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337218
문 대통령과 함께 돌아올 '보물', 이들 덕분에 가능했다
한미정상회담 후 돌아올 '문정왕후어보'... 문화재 환수의 '공로자'들
17.06.27 20:48 l 최종 업데이트 17.06.27 20:48 l 글: 구진영(lovelygudada) 편집: 김지현(diediedie)
한·미 양국 정부가 오는 29·30일 진행되는 한미 정상회담을 통한 문정왕후어보 반환을 협의하고 있다고 전해졌다. 문정왕후어보는 이번 한미 정상회담의 종료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온다.
문정왕후어보는 조선시대 제11대 중종 왕비의 도장으로 한국전쟁 당시 약탈당했다. 높이 6.45cm, 사방 10.1cm 정사각형의 크기로, 상단에는 거북이 모양의 손잡이가 조각돼 있고, 바닥면에 문정왕후의 존호인 '성열대왕대비지보'(聖烈大王大妃之寶)가 새겨져 있다. 이 어보는 시민단체 문화재제자리찾기가 2013년 9월 19일 LA 카운티 박물관으로부터 반환 결정을 이끌어낸 문화재다.
▲ 한미정상회담을 통한 문화재반환 포스터 시민단체 문화재제자리찾기는 2014년과 2017년 한미정상회담을 통한 문화재 반환운동을 두차례 전개했다. ⓒ 구진영
문정왕후어보의 귀환... 시민단체가 일궈낸 두 번째 성과
문화재제자리찾기는 문재인 정부가 새로 들어서자마자 문정왕후어보가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반환됐으면 좋겠다는 시민운동 'Fly to the 문'을 전개하고 있었다. 이에 미국 국무부 및 한국 외교부와 국무총리실 등에 관련 진정서를 제출했다. 한국 외교부는 문정왕후어보의 반환 방식에 관해 6월 14일까지 답변하기로 했으나 미국 정부와의 협의가 마무리되지 않아 입장이 나오지 않은 상태다.
문정왕후어보가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돌어오면 시민단체가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문화재 반환을 이끌어낸 두 번째 사례가 된다. 문화재제자리찾기는 지난 2014년 4월 25일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대한제국 국새를 포함한 조선왕실 인장 아홉 점을 반환하게 만든 단체다. 대한제국 국새를 포함한 조선왕실 인장 아홉 점 역시 한국전쟁 당시 분실된 문화재로 2013년 샌디에이고에서 압수됐다.
▲ 문정왕후어보 반환은 시민단체의 승리 2013년 9월 20일 월스트리트저널은 "LACMA가 소장한 문정왕후 어보가 한국에 돌아가게 된 것은 한국 시민단체의 승리'라고 보도했다. ⓒ 구진영
해외에서는 호평받았지만... 정부는 외면한 시민단체의 문화재환수운동
<월스트리트 저널>은 2013년 문정왕후어보 반환 발표 뒤 "문정왕후어보 반환은 시민운동의 잠재적 승리"라고 평가했다. 또한 국내 언론들도 문정왕후어보 반환 사건을 대서특필했다.
대한제국 국새를 포함한 조선왕실 인장 아홉 점이 2014년 청와대에서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반환됐을 때도 국내 언론 역시 시민단체가 정상회담을 통해 문화재 반환을 성공시켰다면서 주목했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만이 시민단체의 노력을 평가절하한 채 공식 문서에 한 차례도 단체명을 명시하지 않았다. 민간이 주도해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내면 정부는 문화재를 받아오는 통로가 되겠다며 '민관 협력'을 강조하는 게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다. 그러나 민간이 주도해 협상에 성공하면 민간단체는 배제된 채 모두 정부의 성과로 치부되는 게 문화재환수 운동의 현주소다.
