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62829
이언주와 <조선>이 꼬드기는 '밥공기 쟁탈전'
[박점규의 동행] 학교 비정규직 파업이 불편한 선생님께 보내는 편지
박점규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집행위원 2017.07.10 09:57:01
촛불로 가득 찼던 광화문 광장이 지난 주말(6월 30일) 초록색과 분홍색 물결로 뒤덮였습니다. 전국에서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일손을 놓고 광화문 광장에 모였기 때문입니다. 교육부에 따르면 파업에 참여한 조리원과 영양사 등은 전국 4087개교, 1만7657명으로 집계됐습니다.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급식이 중단된 학교는 6월 29일 2005개교, 30일 2171개교나 됐습니다. 선생님들과 학생들은 빵과 우유, 도시락으로 점심을 대체했고, 단축수업을 한 학교도 163개였습니다. 민주노총은 학교 비정규직을 주축으로 5만 명이 광화문 집회에 참여했다고 밝혔습니다.
선생님은 이날 학생들과 어떤 얘기를 나누셨나요? 동료들과 빵으로 점심을 때우면서 비정규직 파업에 대해 어떤 대화를 주고 받으셨나요? 7월 3일 학교에 출근해 점심을 준비하신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파업하느라 고생하셨다고 인사를 건네신 선생님이 계실까요?
학교 교사들이 비정규직 파업 날 나눈 대화
학생들에게 "이렇게 노동하는 사람들이 일손을 놓으면 우리 학교와 사회가 돌아가지 않게 된다"고 알려주며 노동의 소중함을 나누셨나요? 1110만에 달하는 우리 사회 비정규직 규모와 정규직 월급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신 선생님이 계실까요?
"노동자들이 흩어져있으면 힘이 약하지만 이번처럼 뭉치면 힘이 강해진다"며 헌법 제33조(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에 나온 노동 3권을 학생들에게 알려주신 선생님도 계시겠지요.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나눈 선생님들도 있으셨다고 합니다.
"시험도 안 보고 공무원 되려고 하느냐? 공무원 하려면 전부 시험을 치러 합격한 사람만 공무원으로 임명해야 공정한 것 아니냐?"
"투쟁해서 정규직 되면 임용고사나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은 어떻게 되느냐? 그들의 일자리를 뺏는 것 아니냐?"
"학교 비정규직이 무기계약직으로 고용이 안정되니까 이제 월급을 공무원처럼 올려달라고 하는 게 말이 되느냐, 호봉제를 도입하면 예산을 어떻게 감당 하느냐?"
언론들은 “배고파요”라는 자극적인 제목을 달아 학교 비정규직 파업 소식을 국민들에게 전했고, 사람들은 “첫 술에 배 부르려고 하느냐, 대통령이 기다리라고 했으면 기다려야지”라며 파업하는 노동자들을 비난했습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공시생들은 댓글로 분노를 쏟아냈더라고요.
▲ 6월 30일 총파업 대회 모습. ⓒ연합뉴스
"시험도 안 보고 공무원 되려고 하느냐?"
선생님들이 나눈 대화를 하나씩 생각해봅니다. 취업이 힘든 시기, 어렵게 공부해서 임용고사나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공무원에 임용됐는데, 투쟁으로 법을 바꿔서 공무원 또는 공무직이 되면 형평성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 전부 시험을 치러 합격한 사람만 공무원으로 임명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일리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시험을 치르지 않고 사립학교 교사가 되신 분들은 괜찮나요? 임용고사가 없었던 1991년 이전에 채용된 교사들도 시험을 치르게 해 기준점 이상을 받아야 교사직을 유지할 수 있게 해야 할까요? 아니면, 시험이라는 경쟁을 뚫은 교사들은 월급을 더 줘야 하나요?
