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802417.html

주한미군, ‘기지 이전’에 분담금 돌려쓰고…미 “분담금 더 내라” 압박
등록 :2017-07-12 05:00 수정 :2017-07-12 15:31

[미군기지이전 잃어버린 10년] ③ 방위비 분담금 전용 논란
미군 사령관 “LPP는 100% 미국 부담인데 8%만”
한-미 정부 “합의” 불구, 국회 비준때 보고도 안돼
미 “기지 이전에 사용해 분담금 부족…증액 불가피” 
시민사회 “분담금 협정에 위배…국가재정법 무시”

“우리는 동맹국 방어 차원에서 주한미군 비용의 공정한 분담을 위해 (한국과) 협력하고 있다. 방위비 분담은 매우 중요하며, 특히 (미국의) 현 정부에서 갈수록 중시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정상회담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앞으로도 줄곧 한국의 방위비 증액을 압박할 것임을 내비쳤다. 방위비 분담금이 새삼 한-미 동맹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여기에다, 주한미군의 평택 이전이 최초 계획보다 10년 가까이 늦어지고 이전 비용이 크게 늘면서, 미국이 부담키로 한 이전 비용의 ’방위비 분담금 전용’을 둘러싼 논란도 잦아들지 않고 있다. 미국의 최근 문건에서조차 원칙과 ’모순된 현실’이 드러날 정도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각) 미국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문재인 대통령과 정상회담 뒤 공동 언론발표에서 한국의 방위비 증액을 압박할 뜻을 밝히고 있다.  워싱턴/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지난달 30일(현지시각) 미국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문재인 대통령과 정상회담 뒤 공동 언론발표에서 한국의 방위비 증액을 압박할 뜻을 밝히고 있다. 워싱턴/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지난 4월말 빈센트 브룩스 주한미군 사령관은 미국 상원 국방위원회에 제출한 서면 증언에서, 주한미군 2사단 예하 부대들의 한국내 재배치 비용을 ‘미국이 전액 부담한다’면서도 실제 미국이 들이는 비용은 거의 없을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용산 미군기지 이전(YRP)의 새 시설 비용은 한국이 100% 부담하고, 연합토지관리계획(LPP·엘피피·주한미군 2사단 이전)에 따른 비용은 미국이 100% 부담한다. 두 프로젝트의 총비용은 108억달러(약 12조4000억원)로, 이 중 단지 8%만 미국이 부담한다. 엘피피는 미국의 책임임에도, 대부분의 엘피피 관련 공사에는 (한국이 제공한) 방위비 분담금을 사용한다.”

미국 의회조사국(CRS)이 지난 5월말 펴낸 <미국-한국 관계>라는 보고서에는 브룩스 사령관의 위 서면 증언을 인용하면서 주한미군 기지 이전의 지연과 비용 증가 책임을 한국 쪽에 돌리는 듯한 내용도 언급돼 있다.

’증액 압박’과 ’전용 논란거리’가 된 방위비분담금은 한-미 양국 정부가 1991년부터 2~5년 주기로 갱신해온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에 근거해 한국 정부가 매년 주한미군에 제공하는 현금과 현물 지원을 뜻한다. 지원 항목은 주한미군이 고용하는 한국인 인건비(현금), 군사건설비(현금+현물), 군수 비용(현물) 등 세 가지 분야다. 이는 ‘시설과 구역’을 제외한 미군의 모든 비용을 미국 쪽이 부담하도록 한 ‘주한미군주둔군지위협정(SOFA, 이하 소파) 5조 규정의 ’예외적 조처’다. 올해 분담금은 9507억원으로, 9차 협정(2014~2018년)의 적용을 받는다.

빈센트 브룩스 주한미군 사령관. 위키피디아
빈센트 브룩스 주한미군 사령관. 위키피디아

주한미군은 자국이 부담키로 한 엘피피 기지이전 비용을 한국의 분담금에서 쓰는 게 문제가 안된다는 태도다. 기지이전 비용이 분담금의 용도 중 ‘군사건설비’ 부문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도 미군의 분담금 전용 사실이 공개된 이듬해인 2008년 이후 줄곧 양국의 합의가 있었다면서 미국 쪽 주장을 뒷받침하는 설명을 되풀이 해왔다. 2008년 10월 이상희 국방장관은 “(방위비 분담금의 엘피피 사용은) 2000년부터 이미 양국 정부가 양해했던 사항으로, 그대로 가야 한다는 것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2009년 2월 외교통상부도 “국회의 의견에 따라 정부는 미국 쪽과 이 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했으며, 그 결과 ‘분담금의 엘피피 사용이 불가피하다’는 기존 결론을 재확인했다”는 설명 자료를 냈다. 이런 한국쪽 입장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국방부 공보담당관은 최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이 문제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은 이전과 달라진 게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2000년 한·미 간 양해’는 국방부 공식문서로 작성된 적이 없다. 2002년 국회의 엘피피 협정 비준 동의안 심의과정에서도 보고조차 되지 않은 채 이후 ‘관행’으로 이어졌다. 법적 구속력에 의문이 있다는 얘기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미군문제연구위원장인 하주희 변호사는 “엘피피 협정은 기지 이전 사업만을 위해 분담금 협정과는 별개로 맺은 조약이므로, 엘피피 비용을 분담금에서 쓰는 것은 지원금의 사용처를 정한 분담금 특별협정에 위배된다”고 말했다.