▲ 문정왕후어보 측면에 '六室大王大妃(육실대왕대비)'라고 흐리게 써진 묵서가 보인다. ⓒ 구진영
반환이 결정되기까지... 정부는 무능했다
지난 2013년 7월 문정왕후어보 반환을 위해 LA 카운티 박물관과 1차 협상을 하던 날이었다. 문화재제자리찾기는 협상이 끝난 후 문정왕후어보를 살펴보다가 어보에 붙은 묵서를 발견했다. "六室大王大妃(육실대왕대비)", 종묘 여섯 번째 방에 이 어보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글자가 쓰여 있던 것이다. LA 카운티 박물관 스테판 리틀 동아시아 부장은 한국의 국립문화재연구소가 문정왕후어보와 관련된 조사를 했는데 왜 그때는 얘기하지 않았느냐"라고 되물었다.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LA 현지에서 한국으로 연락해 알아본 결과, 당시 국립문화재연구소 직원이 LA에 왔다가 어보 조사를 하지 않고 개인적인 볼 일을 보러 시애틀에 간 것으로 확인됐다.
▲ 지난 2014년 4월 25일 청와대에서 열린 '우리 문화재 인수행사'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우리 측에 반환하는 대한제국 국새인 '황제지보' '수강태황제보' 등 9개의 인장에 대해 설명한 뒤 인사하며 행사장을 나서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박근혜 정부의 무능함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2014년 한미정상회담을 통한 대한제국 국새 반환을 위해 검찰에 진정서를 냈을 때의 일이다. 이를 통해 문화재제자리찾기는 대한제국 국새의 반환이 차일피일 미뤄진 이유가 문화재청이 대한제국 국새 및 압수 인장에 대한 감정 평가서를 제출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문서가 오지 않으니 미국 내에서 반환을 위한 절차가 멈춰 있던 것이다.
이에 김진태 전 검찰총장의 지시로 관련 서류가 정리됐고, 미국 메넨데즈 상원 의원에게 진정서를 제출하는 등 시민운동이 가열차게 전개돼 한미정상회담을 통한 반환이 성사됐다.
▲ 문정왕후어보 반환 기원 타종식 문화재제자리찾기는 2013년 8월 30일, 문정왕후어보 반환 기원 보신각종 타종식을 진행했다. ⓒ 구진영
2014년 당시, 대한제국 국새와 함께 오기로 한 문정왕후어보의 반환이 늦어지자 2015년 문화재제자리찾기는 한 번 더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어보가 반환돼야 한다며 다시 검찰총장을 면담하고 시민운동을 전개했다. 아쉽게도 당시에는 한미정상이 문정왕후어보의 조속반환을 합의하고 법무부 장관이 합의서를 작성하는 것으로 마무리돼 어보는 돌아오지 못했다.
이후, 문정왕후어보 반환을 위해 2016년 문화재제자리찾기가 국외소재 문화재재단에 민간단체보조금 지급을 신청했으나 심사 면접에서 '정부가 잘하고 있는 일에 시민단체가 시끄럽게 하지말라'며 문정왕후어보 반환 관련 보조금을 전액 삭감당했다. 2013년에도 문화재청이 문정왕후어보 반환에 관한 민간단체 보조금을 1000만 원 교부하기로 했으나 국외소재 문화재재단이 자체적으로 절반을 삭감한 적이 있었다. 이에 문화재제자리찾기는 2016년부터 정부 보조금을 거부한 채 문화재 환수 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2017년 6월 9일, 문화재청은 문정왕후어보의 몰수 절차가 완료됐다며 수사절차 종결 합의서를 작성하고 문정왕후어보가 6월 말 즈음 돌아온다고 언론에 발표했다. 그 기사를 보며 너무도 허망한 느낌이 들었다. 이번에도 시민단체의 노력은 단 한 줄도 서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문정왕후어보 수사절차 종결 2017년 6월 9일, 나선화 문화재청장이 덕수궁 석조전에서 미국 이민관세청과 수사절차 종결에 합의했다. ⓒ 문화재청
문화재청장이 합의서를 들고 찍은 사진을 보며 2013년 9월 20일, 문정왕후어보 반환 발표가 있던 다음날 새벽, 한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호텔 로비에 홀로 앉아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반환 결정이 난 날, 협상장에 올라가는 문서를 작성한 적도 없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가 공을 가로채려고 발악하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모두가 기뻐할 줄 알았던 순간에 그런 모습을 보니 별별 다양한 감정이 교차돼 '나는 왜 이 운동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고 무척이나 허망했던 기억이 있다.
2017년 6월 30일, 한미정상회담이 끝나면 문정왕후어보는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전용기를 타고 돌아올 것이다. 문정왕후어보가 한국에 돌아오면 8월부터 고궁박물관에서 특별전이 열린다고 한다.
