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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 평화의 일꾼’ 故백남기 농민 쓰러진 거리에서 치러진 제사
장례취재팀 = 윤정헌, 이승훈, 지형원, 김지현, 양아라 기자  발행 2016-11-05 08:51:37 수정 2016-11-05 14:33:36

5일 오전 서울 종로1가 거리에서 (故) 백남기 농민의 노제를 진행하고 있다. 고인의 유족과 백남기 투쟁본부는 이날 노제를 마친 뒤 오후 2시 광화문광장에서 시민들과 함께 영결식을 개최한다.
5일 오전 서울 종로1가 거리에서 (故) 백남기 농민의 노제를 진행하고 있다. 고인의 유족과 백남기 투쟁본부는 이날 노제를 마친 뒤 오후 2시 광화문광장에서 시민들과 함께 영결식을 개최한다.ⓒ김철수 기자

4신, 오후 1시 00분
‘생명과 평화의 일꾼’ 故백남기 농민 쓰러진 거리에서 치러진 제사

고 백남기 농민이 경찰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서울 종로구 르메이르 빌딩 앞 거리에서 5일 오전 11시 30분 노제가 진행됐다. 고인의 죽음을 추모하며 고인이 지켜왔던 ‘생명과 평화’의 정신을 이어받자는 취지다.

참가자들은 백남기 농민의 죽음을 추모하는 묵념 후 다함께 ‘님을 향한 행진곡’을 불렀다.

소리꾼 정유승의 곡으로 노제가 시작됐다. 소리꾼은 유가족과 시민 앞에서 “하늘과 땅을 섬겼던 한 농부는 이렇게 떠납니다”라는 말과 함께 한쪽 손에 든 종을 울리며 목 놓아 고인의 추모곡을 불렀다.

유족들은 입을 꾹 다문 채 서로를 바라보며 고인의 죽음을 추모했다.

생존의 땅 푸른 카펫 위에는 죽음을 상징하는 국화와 생명을 상징하는 붉은 장미꽃이 놓여졌다. 그 위로 무용가 이삼헌씨가 백남기 농민이 경찰 살인 물대포에 맞고 쓰러진 그날을 몸짓으로 재현했다.

푸른 카펫 위로 물대포에 맞는 듯이 좌우로 몸이 흔들렸고, 양손에 국화꽃을 가득 쥔 채 바닥에 쓰러지거나 엎드리며 그 날의 고통스러웠던 백씨의 모습을 춤으로 표현했다.

이에 백씨의 장녀 도라지씨는 차마 춤을 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고, 차녀 민주화씨는 두손을 얼굴로 가리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냈다.

무용가는 투혼을 상징하듯 다시 일어나 붉은 장미를 두 손에 쥐고 꽃상여로 다가가 그 위에 올려두었다.

5일 오전 서울 종로1가 거리에서 (故) 백남기 농민의 노제가 열리고 있다. 고인의 유족과 백남기 투쟁본부는 이날 노제를 마친 뒤 오후 2시 광화문광장에서 시민들과 함께 영결식을 개최한다
5일 오전 서울 종로1가 거리에서 (故) 백남기 농민의 노제가 열리고 있다. 고인의 유족과 백남기 투쟁본부는 이날 노제를 마친 뒤 오후 2시 광화문광장에서 시민들과 함께 영결식을 개최한다ⓒ김철수 기자

박석운 상임 백남기 장례위원장은 조사를 통해 “선배님께서는 박정희 유신독재와 전두환 일당의 군사 쿠데타 피의 5.16을 온몸으로 살아내신 민주화 운동가다. 또한 신자유주의 정부의 농촌포기 정책에 맞서 싸운 농민운동가이며, 우리밀과 우리 농업을 살리기 위해 평생을 바치신 생명과 평화의 일꾼”이라며 고인의 생전 업적을 기렸다.

또 “선배님의 고귀한 삶 바로 그 자체가 저희를 일깨워서 ‘우리가 백남기다’, ‘책임자를 반드시 벌하자’며 저희를 일깨워줬다”며 “317일 간의 길고도 끈질기게 진행됐던 농성을 끝까지 지킬 수 있게 해주셨다”고 말했다.

