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38976
국정원, MBC 언론인들이 7년 싸워도 이길 수 없었던 이유
[해설] ‘좌편향 인물과 문제 프로그램 퇴출→노조 무력화→민영화’로 이어졌던 MBC 파괴 공작
김도연 기자 riverskim@mediatoday.co.kr 2017년 09월 20일 수요일
“MBC PD수첩이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광우병 편)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중략) 그 프로그램만 본다면 3억 미국인들과 우리 국민들은 식품이 아니라 독극물에 가까운 미국산 쇠고기를 먹는 셈이었다. 당시 공영방송은 전임 정부가 임명한 경영진과 노조가 좌우하고 있었다. 언론 환경과 정치 환경 모두가 새 정부에 불리한 상황이었다. 정부의 입장을 국민에게 합리적으로 전달할 통로가 막혀 있었다.”
지난 2015년 2월 출간된 이명박 전 대통령 회고록 가운데 일부다. 2008년 ‘PD수첩’ 광우병 보도와 MBC, 그리고 언론을 바라보는 MB의 관점이다. MB는 정권 실책을 인정하지 않은 채 MBC를 ‘편파 언론’으로만 왜곡 인식했다. 지지율이 한자리수로 급전직하했던 2008년 촛불 정국은 MB 정권 ‘트라우마’로 남았다.
▲ 이명박 정부 국가정보원의 MBC 장악 문건은 김재철 전 MBC 사장을 위한 ‘레드 카펫’이었다. 김장겸 MBC 사장은 김 전 사장이 이행한 ‘국정원 플랜’을 완성시킨 인물로 볼 수 있다.사진=이치열 기자, 이기범 언론노보 기자, 사진공동취재단,연합뉴스
이듬해 6월 검찰은 조능희·송일준·김보슬·이춘근 등 PD수첩 제작진을 명예훼손과 업무방해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했고, 뉴라이트 인사들은 8월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 이사진으로 대거 합류하게 된다. 엄기영 전 MBC 사장에 대한 방문진의 집요한 퇴진 압박 끝에 2010년 2월 MB 정부는 엄 전 사장의 사표를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고서 만들어진 것이 국정원의 ‘MBC 장악 문건’이다. 이 문건은 엄 전 사장 후임 김재철 전 사장을 위한 ‘레드 카펫’이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엄 전 사장이 사퇴한 지 일주일여 만인 2010년 2월16일 ‘MBC 신임 사장 취임을 계기로 근본적인 체질 개선 추진’을 지시했고 국정원은 ‘MBC 정상화 전략 및 추진 방안’ 문건을 작성해 3월2일 보고했다. 문건은 3가지 시나리오로 요약·압축된다. ‘좌편향 인물과 문제 프로그램 퇴출→노조 무력화→민영화’다.
김재철, 국정원 문건 ‘판박이’ 행보
“신임 사장 취임 계기 지방사·자회사 사장단 재신임 여부를 검토, 노조 배후 인물 및 전임 사장 인맥 일소”, “편파·왜곡 방송을 주도해온 제작·보도·편성본부 국장급 간부 전원 교체 및 건전 성향 인사 전진 배치”, “직무 전문성이 요구되는 일선기자·PD들의 업무실적을 엄정평가, 정치투쟁·편파방송 전력자에 대한 문책 인사 단행”
국정원이 MBC 정상화를 위한 ‘기본 전략’으로 꼽은 지침 가운데 일부다. 신임 김재철 사장은 2010년 3월5일 MBC 모든 관계사(계열사·자회사) 사장들에게 사표를 요구했고 임기가 남은 지역사 사장 6명이 대거 교체됐다.
이때 마산·진주 MBC 겸임 사장(현 MBC경남)에 임명됐던 김종국 전 MBC 사장은 2013년 김재철 전 사장이 방문진에서 해임된 뒤 MBC 사장에 취임하게 된다. 문건에 나타난 ‘건전 성향 인사의 전진 배치’가 현실화한 사례로 해석할 수 있다.
