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가 (古鄒加)

1. 차석찬의 역사창고
2. 신화 위키
3. 역사 광복 운동본부
4. 위키 - 부여어족
5. 히스토리아
 


1. 차석찬의 역사창고  http://mtcha.com.ne.kr/korea-term/goguryo/term7-gochuga.htm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보면 고구려의 5부제(五部制)에서 가장 높은 위계(位階)를 대가(大加)라 하여 적통(嫡統)의 대인(大人:부족장)이 이를 세습하였다. 그러나 왕족인 계루부(桂婁部)에서는 각 가(家)의 적통장자(嫡統長子)는 모두 대가의 자격이 있었으므로, 이들을 특히 고추가라고 하였다.

또, 예전에 왕족이던 소노부(消奴部)의 적통대인과 왕실과 혼인관계를 맺었던 절노부(絶奴部)의 대가도 이 칭호를 사용하였다. 고추가는 신라의 거서간(居西干), 백제의 길사(吉師)와 공통되는 말로 귀인·귀족을 뜻하는 말이었다. 따라서 이 칭호를 사용한 계루부·소노부·절노부는 5부족 중에서도 가장 우세하였음을 알 수 있다.

중앙집권에 따른 왕권의 강화로 고추가의 지위는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해갔다. 4세기 이후부터 왕실과 절노부의 혼인관계가 끊어지고 독립된 세력을 가졌던 소노부 등이 약해지면서, 고추가라는 칭호는 실제적인 뜻보다는 귀족의 명예적인 호칭으로 바뀐 것 같다. 그러나 고추가라는 칭호는 고구려 말까지 계속 남아 있었다

<브리태니커백과사전>참고
<두산대백과사전>참고



2. 
신화 위키 : http://ko.mythology.wikia.com/wiki/%EA%B3%A0%EC%B6%94%EA%B0%80  
 

 
...고구려에는 왕이 있고 벼슬로는 상가, 대로, 패자, 고추가, 주부, 우태, 사자, 조의선인이 있으며 신분이 높고 낮음에 따라 각각 등급을 두었다. ... 왕의 종족으로서 대가인 사람은 모두 고추가라고 불렀다. 연노부는 본래 국주였으므로 지금은 비록 왕을 내지는 못하지만 그 적통을 이은 대인은 고추가라는 칭호를 얻었으며, 자체 종묘를 세우고 영성과 사직을 따로 제사를 지낸다. 절노부도 대대로 왕실과 혼인하였으므로 그 대인은 고추라는 칭호를 더했다.

고추대가(古鄒大加)라고도 한다. ...〈한원 翰苑〉에 따르면 빈객(賓客)을 접대하는 일을 맡아 당나라의 홍로경(鴻臚卿)에 비할 수 있다고 했다. (주:아래 글에서 반박) 여러 부족 가운데 세력이 강한 대족장을 고추가라고 부른 것으로 보아 이 칭호를 쓴 계루부·소노부·절노부는 5부족 가운데 비교적 큰 세력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 중앙집권에 따른 왕권의 강화로 고추가의 지위는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해갔다. 4세기 이후부터 왕실과 절노부의 혼인관계가 끊어지고 독립된 세력을 가졌던 소노부 등이 약해지면서, 고추가라는 칭호는 실제적인 뜻보다는 귀족의 명예적인 호칭으로 바뀐 것 같다. 그러나 고추가라는 칭호는 고구려 말까지 계속 남아 있었다.