방위비 분담금 전용에 대한 ‘사전 합의’ 논란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7년 1월18일 버웰 벨 당시 주한미군 사령관은 서울 외신기자클럽에서 깜짝 발언을 했다.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을 경기도에 주둔 중인 미 2사단의 평택 이전 비용으로 쓰겠다는 것이었다. 한국 정부는 즉각 미국 쪽에 강하게 항의했다. 그런데, 정부가 따진 것은 미군의 분담금 전용 방침이 아니라 그런 사실을 발설한 행위였다.

이는 다음날 주한미국대사관이 본국에 보낸 ‘한국 외교부, 벨 장군의 공개발언에 항의’라는 제목의 비밀 전문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외교통상부의 조병제 북미국장은 벨 사령관의 공개석상 발언을 두 가지 측면에서 강력히 항의했다 … 둘째로 더 심각한 것은, 방위비분담금 특별협정으로 한국 정부가 지불하는 돈의 일부가 미 2사단의 이전 비용에 전용될 것이라는 ‘폭발력 있는’ 언급이다. 이런 합의는 한국의 국회나 국민에게 아직 설명되지 않은 사안이다. 벨 사령관의 발언은 국회의 방위비분담금 협정 비준을 어렵게 할 수 있다.”

앞서 2002년 미국은 경기도에 어지럽게 흩어진 미 2사단 기지들을 통폐합해 재배치하려는 자체 계획에 따라 한국과 연합토지관리계획 협정을 맺은 참이었다. 2004년에는 한국 쪽의 요구로 서울 용산 미군기지 계획 협정이 추가됐다. 당시 한국 정부는 국회에 미군기지 재배치 계획을 설명하면서 용산 기지 이전 비용은 한국 쪽이, 미 2사단 이전 비용은 미국 쪽이 부담한다는 ‘원인제공자 부담 원칙’을 밝힌 바 있다. 실제로 엘피피 협정의 부록과 부속서는 이전에 따른 폐쇄 예정 기지 28개 중 미국이 15개 기지의 대체시설 자금을 지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2007년 1월 당시 버웰 벨 주한미군사령관이 용산 미군기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미군기지 재배치 사업의 미국 쪽 비용을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으로 쓰겠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다. 강창광 기자
2007년 1월 당시 버웰 벨 주한미군사령관이 용산 미군기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미군기지 재배치 사업의 미국 쪽 비용을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으로 쓰겠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다. 강창광 기자

하지만 이 원칙을 깨면서 방위비 분담금을 엘피피에 전용하고 있는 미국은 한술 더 떠 이를 근거로 한국에 대한 분담금 증액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삼고 있는 실정이다. 2013년 4월 미국 상원 군사위원회가 낸 <미국의 해외 주둔군 지원 비용과 동맹국들의 분담> 보고서는 “한국의 분담금이 미국의 비용 상승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보고서는 “한국이 제공하는 주둔국 지원 대금으로 엘피피 비용의 상당액을 지불할 계획인데, 이 때문에 미국의 다른 지출에 쓸 한국의 펀딩(분담금)이 줄어든다”며 “미국의 비용(증가)에 보조를 맞추려면 한국의 분담금 증액이 불가피하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미국의 이런 주장에는 그 이듬해부터 적용된 9차 방위비분담 협정(2014~2018년) 협상을 앞두고 한국의 분담률을 높이려는 셈법이 깔려 있었다. 8차 방위비분담 협정(2009~2013년) 때 양국은 매년 인상률을 ‘전년도 대비 물가상승률 4% 상한’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9차 협정 첫 해인 2014년 분담금은 9200억원으로 전년 대비 5.8%나 늘었다.

시민사회와 군사전문가들 사이에선 미국의 요구가 무리인데다 분담금의 엘피피 전용에 대한 한미 ‘합의’란 것도 원인무효라는 주장이 나온다. 예비역 중령 출신인 김동엽 경남대 교수는 “방위비 분담금은 주한미a군의 주둔 경비 일부를 한국이 지원하는 것으로, 미군 재배치 비용과는 전혀 다르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10차 방위비 분담 협상이 시작될 내년에도 1차년도의 협상이 매우 중요하다”며 “미군의 분담금 사용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의 박석진 활동가는 “미국이 방위비 분담금의 미집행액을 쌓아둔 채 이자 수익을 얻고, 분담금을 엘피피 비용으로 쓰는 것은 국가 예·결산의 투명성과 건전성을 규정한 우리나라 국가재정법을 무시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주한미군은 용산 기지의 평택 이전을 올해 말까지, 나머지 부대의 이전은 내년까지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한·미 양국에서 새 정부가 출범한 올해, 방위비 분담과 주한미군 기지 이전 비용을 둘러싼 또 한번의 샅바 싸움은 이미 시작됐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Posted by civ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