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bar/803345.html?_fr=mt2

효자동 수색작전…캐비닛을 열어라
등록 :2017-07-18 21:02 수정 :2017-07-18 22:25

정치BAR_
‘박근혜 문건’ 찾으러 나선 청와대


지난 3일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발견된 전임 정부의 기록물들을 국정기록비서관실 관계자가 14일 오후 청와대 민원실에서 대통령기록관 관계자에게 이관하고 있다. 사진 청와대 제공
지난 3일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발견된 전임 정부의 기록물들을 국정기록비서관실 관계자가 14일 오후 청와대 민원실에서 대통령기록관 관계자에게 이관하고 있다. 사진 청와대 제공

청와대가 대대적인 ‘수색작전’에 돌입했습니다. 바로 전임 정부가 남기고 간 서류 찾기입니다. 16일부터 청와대 집무공간마다 민정수석실과 총무비서관실 직원들이 들이닥쳐 캐비닛과 서랍을 모조리 열어보고 있습니다. 이미 각 실무자들이 한차례 뒤진 뒤이지만, 혹시나 책상 서랍 뒤로 넘어간 종이는 없는지도 꼼꼼히 뒤집니다. 덩달아 시설관리 직원들도 분주합니다. 뒤지는 김에 망가진 책상이나 집기는 새로 배치하기도 하고, 늘어난 인원에 따라 책상을 더 들여놓기도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 청와대 수색작전, 어떻게 시작됐나

박수현 대변인이 14일 오후 청와대에서 고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자필로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메모 원본을 공개하고 있다.이 메모는 사용하지 않던 민정수석 비서관실내 사정비서관이 사용하던 공간에서 발견되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박수현 대변인이 14일 오후 청와대에서 고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자필로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메모 원본을 공개하고 있다.이 메모는 사용하지 않던 민정수석 비서관실내 사정비서관이 사용하던 공간에서 발견되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지난 14일, 박수현 대변인은 “민정수석비서관실 캐비닛에서 전임 정부의 회의문건·검토자료 등이 섞인 서류 뭉치를 발견했다”고 밝혔습니다. 삼성 경영권 승계 지원 방안, 문체부 블랙리스트, 지방선거 초반 판세 및 전망 등 ‘민감한’ 현안을 다룬 서류들이어서 발칵 뒤집혔습니다. 이전 정부는 최순실 국정농단사건과 맞물려 불리하게 작용할 만한 과거 회의자료 등을 모두 파기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었는데, 일부가 모습을 드러낸 것입니다.

2013년 3월부터 2015년 6월까지 민정수석실에서 작성했거나 수집한 것으로 보이는 이들 문건 중에는, 고 김영한 민정수석의 필체로 보이는 메모도 들어 있었습니다. 국사교과서 조직적으로 추진하라, 애국단체와 우익연합 쪽으로 전사들을 조직하라는 내용의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청와대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삼성경영권 승계 지원을 짚고 있는 박영수 특검 쪽에 이 서류들의 사본을 넘긴 상황입니다.

청와대가 공개한 고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자필로 작성한것으로 보이는 메모 원본. 청와대 사진기자단.
청와대가 공개한 고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자필로 작성한것으로 보이는 메모 원본. 청와대 사진기자단.

이 문서는 어쩌다가 모습을 드러냈을까요? 지난 3일, 청와대 민정 수석실은 인원이 점점 충원되면서 책상을 더 집어넣을 자리가 부족해지자, 캐비닛을 한쪽으로 옮기고 책상을 재배치하기로 했습니다. 문제의 비서관실은 규모가 꽤 큰 편이어서, 여러명이 쓸 수 있는 공간을 가구나 집기 등으로 분리해 민정 부문과 사정 부문으로 나누어 둔 상태였습니다. 다만 문재인 정부 때는 인원이 적어 처음에 민정 쪽 공간에만 사람들이 앉아있었습니다. 여민관 집무실에는 공간마다 최소 2~3개 이상의 캐비닛이 배치돼 있었는데, 나무로 만들어진 어른 가슴~어깨 높이의 캐비닛으로 옷장처럼 문을 잡아당겨 열고 열쇠로 잠글 수 있는 형태입니다. 어른 둘이 옮기면 충분히 들 수 있는 크기입니다. 그런데 유독 하나의 캐비닛만 무거워서 잘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잠겨 있기에 사람을 불러 열었더니, 뜻밖에도 중요한 서류들이 쏟아졌습니다.

청와대 관계자는 18일 “조금씩 크기나 모양은 다르지만 대체로 어깨 높이의 캐비닛들이 청와대 여민관 집무공간 곳곳에 놓여 있다”고 밝혔다. 사진은 청와대 춘추관 안에 놓여있는 유사한 캐비닛의 모습.
청와대 관계자는 18일 “조금씩 크기나 모양은 다르지만 대체로 어깨 높이의 캐비닛들이 청와대 여민관 집무공간 곳곳에 놓여 있다”고 밝혔다. 사진은 청와대 춘추관 안에 놓여있는 유사한 캐비닛의 모습.