▲ 2012년 MBC 파업 당시 김재철 MBC 사장 모습. 사진=이치열 기자
국정원은 사찰 없이 알기 어려운 특정 MBC 간부 성향과 과거 행적을 들추기도 했다. 한겨레 보도 등에 따르면 국정원은 고(故) 곽동국 전 시사교양국장에 대해 “광우병 깃발시위 왜곡보도를 방관했는데도 아직 건재하다”고 평가했는데 곽 전 국장은 1985년 MBC에 PD로 입사해 ‘PD수첩’,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등을 연출한 명 PD다. 지난 1월 별세한 고인에 대해 최승호 MBC 해직PD는 “곽동국 선배에게 특히 감사하는 것은 그가 이명박 정권의 폭압적인 탄압으로 MBC가 바람 앞의 등불 신세이던 시절 시사교양국장을 맡아 PD수첩의 방패막이 역할을 해주셨다는 사실”이라며 “국장은 곽동국 선배, 부장은 김환균 PD(현 언론노조 위원장)였던 그 시절은 PD수첩의 전성기였다”고 페이스북에 밝힌 바 있다. MB 정부 입장에서 ‘껄끄러운 언론인’에 대한 사찰 정황으로 풀이된다.
PD수첩을 척결하고 싶었던 국정원
국정원 문건에는 ‘PD수첩’, ‘MBC 스페셜’, ‘후플러스’, ‘시사매거진 2580’ 등 여러 MBC 프로그램들이 “편파방송 주도 시사고발프로”로 꼽혔다. “제작진 교체, 진행자·포맷·명칭 변경으로 환골탈태”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손석희, 김미화, 김종배 등 한 시대를 대표했던 방송 진행자와 패널들이 MBC를 떠나게 한 국정원 발 ‘블랙리스트’였다. MBC는 2011년 7월 이른바 ‘소셜테이너 출연금지’ 조항까지 사규에 추가해 보수 정권에 찍힌 방송인들의 출연을 검열했다.
그 가운데 가장 눈엣가시는 ‘PD수첩’이었다. 문건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대외적 상징성 때문에 당장 폐지가 어려운 PD수첩의 경우 사전 심의 확행 및 편파 방송 책임자 문책으로 공정성 확보”, “사전 심의절차 및 사후 제재 근거를 명문화, 저질·편파 방송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적 보완책 마련”, “좌파 세력에 영합하는 편파 보도로 여론을 호도해 국론 분열에 앞장”
PD수첩에 대한 사측의 탄압은 2011년 본격화한다. 김재철 전 사장의 고교 및 대학 후배인 윤길용 시사교양국장은 그해 3월 최승호 PD를 포함한 PD수첩 PD 6명을 인사 조치했다. 절반의 PD를 물갈이하며 PD수첩 파괴 신호탄을 쐈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정원 문건에 따르면, “편파 방송 책임자 문책으로 공정성 확보”를 위한 조치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엄기영 전 MBC 사장이 사퇴한 지 일주일여 만인 2010년 2월16일 ‘MBC 신임 사장 취임을 계기로 근본적인 체질 개선 추진’을 지시했고 국정원은 ‘MBC 정상화 전략 및 추진 방안’ 문건을 작성해 3월2일 보고했다. 사진=연합뉴스
‘MBC 노조 파괴’ 사활 건 국정원
“경영권 침해 독소조항이 포함된 단협 개정에 본격 착수”, “노조 불응 시 단협 해지를 통보, 원점에서 재협상하는 방안 검토”, “노조의 불법파업·업무방해 행위는 사규에 따라 엄중 징계하고 주동자에 대해서는 적극적 사법 처리로 영구 퇴출 추진”, “공정방송노조를 통해 좌파 정부 시절 비리 의혹 및 노조 배후 인물들의 부도덕성 등 내부 비리 폭로 독려, 개혁 명분 활용.”
문건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언론노조 MBC본부에 대한 국정원의 적개심이다. 국정원은 언론노조 MBC본부의 무기가 ‘국장 책임제’ 등 MBC 보도 공정성을 보장한 ‘단체협약’임을 꿰뚫고 있었다. 실제 김 전 사장은 첫 출근 이틀 뒤인 2010년 3월4일 사원들에게 단협 개정을 시사했다. ‘국장 책임제’를 두고 노조와 공방을 벌이던 김 전 사장은 2011년 1월 단협을 ‘일방 해지’ 했다. 그해 10월 바뀐 단협에선 국장 책임제가 사라졌다.
