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nocutnews.co.kr/news/4492810

"박정희 비밀광복군?…허무맹랑한 소설 이야기"
2015-10-23 11:54 시사자키 제작진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30~20:00) 
■ 방송일 : 2015년 10월 22일 (목) 오후 7시 05분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고상만 (前 의문사진상규명위 조사관, 인권운동가)

◇ 정관용> 새누리당의 이장우 대변인이 ‘지난 20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독립군을 도왔다는 증언이 있다’ 이렇게 주장해서 지금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박 전 대통령 이른바 비밀광복군이었다는 주장. 그동안 여러 차례 제기된 바 있었는데요. 이번에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맞물리면서 파장이 좀 커지고 있습니다. 야당이랑 민족연구소 등 일부 학계가 이런 주장을 즉각 반박하고 나섰고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으로도 활동하셨던 인권운동가 고상만 씨도 개인 페이스북에 ‘이건 역사왜곡이다’ 이런 글을 올려서 화제가 되고 있는데요. 그래서 오늘 스튜디오에 직접 모셨습니다. 고상만 씨 어서 오십시오. 

◆ 고상만> 네, 안녕하세요. 고상만입니다.

◇ 정관용> 비밀광복군이었다라는 것은 여러 차례 주장이 나왔었던 바죠?

◆ 고상만> 일반 분들은 접할 수는 없고 이른바 ‘일베’라고, 일간베스트저장소 약칭 일베라고 하는 거기를 중심으로 해서 풍문처럼 오고갔던 이야기가 이번에 새누리당 이장우 대변인이 이걸 이른바 공식화해서 사회적 파장이 일어나고 있는 거죠.

◇ 정관용> 아니 그 일베에서 유포되기 이전부터도 상당히 오래 전부터 이런 주장이 있지 않았습니까? 

◆ 고상만> 2012년도 대선 때도 이런 주장을 해서 논란이 됐었는데 사실은 일반인들은 아마 이번에 처음으로 제대로 이 이야기를 들었지 이전에 아주 뭐 줄기차게 이런 얘기를 듣지는 않았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 정관용> 뭔가 근거를 가지고 근거를 제시하면서 이런 주장을 하잖아요. 어떤 근거를 제시하라고 했습니까? 

◆ 고상만> 몇 가지 이야기가 있는데 상당히 신빙성 있어요, 그냥 들어보면. 예를 들어서 1980년에 나왔던 우리나라 육군본부가 발간한 ‘창군전사(創軍前史)’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창군전사에 따르면 거기에 265쪽에 이런 글이 있는데요. 바로 일베를 중심으로 해서 또 일부 박정희 전 대통령이 광복군 출신이다라고 하는 것을 주장하고 싶은 분들이 많이 인용하는 글이 이건데요. 예를 들어 ‘만주에 있던 장교들은 그들대로의 지하조직이 있었다. 그러면서 박정희, 신현준, 이주일 등 이런 사람들이 광복군 3지대의 비밀광복군으로 거사 직전에 해방을 맞이했다’ 이런 대목입니다. 그래서 이 글에 의하면 마치 당시 만주 군관학교 출신의 박정희 전 대통령이 광복군 3지대 소속의 비밀광복군이었던 것처럼 이런 것도 있고 또 하나가 그로부터 4년 후에 나온 책인데요.

◇ 정관용> 잠깐만요. 그거 하나하나 보죠. 그럼 창군전사는 누가 썼고 어떤 근거로 이런 주장을?

◆ 고상만> 육군본부가 발간한 거죠. 

◇ 정관용> 필자가 한 명이 아니고? 

◆ 고상만> 그렇죠. 그냥 발간이 육군본부가 되어 있는 것이고요.

◇ 정관용> 그런데 실제로 그렇게 광복군 3지대에 지하조직이 있었던 게 맞습니까?

◆ 고상만> 그러니까 이런 얘기가 결국은 한 사람의 처음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그 이후에 새끼를 치고 풍부하게 가미되면서 이어진 건데요. 바로 이 내용에 이어서 4년 후에는 또 박정희 정권 하에서 국회의원과 합참의장을 지낸 장창국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분이 84년도에 출간한 ‘육사졸업생’이라고 하는 책이 있는데 여기서는 더 풍부하게 이야기가 만들어지는데요. 신태양 악극단이 1945년 2월 9일에 만주군 7연대에 들어가서 공연을 했는데 당시 잡역부로 가장한 공작원 이용기가 광복군에 투입돼서 그리고 이들이 그 안에 만주군에 있었던 회식장소에서 박정희 중위와 신현준 대위 등을 만나 그들에게 유명한 우리 광복군 총사령관이죠. 지청천 장군. 이분의 직인이 찍힌 광복군 임명장을 박정희 중위에게 줬다. 그래서 광복군 비밀요원이 됐다. 이런 이야기들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이렇게 많이 알려져 있고 이런 내용들이 있는데 왜 박정희 전 대통령이 광복군이 아니냐? 이런 반론들이 있었던 거죠. 