■ 곳곳에서 쏟아지는 문서들… 18일 현재 3차 발견

문건 분석 및 그에 따른 법리적 검토를 마친 청와대는, 자필 메모와 일부 문건의 제목을 14일 언론에 공개하기로 방침을 정했습니다. “마침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 순방을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고, 주요20개국정상회의(G20) 참석차 독일 순방 준비에 바쁜 때여서 결정에 시일이 더 걸린 측면도 있다”고 청와대 관계자는 열하루가 소요된 까닭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14일 오후 3시 반 춘추관에서 박수현 대변인이 기자들을 불러모으기 앞서, 조국 민정수석은 3시께 각 수석실에 문건 발견 사실을 알리고 각 사무실마다 혹시 들여다보지 않은 공간에 서류들이 있는지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각자 집기를 뒤져 보던 중, 오후 4시께 정무수석실 내 정무기획비서관실 입구 쪽 행정요원 책상 하단에 있던 잠겨있던 서랍식 캐비닛에서 또다시 1361건의 문건이 나왔습니다.

‘2차 발견’된 서류 중엔, 삼성과 문화계 블랙리스트는 물론, 각종 시국 현안과 관련한 언론 활용 지침과 위안부합의 내용 등이 담긴 정책조정수석실이 작성한 수석비서관회의 결과 자료(2015년 3월~2016년 11월)가 있었습니다. 이미 14일 기자회견을 마친 뒤라, ‘2차 발견’ 언론 발표 시점을 언제로 잡아야 할지를 놓고 16일 일요일 열린 상황회의에서 열띤 토론이 벌어졌습니다. 임종석 비서실장은 “공개 시점이 늦춰지면 정치적 의도를 갖고 오래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도 있고, (추가 서류가) 더 발견 안 되리라는 보장도 없으니 나오는 대로 바로바로 발견 사실을 공표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박수현 대변인은 17일 오후 다시 기자회견을 열어 “추가 점검 중 다량의 문건을 발견해 현재 분류와 분석 작업중”이라고 밝혔습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총무비서관실이 본격적인 전수 조사에 착수하면서, 추가문건 발견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18일 저녁 청와대는 현재 청와대 국가안보실과 국정상황실에서도 박근혜 정부 때의 문건들이 무더기로 발견됐다고 ‘3차 발견’ 사실을 밝혔습니다. 이번 정부 때 다시 만들어진 국정상황실은 이전 정부에서 기획비서관실이 있던 사무실을 집무공간으로 씁니다. 청와대는 추가 문건의 발견 위치와 내용에 대해서 19일 기자회견을 열 예정입니다.

■ “발견 뒤 바로 공표” … 계속해서 늘어날 가능성

서류는 어떻게 첫 두 달간 발견되지 않았던 것일까요? 청와대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청와대 내의 집무 공간이 워낙 넓고, 인원 충원이 제때 이뤄지지 않아 손이 닿지 않는 공간들이 많았다“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에서 민정비서관으로 일했던 조응천 의원은 당시 민정비서관실의 구조가 “박근혜 정부에서 민정의 인원이 많아 다른 비서관실 몇개를 합쳐놓은 (크기의) 사무실이었고 민정팀과 사정팀이 중간에 간유리로 갈려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청와대의 보좌진들이 모여 일하는 여민관은 무려 3동의 건물로 이뤄져 있는데 민정수석실은 이 가운데 여민2관에 있습니다. 인수인계 기간이 없었던 문재인 정부 초기, 민정수석실 등의 재배치 없이 전임 정부 때 분리해 놓은 사무실 구조를 그대로 활용했지만 민정 쪽 자리만 썼습니다. 3일 서류가 발견된 어른 어깨 높이의 나무 캐비닛은 사정 쪽 공간에 놓여 있는데다, 사무실마다 배치된 흔한 형태여서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았다고 합니다.

현재 청와대에서 일하는 실무진은 “옷장처럼 문을 당겨서 여는 형태로, 잠글 수 있다. 보통 생각하는 커다란 회색 철제 캐비닛이 아니라, 성인의 가슴~어깨 정도의 높이이고 나무 소재다. 이 형태의 캐비닛은 청와대 집무공간마다 많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참여정부 때 일했던 허성무 전 청와대 비서관은 “제가 일할 당시 쓸 수 있는 캐비닛이 3개가 있었다. 서랍용 캐비닛이 있고, 일반적으로 우리가 쓰는 철제캐비닛이 있고, 그 다음에 앞에 목재로 된 게 자그마한 게 있었는데 실제 그런 걸 다 제가 열어보고 그러지 않았다”고 18일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말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3일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발견된 전임 정부의 기록물들을 국정기록비서관실 관계자가 14일 오후 청와대 민원실에서 대통령기록관 관계자에게 이관하고 있다. 사진 청와대 제공
지난 3일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발견된 전임 정부의 기록물들을 국정기록비서관실 관계자가 14일 오후 청와대 민원실에서 대통령기록관 관계자에게 이관하고 있다. 사진 청와대 제공

■ “왜 떨어뜨려 놓고 가서…”

초기 인력 충원과 자리 배치 등으로 어수선했던 점은 ‘시설 파악’이 늦었던 주요한 이유 중 하나로 꼽힙니다. “지금 가구도 보면 홍보수석실 가구가 정무실에 가 있는 등 난리도 아닌” 상황이 이어졌다는 겁니다.