국정원은 ‘선임자 권익 보호’를 기치로 내걸고 2007년 출범한 제2노조 ‘공정방송노조’를 활용해 노노 갈등을 야기했다. 최승호 MBC 해직PD 등이 국정원 문건에 대해 “국정원이 상상으로 작성한 게 아니라 MBC 내 협조자를 통해 정보를 입수해 만든 것”이라고 주장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노조의 파업과 관련해 주도자들에 대한 국정원의 “영구퇴출” 주문 역시 꼼꼼하게 이행됐다. 2010년 언론노조 MBC본부의 이근행 집행부는 4월5일 ‘김재철 퇴진’을 요구하며 총파업에 돌입했다. 5월13일까지 이어진 ‘39일 파업’이었다. 그해 6월 김재철의 MBC는 ‘불법 파업 주도’를 이유로 이근행 본부장을 해고하면서 노조에 강경하게 대응했다. 노조 조합원 41명에게 해고(2명), 정직 1~3개월(11명), 감봉 1·3개월(8개월), 구두경고(20명)를 내린 것. 2012년 170일 파업 이전까지 유례없던 대규모 징계였다. 이근행 본부장에는 구속영장까지 청구됐으나 법원은 기각했다.
2013년 ‘특별채용’으로 MBC로 복귀한 이근행 전 본부장은 지난 18일 총파업 집회에서 국정원 MBC 장악 문건을 언급하며 “청와대와 국정원이라는 야수 같은 권력이 MBC를 갈아 마시겠다고 방침을 세웠는데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날뛴 것”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 이진숙 대전 MBC 사장. 사진=이치열 기자
김재철과 국정원의 꿈, ‘민영화’
국정원은 MBC 장악 마무리 단계를 ‘민영화’로 판단했다. 김재철 전 사장 등이 “공영방송은 정권에 휘둘려 왔기 때문에 민영화돼야 한다”며 민영화 주장을 반복하는 까닭에 대한 실마리가 풀리는 대목. 국정원은 문건을 통해 “MBC 민영화 관련 정치권 반발을 막기 위해 방통위의 민영미디어렙 허가 문제를 연계, MBC 스스로 소유 구조를 개편하도록 유독”, “궁극적으로 MBC 구성원 스스로 민영화를 선택하도록 해 현재 ‘多공영 一민영’ 체제를 ‘一공영 多민영’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이진숙 당시 MBC 기획홍보본부장(현 대전 MBC 사장)이 고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과 만나 정수장학회가 소유한 MBC 지분 매각을 추진해 논란을 불렀다. 당시엔 MBC 지분 매각 수익을 통한 선심성 재원 확보 등 박근혜 대선후보 당선을 위해 경영진들이 동분서주한 것으로 해석됐으나 국정원 문건을 보면 MBC 민영화는 그 자체로 MB 정권의 숙원 과제였다.
2012년 파업 집행부였던 정영하 전 언론노조 MBC본부장은 “MBC 민영화 추진이 국정원 기획이었다는 건 생각하지 못했다”며 “대선에서 박근혜가 이겨야 MBC 경영진 뒷길이 열린다는 차원에서만 생각했었다. 이번 문건 보도를 보고나서야 국정원 프레임대로 경영진이 움직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 지난 5일 오전 서울 마포 고용노동부 서부지청에 출석한 김장겸 MBC 사장. 그는 MBC 언론인을 대상으로 한 부당노동행위 혐의를 받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민영화를 제외하면 국정원 플랜은 지난 7년 동안 지속적으로 가동됐다. 국정원은 MBC 기자와 PD 발탁의 최우선 기준을 ‘국가관’으로 규정하기도 했는데, 2012년 파업 이후 MBC가 경력 사원을 뽑는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불거졌던 사상 검증과 이를 통과한 뒤 여전히 ‘김장겸 체제’를 뒷받침하고 있는 MBC 시용·경력 기자들의 모습에서 ‘국정원 플랜’의 결과를 확인해볼 수 있다.
