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v.media.daum.net/v/20170913174553072
[취재파일] BBK의 진실, 주진우와 김경협의 폭로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임찬종 기자 입력 2017.09.13. 17:45 수정 2017.09.13. 17:55
BBK 사건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다시 불을 지핀 사람은 10년 전부터 이 사건을 추적하며 보도하고 있는 시사인 주진우 기자다. 거기에 최근 더불어민주당 김경협 의원이 이른바 '50억 송금 기록'을 공개해 의혹을 증폭시켰다. 그러나 BBK 사건이 워낙 복잡해서 사건의 얼개를 이해하지 않는 사람은 새로운 의혹제기 의미를 정확하게 평가하기 어렵다. 주진우 기자와 김경협 의원의 폭로가 어떤 점에서 의미가 있고, 어떤 점에서 그렇지 않은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이 취재파일은 최근 다시 불거지는 BBK 관련 의혹의 정확한 의미를 최대한 쉽게 설명하기 위해 작성됐다. 어떤 예단도 없이 입수 가능한 객관적 정보를 가지고 판단하기 위해 노력했다. 성공할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시작해보자.
주진우 기자(왼쪽), 김경협 의원(오른쪽)
● BBK 사건을 이해하기 위한 최소한의 지식
김경협 의원이 제기한 '50억 원 송금기록'은 정확히 말하자면 49억 9,999만 5천 원이었다. 김경준이 2001년에 이명박에게 보낸 돈은 50억 원에서 5천 원이 모자란 금액이었다. (이 글에선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두 사람과 관련해 가급적 호칭을 생략하겠다. 너무 자주 등장하기 때문에 매번 호칭을 붙이면 글의 경제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김경협 의원은 2017년 9월 12일 CBS노컷뉴스 보도를 통해 이 송금 기록이 김경준이 이명박에게 BBK 주식을 매입한 대가로 49억 9,999만 5천 원을 지급했단 사실을 뒷받침한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즉, 이명박이 BBK 주식을 소유했던 'BBK 실소유주'라는 이른바 '김경준의 이면계약서'가 진실이라는 정황이란 것이다. 김경협 의원은 검찰 수사 기록에 이 송금기록이 들어 있어서, 검찰이 송금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발표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CBS노컷뉴스 / 2017년 9월 12일)
사실 관계를 따지기 전에 BBK 사건에 대해 아주 간략하게 정리해 보자. 2001년 김경준은 자신이 운영하던 투자자문회사 BBK가 투자자들로부터 받은 투자금을 횡령해 옵셔널벤처스라는 코스닥 상장기업의 주가를 조작하는 데 이용한다. 이에 앞서 금융감독원은 김경준이 BBK의 자금을 유용하고 투자보고서를 조작한 사실을 적발해 BBK의 투자자문업 허가를 취소한다. 설 곳이 없어진 김경준은 옵셔널벤처스 주가조작으로 인한 수익금 등을 자신의 해외 계좌로 송금한 뒤 2001년 12월 미국으로 도주한다.
이후 2002년 서울시장에 당선되면서 정계에 복귀한 이명박에겐 김경준이 주도한 주가조작 사건에 연루돼 있다는 의혹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실제로 이명박은 2000년에 LKe뱅크라는 회사를 창업해 김경준과 공동운영한다. LKe는 김경준이 제안하고 이명박이 함께 추진한 인터넷 기반 금융 서비스 구상(e-Bank Korea)의 일부었다. e-Bank Korea라는 인터넷 종합 금융서비스 사이트 아래서 이미 김경준이 설립해 운영하고 있던 BBK가 투자자문업을 맡고, 새로 설립한 EBK증권중개가 증권회사 기능을, 그리고 그곳에서 사용할 금융시스템 개발 및 제공은 LKe가 담당하기로 한 것이다. (이상 검찰 수사결과) 이명박은 이 구상에 따라 2001년 2월에는 김경준과 함께 EBK증권중개를 설립한다.
그러나 앞서 썼던 것과 같이 2001년 4월 3일 금감원이 김경준의 BBK 자금 유용 및 투자보고서 조작 사실을 적발해 BBK의 투자자문업 허가를 취소했다. 이후 김경준에게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된 이명박은 4월 6일 EBK증권중개의 증권업 허가 신청을 철회하고 2001년 6월 8일에는 주주총회를 열어 EBK증권중개의 법인 청산을 의결한다. 김경준과 갈라선 것이다.