이어 “선배님의 고귀한 삶이 굳은 신념과 힘찬 투쟁이 저희 뿐 아니라 모든 국민을 또 다른 백남기로 일으켜 세워 지금의 위대한 항쟁의 길을 열어주신 것”이라면서 “살아있는 우리들이 선배님께서 물려주신 유산을 계승하여 살인정권을 몰아내고 책임자들의 처벌하고 이 땅의 민주주의와 정의를 회복하겠다”고 다짐했다.

전명선 4.16 가족협의회 위원장도 “우리 아이들에 이어 또다시 국가폭력 희생자가 되신 백남기 어르신께 마지막 인사를 드리기 위해 모였다”며 “우리는 세월호 참사 뿐 아니라 국가폭력의 주범들을 처벌하는 그날까지 함께 싸우겠다”고 밝혔다.

또한 “국가는 국민을 지키고 보호하라고 부여 받은 힘을 악용하여 한평생을 선하게 이 땅과 이웃을 위해 살아오신 분을 살해한 것”이라며 “더 이상 나라의 주인은 대통령과 그의 친구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 국민임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하늘에서 우리 아이들을 만나시면 꼭 안아주시고, 어르신의 가족들의 곁에는 우리가 있겠다”라면서 “우리 남겨진 이들이 당신들을 희생시킨 폭력에 맞서겠다. 민주주의와 농민의 생존권, 국민 모두가 안전하게 행복하게 살 권리를 우리가 지키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5일 오전 서울 종로1가 거리에서 (故) 백남기 농민의 노제를 진행하고 있다. 고인의 유족과 백남기 투쟁본부는 이날 노제를 마친 뒤 오후 2시 광화문광장에서 시민들과 함께 영결식을 개최한다
5일 오전 서울 종로1가 거리에서 (故) 백남기 농민의 노제를 진행하고 있다. 고인의 유족과 백남기 투쟁본부는 이날 노제를 마친 뒤 오후 2시 광화문광장에서 시민들과 함께 영결식을 개최한다ⓒ김철수 기자

5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고(故) 백남기 농민의 장례미사를 마친 뒤 운구행렬이 종로 1가 백남기 농민이 쓰러진 곳에서 열리는 노제 장소로 이동하고 있다. 고인의 유족과 백남기 투쟁본부는 이날 장례미사를 마친 뒤 오전 11시 30분 쓰러지신 곳에서 노제와 오후 2시 광화문광장에서 시민들과 함께 영결식을 개최한다
5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고(故) 백남기 농민의 장례미사를 마친 뒤 운구행렬이 종로 1가 백남기 농민이 쓰러진 곳에서 열리는 노제 장소로 이동하고 있다. 고인의 유족과 백남기 투쟁본부는 이날 장례미사를 마친 뒤 오전 11시 30분 쓰러지신 곳에서 노제와 오후 2시 광화문광장에서 시민들과 함께 영결식을 개최한다ⓒ김철수 기자

3신, 오전 11시 50분
‘생명평화일꾼 백남기’와 함께하는 1천여 운구행렬

5일 오전 10시30분께부터 고 백남기 농민 노제를 위한 운구행진이 시작됐다. 600여명으로 시작한 운구행렬은 종로구청 사거리에 다다르자 1천여명으로 불었다. 운구행렬이 이어지는 종로 거리에서는 수많은 시민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운구행렬을 지켜봤다.

이날 장례행렬은 명동성당을 출발해 354일 전 백남기 농민이 쓰러졌던 종로구청 4거리를 향했다.

운구행진은 고 백남기 농민이 환하게 웃고 있는 영정을 실은 차량과 운구리무진이 선두에 섰다. 그 뒤를 붉은 바탕에 ‘생명평화일꾼백남기’라고 쓰인 명정이, 농민 20여명이 짊어진 꽃상여가 따랐다.

