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bit.ly/1CZ5dvL


위기의식 휩싸인 왜 대군 백제 구원 위해 출동!

<99> 왜 대군의 한반도 상륙

2014.03.19 16:06 입력 | 2014.03.19 16:07 수정

 

663년 3월 왜군 2만7000명 한반도로 보내 신라 공격

백제왕자 부여풍, 복신 처형하면서 지휘부 분열

 

변산반도 쪽 새만금 방조제에서 바라본 동진만이다. 계화도가 보인다. 이마니시류(今西龍)의 1930년 6월 6일자 미완논고 ‘백강고(白江考)’(『백제사연구(百濟史硏究)』 1934)에서 계화도(界火島) 부근에서 백촌강(白村江) 전투가 있었다고 했다. 앞서 진전좌우길(津田左右吉)은 1913년 발간 저서 ‘조선역사지리(朝鮮歷史地理)’에 있는 「백제전역지리고(百濟戰役地理考)」에서 그 장소를 금강(錦江)으로 보았다. 양설은 현재도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필자제공


660년 당이 백제를 멸망시키고 이듬해 평양을 포위하자 왜국은 극도의 위기의식에 휩싸인다. 당이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나면 다음은 왜국이라 생각했다. 당시 당 수군 전력에 혁명이 있었다. 수로가 닿는 곳이라면 적국의 수도가 어디라도 기습 포위할 수 있을 정도였다.


육식동물, 당제국


만일 당이 백제를 완전히 차지한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당제국의 그 강렬한 팽창 욕망은 태어날 때부터 가진 본능이었다. 틀림없이 자나 깨나 군대를 백제 땅에서 남진시켜 왜를 병합하려고 할 것이다. 역사상 그만큼 음모와 전쟁으로 일관했던 중원제국도 없었다. 모략만이 타국에 대한 의지였으며, 침략만이 욕망이었다. 당제국은 어금니에서 피를 뚝뚝 떨어뜨리는 육식동물이었다. 모두 고깃덩어리고 식용이 될 수밖에 없으며, 거기에 앞뒤 따위는 없다. 돌궐·토욕혼·고창국과 실크로드의 오아시스 국가들이 당의 입속에 들어갔다. 


660년 당은 신라를 앞잡이로 삼아 백제로 갔다. 하지만 백제는 아직 당의 입속으로 완전히 들어가지 않았다. 당이 한반도를 완전히 차지하기 전에 왜국은 손을 써야 했다. 향도 신라인들은 왜국으로 가는 항로도 잘 알았다. 660년 12월 수많은 고민 끝에 백제 출병을 결정한 사이메이천황(齊明天皇)은 오사카 난파궁으로 가 군수품을 준비하고 배를 건조할 것을 명했다. 그리고 직접 현장을 지휘하기 위해 661년 1월 북규슈의 쓰쿠시(후쿠오카)를 향해 출항한다. 그녀는 도중에 여러 지역에 들러 병력·군수물자 징발을 독려한 것 같다. 오사카와 후쿠오카 사이에 있는 세토(瀨戶) 내해 양쪽 연안에는 왕실과 귀족의 장원에 둔창(屯倉)들이 많았다. 3월 25일 사이메이는 북규슈 나노오쓰(娜大津) 행궁에 도착해 잠시 머물다가 5월 9일 아사쿠라(朝倉) 행궁에 도착, 본격적인 출병준비를 하다가 7월 24일 급사한다.


상속받은 전쟁 


당과의 전쟁이라는 부담감이 그녀의 심장을 짓눌렀고, 그 하중을 끝내 이겨내지 못했다. 작전을 구상하는 것조차 중압감이 들었을 것이고, 전쟁을 결정하는 어전회의에서도 존망의 절벽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으리라. “객관적인 전력과 물자만을 말해 보아라! 우리 왜국에 당을 감당할 만한 군사력과 군비가 어디에 있는가? 전쟁을 하는 도중에 국가가 파산할 것이야”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전쟁은 아들에게 상속됐다. 훗날 천지천황(天知天皇)이 된 나가노오에(中大兄) 황자(皇子)는 어머니 아래에서 실질적인 통치자였지만 이제 합법적인 지배자가 됐다. 나가노오에는 백제에서 당을 완전히 몰아내지 않으면 왜가 경제적으로 파산하기 전에 당의 밥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칼로 해결한다는 것이 언제나 당나라의 태도였다. 요구를 들어주고 그 중국인들과 평화협정을 맺는다는 것은 이웃 마을에 들어와 있는 무장강도떼에게 자기 마을과 이웃 마을만은 제발 침입하지 말라면서 머리를 숙이고 직거래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 강도가 보더라도 정말 어이없는 이야기다. 당은 언제든지 맹약을 엎어버리는 신용불량자 조폭집단이었다.


