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8102209025

보수단체 ‘자취방’ 된 남대문경찰서 민원실
정희완·김찬호 기자 roses@kyunghyang.com 입력 : 2017.08.10 22:09:02 수정 : 2017.08.10 22:24:20 

ㆍ“진보단체가 대한문 앞 집회 신고하나 감시”
ㆍ이불·선풍기 놓고 컵라면 먹으며 매일 3교대

지난 9일 서울 남대문경찰서 민원실에서 보수단체 회원 정모씨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지난 9일 서울 남대문경찰서 민원실에서 보수단체 회원 정모씨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서울 남대문경찰서 민원실 한쪽에는 작은 ‘자취방’이 있다. 민원인용 의자엔 이불이 쌓여 있고, 의자 밑에는 컵라면 박스가 있다. 선풍기·슬리퍼·우산·부채 등도 눈에 띈다. 구석에는 투명 서랍장도 있다. 한쪽 벽에는 ‘국민교육헌장’이 붙어 있다. 지난 5월부터 박근혜 전 대통령을 옹호하는 보수단체 회원들이 상주하며 만들어진 풍경이다. 

지난 9일 오전 남대문경찰서 민원실에는 보수단체 회원 정모씨(32)가 나와 있었다. 보수단체 회원들은 하루에 3교대로 이곳을 지킨다. 그는 “ ‘태극기집회’가 열리는 덕수궁 대한문 앞을 사수하기 위해 이곳에 있다”며 “이곳에 머물면서 진보단체가 대한문 앞 집회를 신고하는지도 감시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들의 행위는 보수우파의 애국심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벽에 국민교육헌장을 붙여 놓은 것을 두고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존경의 의미”라고 했다. 정씨는 점심은 주로 남대문서 구내식당에서 해결한다. 보수단체에서 식권을 제공해준다고 했다. 정씨는 “나는 여러 보수단체에 가입돼 있어 하나를 특정할 수 없다”며 “보수단체 회원들이 있는 카카오톡 단체방이나 네이버 밴드 등에 초대되면 회원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후 5시쯤 정씨는 손모씨(47)와 교대했다. 자신을 자원봉사자라고 소개한 손씨도 “남대문서 민원실을 지키는 이들이 모인 단체대화방이 있다”며 “거기서 자신이 가능한 시간을 확인하고, 그 시간에 자발적으로 나오니 자원봉사”라고 말했다. 손씨는 “박 전 대통령이 풀려나도 문재인 대통령을 성토하는 집회를 대한문에서 해야 한다”며 “민원실 점거는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오후 10시부터 10일 오전 7시까지 민원실을 지킨 윤모씨(53)는 어머니 상을 치른 지 4일째임에도 이곳에 나왔다. 그는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경황이 없지만 민원실을 지키겠다는 사람이 없어 왔다”며 “박 전 대통령이 탄핵된 것을 보고 그때 내가 지켜주지 못해 자책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9일 자정쯤 집회를 주최하는 ‘태극기혁명국민운동본부’ 관계자가 집회 신고를 위해 경찰서를 찾았다. 그는 “매주 토요일에 있는 집회를 위해 수요일 저녁이면 남대문경찰서를 와야 한다”고 했다.

민원실에서 기거하는 이들을 보는 경찰관과 다른 민원인들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다. 이들이 컵라면 등을 먹으면서 경찰서에 음식 냄새가 나기도 하고, 음식물 찌꺼기를 화장실 세면대에 버려 경찰이 경고를 하기도 했다. 지난 6월에는 보수단체 회원들이 민원실에서 숙식하며 나온 쓰레기를 남대문서 쓰레기통에 무분별하게 버려 경찰이 제지하기도 했다. 윤씨는 “그 후에 우리가 만든 쓰레기는 직접 다 싸서 가져간다”고 말했다. 경찰은 집회 신고를 하러 왔다는 이들을 퇴거시킬 명분이 없어 지켜볼 수밖에 없는다는 입장이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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