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802257.html

‘기름범벅 지하수’ 정화 15년째, 아직도 기준치 587배 벤젠이...
등록 :2017-07-11 04:59 수정 :2017-07-12 15:20

[탐사기획] 용산 미군기지 환경오염 실태
1990년 이후 용산미군기지 기름유출 사고만 84건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 주변, 지하수 퍼올리자
메스꺼운 기름 냄새가 진동했다

<편집자주>

서울 안에는 서울 시민이 가닿을 수 없는 땅이 있다. 주변의 형세가 용과 닮았다 해서 ‘용산’, 280만㎡(80여만 평) 대지는 지난 백년 온전히 우리 땅인 적이 없었다. 한강을 통해 상륙해 서울을 쉽게 함락할 수 있는 요충지인 까닭에 고려 말 한반도에 침입한 몽고군부터 임진왜란 당시 왜군, 임오군란 때 청나라 군대, 일제 강점기엔 일본군이 주둔했다. 해방 이후 일본군 병영을 접수한 미군은 2017년 현재까지 용산을 주둔지 삼고 있다.

미군기지가 된 ‘우리 땅’ 사정은 돌려받기 전까지 알 수가 없다. 2007년 6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당시 한국 정부에 갓 반환된 경기도 파주의 미군기지를 찾았다. 기지 내부 지하수를 나무 끝에 묻혀 불을 당기자 화르륵 불길이 타올랐다. 기름에 오염된 채 반환되는 미군기지의 실체가 고스란히 드러난 순간이었다. 국회에서 ‘주한미군 반환기지 환경치유 청문회’가 열렸고 기지를 심각하게 오염시키고도 아무런 조치없이 떠나는 미군과 그 앞에 무력한 한국 정부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10년이 흘렀다. 2017년 7월 현재 전국에 흩어진 미군기지를 경기도 평택, 대구 등으로 이전하는 ‘주한미군기지 이전’ 협정에 따라 44개 기지 중 22개가 반환을 완료했다. 미군이 떠난 땅에서 한국 정부가 세금을 쏟아부어 오염 정화작업을 하는 일은 지금껏 반복되고 있다. 반환을 앞둔 용산기지의 상태는 어떨까. 최근 녹색연합 등이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미국 정부에서 받아낸 자료에는 1990년 이후 지금까지 담장 안에서 벌어진 끔찍한 기름 유출 사고 84건이 적혀있었다. 유출 사고가 난 지점의 담장 너머는 서울 시민의 삶터다. 지하철 4호선 숙대입구역, 1호선 남영역, 6호선 녹사평역이 있고 이태원초등학교, 한강중학교, 용산고등학교가 있다. 위로는 남산, 아래로는 한강이 흐른다. 국내 포털사이트 지도에는 녹지로만 나오는 그곳, 용산미군기지의 세밀도를 펼쳐 사고 지점을 꾹꾹 눌러 기록했다.


(△ 이미지를 누르면 용산미군기지 기름유출 사고현황 지도를 볼 수 있습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랐어도 용산 ‘이태원 부근’은 낯선 동네다. 유명 맛집 찾아 이태원 골목길을 몇 번 누빈 게 전부다. 용산미군기지 주변 오염도 측정 지점은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 주변 이태원 거리 초입이었다. 세련된 카페에서 수박 주스 한잔을 사들고 영어로 “웰컴 투 코리아”라 써있는 조형물 아래로 갔다. 순간, 속이 메스껍도록 강렬한 기름 냄새가 진동했다.

냄새는 손바닥만한 원형 맨홀 뚜껑이 열린 곳에서 올라왔다. 2001년 이 부근 지하터널에서 휘발유와 등유 범벅 지하수가 터져나온 뒤 서울시가 설치한 관정이다. 15m 아래 지하수를 퍼올리자 역한 냄새가 강해졌다. 물이 담긴 투명 관 안에는 손가락 마디보다 굵은 두께 기름띠가 둘러져 있다. 기름만 따로 모은 통에 코를 갖다 대니 주변에 있던 서울시 공무원들이 만류했다. 디젤, 에틸벤젠 등 발암·독성 물질이 가득해서다. 이미 숨을 들이마신 뒤였다. 두통과 메스꺼움, 현기증이 2시간 넘게 이어졌다.