만약 이번에도 정부가 시민단체를 외면한다면 민간단체에 의한 문화재환수운동의 미래는 암울해질 것이다. 그동안 정부의 외면 때문에 국내의 문화재환수운동가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기자가 이쪽에서는 가장 나이 어린 활동가(행정직 제외)인 것으로 알고 있다. 기자가 이 일에 뛰어든지 6년이 다 돼 가는데도 그 뒤로 이 운동에 뛰어드는 젊은이가 없는 것으로 보아 민간에 의한 문화재환수운동도 이렇게 끝나는 것이 아닌가 싶다.
* 마지막으로 문정왕후어보 반환을 위해 묵묵히 노력해준 이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정부가 알아주지 않아 기록으로 남기지 않는다면 영원히 잊힐 것 같기 때문이다.
뜨거운 여름 거리에서 백악관 청원을 위해 뛰어준 문화재제자리찾기 청소년연대(단장 신수진, 부단장 정경서)학생들과 아카데미 수료 학생들. LA에서 도와주신 정연진, 노태현 선생님. 문정왕후어보 소식을 발 빠르게 전해주신 <뉴욕 뉴스로> 노창현 기자. 매넨데즈 상원위원에게 청원서를 제출해주신 제이크 정, 제니스 정 변호사 부부. 워싱턴 PNP포럼의 홍덕진 목사. 하남에서 홀로 뛴 이영아 위원. 대전에서 도와주신 서진희 선생님. 번역을 도와준 최우수씨. 자선 콘서트를 열어준 아웃사이더. 협상 때마다 동행하여 도와준 안민석 국회의원. 시민단체의 요구에 흔쾌히 법률 처리를 도와준 김진태 전 검찰총장. 아델리아 홀 레코드를 발견하여 어보들의 반환을 이끈 문화재제자리찾기 혜문 대표와 언급하지 않았지만 문화재제자리찾기 시민운동에 많은 도움을 주신 분들께 감사인사 전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낙서협동조합 빅힙에 게시된 글입니다.(http://hipbig.tistory.com/222)
문 대통령과 함께 돌아올 '보물', 이들 덕분에 가능했다
한미정상회담 후 돌아올 '문정왕후어보'... 문화재 환수의 '공로자'들
17.06.27 20:48 l 최종 업데이트 17.06.27 20:48 l 글: 구진영(lovelygudada) 편집: 김지현(diediedie)
한·미 양국 정부가 오는 29·30일 진행되는 한미 정상회담을 통한 문정왕후어보 반환을 협의하고 있다고 전해졌다. 문정왕후어보는 이번 한미 정상회담의 종료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온다.
문정왕후어보는 조선시대 제11대 중종 왕비의 도장으로 한국전쟁 당시 약탈당했다. 높이 6.45cm, 사방 10.1cm 정사각형의 크기로, 상단에는 거북이 모양의 손잡이가 조각돼 있고, 바닥면에 문정왕후의 존호인 '성열대왕대비지보'(聖烈大王大妃之寶)가 새겨져 있다. 이 어보는 시민단체 문화재제자리찾기가 2013년 9월 19일 LA 카운티 박물관으로부터 반환 결정을 이끌어낸 문화재다.
▲ 한미정상회담을 통한 문화재반환 포스터 시민단체 문화재제자리찾기는 2014년과 2017년 한미정상회담을 통한 문화재 반환운동을 두차례 전개했다. ⓒ 구진영
문정왕후어보의 귀환... 시민단체가 일궈낸 두 번째 성과
문화재제자리찾기는 문재인 정부가 새로 들어서자마자 문정왕후어보가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반환됐으면 좋겠다는 시민운동 'Fly to the 문'을 전개하고 있었다. 이에 미국 국무부 및 한국 외교부와 국무총리실 등에 관련 진정서를 제출했다. 한국 외교부는 문정왕후어보의 반환 방식에 관해 6월 14일까지 답변하기로 했으나 미국 정부와의 협의가 마무리되지 않아 입장이 나오지 않은 상태다.