14일 두번째 문건 더미가 발견된 장소는 정무수석실 행정요원, 즉 청와대 인턴이 책상 아래 놓고 쓰던 낮은 서랍식 캐비닛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동이 수월한 서랍식 캐비닛은 정부가 바뀌고 책상 등을 재배치하는 과정에서 이리저리 섞여 움직이기도 해 꼭 이 자리의 주인이 관리한 서류였는지는 알 수 없다고 청와대 쪽은 설명했습니다. 이 책장은 정무비서관실 입구 쪽에 있었고, 아무도 쓰지 않아 서랍까지 꼼꼼히 챙겨보는 사람이 드물었기에 잠긴 채 방치돼 있었다고 합니다. 문재인 정부는 청와대 인턴을 뽑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참여정부 때 경험이 없는 당 출신 실무진들이 청와대 살림살이에 익숙해지는 데도 시간이 걸렸습니다. 문 대통령이 초기에 실무자들보다도 청와대 시설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는 청와대 관계자들 사이에 널리 회자된 바 있습니다. 참여정부 민정수석 시절에 문 대통령이 쓰던 원탁 테이블을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는 쓰지 않고 치워뒀는데, 문 대통령이 “원탁은 어디 있느냐” 물어도 청와대 사람들 아무도 모르는 통에 문 대통령이 직접 보관돼 있을 법한 장소를 지목하며 그 곳을 찾아보라고 지시해 화제가 됐었습니다. 청와대 사정을 잘 아는 문 대통령이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한편 참여정부 출신 인사들은 과거 ‘e-지원’과 같은 전자결재시스템으로 작성자와 작성시점까지 회의 체계로 기록되는 데 익숙했기에, 박근혜 정부가 청와대DB를 삭제한 상황에서 뭔가가 남아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크게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17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대통령 주재 수석 보좌관회의에서 임종석 비서실장이 지각을 하자 문재인 대통령이 웃으며 쳐다보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17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대통령 주재 수석 보좌관회의에서 임종석 비서실장이 지각을 하자 문재인 대통령이 웃으며 쳐다보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 ‘나라를 구한 인턴’이 흘렸나?

문서파쇄기를 대량 구매하고 전자서류는 ‘디가우저’까지 이용해 삭제(▶관련기사 보기 : 청와대, 작년 9월부터 문서파쇄기 26대 구입…증거 인멸 했나 ) 했던 박근혜 정부가 왜 이렇게 서류 관리에 엉망이었는지는 의문으로 남습니다. 청와대 쪽은 “남겨진 경위는 알 수 없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어수선한 탄핵 정국에서 청와대 직원들이 문서들을 미처 꼼꼼히 정리하고 떠날 경황이 없었을 것이라는 추론이 대세를 이루고 있습니다. 복사 등을 통해 아랫사람에게도 공유된 문서를 하나하나 챙기기도 쉽지 않은데다, 문서에 직접 책임이 있는 생산자가 아닌 바에야 ‘끈 떨어진’ 정부에서 서류를 제대로 처리해야 한다는 책임의식도 떨어졌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일각에선 누군가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실상을 알리기 위해 일부러 문서들을 ‘타입 캡슐’처럼 남겨두고 떠난 것이라는 ‘의인설’도 나옵니다. 누리꾼들은 ‘나라를 구한 인턴’과 같은 우스갯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전임 정부 출신들은 ‘헌납설’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때 청와대에서 일했던 이건용 전 부속실 행정관은 18일 페이스북을 통해 “공무원 조직이 서류 남기고 떠날만큼 허술하지 않다. 청와대에서 문건을 발견했다기보다는 소위 문재인 정부에 충성맹세를 하고자 하는 인물이 문건 일체를 갖다바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청와대 쪽은 ‘정치 공세’로 해석되는 것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청와대 관계자는 발견 뒤 바로 언론에 공개하겠다며, “어떠한 정치적 고려도 없다. 어떤 것을 발견했는데 정치적 영향을 미칠지부터 판단하는 게 정치적 고려이고 해서는 안될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언제 끝날지는) 저희도 모른다. 왜 전 정부는 잘 정리를 하지 않고 떨어뜨려놓고 가서 우리가 설거지를 하게 만드는지 모르겠다”고 ‘항변’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이번 ‘문건 정국’이 적폐 청산을 외치는 문재인 정부에 보다 힘을 실어줄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해 보입니다.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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