이런 경우는 어떻습니까? 못된 정권이 들어와서 늙고 실력 없는 교사들이 너무 많고, 청년들에게 좋은 일자리를 줘야 한다며 교사들을 모두 시험 보게 하고, 그 중 점수가 낮은 선생들을 해고한다면? 학생들의 교사 평가를 점수화해 인기 없는 교사들을 퇴출시키고, 그 자리를 청년들로 채운다면?
정부가 나이 많은 교사들을 퇴출시킨 적이 있습니다. 김대중 정권 초대 교육부장관이었던 이해찬 의원은 1998년 2월부터 1999년 6월까지 장관 재임 시절 ‘수요자 중심의 교육개혁’을 한다며 교원의 정년을 62세로 낮춰 당시 2만 여명의 교사가 학교를 떠나야 했습니다.
이로 인해 교원이 부족해지자 학교는 비정규직 교사를 채용했습니다.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정권을 거치며 상시·지속적인 학교 업무에 비정규직을 사용했고, 학교에 비정규직이 넘쳐나게 되었습니다.
학교 비정규직 38만 명
2017년 교육부 통계를 보면 정규교원 48만 명, 교육행정직공무원 6만 명 등 학교 정규직이 54만 명입니다.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는 38만 명으로 학교 회계직 14만1173명, 비정규직 강사 16만4870명, 파견·용역 2만7266명, 기간제 교사 4만6666명 등입니다.
이들 중 노동조합에 가입한 회계직원은 급식실 영양사와 조리직, 교무실과 행정실의 교무 및 행정지원, 과학실과 전산실 전문인력, 도서관 사서, 초등돌봄전담사, 전문상담사, 교육복지사 등입니다. 이들 모두 학교 운영에 필수적인 업무이며, 상시·지속적인 일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정부는 공약대로 상시·지속적인 업무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했지만 고용은 여전히 불안하고, 차별 해소와 처우 개선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처우가 열악한 무기계약직은 비정규직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래서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호봉제를 도입해 처우를 개선하라며 일손을 놓은 것입니다.
학교의 상시·지속적인 업무에 비정규직을 사용한 것은 사용자인 정부입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서울시 투자·출연기관 무기계약직 2400여명을 연내에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하며, 무기계약직이 비정규직이라는 노동계의 주장을 처음으로 인정했습니다.
정규직을 채용해야 할 자리에 비정규직을 사용한 것은 정부의 잘못입니다. 결자해지. 잘못을 저지른 정부가 책임지는 것이 당연합니다. 이와 무관하게 청년들의 일자리가 부족하다면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일자리를 늘리라고 요구하고 싸워야 하지 않을까요?
기간제 교사의 순직 인정
공무원 시험을 보고 임용된 공무원이 아니니까 똑같은 권리를 인정해주면 안 된다는 주장은 세월호 기간제 교사의 순직을 인정하지 않았던 박근혜 정부의 논리였습니다. 교육부와 인사혁신처, 공무원연금관리공단은 공무원연금법이 재직 중 공무로 사망한 공무원에게만 순직을 인정하는데, 기간제 교사는 '공무원'이 아니라 적용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당시 기간제 선생님이었던 김초원 교사는 단원고 2학년 3반, 이지혜 교사는 2학년 7반 담임이었습니다. 이들은 빠져나오기 쉬운 5층에 있다가 학생들이 있던 4층으로 내려가 구조를 돕다 목숨을 잃었습니다.
두 교사의 부모와 시민사회단체는 두 딸의 순직 인정을 위해 국회의원과 정부 관계자 면담, 오체투지 행진, 서명운동 등을 벌였습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국민들의 요구에도 귀를 막았고, 끝내 순직 인정을 거부했습니다.
다행히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 직후인 스승의 날 기간제 교사의 순직을 인정하라고 지시했고, 인사처가 공무원연금법 시행령 개정안을 마련해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순직을 인정하게 됐습니다. 같은 일을 하다 목숨을 잃었다면 같은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받는데 3년 3개월이 걸렸습니다.