3. 역사 광복 운동본부 : http://bluecabin.com.ne.kr/history/chosun5_55.htm

전사 ( 前史 ) 에 태조왕을 유류왕 ( 儒留王 ) 의 아들 , 고추가 ( 古鄒加 ) 재사 ( 再思 ) 의 아들 , 대주류왕의 조카라 했으나 , 유류왕은 이미 말한 바 와 같이 연대가 줄어진 동안에 든 제왕이고 , 광개토경호태왕 ( 廣開土 境好太王 ) 의 16 대조이니 , 모본왕 (募本王 ) 에게는 3 대조가 될 것이요 , 태조왕에게는 4 대조가 될 것이다 . 그러니 유류왕을 태조왕의 아버지인 재사의 아버지로 한것은 잘못된 기록이 아니면 속인 기록이다 . 재사는 그 벼슬 이름이 고추가 ( 古鄒加 ) 요 , 고추가는 곧 `고추가'를 이두자로 기록한 것이다 . `고주'는 묵은 뿌리 〔古根〕 란 뜻이요 ( 지금 속어에도 묵은 뿌리를 `고주박'이라 함 ) `가'는 신 ( 神 ) 의 씨란 뜻으로 , 당시 5 부 ( 部 ) 대신의 칭호가 된 것이니 , `고주가'는 당시 종친 대신의 벼슬 이름이다 ( 지금의 속어에도 먼 동족을 `고죽지 먼 등그러기 '라 함 ). 재사가 `고주가'의 벼슬을 가졌으므로 종친 대신임이 분명하고 , 후한서나 삼국지에 , “처음에는 연나 ( 涓那 ) 는 왕 될 권리를 잃었으나 그 적통 ( 嫡統 ) 대인 ( 大人 ) 이 오히려 고추가라 일컬어 종묘 ( 宗廟 ) 를 세움을 얻었다 .”고 하였으나 연나는 서부 ( 西部 ) 의 이름이고 , 계나 ( 桂那 ) 는 중부 ( 中部 ) 의 이름이니 , 고구려의 정치체제에 중부가 주가 되고 4 부가 이에 복속하였으므로 , 어느 임금 때에도 중부를 두어두고 서부인 연나 에서 왕이 나왔을 리가 없으니 , 이는 태조왕이 연나의 우두머리인 고추가 재사의 아들로서 , 왕이 되고 모본왕의 태자가 계나를 차지하였던 `신한'의 아들로서 물러나 연나의 고추가가 되었음을 가리킨 것일 것이다 . 본기에는 태조왕 이후에 다시 대주류왕의 후예로서 들어가 왕위를 이은 이가 없고 , 광개토경호태왕의 비에 대주류왕이 그 직조 ( 直祖 ) 로 씌어 있으니 , 태조왕의 아버지인 재사가 대주류왕의 조카가 아니라 3 세손이 될 것이다 .     

이 밖에 `일치 '라는 것은 도부 ( 圖簿 ) 와 사령 ( 辭令 ) 을 맡아보는데 , 이두자로 `을지 ( 乙支 ) ' 혹은`우태 ( 優台 ) '라 쓰고 , 한문으로 주부 ( 主簿 ) 라 쓰며 , `살치 '란 것은 대왕의 시종이니 이두자로 사자 ( 使者 ) 라 쓰고 , 그 밖의 중외대부 ( 中畏大夫 ) · 과절 ( 過節 ) · 불과절 ( 不過節) 등 은 그 음과 뜻과 맡은 직무를 알 수 없다 . 삼국지 , 후위서 ( 逅魏書 ), 양서 ( 梁書 ), 후주서 ( 後周書 ), 당서 ( 唐書 ) 등에 12 급 ( 級 ) 의 벼슬 이름을 실었으나 , 조선어를 모르는 지나의 역사가들이 그 전해들은 것을 번역한 것이므로 , 삼국지에 주부 이외에 또 우태를 실은 것은 주부가 곧 우태의 의역임을 모른 때문이고 , 신당서에 누사 ( 騙奢 ) 이외에 또 누살 ( 누薩 ) 을 실은 것은 누사가 곧 누살의 와전임 을 모른 때문이 다 . 통전( 通典 ) 에 고추가 ( 古鄒加 ) 를 빈객 ( 賓客 ) 맡은 자라고 한 것은 다시 고구려의 종친대관 ( 宗親大官 ) 인 고추가가 외교관 된 것을 보고 마침내 고추가를 외교관 벼슬로 잘못 안 것이요 , 구당서 ( 舊唐書 ) 에 , “조의두 대형 ( 조衣頭大兄 ) 이 3 년만큼씩 바뀐다 .”라고 하였음은 `선배'의 수석 을 대신의 수석으로 잘못 안 것이다 . 



4. 위키 - 
부여어족 
http://ko.wikipedia.org/wiki/%EB%B6%80%EC%97%AC%EC%96%B4%EC%A1%B1

부여어족의 존재를 뒷받침해주는 근거로 표면적으로 부여의 관직 마가(馬加)·우가(牛加)·저가(猪加)·구가(狗加)에서 부여 귀족의 존칭 가(加)를 볼 수 있는데 고구려 고추가(古鄒加)의 관직과 그 쓰임이 같다. 




5. 히스토리아  http://historia.tistory.com/322

사료해석 : 고구려는 초기 5부로 이루어져 있었고, 처음에는 연노부가 계승하였지만, 후기에는 계루부가 왕권을 계승하였습니다. 단 중층적인 구조를 가진 연맹왕국이다 보니, 연노부는 자체의 종묘사직을 가지고 고추가라는 칭호를 얻었습니다. 아직 왕권이 강하지 못하여 독자적인 세력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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