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땅에 떨어진 박근혜 정부의 도덕성
2015.04.28ㅣ주간경향 1123호

정치권에 또 ‘핵폭탄’이 터졌다. ‘성완종 게이트’는 음성적인 자금이 지난 대선에 쓰였을 가능성을 말해준다.또한 현 정권의 역대 대통령 비서실장과 현직 총리의 이름이 등장하면서, 전 정권에 비해 돈에 대해 깨끗하다는 이미지마저 추락하고 있다.

달라졌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서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대선 캠프 실무자들은 선거가 “달라졌다”고 입을 모았다. 기본적인 사무경비 외에 위에서 내려오는 돈은 없었다. 당시 박근혜 후보는 돈 안 쓰는 선거를 하겠다고 밝혔다. 의지는 확고해 보였다. 캠프 내에서 “돈이 말랐다”는 말이 돌았다. 밥도 사비로 각자 알아서 해결했다. 당시 박근혜 캠프 직능조직본부에서 일했던 한 관계자는 “하도 돈이 없어서 이렇게 해서 선거를 치를 수 있겠느냐는 말이 실무자들 사이에서 돌았다”고 전했다. 대선자금이 부족하자 캠프에서는 뒤늦게 박근혜 펀드를 모집하기도 했다. 당시 박근혜 후보 캠프 측은 문재인 후보의 ‘담쟁이 펀드’가 56시간 만에 200억원을 모금하자 “불순한 의도를 가진 돈들과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며 비판했었다. 그러나 자금이 부족해지자 그 비판을 며칠 만에 뒤집고, 펀드를 모집하기로 결정했다. 그만큼 자금부족이 심했고, 과거와는 달리 비교적 깨끗한 선거를 치렀다는 평가였다.

이완구 국무총리가 16일 국회에서 열린 대정부 질문 일정을 마친 뒤 본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 강윤중 기자

2012년 대선은 ‘달라진 선거’였을까

그러나 2012년 대선은 과연 ‘달라진 선거’였을까. 성완종 게이트는 지난 대선이 ‘달라진 선거’가 아니라 음성적인 자금이 여전히 오고 갔을 가능성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지난 4월 9일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메모를 남기고 자살했다. 메모에는 여권 인사 8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허태열, 유정복, 홍문종, 홍준표, 부산시장, 김기춘, 이병기, 이완구. 이름 옆에는 7억, 3억, 2억, 1억, 2억, 10만 달러의 금액들이 적혀 있었다. 성 전 회장은 <경향신문>과의 마지막 인터뷰에서 이들에게 준 돈의 일부가 대선자금으로 쓰였다고 말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대선 때도 우리 홍문종 같은 경우가 본부장을 맡았잖아요. 통합하고 같이 매일 움직이고 뛰고, 그렇게 하는데 제가 한 2억 정도 줘서, 조직을 관리하니까”라며 “이 사람(홍문종)도 자기가 썼겠습니까. 대통령 선거에 썼지. 개인적으로 먹을 사람은 아니잖습니까”라고 말했다.

홍문종 의원은 지난 대선 당시 선대위에서 조직총괄본부장을 맡은 박근혜 캠프의 핵심 인사다. 당시 박근혜 후보 선거 캠프에서 일했던 한 관계자는 “선거 캠프에서 영수증이 확실해 회계처리가 투명한 곳은 홍보 정도다. 유인물, 차, 광고, 걸개그림 이런 것들은 다 회계처리를 할 수밖에 없지만, 직능이나 조직 같은 경우에는 그게 투명하지 않다. 그 쪽에서는 ‘내가 몇 명을 모았다’ 이런 식으로 자신들의 활동을 말할 수밖에 없는데, 그 활동에서 오고 갔던 비용은 투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성 전 회장의 말대로라면 홍 의원은 회계처리를 하지 않고, 불법정치자금을 받아 박 대통령의 당선을 위해 사용한 셈이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의 정통성 문제와도 직결된다. 이미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으로 박근혜 정부의 정통성에 대한 시비는 늘 있어 왔다. 여기에 불법정치자금 문제까지 불거지면서 박근혜 정부의 정통성은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현 정권의 최고권력자라고 할 수 있는 1대, 2대, 3대 비서실장의 이름과 현직 총리의 이름도 메모에서 거론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는 달리 돈에 대해서 깨끗하다는 이미지를 주었지만, 성 전 회장의 메모와 인터뷰로 이것마저 무너져버린 셈이다.

정치적 출구를 찾으려는 여권은 성완종 전 회장이 충청지역을 중심으로 권력자들에게 모두 불법정치자금을 댔을 것이라는 데 방점을 찍고 있다. 일종의 물타기다. 대전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성완종 전 회장을 두고 “JP도 못한 일을 한 사람이다”라고 평했다. 여야 가릴 것 없이 충청도 출신을 모으고 연결하는 네트워크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사실 김종필 총재는 지역 일이나 지역 사람들을 잘 챙기지 못했는데 성완종 전 회장은 이러한 역할을 많이 했다.” 여권 사람이 아니라 충청도 사람이며, 그런 만큼 여권뿐만이 아니라 야권의 실세에게도 선이 닿아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새누리당이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사면이다. 참여정부 당시 성완종 전 의원이 두 번의 사면을 받았는데 거기에는 참여정부 핵심 인사의 봐주기가 있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참여정부에서 민정수석을 지낸 전해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성 전 의원의 사면이 새누리당 측의 민원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반박했다. 전 의원은 “성 전 회장에 대한 특별사면 의혹 제기는 특별사면 절차와 성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물타기”라며 “사면은 여당은 물론 야당, 경제단체 등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해 기간과 대상을 설정하고 국무회의에서 승인을 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참여정부 관계자는 “사실 그때 사면은 대북송금과 관련된 것이 화제여서 다들 거기에만 초점을 맞췄었다”며 당시의 분위기를 전하고 “경제계 인사 사면은 사면 기준에 맞춰서 진행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굳은 표정의 김기춘 전 비서실장. / 경향신문

