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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잡아야 할 고구려5부




http://www.zinbun.kyoto-u.ac.jp/~takeda/edo_min/edo_bunka/syuitu/edono_kagaku_syuitu_shibu.html

魏略
其國大有五族 有消奴部順准奴部樓桂部 微弱桂樓部代之 五部皆貴人之族也 一人内部即後漢書桂樓部一名黃部一名黃部 二曰北部即絶奴部即絶奴部即名後部一名黒部 三曰東即順奴部一名在部一名上部一名青部 四曰南部即奴部一名前一名赤部 五曰西部即消奴部也一名右部 其北部如燕内部 姓高即王族也 高麗稱無姓者皆内部也 又内部雖爲王宗列在東部之下 其國從事以東爲首故東部居上 同上

(머털도사가 퍼 온 翰苑(한원))
魏略曰
其國大有五族 有消奴部順准奴部樓桂樓部 徵弱桂樓部代之 五部皆貴人之族也 一人內部卽後漢書桂樓部一名黃部一名黃部 二曰北部即絕奴部即絶奴部即名後部一名黑部 三曰東即順奴部一名在部一名上部一名靑部 四曰南部即奴部一名前一名赤部 五曰西部即消奴部也一名右部 其北部如燕內部 姓高即王族也 高麗稱無姓者皆內部也 又內部雖爲王宗列在東部之下 其國從事以東爲首故東部居上

1, 內部= 桂樓部= 桂婁部(계루부)= 黃部
2, 北部= 絕奴部= 絶奴部(절노부)= 准奴部(절노부)= 奴部(노부)= 後部= 黑部 
3, 東部= 順奴部(순노부)= 在部= 上部= 青部
4, 南部= 奴部(관노부)= 貫那部(관나부)= 前部= 赤部 
5, 西部= 消奴部(소노부)= 涓奴部(연노부)= 右部


1, 內部= 桂樓部= 桂婁部(계루부)= 黃部
4, 南部= 奴部(관노부)= 貫那部(관나부)= 前部= 赤部 

*桂婁(계루)는 桓那國(환나국) 女主(여주)의 이름입니다.
*桂林(계림)은 桂婁(계루)의 오빠이름입니다.

桂婁部(계루부)= 桓那部(환나부)= 奴部(관노부)

그래서, 계루부를 환나부(관노부)로 봐도 괜찮다는거죠.

*懽(환)는 (환)의 통자()라고 사전에 나옵니다.
桓(환) vs (관). 곧 서로 통하는 글자라는거죠.

桓那部(환나부)= 奴部(관노부)

이렇게 성립이 됩니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沸流部(비류부)'은 5부중에 어느 부를 말하는 걸까요?
비류국이 졸본국 북쪽에 위치하였었고, 비류가 북쪽을 다스렸으니...
沸流部(비류부)는 곧, 絶奴部(절노부)가 되는 것입니다. 바로 北部(북부)를 말합니다.

*又内部雖爲王宗列在東部之下
= 또한 内部(내부)는 비록 王宗列(왕종렬)이 되지만, 東部(동부)의 아래에 있었다.

東部(동부)= 順奴部(순노부)는 内部(내부)= 桂婁部(계루부)보다 우위에 있었다고 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順奴(순노)는 졸본과 합쳐져서, 고구려가 성립했기에, 고구려 건국의 주체세력이므로, 
나중에 복속된 桂婁(계루)사람들보다 지위가 높은게 당연한 이치입니다.

孺留紀(유류기) 3년, BC17년.
三年 甲辰 正月 分國中爲五部 以順奴艴奴賜沸流 治之 都彌鄒忽(密山) 以灌奴桂婁賜溫祚 治之 都牛壤 涓奴上治之 兼統黃龍卑離荇人勾茶諸國 事五部置沛者于台使者評者等職 
3년 갑진(BC17년) 1월, 國中(국중)을 나누어 五部(5부)로 삼았다. 順奴(순노)와 艴奴(발노)를 沸流(비류)에게 주어 다스리게 하였고, 彌鄒忽(미추홀, 密山)에 도읍하였다. 灌奴(관노)와 桂婁(계루)를 溫祚(온조)에게 주어 다스리게 하였고, 牛壤(우양)에 도읍하였다. 涓奴(연노)는 상이 다스렸다. 黃龍(황룡국), 卑離(비리국), 荇人(행인국), 勾茶(구다국)의 여러 나라를 겸하여 총괄하였고, 五部(5부)를 다스리기 위해 沛者(패자), 于台(우태), 使者(사자), 評者(평자)등의 직책을 두었다.

*順奴(순노)와 艴奴(발노)는 沸流(비류)가 다스렸다.  도읍은 彌鄒忽(미추홀, 密山)이다. - 동북 지방
*灌奴(관노)와 桂婁(계루)는 溫祚(온조)가 다스렸다.  도읍은 牛壤(우양)이다. - 남부
*涓奴(연노)는 유리왕이 다스렸다. - 서부

*沸流(비류)는 상대적으로 척박한 동북쪽 지방을 다스렸으므로, 불리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溫祚(온조)는 비옥한 남쪽 지방을 다스리니까, 남하할 수 있었죠.

유리왕이 비류와 온조에게 땅을 떼어주는 시책으로 성립이 된 것이 고구려 5부인데..
유리왕은 실수를 저질렀죠. 
소서노 세력의 눈치를 보느라.. 너무 많은 땅을 비류와 온조에게 떼어준 것이.. 유리왕의 실수였죠.
유리왕은 천도를 하고...소서노 죽음 이후에.. 백제가 건국되죠.
BC5년, BC6년 分漢城民하면서.. 백제가 건국됩니다. 
온조가 남부지방의 땅을 점유하고 있었으므로.. 백제를 건국할 수 있는 기반이 성립된 것입니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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