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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싸우는 박지원, 누굴 위해 싸우나
[분석] 박지원 선거운동 첫날 지역주의 조장 발언, 호남 입지 다져 대선 이후에도 캐스팅보트 쥐나
장슬기 기자 wit@mediatoday.co.kr 2017년 04월 19일 수요일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는 19대 대선 공식선거운동 첫날인 지난 17일 전북 전주 유세에서 “문재인은 대북송금 특검을 해서 우리 김대중 대통령을 완전히 골로 보냈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북송금 특검 책임론’이라는 지역주의를 조장하는 발언을 했다. ‘골로 보냈다’는 자극적인 표현까지 이용했다. 민주당의 호남홀대론을 극대화시킨 발언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문재인 캠프는 19일 “참여정부는 정무직 220명 중 62명, 정부 산하 기관장과 감사 276명 중 78명이 호남 출신으로 각각 30%에 육박했고 총리 2명과 장관 20명이 호남 출신이었다”며 “‘호남 홀대론’이 명백한 허위사실임은 참여정부 때 장관을 지낸 국민의당 정동영-천정배 선대위원장, 장병완 총괄선대본부장 등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평생 지역주의 선거구도의 피해자로 힘겹게 대선을 치른 김대중의 2인자로서 부적절한 발언이고, 한국 정치의 낡은 질서를 끌어오는 발언이다. 민생과 무관한 공방이 오가고 있다. 촛불로 만든 이번 5월9일 대선이 권력자들의 사익을 위한 전장으로 변질되고 있다. 

▲ 19대 대통령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17일 오후 전주시 전북대 앞에서 열린 전북 국민 승리 유세 및 전북 발대식에 참석한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 박지원 대표 등이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 19대 대통령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17일 오후 전주시 전북대 앞에서 열린 전북 국민 승리 유세 및 전북 발대식에 참석한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 박지원 대표 등이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해당 발언과 관련해 박 대표는 19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와 인터뷰에서도 “대북송금 특검이 잘못됐다는 것은 인정하면서 당시 대북송금 특검을 당에서나 국무회의에서도 다 반대하고 오직 노무현, 문재인 그리고 장관 한 분이 찬성했다”며 “모든 분들이 당에 가서 얘기를 했지만 문재인 민정수석이 당시에 침묵하고 땅만 쳐다봤다”고 말했다.

이어 “그렇기 때문에 사실 김대중 대통령은 서거 때까지 이 대북송금 특검과 소위 삼성파일, X파일 조사에 대해서는 못내 아쉬워하고 많은 불만을 가지고 계셨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밝힌다”고 덧붙였다. 박 대표는 이 같은 발언으로 무엇을 얻고자 하는 것일까?  

캐스팅보트는 국민의당에게

지난해 1월1일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소속 의원·당직자들과 민주당사에서 열린 단배식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는 이종걸 원내대표 등 당 관계자 150여명이 참석했지만 당시 탈당설이 돌던 김한길 전 공동대표와 박지원 전 원내대표 등은 참석하지 않았다. 이 자리는 당의 단합과 4·13 총선 승리를 다짐하는 자리였다.

총선을 세 달 앞두고 문재인 대표의 고민은 당내 통합이었다. 호남에서 안정적인 지지를 받아 총선에서 이기는 게 다음해(2017년) 있을 대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는 길이었다. DJ(김대중)계의 집단탈당이 예고된 가운데 새해 첫 날 문재인은 이희호 여사를 방문했지만 다수 언론보도를 보면 분위기는 썩 좋지 않았다.

민주당 내부탈당 지축을 흔든 건 박지원이었다. 그는 하루 뒤인 2일 “호남정치 복원을 위해 이원집정제나 내각제 개헌을 통해 독일처럼 연정으로 각 지역과 계층이 참여할 수 있도록 개헌을 하자고 주장했다”고 밝혔다. 탈당을 예고한 것이다. ‘안철수 신당’에 합류해 호남을 중심으로 한 정당으로 총선을 치른 뒤 소수정당이 할 수 있는 주장은 현행 대통령제를 내각제 등으로 바꾸는 개헌이다. 

▲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해 8월30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에서 동교동계 인사들과 고 김대중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한 후 권노갑 상임고문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해 8월30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에서 동교동계 인사들과 고 김대중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한 후 권노갑 상임고문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1월 내내 호남 지역구 의원들과 DJ계를 상징하는 권노갑의 탈당이 이어졌고, 박지원은 민주당 의원들에게 “왜 선거 때만 DJ를 찾느냐”는 발언을 남긴 뒤 당을 떠났다. 2월 창당한 국민의당은 4·13총선에서 호남을 싹쓸이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박지원은 원내대표로 합의 추대됐다. 국민의당 차기 대선후보는 안철수였지만 정치권과 언론은 박지원 입에 더 주목했다.  

국민의당은 의석수를 뛰어넘는 영향력을 가지게 됐다. 당시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바른정당)과 민주당, 어느 당도 과반의석을 차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원내 제3정당이 된 국민의당은 원 구성에서 캐스팅보트를 쥐게 됐다. 박지원은 유일호 부총리를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나 이종걸 민주당 원내대표보다 긴 시간 회동하며 몸값을 키웠다. 거대정당인 민주당에서 그저 그런 중진으로 남는 것보다는 ‘호남의 1인자’를 택한 결과다.  

사라진 지역구도를 살리면 

사라져가는 지역구도를 되살려 득표 전략에 활용하고 있다는 합리적 의심이 가능하다. 박지원은 안철수 후보 포스터에 당명이 없다는 지적에도 “왜 문재인 포스터에 ‘부산 대통령 후보 문재인’이라고 인쇄 안 했는지 묻고 싶다”고 대응했다. 호남에서 ‘영남정치인 문재인’을 각인시키려는 의도된 발언이다. 

▲ 문재인(오른쪽)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와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해 10월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학교 명륜당에서 열린 전국유림총화대회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 문재인(오른쪽)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와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해 10월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학교 명륜당에서 열린 전국유림총화대회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박지원은 꾸준히 문재인을 비판했다. ‘문재인과 노무현 정권이 호남과 호남인사들을 홀대했다’는 게 공격포인트다. ‘문모닝’이란 신조어까지 탄생했다. 정치권에선 박지원의 꾸준한 문재인 공격이 호남의 반문정서를 확산하는데 역할을 했다고 보고 있다. 보수진영에서 “안철수를 찍으면 박지원이 상왕”이라고 한 지적은 과한 측면이 있지만 호남의 실세는 안철수가 아닌 박지원이란 사실은 확인된다.

안철수 후보가 호남의 후보로 비치는 건 전국적 지지를 받아야 하는 대선후보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박지원이 영남 등 다른 지역에 가서 선거운동을 하는 게 특별히 안철수에게 도움이 된다고 볼 수도 없다.  

결국 박지원은 이번 대선국면에서 안철수 선거운동보다는 자신의 호남 입지를 다지는데 주력하고 있다는 의심을 받을 수 있다. 누가 집권하든 단독으로 과반의석을 꾸리지 못한 정당들은 캐스팅보트로 국민의당과 손을 잡을 수밖에 없다. 가랑비에 옷 젖듯 반문정서를 유포해 호남에서 국민의당이 민주당 지지를 누를 경우 대선 이후에도 자연스럽게 차기 정부는 지난 총선 직후처럼 박지원에게 집중할지도 모른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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