촛불혁명 교훈은 잃어버린 권리 회복
철옹성 같았던 박근혜 정권이 촛불혁명의 힘으로 무너졌고, 박근혜 최순실 일당과 일부 부역자들이 감옥에 갇혔습니다. 시민들이 스스로 일어나 잃어버린 권리를 회복하기 위해 싸워야 한다는 것이 촛불혁명의 교훈이었습니다.
촛불은 한국사회를 지옥으로 만든 사회양극화, 불평등에 대한 저항이었습니다. 재벌과 부자, 권력자들은 대를 이어 부를 세습했고, 가난한 사람들의 자녀는 실업자, 취업준비생, 비정규직 인생을 벗어나기 어려웠습니다. 불평등의 꼭대기에는 재벌 대기업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우려스러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최저임금 1만 원 인상에 대해 치킨집, 편의점, 커피숍 등 프랜차이즈 점주들이 강력히 반발하고 있습니다. 프랜차이즈 본사와 정부에 책임을 묻는 대신, '흙수저'끼리 밥 한 그릇 놓고 싸우고, 을들끼리 빵 조각 더 가지려고 다투는 형국입니다.
지난해 11월28일 유은혜 의원 등 국회의원 75명이 낸 '교육공무직원의 채용 및 처우에 관한 법률(안)'이 발의되자 공시생, 기간제 교사 등 사회적 약자들의 반대와 항의가 잇따랐고, 당시 새누리당의 뜻대로 법안이 좌초되고 말았습니다.
주요 게시판은 "학교 비정규직 정규직화 대신 교원, 공무원을 증원해야 한다", "법 통과 시 향후 5년간 4조~8조원에 가까운 막대한 예산이 소요된다", "기간제 교사가 더 열악한 비정규직이다"라는 글들로 도배가 되었습니다.
"학교 비정규직은 선발시험도 없이 불공정한 절차로 학교별로 채용되었다", "노조로 뭉쳐서 파업을 하면서 지시에 잘 따르지 않는다", "육체노동이나 단순노동을 하는 사람들이다" 등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를 혐오하는, 반교육·반인권적인 글들로 넘쳐났습니다.
프랜차이즈 본사·재벌만 돈방석
금육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업계 1위 교촌치킨의 매출은 전년 대비 13% 이상 증가해 업계 최초로 매출 3천억 원대를 목전에 두고 있고, BHC치킨은 225개의 가맹점을 추가로 열며 매출이 26% 급증했습니다. 굽네치킨은 매출 50%, 영업이익 150%가 늘었습니다. 멕시카나, 페리카나, 처갓집양념치킨 등 주요 프랜차이즈의 매출도 증가했습니다.
그런데 2015년 한해 문을 닫은 치킨 프랜차이즈 가맹점 2793개로 전년 대비 10% 이상 증가했습니다. 이를 핑계로 프랜차이즈 본사들은 경쟁 심화에 따른 광고비와 임대료 때문에 가맹점 수익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치킨 가격을 인상했습니다.
2015년 말 프랜차이즈 사업체 수는 387만4000개로 2010년보다 52만개(15.5%) 증가했으며, 매출액은 같은 기간 22.6% 늘었습니다. 그런데 가맹점당 매출액은 2억7840만 원, 영업이익은 2740만 원으로 임금노동자 평균 연봉(3948만 원)의 69%에 불과했습니다.
대형 프랜차이즈 본사들은 떼돈을 버는데 가맹점 점주들과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은 힘겨운 생존경쟁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자산 상위 30대 그룹 소속 178개 상장사의 감사보고서 기준 사내유보금은 3월 말 현재 691조5000억 원으로 역대 최대로 집계됐습니다. 2012년 말 515조 원에서 지난해 말 681조 원으로 매년 늘어나더니 3월 말 현재 최대치를 기록한 것입니다. 최근 5년간 늘어난 유보금은 176조 원을 넘어섰습니다.