정치인 이명박에게 'BBK 의혹', 정확히 말하면 김경준의 옵셔널벤처스 주가조작 사건에 연루됐을 것이란 의혹이 따라다닌 이유다. 김경준과 함께 인터넷 기반 금융 서비스 사이트 구축을 위해 일정 기간 동업을 했고, 그 금융 서비스 그룹에 주가조작에 투자금 및 법인계좌가 이용된 BBK가 속해 있었으니 주가조작 사건에도 연루됐을 것이란 의혹이 따라다닌 것이다. 거기에 아예 BBK의 실소유주가 이명박이라는 의혹까지 덧붙여졌다. 이명박이 실소유주라는 의혹이 있던 자동차 부품 회사 다스가 BBK에게 190억 원을 투자한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의혹은 더욱 짙어졌다.
2007년 12월 대선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 당시 미국에 수감돼 있던 김경준은 'BBK의 실소유주는 이명박'이라는 취지의 폭탄 선언을 한다. 이후 한국으로 송환돼 검찰 수사를 받은 김경준은 검찰과 언론에 이명박이 BBK의 실소유주임을 입증하는 이면계약서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명박이 소유하고 있던 BBK 주식 61만 주를 49억 9,999만 5천 원에 김경준에게 매각하기로 하는 내용의 이면계약서가 있다는 것이다. 김경협 의원이 새로 공개했다고 주장한 송금 기록에 등장하는 액수와 동일한 숫자다. 김경준은 이 계약서와 송금 기록으로 이명박이 BBK 주식을 소유했었단 사실, 즉, 이명박이 BBK의 실소유주였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여기까지가 김경협 의원의 폭로를 평가하기 위해 알아야 할 최소한의 배경 지식이다. 2007년 12월 5일 검찰은 그런데 김경준이 제출한 이면 계약서가 가짜이고 BBK의 실소유주는 이명박이 아니라고 발표한다. 김경협 의원이 문제 삼는 것은 이 부분이다. 김경준의 이면계약서의 진정성을 뒷받침하는 송금 기록을 검찰은 갖고 있었으면서도 이를 공개하지 않은 채 이면계약서가 위조된 것이고 BBK의 실소유주가 이명박이 아니라고 발표했다는 것이다.
● 김경협 의원의 폭로는 이미 '공지의 사실'이었다
진실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일단 김경협 의원이 존재한 송금기록의 내용, 즉, 김경준이 이명박에게 49억 9,999만 5천 원을 보냈다는 사실은 2007년 11월 당시 대부분의 기자들이 알고 있던 공지의 사실이었다. 게다가 김경준 뿐만 아니라 이명박 측 또한 그런 송금 사실이 있다는 걸 당시에 이미 인정했다.
2007년 11월 25일 SBS 김지성 기자가 보도한 기사를 보자.(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SBS 말고도 비슷한 취지로 보도한 다른 매체 기사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미국 법원에 제출된 LKe뱅크의 입출금 내역서입니다. 2001년 2월 28일 49억 9천9백99만 5천 원이 이명박 후보에게 입금된 것으로 나와있습니다.
문제의 한글 계약서에도 똑같은 금액이 등장합니다. 이 후보가 LKe뱅크에 BBK 주식 61만 주를 이 금액에 판다고 돼 있습니다.
때문에 대통합민주신당측은 이 돈이 한글 계약서에 따라 지급된 BBK 주식의 매각 대금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금액부터 말이 안 된다고 반박합니다. 49억 9천9백99만 5천 원을 61만 주로 나누면 한 주당 가격이 8천백96.7131원인데 이런 식으로 주식 가격을 책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나라당은 이 돈이 이 후보가 AM파파스에 LKe뱅크 주식을 팔고 받은 돈이라고 주장했습니다. 3건의 영문계약서를 보면 주식 33만 3천3백33주를 주당 만 5천 원에 파는데, 이 금액이 꼭 49억 9천9백99만 5천 원이며, AM파파스로부터 LKe뱅크를 거쳐 돈이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출처 : (SBS 8뉴스 / 2007년 11월 25일)
2007년에 검찰의 수사 결과를 발표하기11일 전에 보도된 기사인데 이미 김경협 의원이 새로 공개했다고 주장하는 49억 9,999만 5천 원의 송금기록이 그대로 나와있다. (물론 송금기록의 형식은 다르지만 내용은 완전히 동일하다.) 대통합민주신당과 한나라당 양측 모두 2007년 당시 송금 사실 자체에 대해서는 모두 인정한 채, 송금의 의미에 대해서만 서로 다른 해석을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김경협 의원이 이 자료를 근거로 "당시 검찰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증거"라며 "적폐청산기구 등을 통해 당시 수사기록 전체를 재검증해 부실수사나 자료 은폐 여부를 밝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치이 맞지 않다. 앞으로 어떤 사실을 추가로 폭로할지는 알 수 없지만 김경협 의원의 이번 문제제기는 헛방이었던 셈이다.
