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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TV는 아직도 MB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기금고갈·예산삭감, 예산 80억 이상 줄어들며 거리로 나선 아리랑TV 구성원들…문체부 산하기관·방통위 재정지원 ‘이원적 구조’ 해결할 아리랑국제방송원법 필요
장슬기 기자 wit@mediatoday.co.kr 2017년 09월 05일 화요일

아직 ‘이명박 그림자’ 속에서 신음하는 언론인들이 있다. 외국어로 한국 문화 홍보를 담당하는 아리랑국제방송(아리랑TV)이다.

방석호 전 아리랑TV 사장은 지난해 2월 ‘호화 외유’ 비판이 나오자 물러났다. 문재완 한국외대 로스쿨 교수가 지난해 6월 후임 사장으로 왔다. 문 교수는 이명박 정권 당시 대통령실 방송통신정책자문위원, 국회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 위원,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 구여권 추천 이사 등을 역임했다.

이 때문에 취임 당시부터 부적절한 인사라는 지적이 나왔다. 방 전 사장 역시 이명박 정권 여당 추천으로 KBS이사와 정보통신정책연구원장을 지낸 청와대 낙하산 인사였다.  

조준희 전 YTN 사장이 회사를 떠나고, 고대영 KBS 사장·김장겸 MBC 사장 퇴진 요구가 나오면서 ‘문재완 사퇴설’이 돌았다. 문 전 사장은 지난달 24일 홀연히 회사를 떠났다. 사장 취임 1년2개월 만이다. 

▲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아리랑국제방송 본사. 사진=장슬기 기자
▲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아리랑국제방송 본사. 사진=장슬기 기자

문 전 사장이 떠나자 김상훈 인하대 언론정보학과 교수가 사장 직무대행을 맡았다. 김 사장 직무대행은 이명박 정권인 2008년부터 2011년까지 대통령실 방송통신정책자문위원을 지냈다. KBS·MBC 언론인들이 제작 중단과 총파업을 통해 ‘방송 정상화’라는 흐름을 만들었지만 아리랑TV는 거꾸로 흘러가고 있다. 

아리랑TV 예산 턱없이 부족해

아리랑TV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건 2018년 아리랑TV 재정이 80억 원 이상 삭감되면서부터다. 아리랑TV는 1999년(국내방송 개국 시점은 1997년) 정부가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국 문화 홍보를 목적으로 국제방송교류재단 기금 700억 원을 통해 설립했다. 하지만 2004년부터 매년 60억 원이 넘는 당기순손실을 낼 정도로 재정 구조가 취약하다.  

2017년 기준 한해 예산은 584억 원이다. 이마저도 지난해 619억 원 대비 5.7% 감소한 금액이다. 이 중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에서 방송통신발전기금(방발기금)으로 받는 돈이 369억 원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에 있는 아리랑TV가 약 60% 재원을 방통위로부터 받는 이원적 구조가 경영 불안을 가져왔다. 자체 수입은 172억 원(지난해 대비 17.9% 감소)이고, 42억 원은 국제방송교류재단 기금을 통해 충당한다. 아리랑TV가 자체수입으로 충당할 수 없는 부분은 재단 기금을 까먹으며 버텨온 것이다.

내년이면 출범 당시 700억 원이었던 이 기금이 고갈된다. 국제방송교류재단 기금에서 매년 끌어왔던 약 50억 원마저 나오지 않을 예정이다. 부족한 예산 탓에 콘텐츠 제작비용을 끌어다 임금을 줘야한다. 게다가 방통위가 기획재정부에 재정사업평가 결과 ‘방송 인프라 예산이 효율적으로 쓰이지 못했다’고 보고해 ‘미흡’ 판정을 받았다. 이로 인해 방발기금 10%(약 37억 원)가 삭감됐다.  

아리랑TV TV편성팀이 지난달 내놓은 자료를 보면 내년 정규 TV프로그램 제작예산 가운데 약 82억 원 정도가 삭감된다. 뉴스 1083편, 교양·다큐 479편, 음악·오락 626편 등 프로그램 2188편 축소를 예상했다. 일부 뉴스를 제외하고 모든 시사·교양 프로그램이 폐지되는 것이다.  