삼성그룹이 219조5000억 원으로 2012년보다 42.0%, 현대차그룹이 121조7000억 원으로 55.5%, SK그룹이 70조6000억 원으로 66.2%, LG그룹이 48조8000억 원으로 25.5% 늘었습니다. 재벌들이 돈을 벌어 좋은 일자리를 만들기는커녕 금고에 쌓아둔 돈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재벌과 부자들은 3~4세 세습에 골몰하며 금은보화를 쌓아두고 있는데, 밥 한 공기 가지고 우리끼리 갑론을박하고 있는 꼴입니다. 우리가 싸워야 할 상대는 가난한 동네 주민이 아니라, 재벌과 권력임을 잊지 않는 것이, 촛불이 우리에게 준 교훈이 아닐까요?
아참, 편지를 마무리하려는데 국민의당 원내수석부대표 이언주 의원이 파업에 참가한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나쁜 사람들', '미친 놈들'이라며 "솔직히 조리사라는 게 별 게 아니다. 그냥 동네 아줌마들이고 밥하는 아줌마가 왜 정규직화가 돼야 하는 거냐?"고 말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조선일보>는 10일 신문 1면에 '전교조, 비정규직 문제로 내분'라는 기사를 내보내며 '채용 과정이 다른 사람들까지 왜 우리가 정규직화 도와야하나, 일부 조합원들 반발 움직임'이라는 중간제목을 달았습니다. 평소엔 비정규직을 외면하는 정규직노조를 비난하더니, 이번엔 비정규직과 연대하는 전교조를 공격해 분열을 꾀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노동은 필요한 노동과 불필요한 노동으로 구분되지, 귀한 노동과 하찮은 노동으로 구분되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조리노동은 교육노동만큼 반드시 필요한 노동입니다. 이언주 의원의 노동이야말로 불필요한 노동 아닐까요?
이언주 의원과 <조선일보>, 지난 세월 권력을 쥐고 흔들던 이들이 우리에게 '밥공기 쟁탈전'을 하라고 꼬드기고 있습니다. 우리의 분노가 향해야 할 곳이 어디인지 분명해 보입니다.
이언주와 <조선>이 꼬드기는 '밥공기 쟁탈전'
[박점규의 동행] 학교 비정규직 파업이 불편한 선생님께 보내는 편지
박점규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집행위원 2017.07.10 09:57:01
촛불로 가득 찼던 광화문 광장이 지난 주말(6월 30일) 초록색과 분홍색 물결로 뒤덮였습니다. 전국에서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일손을 놓고 광화문 광장에 모였기 때문입니다. 교육부에 따르면 파업에 참여한 조리원과 영양사 등은 전국 4087개교, 1만7657명으로 집계됐습니다.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급식이 중단된 학교는 6월 29일 2005개교, 30일 2171개교나 됐습니다. 선생님들과 학생들은 빵과 우유, 도시락으로 점심을 대체했고, 단축수업을 한 학교도 163개였습니다. 민주노총은 학교 비정규직을 주축으로 5만 명이 광화문 집회에 참여했다고 밝혔습니다.
선생님은 이날 학생들과 어떤 얘기를 나누셨나요? 동료들과 빵으로 점심을 때우면서 비정규직 파업에 대해 어떤 대화를 주고 받으셨나요? 7월 3일 학교에 출근해 점심을 준비하신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파업하느라 고생하셨다고 인사를 건네신 선생님이 계실까요?
학교 교사들이 비정규직 파업 날 나눈 대화
학생들에게 "이렇게 노동하는 사람들이 일손을 놓으면 우리 학교와 사회가 돌아가지 않게 된다"고 알려주며 노동의 소중함을 나누셨나요? 1110만에 달하는 우리 사회 비정규직 규모와 정규직 월급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신 선생님이 계실까요?
"노동자들이 흩어져있으면 힘이 약하지만 이번처럼 뭉치면 힘이 강해진다"며 헌법 제33조(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에 나온 노동 3권을 학생들에게 알려주신 선생님도 계시겠지요.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나눈 선생님들도 있으셨다고 합니다.