** 그렇다면 당시 검찰이 이명박 측 주장대로 문제의 49억 9,999만 5천 원이 BBK 주식 매각 대가로 받은 돈이 아니라 이명박과 김경준이 동업 형식으로 운영했던 LKe 지분을 AM파파스에 파는 대가로 받은 돈이라고 결론낸 것이 정당하느냐에 대한 문제가 남는다. 이를 살펴 보기 위해선 또 한 편의 긴 글이 필요하다. 이 취재파일에서는 일단 김경협 의원이 이번 문제제기가 정당했는지에 국한해서만 살펴보기로 하고 이부분은 추가로 다루지 않겠다.
● 주진우 기자의 '다스' 폭로의 의미
주진우 기자가 2017년 8월 24일 '시사인' 기사로 공개한 다스 관련 의혹은 조금 궤를 달리 한다. 기사의 핵심은 이명박이 자신의 회사가 아니라고 주장했던 다스가 김경준으로부터 떼인 돈을 받기 위해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 민정수석실과 정식 외교관이었던 김재수 LA총영사가 개입했다는 의혹이 있다는 것이다. 주진우 기자는 의혹을 뒷받침 하기 위해 청와대 민정수석실 문건과 다스 내부 회의록이라고 본인이 주장하는 서류의 실물도 공개했다. 이는 다스의 실소유주가 이명박일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고, BBK에 190억 원을 투자한 다스의 실소유주가 곧 BBK의 실소유주일 가능성이 있다는 연결되는 것이라는 취지로 주 기자는 주장한다.
(시사인 / 2017년 8월 24일)
"김어준 : 관련 소송 비용도 다 내기 싫다고 했는데 그것까지 협의가 안 돼 가지고 혼이 났다라는 담당자얘기고. 이렇게 되면 뭐가 새로 다시 한 번 재수사의 대상이 될 수 있냐면 다스의 신소유주가 이명박대통령이 아니냐 하는 아니냐는 의혹이 다시 한 번 제기될 수밖에 없어요.
주진우 : BBK도 이명박대통령의 소유가 아니었느냐. "
기사의 의미를 평가하기 위해선 약간의 배경지식이 더 필요하다. 다스는 2007년 당시 공식적으로는 이명박 대통령의 형인 이상은 씨와 처남인 김재정 씨가 운영하는 회사였다. 그러나 다스의 자본금에 이명박의 차명 보유 의혹이 불거졌던 도곡동 땅을 매각해 포스코개발로부터 받은 자금이 들어갔기 때문에 다스의 실소유주는 이명박이 아니냐는 의혹이 존재했다. 그런데 이 문제의 회사 다스가 2000년 190억 원을 김경준이 운영하는 투자자문회사 BBK에 투자한다. BBK라는 회사의 지분을 사들인 것은 아니고 투자자문사인 BBK에 자금을 운용해달라고 190억 원을 맡긴 것이다. 하지만 이 190억 원이 실제로는 단순한 투자금이 아니고 자금세탁을 통해 EBK와 LKe, 그리고 BBK의 자본금 또는 운영자금으로 쓰였다는 것이 '이명박이 BBK의 실소유주'라는 의혹의 또 다른 축이었다.
(덧붙이자면 주진우 기자의 기사에 등장하는 다스와 김경준 사이 소송도 바로 이 투자금 190억 원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앞서 보았듯이 김경준은 BBK가 받은 투자금을 가지고 주가조작을 한 뒤 그 수익금 등을 해외로 보낸 뒤 도피했다. 다스는 김경준을 상대로 손실을 본 190억 원을 돌려달라고 주장했고, 먼저 50억 원을 받았지만 140억 원을 더 받아내기 위해 소송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이명박 정부 시절 공무원이었던 외교관과 청와대 민정수석실 직원이 동원됐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 주진우 기자 기사의 핵심 내용이다.)
주진우 기자의 기사는 바로 이 다스의 실소유주가 사실은 이명박이 아니었느냐는 나름의 근거 있는 의혹을 제기했다는 점에서는 (주 기자가 공개한 문서가 진짜라는 전제 하에) 의미가 있다. 2007년부터 줄곧 이명박은 다스는 자신의 회사가 아니라고 주장해왔으니, 만약 다스의 실소유주가 이명박으로 밝혀진다면 10년 넘게 거짓말을 해왔던 점에서 도덕적 비난 가능성이 크다. 또, 만약 다스의 실소유주가 이명박이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형과 처남이 소유한 기업의 소송을 돕기 위해 청와대 민정수석실 직원이나 LA총영사 같은 공무원을 동원한 사실이 있다면 이 역시 당시 대통령으로서 부적절한 행위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따라서 주 기자의 문제제기는 제시한 문서가 모두 진짜라는 전제 하에 의미 있는 보도다.
