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644956


전쟁 영웅 계백, 사실은 '이상한 사람'?

[사극으로 역사읽기] MBC 드라마 <계백>, 일곱 번째 이야기

11.10.24 11:56 l 최종 업데이트 11.11.09 11:35 l 김종성(qqqkim2000)


▲ 계백(이서진분). ⓒ mbc


김부식의 붓끝에 의해 '백제 최후의 영웅'으로 등극한 계백 장군. 자기 나라를 위해 열심히 싸우다 죽은 계백은 존경 받을 만한 인물이다. 하지만, 우리는 김부식을 비롯한 <삼국사기> 편찬자들이 남긴 '계백 열전'에서 부자연스러움을 감지할 수 있다.


후세에 두고두고 '계백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삼국사기> '계백 열전'. 그런 신드롬의 진원지라는 점을 감안하면, '계백 열전'은 너무나도 단출하기 그지없다. 글자가 고작 159자에 불과하다. 한글로 번역해도 350자 내외밖에 안 된다. A4 용지의 4분의 1도 안 되는 분량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황산벌 전투 이전에 계백은 단 한 번도 전쟁을 지휘한 적이 없었다. 전쟁에 참여했을 가능성은 있지만, 전쟁을 지휘한 적은 없었다. 그래서 '계백 열전'이 단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무능한 의자왕'과 대비시킬 목적으로 '유능한 계백 장군'의 이미지를 설정한 김부식의 입장에서도, 계백에 관해서는 딱히 쓸 것이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짧은 기록으로 영웅 계백을 탄생시키고 의자왕을 상대적으로 초라하게 만들었으니, 김부식은 '대단한 글쟁이'였다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사람들이 계백을 영웅시하는 것은 전적으로 김부식의 '기획능력' 탓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계백 열전'은 두 가지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계백이 적은 병력으로 신라 대군에 맞서 죽도록 싸우다가 장렬하게 죽었다는 이야기다. 또 하나는, 출정 전에 계백이 멸망 가능성을 직감하고 자기 가족부터 몰살했다는 이야기다. 


두 가지 에피소드는, 나라의 멸망이 확실한 상황에서도 사(私)를 챙기지 않고 오로지 공(公)을 위해 헌신한 계백의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런 훌륭한 신하를 두고도 나라를 빼앗겼으니 의자왕처럼 무능한 군주도 없다는 탄식이 나오는 것이다. 그런 군주를 두었으니 백제가 망하는 것은 당연했고, 신라가 백제를 차지한 것은 정당했다는 인식을 조장하고 있다.


그러나 다음 세 가지 사실을 고려해보면, 계백이 출정 전에 가족부터 몰살했다는 이야기는 어딘지 부자연스럽다. 무심코 읽다 보면 그렇게 대단한 장군이었으니 가족부터 죽이고 결의를 다지지 않았겠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곰곰이 뜯어보면 이야기가 어딘지 자연스럽지 않다는 느낌을 감출 수 없다. 


<팩트 1> 출정 전의 백제 조정


▲  <삼국사기> ‘계백 열전.’ ⓒ 저작권자 없음


계백을 파견하기 직전에, 백제 조정은 상황을 낙관적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그들은 승리를 기대하고 있었다. 이 점은 백제 조정이 수립한 전쟁전략에서 확인된다. 나당연합군이 침공하기 직전에 백제 지도부가 만지작거린 두 가지 플랜으로부터 그런 기운을 느낄 수 있다.  


'플랜 A'는 서부전선 최전방인 기벌포(서해와 금강의 접점)에서 당나라 군대와 대치하고 동부전선 최전방인 탄현에서 신라군과 대치하되, 두 전선에서 적의 군량미가 떨어질 때까지 장기전을 벌이자는 것. '플랜 B'는 기벌포와 탄현을 그냥 내주고 적을 깊숙이 끌어들인 뒤 일망타진하는 방식으로 전쟁을 조기에 종결하자는 것.  


백제 조정은 플랜 B를 선택했다. 결과적으로 실패하기는 했지만, 그 시점에서는 충분히 선택할 수 있는 작전이었다. 무엇보다도, 이 방안은 자신감 없이는 채택할 수 없는 것이었다. 양쪽에서 침공한 적을 깊숙이 끌어들여 한 방에 끝내겠다는 전략을 택한 것은, 백제군이 그만한 역량과 자신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처럼 백제 조정이 자신감 넘치는 상태에서 계백은 출전 명령을 받았다. 그런 계백이 과연 멸망 가능성을 예감하고 가족부터 몰살하려 했을까. 출정 직전의 전략회의에서 딴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계백도 여타 지휘관들처럼 상황을 낙관적으로 인식했을 것이 아닌가. 계백이 지도부 전체보다 더 똑똑했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계백도 지도부의 판단을 따랐을 것이다.


<팩트 2> 지휘관의 자세


▲  충남 부여군 규암면 백제문화단지에 있는 계백 장군의 자택(복원물). 왼쪽은 대문, 오른쪽은 마루. ⓒ 김종성


지휘관은 낙관적이어야 한다. 병사들에게 용기와 자신감을 불어넣어 줄 수 있어야 한다. 저 산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모를지라도, 일단은 "저 산만 넘으면 승리할 수 있으니, 나를 따르라!"고 격려할 수 있어야 한다. 출정도 하기 전에, 도축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인상을 찌푸리는 것은 올바른 지휘관의 덕목이 아닐 것이다.  