제작 예산에는 아리랑TV 정규직이 아닌 프리랜서·파견인력 인건비도 포함돼 있다. 뉴스·시사제작 63명, 다큐·재제작 118명 등 TV·라디오 총 313명 감축을 예상했다. 예산이 부족한 탓에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해 인력이 줄면 다시 프로그램 양과 질이 떨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새 정부가 논의하는 공공기관 정규직화는커녕 비정규직 수백 명이 실직 위기에 놓이게 됐다. 

국내 방송사업자 등과 채널 사용 계약을 할 때 아리랑TV 본방송 비율을 지켜야 한다. 인력감소로 이를 어기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 이 경우 국내에선 방통위의 채널평가결과 최하등급(E등급)이 예상된다는 우려가 나온다. E등급이 지속되면 채널이 사라질 수도 있다. 해외플랫폼과는 재계약이 안 될 수 있어 위약금을 물거나 법적 분쟁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일각에선 아리랑TV 제작 여력이 부족할 경우 타 방송사 프로그램 중 영어더빙·자막을 입혀 대체하면 되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다. KBS ‘뮤직뱅크’·MBC Everyone ‘주간아이돌’ 등 일부 프로그램은 해외 각국에 독점 방영권을 수출하고 있어 전 세계 방영권 확보가 불가능하다는 게 아리랑TV 측 설명이다.  

또한 국내 뉴스·시사교양 프로그램 등은 국내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외국인들이 이해하기도 어렵고 영어로 제작해도 전달력이 떨어져 기존 아리랑TV 프로그램을 대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해외 국제방송사는 어떨까? 

전국언론노동조합 아리랑국제방송지부(지부장 김훈)는 최근 도종환 문체부 장관에게 이런 글을 보냈다.  

“2007년 고이즈미 전 총리 지시로 3개월간 아리랑TV를 연구해간 일본NHK 산하 방송문화연구소에선 ‘영향력이 일본보다 월등히 앞선다’고 보고했고 이후 일본 정부는 NHK World에 대대적인 투자를 시작했습니다. 10년이 흐른 지금, NHK World는 아리랑TV보다 3배가량 많은 전 세계 3억여 수신 가구를 확보했고, 자신들의 시각으로 ‘독도’ ‘위안부’ 등을 전 세계에 확산시키고 있습니다. 한참이나 뒤쳐져있던 일본의 추월을 바라봐야 하는 것이 분하고 답답했습니다.” 

일본 NHK World는 2016년 기준 예산이 2634억 원으로 아리랑TV의 4배정도 된다. 20%는 정부지원금, 80%는 수신료를 통해 안정적인 재원을 확보했다.

▲ 해외 국제방송 재정과 법적 보장장치 비교표. 자료=언론노조 아리랑국제방송지부 제공
▲ 해외 국제방송 재정과 법적 보장장치 비교표. 자료=언론노조 아리랑국제방송지부 제공

한반도 주변국 여론전이 치열해지면서 국제방송 역할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중국 정부는 지난 1월1일 대대적인 지원으로 국제방송 CGTN(CHINA GLOBAL TELEVISION NETWORK)을 출범시켰다. 중국 CGTN의 한해 예산은 3조 원 수준이다. 100% 국고 지원이다. 남중국해·사드·양안 문제 등 국제 현안에서 중국 입장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기 위해서다. 아리랑TV는 중국 CGTN의 추월을 지켜보고 있다.

러시아 국제방송 Russia Today 2015년 예산은 3407억 원으로 역시 100% 국고에서 지원한다. 영국 국제방송 BBC World 3700억 원, 미국 국제방송 Voice of America 2458억 원, 프랑스 국제방송 France 24 3500억 원 등 주요 국제방송들은 정부가 정부지원금·수신료를 통해 예산을 보장한다.  

아리랑TV는 행사 광고, 지역 축제 홍보, 지자체 광고 심지어 영어 교육 사업에도 뛰어들어 재정 부족분을 마련해봤지만 국제방송 특성상 수익 사업이 쉽지 않다.