그러나 다스의 실소유주가 이명박으로 드러난다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BBK의 실소유주가 이명박이라는 결론으로 직결되지는 않는다. 앞서 말했듯이 2000년 다스는 투자자문회사인 BBK에 190억 원을 지분을 사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금 운용을 해달라는 취지로 맡긴다.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그렇다. 때문에 이명박이 BBK의 실소유주라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설사 이명박이 다스의 실소유주라고 하더라도, 다스의 투자금이 단순 투자금이 아니라 자금세탁을 거쳐 BBK의 자본금 등으로 유입됐다는 근거를 확보해야 한다. 2007년 대선 직전 이 부분에 대해서도 많은 폭로가 있었지만 당시 검찰은 BBK 관련해 당시 수집했던 증거와 계좌추적 결과를 종합한 결과 다스의 투자금이 BBK 자본금으로 사용된 흔적을 전혀 찾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한 김경준의 진술도 검찰 수사 과정에서 여러 번 뒤집혔다.)
요약하자면, 이명박이 다스의 실소유주로 밝혀진다 하더라도 그것이 곧바로 이명박이 BBK의 실소유주라는 의미는 아니란 뜻이다. 2007년 당시 검찰 수사 결과와 지금까지 나타난 자료들만 보면 현재까지 상황으로는 다스의 투자금이 BBK의 자본금으로 쓰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이명박이 BBK의 실소유주이기 때문에 BBK의 자금과 법인계좌가 사용된 옵셔널벤처스 주가조작 사건에 관여했을 것이란 의혹까지 나아가기 위해서는 '링크(고리)'가 적어도 몇 개는 더 필요하다. 현재로서는 그 고리가 보이지 않는다.
이명박 전 대통령
● BBK 의혹이 10년째 사그라들지 않는 이유
2007년 11월 온나라의 관심이 BBK 의혹에 쏠려 있을 때 나는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혹독하게 추웠던 그해 겨울에 말로 다하기 힘든 고초를 겪으면서 사건의 조각 조각을 취재할 때는 설마 이 사건에 대해 10년 뒤에도 이런 글을 쓰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모두가 목격하고 있듯이 BBK와 관련된 의혹은 10년째 가라앉지 않고 기회가 될 때마다 되살아나고 있다.
왜 그럴까?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사건 자체가 너무나 방대하고 복잡해서 당시 기사를 따라갔던 뉴스 소비자들은 물론 사건을 취재했던 기자들조차 의혹이 새로 불거질 때마다 마치 새로운 무엇인가가 나온 것인양 느낄 수밖에 없는 탓도 있을 것이다. 이 사건 자체가 정치적 공방의 소재로 이용되기 좋고, 또 전직 대통령과 직결된 사건인 만큼 공적인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는 탓도 있을 것이다. 사건을 수사했던 검찰이 그 이후 여러 가지 사건에 휘말리면서 국민의 신뢰를 잃은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언론의 책임 역시 가볍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명박 정부 시절과 박근혜 정부를 지나면서 언론에 대한 사회적 신뢰는 대단히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집권 세력에 불리한 기사, 집권 세력이 불편하게 생각하는 이슈는 언론이 정면으로 다루지 않는다는 생각이 사회적으로 만연했고, 또 그 같은 불신에는 매우 타당한 여러 근거가 있었다. 그 근거는 거의 전적으로 언론이 스스로 제공했다.
따라서 이명박 전 대통령 측이 가장 예민하게 생각할 BBK 사건에 대해서 언론이 제대로 다루지 않는다는 의혹은 사그라들지 않았고, 실제로 언론 역시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충분히 설명될 만한 형식으로 이 사건을 다루지 않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을 비판했던 언론 역시 의혹을 증폭시키는 것 말고 객관적으로 시비를 가리는 데 충실했는지는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예외적으로 훌륭한 사례들은 존재한다.) 그 와중에 BBK 의혹 등을 충분하게 다룬 팟캐스트 등 대안적 매체들의 영향력은 비약적으로 성장했고 그에 비례해 언론의 신뢰도는 점점 더 낮아졌다.
이 취재파일은 그런 반성에서 출발했다. 모든 의혹에 대해 기자가 완벽한 답을 알 순 없다. 이 취재파일 역시 기자의 주관과 판단이 어느 정도 개입돼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언론이 충실하게 다루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아왔던 BBK 의혹에 대해, 특히 주진우 기자나 김경협 의원처럼 주목받는 사람들이 공적인 공간에 제기한 의혹에 대해 최선을 다해 검증하고 의미를 평가하기 위해 노력했다.