"시험도 안 보고 공무원 되려고 하느냐? 공무원 하려면 전부 시험을 치러 합격한 사람만 공무원으로 임명해야 공정한 것 아니냐?"
"투쟁해서 정규직 되면 임용고사나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은 어떻게 되느냐? 그들의 일자리를 뺏는 것 아니냐?"
"학교 비정규직이 무기계약직으로 고용이 안정되니까 이제 월급을 공무원처럼 올려달라고 하는 게 말이 되느냐, 호봉제를 도입하면 예산을 어떻게 감당 하느냐?"
언론들은 “배고파요”라는 자극적인 제목을 달아 학교 비정규직 파업 소식을 국민들에게 전했고, 사람들은 “첫 술에 배 부르려고 하느냐, 대통령이 기다리라고 했으면 기다려야지”라며 파업하는 노동자들을 비난했습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공시생들은 댓글로 분노를 쏟아냈더라고요.
▲ 6월 30일 총파업 대회 모습. ⓒ연합뉴스
"시험도 안 보고 공무원 되려고 하느냐?"
선생님들이 나눈 대화를 하나씩 생각해봅니다. 취업이 힘든 시기, 어렵게 공부해서 임용고사나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공무원에 임용됐는데, 투쟁으로 법을 바꿔서 공무원 또는 공무직이 되면 형평성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 전부 시험을 치러 합격한 사람만 공무원으로 임명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일리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시험을 치르지 않고 사립학교 교사가 되신 분들은 괜찮나요? 임용고사가 없었던 1991년 이전에 채용된 교사들도 시험을 치르게 해 기준점 이상을 받아야 교사직을 유지할 수 있게 해야 할까요? 아니면, 시험이라는 경쟁을 뚫은 교사들은 월급을 더 줘야 하나요?
이런 경우는 어떻습니까? 못된 정권이 들어와서 늙고 실력 없는 교사들이 너무 많고, 청년들에게 좋은 일자리를 줘야 한다며 교사들을 모두 시험 보게 하고, 그 중 점수가 낮은 선생들을 해고한다면? 학생들의 교사 평가를 점수화해 인기 없는 교사들을 퇴출시키고, 그 자리를 청년들로 채운다면?
정부가 나이 많은 교사들을 퇴출시킨 적이 있습니다. 김대중 정권 초대 교육부장관이었던 이해찬 의원은 1998년 2월부터 1999년 6월까지 장관 재임 시절 ‘수요자 중심의 교육개혁’을 한다며 교원의 정년을 62세로 낮춰 당시 2만 여명의 교사가 학교를 떠나야 했습니다.
이로 인해 교원이 부족해지자 학교는 비정규직 교사를 채용했습니다.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정권을 거치며 상시·지속적인 학교 업무에 비정규직을 사용했고, 학교에 비정규직이 넘쳐나게 되었습니다.
학교 비정규직 38만 명
2017년 교육부 통계를 보면 정규교원 48만 명, 교육행정직공무원 6만 명 등 학교 정규직이 54만 명입니다.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는 38만 명으로 학교 회계직 14만1173명, 비정규직 강사 16만4870명, 파견·용역 2만7266명, 기간제 교사 4만6666명 등입니다.
이들 중 노동조합에 가입한 회계직원은 급식실 영양사와 조리직, 교무실과 행정실의 교무 및 행정지원, 과학실과 전산실 전문인력, 도서관 사서, 초등돌봄전담사, 전문상담사, 교육복지사 등입니다. 이들 모두 학교 운영에 필수적인 업무이며, 상시·지속적인 일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정부는 공약대로 상시·지속적인 업무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했지만 고용은 여전히 불안하고, 차별 해소와 처우 개선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처우가 열악한 무기계약직은 비정규직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래서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호봉제를 도입해 처우를 개선하라며 일손을 놓은 것입니다.