문정왕후어보가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돌어오면 시민단체가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문화재 반환을 이끌어낸 두 번째 사례가 된다. 문화재제자리찾기는 지난 2014년 4월 25일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대한제국 국새를 포함한 조선왕실 인장 아홉 점을 반환하게 만든 단체다. 대한제국 국새를 포함한 조선왕실 인장 아홉 점 역시 한국전쟁 당시 분실된 문화재로 2013년 샌디에이고에서 압수됐다.
▲ 문정왕후어보 반환은 시민단체의 승리 2013년 9월 20일 월스트리트저널은 "LACMA가 소장한 문정왕후 어보가 한국에 돌아가게 된 것은 한국 시민단체의 승리'라고 보도했다. ⓒ 구진영
해외에서는 호평받았지만... 정부는 외면한 시민단체의 문화재환수운동
<월스트리트 저널>은 2013년 문정왕후어보 반환 발표 뒤 "문정왕후어보 반환은 시민운동의 잠재적 승리"라고 평가했다. 또한 국내 언론들도 문정왕후어보 반환 사건을 대서특필했다.
대한제국 국새를 포함한 조선왕실 인장 아홉 점이 2014년 청와대에서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반환됐을 때도 국내 언론 역시 시민단체가 정상회담을 통해 문화재 반환을 성공시켰다면서 주목했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만이 시민단체의 노력을 평가절하한 채 공식 문서에 한 차례도 단체명을 명시하지 않았다. 민간이 주도해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내면 정부는 문화재를 받아오는 통로가 되겠다며 '민관 협력'을 강조하는 게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다. 그러나 민간이 주도해 협상에 성공하면 민간단체는 배제된 채 모두 정부의 성과로 치부되는 게 문화재환수 운동의 현주소다.
▲ 문정왕후어보 측면에 '六室大王大妃(육실대왕대비)'라고 흐리게 써진 묵서가 보인다. ⓒ 구진영
반환이 결정되기까지... 정부는 무능했다
지난 2013년 7월 문정왕후어보 반환을 위해 LA 카운티 박물관과 1차 협상을 하던 날이었다. 문화재제자리찾기는 협상이 끝난 후 문정왕후어보를 살펴보다가 어보에 붙은 묵서를 발견했다. "六室大王大妃(육실대왕대비)", 종묘 여섯 번째 방에 이 어보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글자가 쓰여 있던 것이다. LA 카운티 박물관 스테판 리틀 동아시아 부장은 한국의 국립문화재연구소가 문정왕후어보와 관련된 조사를 했는데 왜 그때는 얘기하지 않았느냐"라고 되물었다.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LA 현지에서 한국으로 연락해 알아본 결과, 당시 국립문화재연구소 직원이 LA에 왔다가 어보 조사를 하지 않고 개인적인 볼 일을 보러 시애틀에 간 것으로 확인됐다.
▲ 지난 2014년 4월 25일 청와대에서 열린 '우리 문화재 인수행사'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우리 측에 반환하는 대한제국 국새인 '황제지보' '수강태황제보' 등 9개의 인장에 대해 설명한 뒤 인사하며 행사장을 나서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박근혜 정부의 무능함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2014년 한미정상회담을 통한 대한제국 국새 반환을 위해 검찰에 진정서를 냈을 때의 일이다. 이를 통해 문화재제자리찾기는 대한제국 국새의 반환이 차일피일 미뤄진 이유가 문화재청이 대한제국 국새 및 압수 인장에 대한 감정 평가서를 제출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문서가 오지 않으니 미국 내에서 반환을 위한 절차가 멈춰 있던 것이다.
이에 김진태 전 검찰총장의 지시로 관련 서류가 정리됐고, 미국 메넨데즈 상원 의원에게 진정서를 제출하는 등 시민운동이 가열차게 전개돼 한미정상회담을 통한 반환이 성사됐다.
▲ 문정왕후어보 반환 기원 타종식 문화재제자리찾기는 2013년 8월 30일, 문정왕후어보 반환 기원 보신각종 타종식을 진행했다. ⓒ 구진영
2014년 당시, 대한제국 국새와 함께 오기로 한 문정왕후어보의 반환이 늦어지자 2015년 문화재제자리찾기는 한 번 더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어보가 반환돼야 한다며 다시 검찰총장을 면담하고 시민운동을 전개했다. 아쉽게도 당시에는 한미정상이 문정왕후어보의 조속반환을 합의하고 법무부 장관이 합의서를 작성하는 것으로 마무리돼 어보는 돌아오지 못했다.
