를 또 정치적으로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대국민 발표에 시행령 폐기와 관련된 내용이 없는 것을 두고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시민 B(전남 해남)씨는 "가장 중요한 조사 대상이 해양수산부인데 해수부에서 만든 시행령을 밀어붙이겠다는 게 대통령의 판단인 것 같다"며 "희생자 가족들이 그토록 요구한 시행령 폐기와 관련해 한 마디도 하지 않은 것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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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참사 1주기인 16일 오전 박근혜 대통령이 남미 해외순방 출발에 앞서 진도 팽목항을 방문해 대국민담화를 발표에 앞서 추모 기념물들을 보며 걸어가고 있다. ⓒ 이희훈

박 대통령이 "빠른 시일 내에 선체 인양에 나서도록 하겠다"라고 말한 것에 의문을 품는 시민도 있었다. 시민 C(전남 해남)씨는 "'빠른 시일 내'라는 표현과 함께 '인양을 하겠다'가 아닌 '나서도록 하겠다'라는 (박 대통령의) 애매한 화법을 듣고 또 차일피일 인양을 미루려고 하는 것 아닌지 의문이 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편집ㅣ손병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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