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mtcha.com.ne.kr/korea-term/goguryo/term46-peja.htm

패자 (沛者)

1. 차석찬의 역사창고     2. 위키     3. 남사 열전 원문    4. 블레이드    5. 역사광복운동


1. 패자 (沛者) - 차석찬
 
《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 동이전(東夷傳) 고구려조에 보이는 관등으로 10관등 중 제3관등이다. 제2관등인 대로(對盧)가 있으면 패자를 두지 않고 패자가 있으면 대로를 두지 않는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두 관직의 지위나 일의 성격이 비슷했던 것으로 추정하기도 하나 정확한 근거는 없다.

대로(對盧)는 부족장적인 성격을 지니고, 패자는 행정관료적인 성격을 지녔으며, 이들은 좌·우상(左右相)으로 왕을 보좌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으나 구체적인 기록이 없어 추측에 그치고 있다. 3세기 후반에 소멸되었다.

<두산대백과사전>참고


출처 : http://ko.wikipedia.org/wiki/%ED%8C%A8%EC%9E%90

2. 패자 - 위키

패자(沛者)는 고구려 전기의 대관(大官)이다. 대로(對盧)와 비슷하게 국정(國政)을 총리하던 벼슬로 대로와 패자 가운데 하나만을 두었으나 대로보다 약간 급이 낮았다.



출처 : http://bluecabin.com.ne.kr/china25/namsa.htm  

3. 南史 列傳 (남사 열전) - 역사광복운동

其置官, 有對盧則不置沛者, 有沛者則不置對盧.



출처 : http://dk7117.egloos.com/m/2091110


4. 좌보左輔와 우보右輔의 존재가 미발달된 관료조직의 증거? - 블레이드

발표자는 패자沛者라는 관명을 나부의 최고위 관등이며 독자적인 군사권까지 가지고 있어 중앙에 대해 독립적 성격을 띤 나부의 수장급 혹은 소국의 수장 등 독자적 세력 기반을 가진 존재로 파악했다. 우태 역시 독자적 기반을 갖고 있던 세력을 재편하며 수여한 관등이라는 기존 학설을 수용했다. 단 우태가 패자 보다는 낮은 관등이라는 것이다. 이 차이를 두고 발표자는 ‘본래 패자에 비해 작은 규모의 나부세력들에게 주어졌던 우태는 점차 가신 조직을 두지 못 하는 등 독자적 기반을 상실하고 왕권을 중심한 관료제적 관등의 일원으로 정착해 갔다’고 파악했다.

그런데 고구려는 2세기 중반부터 국상제로 전환해 나아갔다. 그런데 좌우보제의 시기와 국상제의 시기에서 보이는 작은 차이는 좌우보는 대부분 패자급 이상의 관등자가 임명되는 것에 비해 국상은 우태급도 보이고 있다. 이는 국상이 좌우보에 비해 왕권과 보다 높은 연관성을 가졌기 때문이란다.

이게 무슨 뜻일까? 쉽게 말하자면 독자성이 보다 강하고, 관등도 높은 패자를 좌우보를 임명했던 것은 고구려의 왕권이 약했기 때문이며 상대적으로 독자성도 약하고 관등도 낮은 우태를 국상에 임명한 것이 왕권의 강화를 의미한다는 얘기다. 그러니 좌우보는 국상에 비해 고구려의 집권화가 미숙한 단계에서 나타나는 존재라는 뜻이다. 즉 패자 관등을 가진 좌우보가 임명된 2세기 초만 하더라도 고구려의 왕권을 나부를 완전히 장악할만한 힘이 없었고, 당연히 완성된 중앙집권적 고대국가체제라고 보기도 어렵다는 말이 되겠다.

그리고 그러한 사례를 유목국가 흉노가 군주 휘하의 영역이나 지배층을 좌우로 구분해 편제한 것에서 찾았고, 백제까지도 이런 전통을 이었다고 보았다. 그러니까 흉노, 고구려, 백제가 영역이나 지배층을 좌우로 구분해 편제하는 전통이 바로 미발달된 체제의 증거라는 뜻이 된다.

그런데 이런 논지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뭔가 이상하다. 우선 발표자 자신이 제시한 표에서 태조왕 때 달가나 설유 같은 패자 관등 소지자가 왕명을 받고 정벌에 나섰다고 써놓았다. 앞뒤가 맞는다고 생각하나? 패자가 독자적 군사권을 가지고 있던 존재라면 왕이 정벌을 ‘명령’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부탁이나 요청을 해야지.
  