이후, 문정왕후어보 반환을 위해 2016년 문화재제자리찾기가 국외소재 문화재재단에 민간단체보조금 지급을 신청했으나 심사 면접에서 '정부가 잘하고 있는 일에 시민단체가 시끄럽게 하지말라'며 문정왕후어보 반환 관련 보조금을 전액 삭감당했다. 2013년에도 문화재청이 문정왕후어보 반환에 관한 민간단체 보조금을 1000만 원 교부하기로 했으나 국외소재 문화재재단이 자체적으로 절반을 삭감한 적이 있었다. 이에 문화재제자리찾기는 2016년부터 정부 보조금을 거부한 채 문화재 환수 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2017년 6월 9일, 문화재청은 문정왕후어보의 몰수 절차가 완료됐다며 수사절차 종결 합의서를 작성하고 문정왕후어보가 6월 말 즈음 돌아온다고 언론에 발표했다. 그 기사를 보며 너무도 허망한 느낌이 들었다. 이번에도 시민단체의 노력은 단 한 줄도 서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문정왕후어보 수사절차 종결 2017년 6월 9일, 나선화 문화재청장이 덕수궁 석조전에서 미국 이민관세청과 수사절차 종결에 합의했다. ⓒ 문화재청
문화재청장이 합의서를 들고 찍은 사진을 보며 2013년 9월 20일, 문정왕후어보 반환 발표가 있던 다음날 새벽, 한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호텔 로비에 홀로 앉아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반환 결정이 난 날, 협상장에 올라가는 문서를 작성한 적도 없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가 공을 가로채려고 발악하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모두가 기뻐할 줄 알았던 순간에 그런 모습을 보니 별별 다양한 감정이 교차돼 '나는 왜 이 운동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고 무척이나 허망했던 기억이 있다.
2017년 6월 30일, 한미정상회담이 끝나면 문정왕후어보는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전용기를 타고 돌아올 것이다. 문정왕후어보가 한국에 돌아오면 8월부터 고궁박물관에서 특별전이 열린다고 한다.
만약 이번에도 정부가 시민단체를 외면한다면 민간단체에 의한 문화재환수운동의 미래는 암울해질 것이다. 그동안 정부의 외면 때문에 국내의 문화재환수운동가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기자가 이쪽에서는 가장 나이 어린 활동가(행정직 제외)인 것으로 알고 있다. 기자가 이 일에 뛰어든지 6년이 다 돼 가는데도 그 뒤로 이 운동에 뛰어드는 젊은이가 없는 것으로 보아 민간에 의한 문화재환수운동도 이렇게 끝나는 것이 아닌가 싶다.
* 마지막으로 문정왕후어보 반환을 위해 묵묵히 노력해준 이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정부가 알아주지 않아 기록으로 남기지 않는다면 영원히 잊힐 것 같기 때문이다.
뜨거운 여름 거리에서 백악관 청원을 위해 뛰어준 문화재제자리찾기 청소년연대(단장 신수진, 부단장 정경서)학생들과 아카데미 수료 학생들. LA에서 도와주신 정연진, 노태현 선생님. 문정왕후어보 소식을 발 빠르게 전해주신 <뉴욕 뉴스로> 노창현 기자. 매넨데즈 상원위원에게 청원서를 제출해주신 제이크 정, 제니스 정 변호사 부부. 워싱턴 PNP포럼의 홍덕진 목사. 하남에서 홀로 뛴 이영아 위원. 대전에서 도와주신 서진희 선생님. 번역을 도와준 최우수씨. 자선 콘서트를 열어준 아웃사이더. 협상 때마다 동행하여 도와준 안민석 국회의원. 시민단체의 요구에 흔쾌히 법률 처리를 도와준 김진태 전 검찰총장. 아델리아 홀 레코드를 발견하여 어보들의 반환을 이끈 문화재제자리찾기 혜문 대표와 언급하지 않았지만 문화재제자리찾기 시민운동에 많은 도움을 주신 분들께 감사인사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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