꽃상여 뒤로 100여명의 공동상주단과 유가족, 장례위원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장녀 백도라지씨와 차녀 백민주화씨 등 유가족과 정현찬 가톨릭농민회 회장, 김영호 전농 회장,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대표, 최종진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 윤소하 정의당 의원 등 공동상주단이 함께했다.

5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고(故) 백남기 농민의 장례미사를 마친 뒤 운구행렬이 종로 1가 백남기 농민이 쓰러진 곳에서 열리는 노제 장소로 이동하고 있다. 고인의 유족과 백남기 투쟁본부는 이날 장례미사를 마친 뒤 오전 11시 30분 쓰러지신 곳에서 노제와 오후 2시 광화문광장에서 시민들과 함께 영결식을 개최한다
5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고(故) 백남기 농민의 장례미사를 마친 뒤 운구행렬이 종로 1가 백남기 농민이 쓰러진 곳에서 열리는 노제 장소로 이동하고 있다. 고인의 유족과 백남기 투쟁본부는 이날 장례미사를 마친 뒤 오전 11시 30분 쓰러지신 곳에서 노제와 오후 2시 광화문광장에서 시민들과 함께 영결식을 개최한다ⓒ김철수 기자

故 백남기 농민의 손자 모넌 지오군(3) 또한 어머니 백민주화씨의 손을 잡고 행렬을 따랐다. 지오군의 한쪽 손에는 오레오 과자를 꼭 쥐고 있었다. 지오군은 1시간이 넘는 행진에 지쳐서 백민주화씨의 등에 업히기도 다시 걷기도 하며 끝까지 행렬과 함께했다.

장례위원 바로 뒤로는 고 백남기 농민의 정신이 부활하기를 기원하는 ‘부활도’와 풍물패의 소리가 종로 거리를 가득 채웠다.

행진의 끝에는 ‘국가폭력 끝장내자’, ‘살인정권 물러나라’라고 쓰인 80여개의 만장과 시민들의 행렬인 장례행진 본대오가 이어졌다. 본대오에는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표창원 의원, 로만칼라를 한 신부와 수녀 그리고 시민들이 뒤따랐다. 명동성당 출발 시 300여명이었던 본대오는 종로거리에서 지켜보던 시민들의 합류로 700여명으로 불었다.

장례는 종로구청 4거리 르메이에르 빌딩 앞에서 노제를 지낸 뒤 다시 광화문 광장으로 이동, 영결식을 끝으로 마무리된다.

고(故) 백남기 농민의 장례미사가 5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봉행되고 있다고인의 유족과 백남기 투쟁본부는 이날 오전 발인과 장례미사를 마친 뒤 오전 11시 30분 쓰러지신곳에서 노제와 오후 2시 광화문광장에서 시민들과 함께 영결식을 개최한다
고(故) 백남기 농민의 장례미사가 5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봉행되고 있다고인의 유족과 백남기 투쟁본부는 이날 오전 발인과 장례미사를 마친 뒤 오전 11시 30분 쓰러지신곳에서 노제와 오후 2시 광화문광장에서 시민들과 함께 영결식을 개최한다ⓒ김철수 기자

2신, 오전 10시 30분
故백남기 농민 장례 미사 거행, 엄숙한 분위기 속 죽음 애도

5일 오전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故백남기 농민(세례명 임마누엘)의 장례미사가 진행됐다. 미사에는 사제·수도자·평신도·시민, 정치계 인사 등 800여명이 참석해 엄숙한 분위기 속에 백 농민의 죽음을 애도했다.

오전 9시께 시작된 미사에는 고인의 관이 성당 안으로 모셔졌고 영정사진을 든 큰 아들 백두산 씨와 아내 박경숙 씨와 딸 백도라지·백민주화 씨가 제대 앞으로 고인과 함께 이동했다.

