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802261.html

“미군, 기지오염 치유 나선적 없어”… ‘기울어진 환경협상 테이블’서 백전백패
등록 :2017-07-11 05:01 수정 :2017-07-12 15:26

[탐사기획] 미군기지이전 잃어버린 10년 ② 기울어진 협상테이블
반환 기약없는 원주 ‘캠프 롱’ 
“한·미간 오염치유 책임 이견” 일정도 안잡힌채 7년째 표류
국내 환경법 무시하는 미군
환경오염 정화 기준 모호한데다 
MB정부때 ‘공동환경평가절차’ 합의 이후 ‘미군 발뺌-한국 덤터기’ 반복
우리정부 무능함도 한몫 
“환경협상 담당자 수시로 바뀌어” 현재 환경부 담당 사무관 공석, 미반환 22개 기지 협상도 암담

미군이 모두 떠나고 폐쇄된 지 7년이 지나도록 ’미군 땅’으로 방치되어 있는 강원도 원주 ’캠프 롱’ 기지의 지난 6월 풍경. 원주 주민들의 논과 맞닿은 이 지점은 2001년 기름 유출 사고가 발생했던 곳이기도 하다. 원주/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미군이 모두 떠나고 폐쇄된 지 7년이 지나도록 ’미군 땅’으로 방치되어 있는 강원도 원주 ’캠프 롱’ 기지의 지난 6월 풍경. 원주 주민들의 논과 맞닿은 이 지점은 2001년 기름 유출 사고가 발생했던 곳이기도 하다. 원주/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강원도 원주시 태장동 34만㎡(10만여평) 땅은 7년째 아무도 찾지 않는다. 2010년 미군기지 ‘캠프 롱’이 폐쇄된 뒤 미군은 모두 떠났고 미군이 고용한 경비원만 남아 한국인의 출입을 막고 있다. 지난 6월 캠프 롱 정문을 찾은 <한겨레> 취재진에게 한국인 경비원은 손사래를 치며 “여기는 미군 땅”이라 말했다. 담장 안은 넘볼 수 없는 마을 주민들이 담벼락을 따라 고구마, 콩, 고추를 심어놨다.

미군이 쓰지도 않는 드넓은 한국 땅을 몇년씩 점거하는 ‘비상식’이 반복되고 있다. 미군기지 이전사업의 근거인, 용산기지이전협정(YRP)과 연합토지관리계획(LPP) 협정문에 2008년께까지 반환하기로 명시한 기지(훈련장 제외)는 44곳, 4367만㎡에 이른다. 하지만 현재 반환된 기지는 22곳, 면적으로는 고작 11%뿐이다. 원주 캠프 롱은 22개 미반환 기지 중 하나다. 원주시가 지난해 국방부에 부지 매입 협약대금 665억원을 완납했지만 기지 반환은 기약없다. 원주시 관계자는 “국방부, 환경부, 외교부, 국무조정실 등을 69회나 찾아가 반환을 촉구했지만 소용없었다”고 밝혔다.

기지 반환을 앞두고 한국 정부와 미군 사이에 열리는 환경분과위원회의 한국 쪽 위원장인 김지연 환경부 토양지하수과장은 “캠프 롱의 환경 오염 치유 책임에 한·미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협상이 지연 중”이라고 밝혔다. 국방부는 “올해 안에는 반환될 것”이라 전망하지만 7월 현재 캠프 롱 환경협의는 한·미 간 일정도 잡히지 않은 채 표류 중이다. 2017년 7월 기준 캠프 롱, 캠프 이글, 캠프 마켓, 캠프 호비 등 4곳이 환경 협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 빨리 기지를 반환받기 위한 방법은 하나, 한국 정부가 미군에게 오염 정화 책임 묻기를 포기하는 일 뿐이다.



이러한 ‘비상식’ 환경협의가 반복되는 건 국내 환경법을 무시하는 미군의 모호한 환경 정화 기준, 미군 결정에 좌우되는 협의 절차, 우리 협상단의 무능력 등이 합쳐진 결과다. 한국과 미국은 1966년 환경 관련 규정이 전무한 주한미군지위협정(이하 소파)을 맺은 뒤 지금껏 명확한 환경오염 정화 기준을 마련하지 못했다. 2000년 미군이 한강에 포르말린을 무단 방류한 사건이 알려진 뒤 2001년 소파 합의 의사록에 “미국이 대한민국의 환경법령과 기준을 존중한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하지만 ‘준수’가 아닌 ‘존중’인데다가 ‘인간 건강에 대한 공지의 급박하고 실질적인 위해(KISE)’라는 모호한 기준까지 추가됐다. 국내 환경기준이 아닌 미군의 주관적 기준에 따라 오염 정화 여부가 결정되도록 한 셈이다.