학교의 상시·지속적인 업무에 비정규직을 사용한 것은 사용자인 정부입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서울시 투자·출연기관 무기계약직 2400여명을 연내에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하며, 무기계약직이 비정규직이라는 노동계의 주장을 처음으로 인정했습니다.
정규직을 채용해야 할 자리에 비정규직을 사용한 것은 정부의 잘못입니다. 결자해지. 잘못을 저지른 정부가 책임지는 것이 당연합니다. 이와 무관하게 청년들의 일자리가 부족하다면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일자리를 늘리라고 요구하고 싸워야 하지 않을까요?
기간제 교사의 순직 인정
공무원 시험을 보고 임용된 공무원이 아니니까 똑같은 권리를 인정해주면 안 된다는 주장은 세월호 기간제 교사의 순직을 인정하지 않았던 박근혜 정부의 논리였습니다. 교육부와 인사혁신처, 공무원연금관리공단은 공무원연금법이 재직 중 공무로 사망한 공무원에게만 순직을 인정하는데, 기간제 교사는 '공무원'이 아니라 적용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당시 기간제 선생님이었던 김초원 교사는 단원고 2학년 3반, 이지혜 교사는 2학년 7반 담임이었습니다. 이들은 빠져나오기 쉬운 5층에 있다가 학생들이 있던 4층으로 내려가 구조를 돕다 목숨을 잃었습니다.
두 교사의 부모와 시민사회단체는 두 딸의 순직 인정을 위해 국회의원과 정부 관계자 면담, 오체투지 행진, 서명운동 등을 벌였습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국민들의 요구에도 귀를 막았고, 끝내 순직 인정을 거부했습니다.
다행히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 직후인 스승의 날 기간제 교사의 순직을 인정하라고 지시했고, 인사처가 공무원연금법 시행령 개정안을 마련해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순직을 인정하게 됐습니다. 같은 일을 하다 목숨을 잃었다면 같은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받는데 3년 3개월이 걸렸습니다.
촛불혁명 교훈은 잃어버린 권리 회복
철옹성 같았던 박근혜 정권이 촛불혁명의 힘으로 무너졌고, 박근혜 최순실 일당과 일부 부역자들이 감옥에 갇혔습니다. 시민들이 스스로 일어나 잃어버린 권리를 회복하기 위해 싸워야 한다는 것이 촛불혁명의 교훈이었습니다.
촛불은 한국사회를 지옥으로 만든 사회양극화, 불평등에 대한 저항이었습니다. 재벌과 부자, 권력자들은 대를 이어 부를 세습했고, 가난한 사람들의 자녀는 실업자, 취업준비생, 비정규직 인생을 벗어나기 어려웠습니다. 불평등의 꼭대기에는 재벌 대기업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우려스러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최저임금 1만 원 인상에 대해 치킨집, 편의점, 커피숍 등 프랜차이즈 점주들이 강력히 반발하고 있습니다. 프랜차이즈 본사와 정부에 책임을 묻는 대신, '흙수저'끼리 밥 한 그릇 놓고 싸우고, 을들끼리 빵 조각 더 가지려고 다투는 형국입니다.
지난해 11월28일 유은혜 의원 등 국회의원 75명이 낸 '교육공무직원의 채용 및 처우에 관한 법률(안)'이 발의되자 공시생, 기간제 교사 등 사회적 약자들의 반대와 항의가 잇따랐고, 당시 새누리당의 뜻대로 법안이 좌초되고 말았습니다.
주요 게시판은 "학교 비정규직 정규직화 대신 교원, 공무원을 증원해야 한다", "법 통과 시 향후 5년간 4조~8조원에 가까운 막대한 예산이 소요된다", "기간제 교사가 더 열악한 비정규직이다"라는 글들로 도배가 되었습니다.
"학교 비정규직은 선발시험도 없이 불공정한 절차로 학교별로 채용되었다", "노조로 뭉쳐서 파업을 하면서 지시에 잘 따르지 않는다", "육체노동이나 단순노동을 하는 사람들이다" 등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를 혐오하는, 반교육·반인권적인 글들로 넘쳐났습니다.