불법정치자금, 정통성 문제와 직결

그러나 성완종 전 회장은 충청도 사람이기보다는 여권의 사람이라는 게 정치권의 평이다. 성 전 회장은 자유선진당으로 19대 총선에서 당선됐다. 하지만 원래 새누리당 공천을 받고 싶어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총선 공천을 담당했던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성 전 회장은 새누리당 공천을 받고 싶어하는 게 역력했다. 그러나 4·11 총선 공천은 비대위 체제로 도덕성 공천을 우선으로 내세웠었다. 음주운전만 드러나도 공천이 안 됐었는데, 전과가 있으니 될 리가 없었다. 그러니 마음을 아예 접고 선진당 쪽으로 갔다. 그러나 당선 이후에는 대선과정에서 새누리당을 많이 도왔다. 충청 표가 대선에서 관건이었는데, 충청지역 대선 판세 보고서도 전달하는 등 많이 도왔다. 그 보고서는 박근혜 후보에게도 올라갔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권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권 전반의 부패 문제로 상황을 돌파하려 했던 여권은 그러나 이완구 총리의 거짓말이 드러나자 당혹해하고 있다. 성 전 회장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 총리에게 ‘비타 500’ 상자에 든 3000만원을 건네주고 왔다고 전했다. 이완구 총리의 부여·청양 재·보궐선거가 있던 2013년 4월 4일이었다. 이완구 총리는 이 인터뷰에 대해 선거사무소에서 독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말했지만, 당시 이 총리와 성 전 회장이 만났을 것이라는 이 총리 전 운전기사의 진술이 나왔다. 그 과정에서 이 총리 측이 운전기사를 회유하려는 정황까지 언론 보도를 통해 밝혀지면서 성완종 전 회장의 인터뷰와 메모는 점점 더 신빙성을 얻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거짓 해명도 논란이 되고 있다. 김 전 실장이 비서실장 재임 중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을 만난 적이 없다고 했다가 이를 번복한 것이다. 김 전 실장은 “착각을 한 것 같다”고 말했지만, 김 전 실장의 번복에 청와대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사건 초기 여권 핵심 관계자는 “당시 경선을 앞두고 독일에 갔을 때 돈이 그렇게 많이 필요한 상황이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최경환 부총리도 함께 갔었는데, 동행했던 기자들 식사비 등의 상당 부분을 최 부총리가 냈다. 성 전 회장이 김 실장에게 돈을 준 장소로 호텔 헬스클럽을 말했지만, 사람들이 많이 오고가는 장소에서 불가능한 일이다”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김 실장의 해명이 번복되면서 여권 내에서도 뭐가 사실인지 믿을 수 없다는 분위기다.

박근혜 대통령-김무성 대표 단독 회동. / 청와대 제공

싸늘한 여론, 정부 신뢰도 추락

여권 내부에서조차 이런데 여론은 더 싸늘할 수밖에 없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여권 실세들의 거짓 해명이 드러나면서 정부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고 지적했다. “거론된 사람만 8명이고, 액수도 구체적이다. 단 한 건이라도 사실로 확인이 되면 나머지 7명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 말을 누가 믿겠나. 여론은 집권당이 조직적으로 부패했고, 부패한 세력이 정부를 장악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들을 끌어안고 있게 되면 행정부, 입법부가 조직적으로 부패하다는 제도 불신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는 것을 미리 차단해야 한다. 이들의 혐의를 검찰 조사를 통해 밝혀야 한다는 말도 있지만, 사실인지 아닌지 밝히는 과정에서부터 정치적 책임을 지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일단 물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4월 16일 남미 순방을 늦추고 김무성 대표와 긴급회동을 가졌다. 회동이 끝난 후 김무성 대표는 당대표실에서 “‘당 내외에서 분출되는 여러 의견들을 가감 없이 말씀드렸다’며 대통령께서는 ‘잘 알겠다. 다녀와서 결정하겠다’고 답변하셨다”고 회동의 결과를 알렸다. 새누리당 핵심 관계자는 “한마디로 시한부 총리가 된 셈”이라며 순방 이후 총리가 물러나게 될 것이라고 메시지를 해석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곧 있으면 재·보궐선거다. 박근혜 대통령의 별명이 선거의 여왕인 만큼 이번 국면도 선거 결과로 무마할 것이라는 예측도 제기된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어쨌든 여론의 심판은 선거로 드러나는 만큼 선거 결과가 여당 승리면 이번 성완종 게이트 또한 어떤 식으로든 무마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그러나 선거 결과로 상황을 돌리기에는 사건이 너무 엄중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친이계 관계자는 “일부에서는 이번 사건이 친박들이 연루돼 있기 때문에 친이계가 좋아하고 있다고 하지만, 단견적인 시각이다. 친박이든 친이든 할 것 없이 다음 총선에서 이길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결국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십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박근혜 대통령이 정권을 끌고 가는 데 위험한 요소가 많다. 성완종 게이트는 리스크가 관리가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미 아래로부터의 권력 누수도 심각하게 진행된 것이 아닌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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