'계백 열전' 속의 계백은 도축장에 끌려가는 소 같았다. 출정 전에 계백은 군사들 앞에서 다음과 같이 탄식한 뒤에 아내와 자녀들을 몰살했다. 


"일국 백성의 힘으로 당나라와 신라의 대군을 상대한다면, 나라의 존망은 알 수 없는 일이다. 아마도 내 집사람과 자식은 노비가 될 터이니, 살아서 욕을 보느니 차라리 빨리 죽는 게 낫다."(以一國之人, 當唐羅之大兵, 國之存亡, 未可知也. 恐吾妻孥沒爲奴婢, 與其生辱, 不如死快.)


병사들의 사기를 높일 목적으로 자기 가족부터 죽이지 않았겠느냐고 말하지는 말자. 이런 행동은 병사들의 머릿속에서 승리에 대한 기대감을 말끔히 제거해주기에 충분하다. 전쟁 막판에 패배가 확실한 상황에서 "기왕 죽을 바에는 멋지게 죽자!"고 독려하는 지휘관은 있어도, 승리 가능성이 높은데다가 아직 전쟁도 시작하지 않은 마당에 이렇게 부하들의 사기를 말끔하게 꺾어놓는 지휘관은 거의 없을 것이다. 


백제 조정이 자신만만하게 플랜 B를 선택한 상황에서, 현장 지휘관인 계백이 암울한 분위기를 전파했다는 것은 매우 비상식적인 일이다. 거짓말로라도 낙관적 전망을 전파해야 할 마당에 "우리는 다 죽을 것"이라는 식으로 사기를 꺾어 놓는 지휘관이 과연 정상적일까. 계백이 '백제의 안티'였다고 한다면, 모든 것이 자연스러워진다. 


<팩트 3> 신라군의 전력


백제 지도부가 승리 가능성을 점쳤을지라도 계백에게 '달랑' 5천 명만 주니까 계백이 죽음을 예감할 수밖에 없지 않았겠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신라군은 5만이고 계백 부대는 5천이니 계백이 비장한 기분에 취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았겠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백제 조정이 병력이 부족해서 5천 명만 준 게 아님을 고려해야 한다. 황산벌 전투는 전쟁 초기에 벌어졌다. 필요하면 얼마든지 병력을 더 충원할 수 있는 상황에서 벌어진 것이다. 이는 조정에서 계백에게 5천 명만 준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5천 명만 준 이유는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신라군 5만이 백제군 5천의 상대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라군은 나당연합군 전체의 보급을 책임졌다. 그래서 신라군 5만 속에는 비전투 병력이 상당수 포함돼 있었다. 게다가 그 속에는 전투 경험이 없는 화랑들과 낭도들까지 대거 섞여 있었다. 그들은 숫자만 많았을 뿐, 처음부터 백제 정예군 5천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계백 열전'에 따르면, 백제군은 황산벌에서 일당천(一當千)의 기세로 신라군을 상대했다. 또 백제군은 4차례의 회전(回戰)에서 4연승을 거두었다. 마지막 5회전에서 의외의 일격을 당하고 역전패한 것이다. 4회전까지의 결과를 보면, 백제군이 객관적으로 우세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7전 4승제의 '포스트 시즌' 같았으면, 4연승과 함께 백제가 '시리즈 챔피언'이 되었을 것이다. 4회전까지 5천 군대가 5만 군대를 갖고 놀았다는 것은, 5천 군대는 정예 병력이고 5만 군대는 그렇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계백이 신라군 앞에서 패배를 예감하고 가족부터 몰살했다는 것이 부자연스럽다는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결과적으로, 계백 부대는 신라군에게 졌다. 이것은 객관적 전력의 문제가 아니었다. 나이 어린 화랑인 반굴과 관창이 영웅적 최후를 맞이하자, 이를 보고 분노와 용기가 치솟은 신라군이 갑자기 죽기 살기로 덤벼들었고, 뜻밖의 상황 앞에서 백제군이 당황하는 바람에 상황이 일거에 뒤집힌 것이다. 신라군의 승리는 '반굴·관창 효과'가 낳은 우연의 결과였다. 


계백 열전, 어느 유능한 소설가의 명작이라고 밖에는...


▲  계백 장군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계백장군 유적지.’ 충남 논산시 부적면에 있다. ⓒ 문화재 지리정보 서비스


전쟁 개시 전의 백제 지도부가 낙관적 전망을 품고 있었다는 점, 승리 가능성이 있는데다가 아직 전쟁이 개시되지 않은 마당에 자기 가족을 몰살해서 아군을 암울하게 만드는 것은 정상적인 지휘관의 자세가 아니라는 점, 계백 부대의 전력이 신라군을 객관적으로 능가했다는 점. 


이런 점들이 우리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그것은 계백이 출정 전에 나라의 멸망을 예감하고 가족부터 몰살했다는 '계백 열전'의 이야기가 꽤 부자연스럽다는 것이다. 이것은 상당히 비상식적인 이야기다. 


계백이 '돌아이'였다면, 모든 것은 자연스러워진다. 또 계백이 남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미리 내다볼 수 있는 천재였다면, 모든 것은 자연스러워진다. 하지만, 그가 천재였다면, 반굴·관창을 죽여 신라군의 사기를 높여주는 우를 범했을까?


계백이 '돌아이'나 천재가 아닌 정상적인 지휘관이었다면, 계백 역시 출정 전에 낙관적 전망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자기 가족을 몰살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계백 열전'에 나오는 이야기는 '어느 유능한 소설가'의 명작이라고밖에 할 수 없을 것이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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