앞으로 BBK와 관련해 또 어떤 의혹이 폭로될지 모르겠다. 기자들 용어를 쓰자면 팩트를 물 먹을 수도 있을 것이다. 새로운 팩트의 진정한 의미를 간과하는 경우도 생길 것이다. 그러나 최근 제기된 두 가지 중대한 의혹에 대해선 지금은 이렇게 쓰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임찬종 기자cjyim@sbs.co.kr
[취재파일] BBK의 진실, 주진우와 김경협의 폭로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임찬종 기자 입력 2017.09.13. 17:45 수정 2017.09.13. 17:55
BBK 사건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다시 불을 지핀 사람은 10년 전부터 이 사건을 추적하며 보도하고 있는 시사인 주진우 기자다. 거기에 최근 더불어민주당 김경협 의원이 이른바 '50억 송금 기록'을 공개해 의혹을 증폭시켰다. 그러나 BBK 사건이 워낙 복잡해서 사건의 얼개를 이해하지 않는 사람은 새로운 의혹제기 의미를 정확하게 평가하기 어렵다. 주진우 기자와 김경협 의원의 폭로가 어떤 점에서 의미가 있고, 어떤 점에서 그렇지 않은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이 취재파일은 최근 다시 불거지는 BBK 관련 의혹의 정확한 의미를 최대한 쉽게 설명하기 위해 작성됐다. 어떤 예단도 없이 입수 가능한 객관적 정보를 가지고 판단하기 위해 노력했다. 성공할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시작해보자.
주진우 기자(왼쪽), 김경협 의원(오른쪽)
● BBK 사건을 이해하기 위한 최소한의 지식
김경협 의원이 제기한 '50억 원 송금기록'은 정확히 말하자면 49억 9,999만 5천 원이었다. 김경준이 2001년에 이명박에게 보낸 돈은 50억 원에서 5천 원이 모자란 금액이었다. (이 글에선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두 사람과 관련해 가급적 호칭을 생략하겠다. 너무 자주 등장하기 때문에 매번 호칭을 붙이면 글의 경제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김경협 의원은 2017년 9월 12일 CBS노컷뉴스 보도를 통해 이 송금 기록이 김경준이 이명박에게 BBK 주식을 매입한 대가로 49억 9,999만 5천 원을 지급했단 사실을 뒷받침한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즉, 이명박이 BBK 주식을 소유했던 'BBK 실소유주'라는 이른바 '김경준의 이면계약서'가 진실이라는 정황이란 것이다. 김경협 의원은 검찰 수사 기록에 이 송금기록이 들어 있어서, 검찰이 송금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발표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CBS노컷뉴스 / 2017년 9월 12일)
사실 관계를 따지기 전에 BBK 사건에 대해 아주 간략하게 정리해 보자. 2001년 김경준은 자신이 운영하던 투자자문회사 BBK가 투자자들로부터 받은 투자금을 횡령해 옵셔널벤처스라는 코스닥 상장기업의 주가를 조작하는 데 이용한다. 이에 앞서 금융감독원은 김경준이 BBK의 자금을 유용하고 투자보고서를 조작한 사실을 적발해 BBK의 투자자문업 허가를 취소한다. 설 곳이 없어진 김경준은 옵셔널벤처스 주가조작으로 인한 수익금 등을 자신의 해외 계좌로 송금한 뒤 2001년 12월 미국으로 도주한다.
이후 2002년 서울시장에 당선되면서 정계에 복귀한 이명박에겐 김경준이 주도한 주가조작 사건에 연루돼 있다는 의혹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실제로 이명박은 2000년에 LKe뱅크라는 회사를 창업해 김경준과 공동운영한다. LKe는 김경준이 제안하고 이명박이 함께 추진한 인터넷 기반 금융 서비스 구상(e-Bank Korea)의 일부었다. e-Bank Korea라는 인터넷 종합 금융서비스 사이트 아래서 이미 김경준이 설립해 운영하고 있던 BBK가 투자자문업을 맡고, 새로 설립한 EBK증권중개가 증권회사 기능을, 그리고 그곳에서 사용할 금융시스템 개발 및 제공은 LKe가 담당하기로 한 것이다. (이상 검찰 수사결과) 이명박은 이 구상에 따라 2001년 2월에는 김경준과 함께 EBK증권중개를 설립한다.
그러나 앞서 썼던 것과 같이 2001년 4월 3일 금감원이 김경준의 BBK 자금 유용 및 투자보고서 조작 사실을 적발해 BBK의 투자자문업 허가를 취소했다. 이후 김경준에게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된 이명박은 4월 6일 EBK증권중개의 증권업 허가 신청을 철회하고 2001년 6월 8일에는 주주총회를 열어 EBK증권중개의 법인 청산을 의결한다. 김경준과 갈라선 것이다.