참여정부 후반부였던 2007년 국회에서 ‘주한미군 반환기지 환경치유 청문회’가 열렸고 부산 캠프 하얄리아의 환경오염 조사를 둘러싸고 한·미의 대립이 격화되면서 환경협의는 반환기지 협상의 최대 난제로 떠올랐다. 미군기지 환경오염에 우리 목소리를 내던 분위기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인 2009년 한·미가 ‘공동환경평가절차’(JEAP)에 합의하며 급격히 바뀌었다.

2007년 6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경기 파주 미군기지 ’캠프 에드워드’에서 지하수를 떠 나무에 묻힌 뒤 불을 붙였다. 파주/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2007년 6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경기 파주 미군기지 ’캠프 에드워드’에서 지하수를 떠 나무에 묻힌 뒤 불을 붙였다. 파주/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 국무부 기밀 자료를 보면 2008년 9월2일 미 워싱턴에서 열린 ‘차관급 전략대화’에서 존 네그로폰테 국무부 부장관이 우리 외교부에 “미군을 상대로 환경 치유라는 무한 책임을 지울 수 없다”고 말한 뒤 공동환경평가절차 합의를 요구한 사실이 확인된다. 2009년 정부는 반환 미군기지 환경조사 기간을 20~150일로 한정하고 미군 합의 없이 한국 정부가 관련 정보를 공개할 수 없도록 한 ‘공동환경평가절차’에 합의했다.

그 뒤 미군은 단 한차례도 기지 안 오염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치유에 나선 적이 없다. 미군이 정화한 적이 없으니 우리 정부도 정화가 제대로 됐는 지 검토한 적이 없다. 김지연 환경분과위원장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2009년 이후 미군이 오염 책임을 인정하고 조치에 나선 적이 없기에 우리 정부도 미군의 조치에 대한 검토작업을 한 경험이 없다”고 밝혔다.

공동환경평가절차 합의 이후 반환기지 환경협상은 줄곧 ‘덤터기’의 역사다. 2010년 부산 하얄리아 캠프는 미군의 정화작업 없이 반환됐고 3억원 정도 정화 비용이 소요될 것이라던 정부 발표와 달리 143억원이 투입됐다. 동두천시 캠프 캐슬의 경우 2015년 3월 반환받아 한국 정부가 196억원 규모의 정화 사업을 발주해야 했다.

‘덤터기 구조’에는 우리 정부의 무능도 가세한다. 국방부 주한미군기지이전사업단 고위직 출신은 “한국은 반환 미군기지 환경 협상 실무 담당자가 수시로 바뀌는데 인수인계도 제대로 안 돼 미국에 비해 협상력이 매우 약하다”고 지적했다. <한겨레> 확인 결과 2017년 7월 현재 환경부의 미군기지 반환 환경협상 담당 사무관은 공석이고 주무관도 3개월 만에 또다시 교체됐다. 국내 모든 토양·지하수 문제를 관리하는 토양지하수과장 혼자 미군기지 환경협의까지 담당한다. 남은 절반의 반환기지 협상도 이 상태에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김동건 배제대 교수(공무원법학과) “소파 환경규정을 개정한다 해도 우리 정부의 법 집행 의지가 없다면 소용없다”고 지적했다.

원주 캠프 롱 정문에서 접근이 가로막힌 <한겨레> 취재진이 기지 뒤편, 2001년 기름유출 사고가 발생했던 지점으로 갔을 때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16년 전 이곳 기지 담벼락 아래 논으로 기름이 솟구쳤다. 그 모습을 봤다는 70대 농부가 우산을 쓰고 자기 논을 살피고 있었다. “우리 지켜주러 온 미군인데, 그깟 기름 오염 좀 시킬 수도 있지. 난 괜찮아. 아무렇지도 않았어.” 힘주어 말하다 덧붙였다. “그런데 볏짚 팔러 갔더니 우리 거는 오염돼서 소여물도 못 먹인다더라고. 도로 가져왔지 뭐.”

원주/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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