◇ 정관용> 또 이것은 뭡니까? ‘독립운동가 백강 조경환 선생이 박 전 대통령을 독립군을 도운 군인으로 기억했다는 증언이 있다’ 이건 뭐예요? 

◆ 고상만> 이게 바로 지난 20일에 이장우 새누리당 대변인이 공식적으로 언급하면서 사회적 파장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데 여기서 한 가지 바로 잡아야 될 게 이분이 언급할 때 조경환 할 때 예를 들어 환국할 때 ‘환’ 자를 쓰셨는데 정확히 얘기하면 대한민국 할 때 ‘한’ 자가 맞습니다.

◇ 정관용> 한이에요? 

◆ 고상만> 네, 조경한 선생님이시고 이분은 1900년생이시고 그리고 또 1993년도에 돌아가신 분이에요. 우리나라에서 임정요인 중에 가장 늦게 돌아가신 분인데 바로 이분의 이 이야기가 이장우 새누리당 대변인에 의해서 언급된 근거는 뭐냐면 2004년도 7월 23일에 세계일보에 독자 투고형식으로 이기청이라는 분이 있었어요. 이분이 의병정신선양회 사무총장인데 이분이 글을 기고합니다.

◇ 정관용> 독자투고로? 

◆ 고상만> 독자투고로. 약간 그런 독자투고 형식으로 매우 중요한 파장을 일으키는 글이 들어간 건데 이분 주장에 의하면 자기가 이 조경한 선생님하고 매우 가깝게 지냈는데 그분에게 이야기를 들은 바에 의하면 5.16 쿠데타가 일어나고 얼마 안 돼서 면목동에 살고 있을 때 한 젊은이가 자신의 집에 찾아와 큰절을 했다. 그리고 동행한 사람이 소개하기를 대통령이십니다라고 하기에 보니까 박정희 대통령이었다. 그러면서 자기를 만주에 있었던 다카키 마사오라고 얘기하니까 이 조경한 선생님께서 아, 예전에 내가 독립운동 할 때 바로 그 조선인 병사들을 독립군으로 많이 빼돌렸던, 공을 세웠던 비밀광복군이 다카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이름이더라. 그래서 놀랍고 반가웠다. 바로 이러면서 이기청이라는 분이 주장하시기를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서 친일, 친일 얘기하는데 실제로 그는 극비리에 독립군을 도왔다면 어떻게 평가할 거냐 하면서 이른바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옹호찬양글을 쓰기 위한 목적으로 이런 독자투고 글을 썼던 겁니다. 그게 이번에 인용하면서 새누리당 대변인이 인용하면서 파장이 된 것이죠. 

◇ 정관용> 독자투고를 쓰신 분은 백강 조경한 선생한테 제가 들었다.

◆ 고상만> 그렇죠. 자기가 들었다고 주장을 하는 거죠.

◇ 정관용> 조경한 선생은 이미 돌아가셨고. 

◆ 고상만> 이 주장을 하시기 11년 전에 돌아가셨죠. 1993년도에 돌아가신 거죠. 그리고 지금 파장이 일어나고 있는 지금은 22년 전에 돌아가셔서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 정관용> 그리고 앞에 육군본부가 낸 창군전사라든지 또 84년에 나온 육사졸업생이라는 책이라든지 이런 것들의 주장의 근거가 한 사람의 거짓말로부터 시작되었다라고 우리 고상만 씨가 지금 주장하시는 거죠? 

◆ 고상만> 네. 

◇ 정관용> 그 내용이 얼마 전에 쓰신 ‘중정이 기록한 장준하’라는 책에도 기록이 돼 있더라고요.

◆ 고상만> 네, 맞습니다. 

◇ 정관용> 그 한 사람이 누구예요? 그리고 언제 어떤 거짓말을 했다는 거예요?