정치인 이명박에게 'BBK 의혹', 정확히 말하면 김경준의 옵셔널벤처스 주가조작 사건에 연루됐을 것이란 의혹이 따라다닌 이유다. 김경준과 함께 인터넷 기반 금융 서비스 사이트 구축을 위해 일정 기간 동업을 했고, 그 금융 서비스 그룹에 주가조작에 투자금 및 법인계좌가 이용된 BBK가 속해 있었으니 주가조작 사건에도 연루됐을 것이란 의혹이 따라다닌 것이다. 거기에 아예 BBK의 실소유주가 이명박이라는 의혹까지 덧붙여졌다. 이명박이 실소유주라는 의혹이 있던 자동차 부품 회사 다스가 BBK에게 190억 원을 투자한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의혹은 더욱 짙어졌다.
2007년 12월 대선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 당시 미국에 수감돼 있던 김경준은 'BBK의 실소유주는 이명박'이라는 취지의 폭탄 선언을 한다. 이후 한국으로 송환돼 검찰 수사를 받은 김경준은 검찰과 언론에 이명박이 BBK의 실소유주임을 입증하는 이면계약서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명박이 소유하고 있던 BBK 주식 61만 주를 49억 9,999만 5천 원에 김경준에게 매각하기로 하는 내용의 이면계약서가 있다는 것이다. 김경협 의원이 새로 공개했다고 주장한 송금 기록에 등장하는 액수와 동일한 숫자다. 김경준은 이 계약서와 송금 기록으로 이명박이 BBK 주식을 소유했었단 사실, 즉, 이명박이 BBK의 실소유주였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여기까지가 김경협 의원의 폭로를 평가하기 위해 알아야 할 최소한의 배경 지식이다. 2007년 12월 5일 검찰은 그런데 김경준이 제출한 이면 계약서가 가짜이고 BBK의 실소유주는 이명박이 아니라고 발표한다. 김경협 의원이 문제 삼는 것은 이 부분이다. 김경준의 이면계약서의 진정성을 뒷받침하는 송금 기록을 검찰은 갖고 있었으면서도 이를 공개하지 않은 채 이면계약서가 위조된 것이고 BBK의 실소유주가 이명박이 아니라고 발표했다는 것이다.
● 김경협 의원의 폭로는 이미 '공지의 사실'이었다
진실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일단 김경협 의원이 존재한 송금기록의 내용, 즉, 김경준이 이명박에게 49억 9,999만 5천 원을 보냈다는 사실은 2007년 11월 당시 대부분의 기자들이 알고 있던 공지의 사실이었다. 게다가 김경준 뿐만 아니라 이명박 측 또한 그런 송금 사실이 있다는 걸 당시에 이미 인정했다.
2007년 11월 25일 SBS 김지성 기자가 보도한 기사를 보자.(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SBS 말고도 비슷한 취지로 보도한 다른 매체 기사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미국 법원에 제출된 LKe뱅크의 입출금 내역서입니다. 2001년 2월 28일 49억 9천9백99만 5천 원이 이명박 후보에게 입금된 것으로 나와있습니다.
문제의 한글 계약서에도 똑같은 금액이 등장합니다. 이 후보가 LKe뱅크에 BBK 주식 61만 주를 이 금액에 판다고 돼 있습니다.
때문에 대통합민주신당측은 이 돈이 한글 계약서에 따라 지급된 BBK 주식의 매각 대금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금액부터 말이 안 된다고 반박합니다. 49억 9천9백99만 5천 원을 61만 주로 나누면 한 주당 가격이 8천백96.7131원인데 이런 식으로 주식 가격을 책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나라당은 이 돈이 이 후보가 AM파파스에 LKe뱅크 주식을 팔고 받은 돈이라고 주장했습니다. 3건의 영문계약서를 보면 주식 33만 3천3백33주를 주당 만 5천 원에 파는데, 이 금액이 꼭 49억 9천9백99만 5천 원이며, AM파파스로부터 LKe뱅크를 거쳐 돈이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출처 : (SBS 8뉴스 / 2007년 11월 25일)
2007년에 검찰의 수사 결과를 발표하기11일 전에 보도된 기사인데 이미 김경협 의원이 새로 공개했다고 주장하는 49억 9,999만 5천 원의 송금기록이 그대로 나와있다. (물론 송금기록의 형식은 다르지만 내용은 완전히 동일하다.) 대통합민주신당과 한나라당 양측 모두 2007년 당시 송금 사실 자체에 대해서는 모두 인정한 채, 송금의 의미에 대해서만 서로 다른 해석을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김경협 의원이 이 자료를 근거로 "당시 검찰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증거"라며 "적폐청산기구 등을 통해 당시 수사기록 전체를 재검증해 부실수사나 자료 은폐 여부를 밝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치이 맞지 않다. 앞으로 어떤 사실을 추가로 폭로할지는 알 수 없지만 김경협 의원의 이번 문제제기는 헛방이었던 셈이다.