 출처 : http://bluecabin.com.ne.kr/history/chosun5_55.htm 

제 5 편 고구려(高句麗) 전성시대
제 2 장 太祖·次大 두 대왕의 文治  
3. 太祖王 · 次大王 때의 제도 - 역사광복운동

`신 · 말 · 불' 삼한 ( 三韓 ) 의 제도를 모방하여 정부에 재상 세 사람을 두었으니 , 가로되 `신가' · `팔치 ' · `발치 '다 . `신가'는 태대신 ( 太大臣 ) 이란 뜻이니 , 이두자로 `상가 ( 相加 ) '라 쓰고 , `신가'의 별명이 `마리'로 머리〔頭〕란 뜻이니 , 이두자로 대로 ( 對盧 ) ( 대는 옛 뜻으로 마주 ) 라 쓰고 , `신가'나 `마리 '를 한문으로는 국상 ( 國相 ) 혹은 대보 ( 大輔 ) 라 썼다 . 팔치는 `팔꿈치 ( 肱 ) '란 뜻이니 , 이두자로 `평자 ( 評者 ) '라 쓰는데 , 한문으로는 `좌보 ( 左輔 ) · 우보 ( 右輔 ) '라 썼다 . 위의 세 가지 를 만일 한문으로 직역하자면 `두신 ( 頭臣) ' · `굉신 ( 肱臣 ) ' · `고신 ( 股臣 ) '이라 할 것이지마는 , 글자가 아름답게 보이게 하기 위하여 `대보·좌보·우보'라 했다 . 삼한고기 ( 三韓古記 ), 해동고기 ( 海東古記 ), 고구려고기 ( 高句麗古記 ) 등의 책에 혹 앞의 것을 좋아 `대로 ( 對盧 ) · 패자 ( 沛者 ) · 평자 ( 評者 ) '로 기록하고 , 혹은 뒤의 것을 쫓아 `대보 · 좌보 · 우보'라 하였는데 , 김부식 ( 金富軾 ) 이 삼국사기를 지을 때에 , 이두와 한역 ( 漢譯 ) 의 이동 ( 異同 ) 을 구별하지 못하고 철없는 붓으로 마구 빼고 마구 넣고 마구 섞고 마구 갈라놓았으므로 , “좌우보 ( 左右輔 ) 를 고쳐 국상 ( 國相 ) 을 만들었다 . ” “패자 ( 沛者 ) 아무로 좌보를 삼 았다 .” 하는 따위의 웃음거리가 그 사기 가운데 가끔 있다 . 

...

고구려 본기에 , “태조왕 80년에 좌보패자 ( 左輔沛者 ) 목도루 ( 穆度婁 ) 가 , 수성이 딴 뜻이 있음을 알고 , 병을 일컫고 벼슬하지 않았다 ( 左輔沛者 知遂成有異志 稱病不仕). ”고 기록되었고 , 차대왕 2 년에 “좌보 목도루가 병을 일컫고 늙어서 물러났다 ( 左輔穆度婁稱病退老 ). ”고 기록되었으니 , 이에 이미 15 년 전에 병을 일컫고 벼슬하지 아니한 목도루가 어찌 15 년 후에 차대왕 2 년에 또 병을 일컫고 늙어서 물러났다고 할 수 있으랴 ?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지을 때에 여러 가지 고기 ( 古記 ) 에 대하여 아무런 선택 없이 마구 수록하였음이 이같이 심하였다 . 하물며 좌보 ( 左輔 ) 나 패자 ( 沛者 ) 가 다 `팔치'의 번역인데 , 좌보패자라는 겹말의 명사를 글에 올렸으니 , 어찌 가소로운 일이 아니랴 ? 

...

본기에는 , “명림답부가 국상 ( 國相 )으로 패자 ( 沛者 ) 를 겸하였다 . ”고 하였고 , 또 “좌우보 ( 左右輔 ) 를 고쳐 국상으로 한 것도 이때에 비롯된 것이다 .” 하였는데 , 이는 국상이 곧 `신가'인지를 모르고 , 패자가 `팔치' 곧 좌보인지를 모르고서 함부로내린 주해이다 .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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