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802263.html

[단독] 미군기지 모두 반환땐 ‘오염 정화비’ 1조원 든다
등록 :2017-07-11 06:58 수정 :2017-07-12 15:20

오염된 채 반환된 기지 정화 위해
한국정부 10년간 2천억 부담
미반환 면적 89%도 ‘덤터기’ 쓸판

녹슬고 오래된 기름 탱크가 있다. 휘발유, 디젤, 항공유(JP-8) 등이 담겨 서울 용산의 280만㎡(80만평) 미군기지 곳곳에 묻혀있다. 작은 균열은 큰 구멍이 되고나서야 발견된다. 주한미군은 사고 기록지에 이렇게 적는다. “발견 당시 토양이 기름에 흠뻑 젖어있었음. 노후 연료관이 원인인 듯 하지만 유출이 언제 어디서부터 시작됐는 지 알 수 없음. 유출된 기름은 배수로로 스며들어 한강으로 유입됐음.”

사고가 나도 서울시민들은 알 수 없다. 최근 녹색연합 등 한국 시민단체가 미국 정부에 직접 정보공개 청구를 해 받아낸 ‘용산미군기지 기름 유출사고 내역’을 보면 지난 1990년 이후 미군이 기록한 사고만 84건에 이른다. (▶관련기사:‘기름범벅 지하수' 정화 15년째, 아직도 기준치 587배 벤젠이…) 한국 환경부가 통보받은 사고는 5건에 불과했다. 그 세월동안 서울 시민들은 미군기지 밖으로 새어나온 기름을 ‘우연히 발견’한 경우에만 사고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 관련 동영상 : 미군기지 정화비 1조원…한국 덤터기 쓸 수도
용산미군기지 기름유출 사고현황 지도

2001년 서울 용산 미군기지 앞 녹사평역 지하 터널에서 기름 범벅 지하수가 쏟아졌다. 2006년 서울 용산의 미군기지 캠프 킴 길건너 지하철 공사장에서 기름이 흥건히 발견됐다. 그날 이후 서울시는 10년 넘게 세금 70억을 쏟아부어 두 지역의 지하수를 정화 중이다. 기지 안 ‘오염원’은 그대로 둔 채 기지 주변만 정화하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작업이다. 지난해에도 녹사평역 앞에서 발암물질인 벤젠이 기준치의 587배 검출됐다.

지난 6월 서울 용산의 미군기지 캠프 킴 담벼락 아래에서 서울시 공무원이 시커먼 기름이 둥둥 뜬 지하수를 퍼올리고 있다. 2006년 이 지역에서 기름 유출이 발견된 뒤 서울시가 10년째 지하수를 정화해왔지만 여전히 오염물질인 석유계총탄화수소가 기준치의 500배 이상 검출된다. 사진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지난 6월 서울 용산의 미군기지 캠프 킴 담벼락 아래에서 서울시 공무원이 시커먼 기름이 둥둥 뜬 지하수를 퍼올리고 있다. 2006년 이 지역에서 기름 유출이 발견된 뒤 서울시가 10년째 지하수를 정화해왔지만 여전히 오염물질인 석유계총탄화수소가 기준치의 500배 이상 검출된다. 사진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미군기지 안 사정을 알 수 없고, 흘러나온 기름 정도만 정화할 수 있는 상황은 미군 주둔 지역마다 비슷하다. 2001년 강원 원주에서도, 2011년 전북 군산에서도 미군기지 주변에서 기름이 쏟아져 나왔다. 그렇다고 모든 지방자치단체가 서울시처럼 지속적으로 오염 지역 관찰과 정화에 나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재정 여력과 관심도에 따라 정화작업 여부는 달라진다.

현재 미군기지 안팎의 오염정화 비용은 한국이 100% ‘덤터기’ 쓰는 구조다. 이는 서울 용산을 비롯해 전국에 흩어져 있던 미군기지를 경기 평택, 대구 등으로 집결시키는 ‘주한미군 기지이전 사업’이 진행된 지난 10여년동안 집중됐다. 2010년 용산기지 5분의 1 크기인 부산 캠프 하얄리아 정화에 143억, 2015년 동두천 캠프 캐슬의 오염된 땅 4만㎡(1만3000평) 정화에 135억원이 들었다. 한미 환경분과위원회 한국 쪽 김지연 위원장은 <한겨레>와 한 전화통화에서 “지난 10년동안 미군이 기지를 반환하며 오염 책임을 인정하고 조치를 취한 적은 없다”고 밝혔다.(▶관련기사:환경주권 없는 환경협상…“미군, 기지오염 치유 나선적 없어”)

용산기지가 이대로 반환된다면 정화 비용은 수천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한다.(▶관련기사:전문가들 “용산기지 정화비용 수천억 폭탄 우려”) 지난 10년동안 오염된 채 반환된 미군기지를 정화하느라 한국 정부가 쏟아부은 세금만 2038억원이다. 이제 겨우 반환을 약속한 기지 면적의 11%와 훈련장 등을 돌려받았을 뿐인데 그렇다. 용산 등 나머지가 반환된다면 ‘오염 정화 비용’으로 1조원 가까이 지출할 상황에 내몰린 셈이다.

미군이 사용중인 기지 주변의 오염 정화 비용도 한국이 덤터기 쓰고 있다. 법무부가 최근 정성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한국 정부가 지난 15년동안 ‘명백한 미군 책임’인 환경오염에 대해 미군에 61억원의 배상금을 청구했지만 묵살당해왔다. 지자체가 미군기지 주변 오염을 정화한 뒤 국가 상대 소송을 제기해 배상 판결이 확정된 14건, 79억원에 대해 미군에 75% 분담을 요구한 것이다.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이하 소파) 23조 5항은 ‘미군의 공무 중 발생한 손해에 대해 미국만이 책임이 있는 경우 금액의 25%를 대한민국이, 75%를 미국이 부담한다’고 규정한다. 그런데도 미군은 “군사시설의 통상적인 사용에 따른 피해는 면책된다”는 소파 5조 2항을 들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미군의 이같은 논리에 대해 법무부는 “시설의 위법한 사용으로 인한 손해에 대해서는 면책이 적용되지 않으며 법원의 최종 판결은 한미 두 나라가 따르도록 되어 있다”고 반박했다.

그동안 한국 정부가 28차례의 민사청구권 분과위원회와 실무자 회의를 통해 미군기지 주변 환경정화 비용 배상을 요구했지만 미군은 꾸준히 무시해왔다. 법무부는 “국가 간 협상이어서 양쪽 의견이 다를 경우 이를 강제할 방법이 없어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송기호 변호사는 “이미 2001년 헌법재판소가 소파 규정이 미군에게 환경 오염 권한을 부여한 것은 아니라는 결정을 내렸다”며 “미군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등 법무부가 보다 강도높은 대응을 해야한다”고 말했다.

임지선 임인택 조일준 최현준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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