◆ 고상만> 사실은 이 이야기의 모든 시작의 출발은 1967년의 이야기입니다. 1967년도에 이때 바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 두 번째로 대통령에 출마를 했을 때예요.

◇ 정관용> 그렇죠. 

◆ 고상만> 64년도에 대통령이 됐는데 아까 전에 이야기 중에 한 가지 저희가 짚어봐야 할 것이 있는데 오늘 이 방송을 앞두고 사실은 이 조경환 선생님의 후손되는 분과 제가 직접 전화통화를 해서 확인을 했어요. 

◇ 정관용> 뭐라고 하시던가요? 

◆ 고상만>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거예요. 왜 이런 황당무계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얘기하는데 간단하게 정리해서 말씀을 드리면 앞뒤전후가 다 맞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5.16 쿠데타 직후에 찾아와서 인사를 했다고 하는데 당시에는 대통령이 아니라 최고회의 의장이었어요. 63년도에서야 대통령이 됐던 것인데 무슨 대통령이라는 얘기도 말이 안 되고 또 당시 면목동을 찾아왔다고 하는데 당시 조경한 선생님의 댁은 흑석동이라는 점.

◇ 정관용> 동네도 아주 먼데요? 흑석동하고 면목동은?

◆ 고상만> 장준하 선생님이 오히려 면목동에 사셨죠. 하여간 그런 저런 부분들도 다 맞지 않고 근본적으로 또 하나는 당시에 서로 안면이 있는 상황이면 모를까 뜬금없이 왜 찾아와서 큰절을 합니까? 서로 알지도 못하는 사이인데. 그리고 이분의 주장에 의하면 처음 조경한 선생님이 박정희 대통령을 알게 된 때는 1962년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고 난 후에 경회루에서 연회가 있을 때 처음 만났다고 하는 게 바로 이 조경한 선생님이 생전에 남기신 말씀이었다는 얘기입니다.

◇ 정관용> 후손께서 남기신. 

◆ 고상만> 네. 그래서 그런 것들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고 지금 이 모든 얘기의 출발, 근원지는 어디였냐면 광복군으로 있었던 박영만이라는 사람이. 

◇ 정관용> 이분은 광복군 출신인 건 맞아요? 

◆ 고상만> 광복군은 맞습니다. 광복군은 맞는데 이분이 67년도에 박정희 대통령이 두 번째 대통령 출마하니까 당시에 박정희 대통령을 미화해서 한 자리를 얻기 위해서 그래서 이러한 허구의 소설을 하나를 쓴 거예요. 

◇ 정관용> 소설? 

◆ 고상만> 소설을 쓴 겁니다. 

◇ 정관용> 실제 소설책이 나왔어요? 

◆ 고상만> 소설책입니다. 그 제목이 광복군이라는 건데요. 당시에 이것에 대해서 소설로 남의 공적을 대통령으로 출마했던 박정희 대통령이 당시의 최대 약점이 뭐였냐면 친일군인 행적이었던 거죠.

◇ 정관용> 그렇죠. 

◆ 고상만> 그래서 바로 이런 것을 가지고 둔갑시켜서 소설 속의 이야기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비밀광복군으로 둔갑을 시켰는데 이에 대해서 가장 격분했던 분이 누구냐면 장준하 선생님이십니다.

◇ 정관용> 장준하 선생님도 광복군 출신이시죠. 

◆ 고상만> 광복군이시죠. 그래서 누구보다도 누가 광복군인지 정확히 알고 계셨는데 이때 당시에 이게 책으로 나오고 그러고 나서 광복군인 것처럼 미화되니까 장준하 선생님이 1967년도에 당시에 야당 대통령 후보가 누구였냐면 윤보선 씨였습니다. 

◇ 정관용> 맞아요. 

◆ 고상만>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이분이 줄기차게 말씀을 하시는데 ‘중정이 기록한 장준하’ 제 책에도 그 이야기를 분명히 언급을 했는데요. ‘지금 현재 일각에서 박정희 후보가 광복군이라고 하면서 써놓은 책이 있는데 이것은 전부 다 거짓말이다. 내가 광복군이기 때문에 정확히 안다. 그는 당시에 만주에서 일본군 장교로 있었다’라는 이야기를 계속해서 언급하고 이것에 대해서 당시 중앙정보부가 중요상황 보고로 장준하 선생의 발언을 다 일일이 기록했었습니다.