주요국 국제방송 재정이 탄탄한 이유는 정부가 국제방송을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다는 데 있다. 일본은 방송법, 중국은 방송TV 관련 규정, 프랑스는 시청각커뮤니케이션법·공영방송법 등을 통해 자국 국제방송을 육성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국제방송법이 없다. 민법 32조(비영리법인의 설립과 허가)에 따라 설치된 재단이다. 법에 아리랑TV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으니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사장을 문체부 장관이 임명한다. 태생부터 청와대 낙하산 인사가 가능하다.  

아리랑TV 별명은 ‘땡박뉴스’ 

아리랑TV은 개국 이래 언론사가 아닌 일개 공공기관처럼 다뤄졌다. 2001년 임명된 김충일 전 사장은 당시 여당인 새정치국민회의 수석부대변인 출신이었다. 2008년 임명된 정국록 전 사장은 이명박 당시 대통령 대선특보 출신이다. 2011년 임명된 손지애 전 사장은 이명박 정권에서 청와대 홍보비서관을 지냈고, 후임인 정성근 전 사장은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캠프에서 공보위원을 지냈다. 책임 있게 국제방송을 이끄는 자리가 아니었다. 대신 정권의 전리품처럼 여겨졌다. 지난 6월 우병우 전 민정수석 재판에서 장시호씨가 검찰에 “이모(최순실씨)가 아리랑TV 사장에 앉힐 사람을 추천하라고 했다”고 한 증언이 공개되기도 했다.  

김훈 아리랑국제방송지부장은 “문체부 장관이 사장을 임명하고 사장이 문체부 입맛에 맞는 방송본부장·경영본부장을 선임해 사실상 아리랑TV에서 세 자리는 문체부 몫”이라며 “비상임이사도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 26조에 따라) 문체부 장관이 임명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문체부 관계자는 1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아리랑 정관에 따라 문체부 장관이 아리랑TV 사장을 임명하게 돼 있지만 장관은 (임원추천위원회에서) 추천하신 분들 가운데 임명한다”며 “본부장들도 사장이 와서 채용하기 때문에 노조의 비판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이어 “아리랑TV는 다른 산하기관이랑 다르게 대하고 있다”며 “문체부가 어떻게 언론에 ‘이래라저래라’ 하겠느냐”고 덧붙였다.

사실상 청와대 낙하산 사장이 이끄는 방송은 국가홍보 방송사가 아닌 국정홍보 공공기관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게 김 지부장 생각이다. 그는 “뉴스, 대담, 다큐할 것 없이 보수세력 사람들만 내려오고 시민단체·예술인이 와도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이 주로 출연했다”며 “KBS·MBC가 권력에 장악 당했다고 하는데 아리랑TV는 더하면 더했다. 아리랑TV 별명이 ‘땡박뉴스’”라고 비판했다.  

아리랑TV 구성원들은 아리랑TV가 망가진 데 있어서 문체부 책임이 크다고 지적한다. 문체부는 주요 사업을 승인하는 등 운영 권한을 행사하지만 지난 20여 년 동안 아리랑TV의 이원적 구조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등한시했다는 것이다.

김 지부장은 “문체부는 아리랑TV 영향력을 키워나가는 데 관심이 없다”며 “오직 주무부처로서 권한을 뺏기지 않으려고만 한다”고 지적했다. 김환균 언론노조 위원장은 지난달 31일 “도종환 문체부 장관은 취임 이후 언론노조와의 면담에서 아리랑TV가 국가 홍보 방송으로서 차질 없이 역할을 수행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며 “그런데 그 약속이 (예산 삭감과 함께) 헌신짝처럼 버려졌다”고 비판했다.

▲ 8월31일 언론노조가 아리랑국제방송 본사 앞에서 고사 직전의 아리랑TV에 대한 해법을 문체부가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진=장슬기 기자
▲ 8월31일 언론노조가 아리랑국제방송 본사 앞에서 고사 직전의 아리랑TV에 대한 해법을 문체부가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진=장슬기 기자

지난달 31일 아리랑지부 조합원들은 연대 사업장들, 언론노조 등과 함께 문체부를 방문해 “고사 위기에 처한 아리랑TV 해법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김 지부장은 1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우리가 간다는 걸 도 장관에게 보고했다고 하던데 도 장관이 서울로 출근해 만나지 못했다”고 했다.  

