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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담산성
예비 답사기 5 - 길림시1  
김용만 2017년 8월 21일 오후 8:32

서풍 성자산성을 답사 한 후, 길림시로 차를 타고 이동을 합니다. 길림시에서 두 번째 밤을 보내게 됩니다. 길림시에는 부여, 고구려, 요, 금 시대에 걸친 고분과 유적이 많습니다. 이곳은 만주족의 한 분파인 해서야인 4부족 가운데 으뜸인 울라 부족의 수도가 있던 곳이기도 합니다. 일본에 의해 장춘시가 개발되기 전까지 만주 중부지역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곳으로, 1954년까지 길림성의 성도(省都)였습니다. 길림시가 우리에게 친숙한 것은 이곳이 부여의 옛 도읍지로 알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부여(夫餘)는 <자치통감>에 녹산(鹿山)이 원 거주지로 나오는데, 이를 근거로 부여가 사슴을 뜻하는 말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 때문인지 길림시에는 사슴상이 도로 한 가운데 세워져 있습니다.

길림시에서 답사할 곳은 용담산성, 동단산성과 남성자유적, 그리고 길림시박물관입니다. 답사는 아침 8시에 용담산성부터 시작합니다. 용담산성은 송화강 동쪽 기슭에 솟은 용담산의 우묵한 분지 중심으로 산 능선을 따라 쌓은 성 둘레 2,396m입니다. 최고 높이 388m 용담산은 현재 길림시민의 휴식 공원으로 개발되어 있습니다. 답사는 성의 주출입문인 서문을 시작으로 답사를 하게 됩니다. 너비 14m의 서문은 문터 양측에서 토석혼축으로 축성한 성벽의 단면을 볼 수 있습니다. 문터 주변에는 성 안내문이 있는데, 중국측의 고구려 인식을 볼 수가 있습니다.

길림시는 부여의 초기 수도가 있던 곳으로 알려져 있고, 수도는 용담산 남쪽 남성자 유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용담산성은 부여의 수도 방어성, 또는 산성 역할을 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뚜렷하게 부여의 유물이 나온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고구려가 이곳을 차지한 이후에는 고구려 북부 방위의 중심성의 기능을 했다고 여겨집니다. 길림시 중심부를 지나는 송화강을 통제할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위치해 있고, 강 건너 삼도령자산성과 성 남쪽의 동단산성이 용담산성의 위성으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용담산성 위치도

성벽은 최고 10m까지 남아있는데 황토진흙과 응회암자갈을 섞어 쌓았고, 북문 부근에는 흙으로만 다져서 쌓았습니다. 성안의 중요시설로는 수뢰와 한뢰가 있는데, 수뢰는 동서 52.8m, 남북 25.8m의 크기의 큰 저수지로 용담이라 불립니다. 저수지 벽은 돌을 쌓은 계단식으로 축조되었습니다. 물의 양은 매우 풍부한 편입니다. 반면 산성 서남쪽에는 한뢰가 있는데 깊이 5~7m 직경 10.6m인 둥근 형태로, 자연바위로 이루어진 바닥이 경사면이어서 물이 고이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한뢰는 군수물자를 저장하는 시설로 판단됩니다. 성안에서는 기와, 벽돌, 활촉, 말등자, 도끼, 수레부속 등이 출토되었습니다.


용담산성 평면도

얼마 전 중국에서는 용담산성 앞에 ‘고구려인은 조선인이 아니다’는 안내문을 설치했고, ‘용담산 국가고고유지공원 개발 계획’을 세워 주변에 당나라 사신에게 무릎을 꿇으며 접견하는 발해왕의 동상을 세워 역사왜곡의 장으로 만들었습니다. 중국이 굳이 용담산성에 이런 상징물과 선전문구를 세운 것은, 이곳이 고구려의 사실상 발상지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현재 상황은 어떠한지를 이번 답사에서 보고자 합니다.

이날 볼 것이 많기 때문에, 용담산성은 서문, 성벽, 한뢰, 수뢰, 전망대 위주로 1시간 안에 답사를 마치고자 합니다. 그리고 버스로 20분 이동해서, 용담산성 남쪽 평지에 위치한 남성자유적과 동단산성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용담산성 표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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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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