◇ 정관용> 그런데 어쨌든 그 박영만이라는 사람이 67년도에 낸 ‘광복군’이라는 소설책에 앞에 말씀하신 무슨 창군전사나 육사졸업생 등등의 책에 나오는 대목들이 거기에 등장하는 군요.

◆ 고상만> 그것이 이후에 사실인 것처럼 이어지면서 80년 전사와 84년도에 장창국 씨 얘기가 나왔는데 이 대목에서 저희가 또 한 사람의 중요한 증언을 확인할 필요가 있는데 바로 2006년도에, 2004년도에 이기청 씨가 그런 투고를 했잖아요. 

◇ 정관용> 세계일보, 아까 말씀하셨던. 

◆ 고상만> 세계일보에 그런 투고를 냈잖아요. 바로 같은 세계일보에 2년 후 당시에 그 김승곤 광복회장이 중요한 인터뷰를 합니다. 바로 이기청 씨의 얘기하고도 같은 얘기인데요. 뭐였냐면 이겁니다. 당시 박영만,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소설 광복군이라는 글을 통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일행적이 아닌 광복군으로 미화했던 그 글에 대해서 왜 박영만이 그런 글을 썼냐에 대한 그 증언인데 뭐냐 하면 이겁니다. 청와대에서 당시 박영만은 돈을 받을 줄 알고 책 광복군을 썼는데 내용을 훑어본 박정희 대통령은 내가 어디 광복군이냐, 누가 이따위 책을 쓰라고 했냐면서 오히려 화를 냈고 오히려 박영만은 돈 한 푼 못 받고 거창하게 준비한 출판기념회도 치루지 못했다. 이게 당시 광복회장 김승곤 씨가 박영만 씨의 책에 대해서 증언했던 공식인터뷰 기록입니다.

◇ 정관용> 박정희 전 대통령은 그 책을 받아들고 화를 냈다?

◆ 고상만> 오히려 화를 낸 거죠. ‘왜 내가 하지도 않은 행위를 했다고 미화하냐? 오히려 창피하다’ 이렇게 한 것이고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장준하 선생님이 비판 많이 했을 때 박정희 대통령 한마디도 반문을 못 했습니다. 

◇ 정관용> 결국 박영만 씨라는 분은 그래서 돈은 못 받았겠지만 무슨 한 자리는 했나요, 나중에?

◆ 고상만> 아무 것도 못 받았죠. 아무 것도 못 받았고 그리고 장준하 선생님이 이것에 대해서 굉장히 화가 나서 공식적으로 본인이 쓰신 71년도 ‘돌베개’ 책 에필로그에 오히려 박영만 씨에 대해서 비판하고 그분을 지칭해서 ‘독립운동을 했다고 하는 이런 사람들이 이른바 광복군 출신이라고 떠들면서 모자 하나 얻어 쓰고 어떤 행위를 했는지 역사 앞에 밝혀야 된다’ 이런 식으로 굉장히 많이 비판을 했습니다. 

◇ 정관용> 그런 비판받는 분의 소설책 한 권이 이 모든 논란들의 출발점이다?

◆ 고상만> 해프닝의 모든 출발점인 거죠. 

◇ 정관용> 그런데 그런 것을 어떻게 창군전사니 이런 책에서도 어떻게 인용을 합니까, 소설책을?

◆ 고상만> 그게 80년이잖아요. 그때 79년도, 80년도가 우리나라 역사가.

◇ 정관용> 때가 때였다. 

◆ 고상만> 제대로 된 기록을 남길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죠.

◇ 정관용>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가 친일인사 1006명 명단 발표한 적이 있지 않습니까? 

◆ 고상만> 네. 

◇ 정관용> 그리고 이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는 정부기구였잖아요.

◆ 고상만> 네, 맞습니다. 

◇ 정관용> 거기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은 포함되지 않았죠?

◆ 고상만> 네, 맞습니다. 

◇ 정관용> 그건 왜 그렇습니까? 