15년째 지하수를 퍼올려 정화를 하고 있건만 이 지역에서는 여전히 기준치의 587배가 넘는 벤젠과 18.5배에 달하는 석유계총탄화수소(TPH), 기준치를 2~5배 초과하는 톨루엔, 크실렌, 에틸벤젠이 검출(2016년 기준)되고 있다. 2006년, 이번엔 녹사평역에서 1㎞ 가량 떨어진 지하철 4호선 숙대입구역 근처, 미군기지 캠프 킴 주변 지하 터널에서 기름 오염이 발견됐다. 이후 10년째 그곳에서도 석유계총탄화수소(TPH)가 기준치보다 512.5배 초과 검출되고 있다. 휘발유와 경유, 항공유(JP-8) 등의 성분인 벤젠은 1군 발암물질이며 톨루엔과 크실렌은 중추신경계에 악영향을 주고 에틸벤젠은 폐 손상을, 석유계총탄화수소는 생식 독성을 일으킨다.

기름 오염이 발생한 지 10여년이 지나도 여전히 기준치를 수백배 초과하는 오염 물질이 나오는 이유는 간단하다. ‘오염원’에 접근하지 못한 채 주변 정화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오직 두 지점의 ‘주변 정화’에만 올해까지 67억원 넘게 쏟아붓고 있다. 이 비용은 매년 정부를 상대로 한 배상 청구 소송을 통해 보상받는다. 정부는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이하 소파)에 따라 주한미군에게 75%의 배상금을 분담하라고 요구하지만 묵살당해왔다.

2013년에야 한미 양국이 소파 환경분과위원회를 개최해 용산미군기지 내부에 대해 3차례의 합동 환경조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2015년 5월 1차 조사가 진행됐지만 한국 정부는 그 결과를 시민들에게 공개하지 않았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이 소송을 제기한 끝에 알아낸 정보공개 거부 이유는 “주한미군이 ’이 정보가 공개될 경우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돼 한미 동맹 관계가 악화할 우려가 있다’며 정보 공개를 반대했기 때문”이었다.

항소에 상고까지 이어진 뒤 지난 4월, 환경부는 결국 판결에 따라 1차 환경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녹사평역 쪽 용산미군기지 내부의 반경 200m 안쪽 14개 관정에 대해서만 진행한 소규모 조사 결과였다. 절반인 7곳에서 기준치의 최대 162배에 달하는 벤젠과 기준치 2배 안팎의 톨루엔, 에틸벤젠, 크실렌이 검출됐다. 최근 2, 3차 조사 결과도 공개하라는 법원 판결이 났지만 환경부는 미군의 정보 공개 반대 입장에 따라 또다시 항소를 했다.

용산미군기지 내부 오염 실태를 알려준 것은 오히려 미국 정부였다. 녹색연합 등이 미국 정부를 상대로 정보 공개 청구를 통해 1990년 이후 용산미군기지 내 기름 유출사고 내역을 받아냈다. 84건에 달하는 사고 기록 중에는 주한미군 환경관리 기준으로 ‘심각한 유출량’인 400ℓ 이상 유출 사고가 무려 32건이나 포함되어 있었다. 20년이 다되도록 한국 정부는 모르던 사건들이었다. 2000년 용산 미군기지에서 미군이 포르말린 480병을 한강에 무단 방류했을 때도, 2009년부터 2015년까지 무려 7년동안 미군이 용산에 탄저균을 들여왔을 때도 뒤늦게 알았듯 말이다.

이런 상태로 주한미군 이전계획에 따라 용산 미군기지가 반환된다면 수천억원에 달하는 오염 정화 비용을 한국 정부가 떠안게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이강근 서울대 교수(지구환경과학부)는 “대규모 지하저장탱크 누출이 오래 지속된 뒤 발견됐을 경우 유류가 지하수 흐름을 타고 확산돼 정화 기간도 오래 걸리고 비용도 수천억원에 달할 수 있어 우려된다”며 “하루빨리 정확한 기지 내 상황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태원 거리, 땅 속에서 올라오는 기름 냄새 앞에 묻는다. 돌아올 우리 땅, 용산미군기지는 지금 어떤 상태일까.

글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그래픽 박향미 기자 phm8302@hani.co.kr, 디지털 기획 이화섭 기자, 사진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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