프랜차이즈 본사·재벌만 돈방석
금육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업계 1위 교촌치킨의 매출은 전년 대비 13% 이상 증가해 업계 최초로 매출 3천억 원대를 목전에 두고 있고, BHC치킨은 225개의 가맹점을 추가로 열며 매출이 26% 급증했습니다. 굽네치킨은 매출 50%, 영업이익 150%가 늘었습니다. 멕시카나, 페리카나, 처갓집양념치킨 등 주요 프랜차이즈의 매출도 증가했습니다.
그런데 2015년 한해 문을 닫은 치킨 프랜차이즈 가맹점 2793개로 전년 대비 10% 이상 증가했습니다. 이를 핑계로 프랜차이즈 본사들은 경쟁 심화에 따른 광고비와 임대료 때문에 가맹점 수익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치킨 가격을 인상했습니다.
2015년 말 프랜차이즈 사업체 수는 387만4000개로 2010년보다 52만개(15.5%) 증가했으며, 매출액은 같은 기간 22.6% 늘었습니다. 그런데 가맹점당 매출액은 2억7840만 원, 영업이익은 2740만 원으로 임금노동자 평균 연봉(3948만 원)의 69%에 불과했습니다.
대형 프랜차이즈 본사들은 떼돈을 버는데 가맹점 점주들과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은 힘겨운 생존경쟁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자산 상위 30대 그룹 소속 178개 상장사의 감사보고서 기준 사내유보금은 3월 말 현재 691조5000억 원으로 역대 최대로 집계됐습니다. 2012년 말 515조 원에서 지난해 말 681조 원으로 매년 늘어나더니 3월 말 현재 최대치를 기록한 것입니다. 최근 5년간 늘어난 유보금은 176조 원을 넘어섰습니다.
삼성그룹이 219조5000억 원으로 2012년보다 42.0%, 현대차그룹이 121조7000억 원으로 55.5%, SK그룹이 70조6000억 원으로 66.2%, LG그룹이 48조8000억 원으로 25.5% 늘었습니다. 재벌들이 돈을 벌어 좋은 일자리를 만들기는커녕 금고에 쌓아둔 돈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재벌과 부자들은 3~4세 세습에 골몰하며 금은보화를 쌓아두고 있는데, 밥 한 공기 가지고 우리끼리 갑론을박하고 있는 꼴입니다. 우리가 싸워야 할 상대는 가난한 동네 주민이 아니라, 재벌과 권력임을 잊지 않는 것이, 촛불이 우리에게 준 교훈이 아닐까요?
아참, 편지를 마무리하려는데 국민의당 원내수석부대표 이언주 의원이 파업에 참가한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나쁜 사람들', '미친 놈들'이라며 "솔직히 조리사라는 게 별 게 아니다. 그냥 동네 아줌마들이고 밥하는 아줌마가 왜 정규직화가 돼야 하는 거냐?"고 말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조선일보>는 10일 신문 1면에 '전교조, 비정규직 문제로 내분'라는 기사를 내보내며 '채용 과정이 다른 사람들까지 왜 우리가 정규직화 도와야하나, 일부 조합원들 반발 움직임'이라는 중간제목을 달았습니다. 평소엔 비정규직을 외면하는 정규직노조를 비난하더니, 이번엔 비정규직과 연대하는 전교조를 공격해 분열을 꾀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노동은 필요한 노동과 불필요한 노동으로 구분되지, 귀한 노동과 하찮은 노동으로 구분되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조리노동은 교육노동만큼 반드시 필요한 노동입니다. 이언주 의원의 노동이야말로 불필요한 노동 아닐까요?
이언주 의원과 <조선일보>, 지난 세월 권력을 쥐고 흔들던 이들이 우리에게 '밥공기 쟁탈전'을 하라고 꼬드기고 있습니다. 우리의 분노가 향해야 할 곳이 어디인지 분명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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