문체부 관계자는 문체부에서 방통위로 주무부처를 이관하는 것과 관련해 “아리랑 TV 설립 목적은 국격을 높이고, 기사를 통해 한국 문화·관광 전반을 소개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주무부처 이관은 생각할 부분은 아니”라며 “다만 노력을 많이 했는데 결과가 예상처럼 나오지 않아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2017년 (문체부) 예산 가운데 (타 항목) 20억 원을 깎고 그 대신 아리랑TV 예산으로 책정해 기재부에 보냈는데 반영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문체부 관계자는 “법인화를 통한 예산 지원으로 명실상부한 국제방송이 되는 걸 우리도 희망한다”며 “관련 법안을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했고 국회에서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아리랑TV 구성원들은 공공기관 관련법이 아니라 KBS나 EBS처럼 해당 방송사를 위한 법인 ‘아리랑국제방송원법’이 국회에서 통과되길 바라고 있다.

아리랑국제방송원법, 통과 가능할까 

아리랑TV 구성원들은 10년 이상 국제방송법을 요구해왔다. 국회에서는 ‘아리랑국제방송원법’을 19대 국회에서부터 논의했다. 2013년 길정우 새누리당 의원이 해당 법을 발의했다. 이 법은 5년간 300억 원 가량의 예산을 지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지만 재원 출처가 다소 명확하지 않다는 한계를 갖고 있었다. 해당 법은 소관 상임위인 국회 교육문화관광위원회를 통과하고 법제사법위원회에 올랐지만 법안심사2소위, 즉 쟁점 법안으로 분류돼 결국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당시 법안 통과를 막은 핵심 세력은 새정치민주연합(현 민주당)이었다. 새정치연합의 2015 정책위원회 정책 현안 보고를 보면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아리랑국제방송원법 신중 검토 필요’라는 내용이 있다. ‘중대한 문제’가 있다는 이유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법안이 발의됐으니 2016년 2월 국회에서 함께 심사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당시 국회 미방위·교문위 소속 새정치연합 의원들이 만든 관련법은 새누리당 법안을 막기 위한 법안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송호창 새정치연합 의원은 2015년 12월3일 예정된 법안심사2소위 직전인 11월26일 대체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새정치연합이 가리키는 ‘중대한 문제’란 대통령이나 정부가 재외국민에게 국제방송을 통해 홍보 방송을 하는 것과 관련, ‘우리 당 입장에선 향후 총선 및 대선에서 재외국민 유권자들의 투표권 행사에 상당한 악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 우려된다’는 것이었다. 정치권의 이해관계가 국제방송의 발전을 가로막았다는 지적이 뒤따랐다.

20대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아리랑국제방송원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해당 법은 “국제방송교류재단(아리랑TV)의 해외 홍보 방송을 활성화하고 아리랑국제방송원으로 새로운 위상을 정립하기 위해 낙하산 사장 방지, 경비 지원 기관과 감독 기관의 일원화, 원활한 예산 확보 등을 위한 근거 규정 마련”을 법제정 이유라고 밝혔다. 방송 공정성·제작 자율성 확보를 위한 제도적 장치들도 명시했다. 

▲ 김훈 언론노조 아리랑국제방송지부장이 4일 정오부터 청와대 앞에서 아리랑국제방송원법 제정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아리랑국제방송지부 제공
▲ 김훈 언론노조 아리랑국제방송지부장이 4일 정오부터 청와대 앞에서 아리랑국제방송원법 제정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아리랑국제방송지부 제공

해당 법은 지난 국회 때보다 한 단계 진화했다. 발의한 지 1년이 지났지만 탄핵 정국 등을 겪으며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되지 않고 있다. 김장겸 MBC 사장 체포영장 발부에 반발한 자유한국당이 9월 정기국회 보이콧을 선언하는 등 이번 국회에서도 통과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김환균 위원장은 “정권이 바뀌었지만 아직 바뀐 게 없다”며 “노동자 생존권은 노동자가 쟁취해야 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언론노조 아리랑국제방송지부는 아리랑국제방송원법 통과 등을 위해 지난 4일부터 청와대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오는 11일부터 국회 앞 1인 시위도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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