** 그렇다면 당시 검찰이 이명박 측 주장대로 문제의 49억 9,999만 5천 원이 BBK 주식 매각 대가로 받은 돈이 아니라 이명박과 김경준이 동업 형식으로 운영했던 LKe 지분을 AM파파스에 파는 대가로 받은 돈이라고 결론낸 것이 정당하느냐에 대한 문제가 남는다. 이를 살펴 보기 위해선 또 한 편의 긴 글이 필요하다. 이 취재파일에서는 일단 김경협 의원이 이번 문제제기가 정당했는지에 국한해서만 살펴보기로 하고 이부분은 추가로 다루지 않겠다.
● 주진우 기자의 '다스' 폭로의 의미
주진우 기자가 2017년 8월 24일 '시사인' 기사로 공개한 다스 관련 의혹은 조금 궤를 달리 한다. 기사의 핵심은 이명박이 자신의 회사가 아니라고 주장했던 다스가 김경준으로부터 떼인 돈을 받기 위해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 민정수석실과 정식 외교관이었던 김재수 LA총영사가 개입했다는 의혹이 있다는 것이다. 주진우 기자는 의혹을 뒷받침 하기 위해 청와대 민정수석실 문건과 다스 내부 회의록이라고 본인이 주장하는 서류의 실물도 공개했다. 이는 다스의 실소유주가 이명박일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고, BBK에 190억 원을 투자한 다스의 실소유주가 곧 BBK의 실소유주일 가능성이 있다는 연결되는 것이라는 취지로 주 기자는 주장한다.
(시사인 / 2017년 8월 24일)
"김어준 : 관련 소송 비용도 다 내기 싫다고 했는데 그것까지 협의가 안 돼 가지고 혼이 났다라는 담당자얘기고. 이렇게 되면 뭐가 새로 다시 한 번 재수사의 대상이 될 수 있냐면 다스의 신소유주가 이명박대통령이 아니냐 하는 아니냐는 의혹이 다시 한 번 제기될 수밖에 없어요.
주진우 : BBK도 이명박대통령의 소유가 아니었느냐. "
기사의 의미를 평가하기 위해선 약간의 배경지식이 더 필요하다. 다스는 2007년 당시 공식적으로는 이명박 대통령의 형인 이상은 씨와 처남인 김재정 씨가 운영하는 회사였다. 그러나 다스의 자본금에 이명박의 차명 보유 의혹이 불거졌던 도곡동 땅을 매각해 포스코개발로부터 받은 자금이 들어갔기 때문에 다스의 실소유주는 이명박이 아니냐는 의혹이 존재했다. 그런데 이 문제의 회사 다스가 2000년 190억 원을 김경준이 운영하는 투자자문회사 BBK에 투자한다. BBK라는 회사의 지분을 사들인 것은 아니고 투자자문사인 BBK에 자금을 운용해달라고 190억 원을 맡긴 것이다. 하지만 이 190억 원이 실제로는 단순한 투자금이 아니고 자금세탁을 통해 EBK와 LKe, 그리고 BBK의 자본금 또는 운영자금으로 쓰였다는 것이 '이명박이 BBK의 실소유주'라는 의혹의 또 다른 축이었다.
(덧붙이자면 주진우 기자의 기사에 등장하는 다스와 김경준 사이 소송도 바로 이 투자금 190억 원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앞서 보았듯이 김경준은 BBK가 받은 투자금을 가지고 주가조작을 한 뒤 그 수익금 등을 해외로 보낸 뒤 도피했다. 다스는 김경준을 상대로 손실을 본 190억 원을 돌려달라고 주장했고, 먼저 50억 원을 받았지만 140억 원을 더 받아내기 위해 소송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이명박 정부 시절 공무원이었던 외교관과 청와대 민정수석실 직원이 동원됐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 주진우 기자 기사의 핵심 내용이다.)
주진우 기자의 기사는 바로 이 다스의 실소유주가 사실은 이명박이 아니었느냐는 나름의 근거 있는 의혹을 제기했다는 점에서는 (주 기자가 공개한 문서가 진짜라는 전제 하에) 의미가 있다. 2007년부터 줄곧 이명박은 다스는 자신의 회사가 아니라고 주장해왔으니, 만약 다스의 실소유주가 이명박으로 밝혀진다면 10년 넘게 거짓말을 해왔던 점에서 도덕적 비난 가능성이 크다. 또, 만약 다스의 실소유주가 이명박이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형과 처남이 소유한 기업의 소송을 돕기 위해 청와대 민정수석실 직원이나 LA총영사 같은 공무원을 동원한 사실이 있다면 이 역시 당시 대통령으로서 부적절한 행위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따라서 주 기자의 문제제기는 제시한 문서가 모두 진짜라는 전제 하에 의미 있는 보도다.