나가노오에는 661년 9월 병력 5000명을 백제에 파병했다. 이듬해인 662년 1월에 대량의 군수품이 갔고, 이어 5월에 170척의 배에 병력과 물자를 실어 보냈다. 왜의 전폭적 원조는 효과를 봤다. 웅진부성에 갇힌 당군 1만은 굶어죽거나 언제 포로가 될지 몰랐다. 하지만 좋지 않은 소식이 들려왔다. 그해 7월 나당 연합군이 신라에서 웅진부성에 이르는 보급로를 뚫었고, 663년 2월 신라가 백제의 군량 생산지로 보이는 남쪽 4개 주를 황폐화시키고, 안덕(安德) 등의 중요 지역을 빼앗았다. 다음달인 3월 나가노오에는 병력 2만7000명을 한반도로 보내 신라를 공격했다. 백제에 대한 신라의 공세를 완화시키고, 왜국에서 백제 주류성으로 가는 항로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신라 남해안의 중요한 항만들을 차지하려 한 것 같다. ‘일본서기’는 그 결과를 이렇게 전한다. “신라의 사비(沙鼻)와 기노강(岐奴江) 두 성을 빼앗았다.” 왜군은 신라 점령지에서 선박을 타고 백제로 이동하면서 서남해안의 중요 거점들을 차지하고 상당한 군대를 분산 배치했던 것 같다. 왜군 병력 2만7000명이 한반도에 들어왔는데 나중에 백제 주류성 앞에 도착한 것은 1만 명이다. ‘일본서기’를 보면 백제 남부의 호예성 등에 왜군의 장군들이 주둔해 있었던 기록도 보인다. 


제거된 부흥운동의 핵심, 복신


663년 5월 왜의 대군이 백제에 들어오자 친왜파 백제왕자 풍장은 부흥군의 최고 사령관 복신(福信)에 대해 그동안 쌓였던 한을 노골적으로 표출했다. 그는 왜의 고관 이누가미(犬上)에게 복신의 죄를 거듭 말하고 복신을 제거할 뜻을 밝히고 왜군의 지지를 요청했던 것으로 보인다. 왜의 입장에서도 부흥운동을 처음부터 주도한 토착 기반을 지닌 복신보다 그들이 왜에서 백제로 데려와 왕으로 세운 풍장이 더 기호에 맞았다. 그러던 차에 복신이 병을 칭하고 누웠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삼국사기’ 백제본기는 그 결과를 이렇게 전한다. “복신이 권세를 오로지하면서 부여풍(풍장)과 점차 서로 질투하고 시기하였다. 복신은 병을 핑계로 굴 속 방에 누워서 (부여)풍이 문병오는 것을 기다려 잡아 죽이려고 하였다. 부여풍이 이것을 알고 친하고 믿을 만한 사람들을 거느리고 복신을 엄습하여 죽였다.”


‘일본서기’ 663년 6월 조를 보면 그 과정이 상세하게 나온다. 풍장은 복신을 체포해 양 손바닥에 구멍을 뚫었다. 그 사이로 가죽 끈을 넣어 양손을 묶었다. 그의 처형 여부를 신하들에게 물었다. 백제의 상징인 풍장은 갈등했던 것 같다. 복신은 유능한 사람이었다. 그의 죽음이 가져올 파장이 두려워 공범을 모집하려 했던 것이다. “이에 달솔 덕집득(德執得)은 말했다. 반역 죄인은 풀어주어서는 안 됩니다. (옆에 있던) 복신이 집득에게 침을 뱉으며 말했다. 썩은 개와 같은 어리석은 놈. 왕(풍장)이 시종하는 병졸들로 하여금 목을 베어 소금에 절이도록 했다.”


복신이 정열을 불사르던 백제부흥의 꿈도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복신이 그의 처형에 동의한 집득에게 침을 뱉고 ‘썩은 개’라고 했던 말에는 그의 꿈에 대한 자부심과 안타까움이 서려 있다. 백제 부흥운동을 총괄 지휘해 온 그의 부재는 백제부흥군 내부 조직운영의 커다란 공백을 의미했다. 잘린 그의 머리를 소금에 절여 방부처리했다. 만인이 보는 앞에 그것을 걸어 둘 작정이었다. 예상되는 그의 추종세력 반발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조치였다. 설사 외형적 저항이 있다고 하더라도 왜의 대군을 업은 풍장이 진압할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 부흥운동에 참여해 온 이들의 가슴에 깊이 새겨진 상처는 간단히 아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노태돈 교수의 지적대로 그들 사이를 엮어 주던 상호 신뢰와 헌신은 크나큰 타격을 입었다.


이를 가장 반긴 것은 신라였다. ‘일본서기’는 이렇게 전한다. “신라는 백제왕이 자기의 훌륭한 장수를 목 베었으므로 곧장 백제에 들어가 먼저 주류성을 빼앗을 것을 계획하였다.” 그 즈음 당나라 장군 손인사가 이끄는 당나라 함대 170척이 덕물도에 도착했다. ‘삼국사기’ 김유신전을 보면 신라의 문무왕이 친히 김유신 등 장군들을 이끌고 663년 7월 17일 출정했고, 웅진주(부성)에 도착해 주둔하고 있던 유인궤의 당군과 합류했다. 8월 나당 연합군은 현재 충남 청양 정산면에 위치한 것으로 보이는 두량윤성을 공격해 함락시켰고, 왜의 함대가 도착하기 전에 부흥운동의 중심지인 주류성을 포위했다.


<서영교 중원대 한국학과 교수>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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