◆ 고상만> 간단합니다. 이것도 참 내용을 들여다보면 아주 쉬운 얘기인데요. 박정희 대통령 당시에 친일반민족행위자 분류되지 않은 이유는 하나입니다. 당시 친일반민족행위자 분류기준 소자 즉, 우리나라 계급으로 따지면 소위 이상인데요. 당시 그분 중위였죠, 지금 계급으로 따지면. 그래서 당연히 포함돼야 하는데 당시에 이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나 이런 데에서 굉장히 엄격하게 기준을 댔어요. 그냥 기준에 댄다고 해서 무조건 친일파로 분류한 것이 아니었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박정희 대통령의 구체적 행적이나 이런 것들이 사료로 확인돼야지만 넣었던 건데 그런데 그런 것들이 정확히 확인되지 않아서 빠졌던 겁니다. 그때가 바로 2009년도 업무 마무리였는데 이때 사실은 뒤늦게 확인된 문서가 있었어요. 그것이 바로 뭐냐 하면 2009년도 11월에 확인된 민족문제연구소가 뒤늦게 1939년도 3월 31일자 만주신문에 박정희 전 대통령이 혈서로 써서 충성을 맹세했던 만주 군관학교 입교하기 위해서 썼던 일본 천왕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견마지로를 다하겠다고 하는 그게 뒤늦게 확인이 됐는데 만약에 그게 지금이라도 당장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가 재가동한다면, 지금 업무가 종료돼서 끝났거든요. 그게 재가동된다면 지금이라도 들어갈 수 있다, 이게 명확한 진실입니다. 

◇ 정관용> 사료가 1939년 만주신문. 

◆ 고상만> 네, 39년 3월 31일자. 

◇ 정관용> 그게 뒤늦게 발견된 거예요? 

◆ 고상만> 그게 2009년도에 업무가 다 종료된 시점에 뒤늦게 민족문제연구소가 그것을 일본에 있는 마이크로필름에서 찾아내서 입증을 했는데 그때는 이미 업무가 종료된 시기라서 당시에 성대경 위원장이 그것이 조금만 빨리 확인됐다면 다시 논의해 볼 수 있었는데 업무가 종료되는 시점이라서 다루지 못했을 뿐이다라고 하는 게 이 사건의 진실이죠.

◇ 정관용> 만주 군관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 혈서까지 보냈다.

◆ 고상만> 두 번 떨어졌거든요, 나이가 많다고. 그랬더니 본인이 거기다가 혈서로 자기 이름까지 쓰죠. 그래서 자기가 죽음을 각오하고 충성을 다하겠다. 이거에 당시 만주신문이 감동을 하죠. 조선인 청년의 놀라운 충성심 그리고 그 덕분에 만주군인이 된 거죠.

◇ 정관용> 만주신문 거기에 사진도 있습니까? 혈서사진.

◆ 고상만> 네, 올라가 있죠. 

◇ 정관용> 그러면 친필인지 아닌지 이런 건 확인할 수 있겠네요.

◆ 고상만> 그것은 이미 확인된 팩트고 법원에서도 인정이 됐습니다.

◇ 정관용> 어떤 법원에서요? 

◆ 고상만> 그것에 대해서 당시에 박지만 아드님이 사자명예훼손으로 고소를 했는데 당시 민족문제연구소에서 그것을 뒤늦게 찾아서 법원에다가 증거자료로, 그의 친일행적의 증거자료로 제출을 했고 그래서 결국 민족문제연구소가 이겼던. 

◇ 정관용> 참.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혹시 국정교과서 되면 아까 말씀하신 박영만 씨의 책 소설 광복군, 그게 혹시 교과서에 실리는 건 아니겠죠? 

◆ 고상만> 저는 우리나라 국민들이 굉장히 건강한 인식을 갖고 있고 역사철학을 갖고 있다는 걸 확인하는 게 초기에는 좀 역사 국정교과서 문제에 대해서 찬반논란이 팽팽했는데 명확하게 지금 국정교과서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는 걸 확인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러한 국민들의 건강한 인식체계 하에서 중요한 건 이겁니다. 국정이든 검정이든 상관없이 친일행위가 미화돼서는 안 된다. 그런 것에 대해서 국민들이 충분히 동의하고 있다는 점에서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저는 확신합니다. 

◇ 정관용> 새누리당의 이장우 대변인이 바로 이런 언급을 했다는 것, 이게 또 문제의 시작인 거죠. 새로운 문제의. 그동안 있었던 얘기들은 있었다손 치더라도 또 논란은 종식이 됐던 건데 다시 이게 또 끄집어낸 것 아니겠습니까? 

◆ 고상만> 네, 그렇죠. 

◇ 정관용> 그런 의미에서 오늘 다시 한 번 옛날 얘기를 되짚어봤습니다. 인권운동가 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을 지내셨죠. 고상만 씨 함께 만나봤습니다. 고맙습니다.

◆ 고상만>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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