염수정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추기경은 미사를 시작하며 “백남기 형제가 하느님 품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길 기도한다”며 “특히 사랑하는 남편과 아버지를 잃은 형제님의 유족에게 하느님의 위로가 함께하기를 기원한다”고 기도했다.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故 백남기 농민의 발인식이 엄수되고 있다. 고인의 유족과 백남기 투쟁본부는 이날 오전 발인과 장례미사를 마친 뒤 오전 11시 30분 쓰러지신곳에서 노제와 오후 2시 광화문광장에서 시민들과 함께 영결식을 개최한다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故 백남기 농민의 발인식이 엄수되고 있다. 고인의 유족과 백남기 투쟁본부는 이날 오전 발인과 장례미사를 마친 뒤 오전 11시 30분 쓰러지신곳에서 노제와 오후 2시 광화문광장에서 시민들과 함께 영결식을 개최한다ⓒ김철수 기자

강론을 맡은 김희중 대주교는 “우리나라의 보다 성숙한 민주화를 위하고 우리 농촌을 살리는 생명 산업 주역인 농민이 대접받을 수 있도록 함께 힘을 모을 때 백남기 형제의 육체는 우리를 떠나지만 그분의 정신은 우리 가운데 살아 있을 것”이라며 “백 농민의 인생이 헛되지 않도록 정부가 적극적 나서기를 바라고 기다린다”고 말했다.

고인의 큰 딸 백도라지씨는 “참석해주신 시민들께 감사하고 아버지 가시는 길에 함께 해주셔서 감사하다”며 감사를 표했다.

장례미사에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심상정 정의당 대표 등 정계 인사들도 참여했다. 문재인 전 대표는 미사가 시작되기 전 “백남기 선생님과 유족분들, 그리고 농민들께 그저 죄송스러운 심정이다”며 애도의 마음을 전했다.

고 백남기 농민의 장례 미사에 참석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와 이종걸 의원.
고 백남기 농민의 장례 미사에 참석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와 이종걸 의원.ⓒ김철수 기자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故 백남기 농민의 발인식이 엄수되고 있다. 고인의 유족과 백남기 투쟁본부는 이날 오전 발인과 장례미사를 마친 뒤 오전 11시 30분 쓰러지신곳에서 노제와 오후 2시 광화문광장에서 시민들과 함께 영결식을 개최한다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故 백남기 농민의 발인식이 엄수되고 있다. 고인의 유족과 백남기 투쟁본부는 이날 오전 발인과 장례미사를 마친 뒤 오전 11시 30분 쓰러지신곳에서 노제와 오후 2시 광화문광장에서 시민들과 함께 영결식을 개최한다ⓒ김철수 기자

1신, 오전 08시30분
“영면을 기원합니다” 故백남기 농민 발인

작년 민중총궐기 대회 당시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사망한 고 백남기 농민의 발인식이 5일 오전 8시 서울 종로구 서울학교 병원 장례식장에서 진행됐다.

이날 발인식에는 유가족과 백남기 투쟁본부가 함께 자리했다. 안치실에는 신부들이 참석한 가운데 약 5분간의 발인 미사가 이뤄졌다.

고 백남기 농민 발인식 현장.
고 백남기 농민 발인식 현장.ⓒ뉴시스

고인의 시신이 안치실 밖으로 나오자 유가족들은 서로의 손을 꽉 잡은 채 고인을 따라갔다.

고인의 아들 두산씨가 앞에서 고인의 영정을 들고 부인과 장녀 도라지씨, 차녀 민주화씨와 손자, 신부들과 투쟁본부가 뒤를 이어갔다.

이날 하늘이 흐린 가운데 고인의 발인에 참석한 사람들의 표정은 침통했다.

8시 5분께 고인이 운구차량에 실리자 가족들은 눈물을 참으며 서로를 위로했다.

운구차량은 8시 14분께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떠나 명동성당으로 향했다.

백남기 농민은 지난해 11월 14일 민중총궐기 당시 경찰의 물대포에 맞고 의식을 잃은 지 317일 만인 지난 9월 25일 끝내 숨을 거뒀다. 이후 계속된 경찰의 부검시도로 인해 장례가 늦춰지다 41일 만에 발인이 이뤄졌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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