그러나 다스의 실소유주가 이명박으로 드러난다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BBK의 실소유주가 이명박이라는 결론으로 직결되지는 않는다. 앞서 말했듯이 2000년 다스는 투자자문회사인 BBK에 190억 원을 지분을 사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금 운용을 해달라는 취지로 맡긴다.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그렇다. 때문에 이명박이 BBK의 실소유주라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설사 이명박이 다스의 실소유주라고 하더라도, 다스의 투자금이 단순 투자금이 아니라 자금세탁을 거쳐 BBK의 자본금 등으로 유입됐다는 근거를 확보해야 한다. 2007년 대선 직전 이 부분에 대해서도 많은 폭로가 있었지만 당시 검찰은 BBK 관련해 당시 수집했던 증거와 계좌추적 결과를 종합한 결과 다스의 투자금이 BBK 자본금으로 사용된 흔적을 전혀 찾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한 김경준의 진술도 검찰 수사 과정에서 여러 번 뒤집혔다.)
요약하자면, 이명박이 다스의 실소유주로 밝혀진다 하더라도 그것이 곧바로 이명박이 BBK의 실소유주라는 의미는 아니란 뜻이다. 2007년 당시 검찰 수사 결과와 지금까지 나타난 자료들만 보면 현재까지 상황으로는 다스의 투자금이 BBK의 자본금으로 쓰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이명박이 BBK의 실소유주이기 때문에 BBK의 자금과 법인계좌가 사용된 옵셔널벤처스 주가조작 사건에 관여했을 것이란 의혹까지 나아가기 위해서는 '링크(고리)'가 적어도 몇 개는 더 필요하다. 현재로서는 그 고리가 보이지 않는다.
이명박 전 대통령
● BBK 의혹이 10년째 사그라들지 않는 이유
2007년 11월 온나라의 관심이 BBK 의혹에 쏠려 있을 때 나는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혹독하게 추웠던 그해 겨울에 말로 다하기 힘든 고초를 겪으면서 사건의 조각 조각을 취재할 때는 설마 이 사건에 대해 10년 뒤에도 이런 글을 쓰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모두가 목격하고 있듯이 BBK와 관련된 의혹은 10년째 가라앉지 않고 기회가 될 때마다 되살아나고 있다.
왜 그럴까?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사건 자체가 너무나 방대하고 복잡해서 당시 기사를 따라갔던 뉴스 소비자들은 물론 사건을 취재했던 기자들조차 의혹이 새로 불거질 때마다 마치 새로운 무엇인가가 나온 것인양 느낄 수밖에 없는 탓도 있을 것이다. 이 사건 자체가 정치적 공방의 소재로 이용되기 좋고, 또 전직 대통령과 직결된 사건인 만큼 공적인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는 탓도 있을 것이다. 사건을 수사했던 검찰이 그 이후 여러 가지 사건에 휘말리면서 국민의 신뢰를 잃은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언론의 책임 역시 가볍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명박 정부 시절과 박근혜 정부를 지나면서 언론에 대한 사회적 신뢰는 대단히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집권 세력에 불리한 기사, 집권 세력이 불편하게 생각하는 이슈는 언론이 정면으로 다루지 않는다는 생각이 사회적으로 만연했고, 또 그 같은 불신에는 매우 타당한 여러 근거가 있었다. 그 근거는 거의 전적으로 언론이 스스로 제공했다.
따라서 이명박 전 대통령 측이 가장 예민하게 생각할 BBK 사건에 대해서 언론이 제대로 다루지 않는다는 의혹은 사그라들지 않았고, 실제로 언론 역시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충분히 설명될 만한 형식으로 이 사건을 다루지 않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을 비판했던 언론 역시 의혹을 증폭시키는 것 말고 객관적으로 시비를 가리는 데 충실했는지는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예외적으로 훌륭한 사례들은 존재한다.) 그 와중에 BBK 의혹 등을 충분하게 다룬 팟캐스트 등 대안적 매체들의 영향력은 비약적으로 성장했고 그에 비례해 언론의 신뢰도는 점점 더 낮아졌다.
이 취재파일은 그런 반성에서 출발했다. 모든 의혹에 대해 기자가 완벽한 답을 알 순 없다. 이 취재파일 역시 기자의 주관과 판단이 어느 정도 개입돼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언론이 충실하게 다루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아왔던 BBK 의혹에 대해, 특히 주진우 기자나 김경협 의원처럼 주목받는 사람들이 공적인 공간에 제기한 의혹에 대해 최선을 다해 검증하고 의미를 평가하기 위해 노력했다.
앞으로 BBK와 관련해 또 어떤 의혹이 폭로될지 모르겠다. 기자들 용어를 쓰자면 팩트를 물 먹을 수도 있을 것이다. 새로운 팩트의 진정한 의미를 간과하는 경우도 생길 것이다. 그러나 최근 제기된 두 가지 중대한 의혹에 대해선 지금은 이렇게 쓰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임찬종 기자cjyi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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