김재철 전 사장이 국정원이 깔아놓은 레드 카펫을 밟고 MBC에 입성했다면, 김장겸 현 MBC 사장은 김 전 사장이 사실상 실행한 ‘국정원 플랜’을 ‘MBC DNA’로 완벽히 이식한 인물로 평가할 수 있다. 언론노조 MBC본부는 19일 “집권 세력의 총체적인 MBC 장악 기도에 충실히 부응하며 내부에서 회사를 무너뜨린 범죄자들을 우리는 똑똑히 기억한다”며 “김재철을 계승해 정권과 추악하게 결탁한 MBC의 범죄 집단은 안광한·김장겸 체제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무소불위의 언론노조를 상대로 무슨 부당노동행위를 했겠느냐”며 당당했던 김장겸 MBC 사장은 국정원 문건에 대해 침묵을 지키고 있다. 영화 ‘공범자들’에서 ‘언론을 망친 파괴자’라는 비판에 대해 MB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김재철 전 사장은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다음과 같이 국정원과의 연루설을 부인했다. “내가 MBC를 경영하는 동안 국정원이나 청와대와 MBC 사태를 논의한 바 없다. MBC 출신으로서 나는 내 방식대로 MBC를 경영했을 뿐이다.” 판단은 국민들의 몫이다.
국정원, MBC 언론인들이 7년 싸워도 이길 수 없었던 이유
[해설] ‘좌편향 인물과 문제 프로그램 퇴출→노조 무력화→민영화’로 이어졌던 MBC 파괴 공작
김도연 기자 riverskim@mediatoday.co.kr 2017년 09월 20일 수요일
“MBC PD수첩이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광우병 편)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중략) 그 프로그램만 본다면 3억 미국인들과 우리 국민들은 식품이 아니라 독극물에 가까운 미국산 쇠고기를 먹는 셈이었다. 당시 공영방송은 전임 정부가 임명한 경영진과 노조가 좌우하고 있었다. 언론 환경과 정치 환경 모두가 새 정부에 불리한 상황이었다. 정부의 입장을 국민에게 합리적으로 전달할 통로가 막혀 있었다.”
지난 2015년 2월 출간된 이명박 전 대통령 회고록 가운데 일부다. 2008년 ‘PD수첩’ 광우병 보도와 MBC, 그리고 언론을 바라보는 MB의 관점이다. MB는 정권 실책을 인정하지 않은 채 MBC를 ‘편파 언론’으로만 왜곡 인식했다. 지지율이 한자리수로 급전직하했던 2008년 촛불 정국은 MB 정권 ‘트라우마’로 남았다.
▲ 이명박 정부 국가정보원의 MBC 장악 문건은 김재철 전 MBC 사장을 위한 ‘레드 카펫’이었다. 김장겸 MBC 사장은 김 전 사장이 이행한 ‘국정원 플랜’을 완성시킨 인물로 볼 수 있다.사진=이치열 기자, 이기범 언론노보 기자, 사진공동취재단,연합뉴스
이듬해 6월 검찰은 조능희·송일준·김보슬·이춘근 등 PD수첩 제작진을 명예훼손과 업무방해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했고, 뉴라이트 인사들은 8월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 이사진으로 대거 합류하게 된다. 엄기영 전 MBC 사장에 대한 방문진의 집요한 퇴진 압박 끝에 2010년 2월 MB 정부는 엄 전 사장의 사표를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고서 만들어진 것이 국정원의 ‘MBC 장악 문건’이다. 이 문건은 엄 전 사장 후임 김재철 전 사장을 위한 ‘레드 카펫’이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엄 전 사장이 사퇴한 지 일주일여 만인 2010년 2월16일 ‘MBC 신임 사장 취임을 계기로 근본적인 체질 개선 추진’을 지시했고 국정원은 ‘MBC 정상화 전략 및 추진 방안’ 문건을 작성해 3월2일 보고했다. 문건은 3가지 시나리오로 요약·압축된다. ‘좌편향 인물과 문제 프로그램 퇴출→노조 무력화→민영화’다.
김재철, 국정원 문건 ‘판박이’ 행보
“신임 사장 취임 계기 지방사·자회사 사장단 재신임 여부를 검토, 노조 배후 인물 및 전임 사장 인맥 일소”, “편파·왜곡 방송을 주도해온 제작·보도·편성본부 국장급 간부 전원 교체 및 건전 성향 인사 전진 배치”, “직무 전문성이 요구되는 일선기자·PD들의 업무실적을 엄정평가, 정치투쟁·편파방송 전력자에 대한 문책 인사 단행”
국정원이 MBC 정상화를 위한 ‘기본 전략’으로 꼽은 지침 가운데 일부다. 신임 김재철 사장은 2010년 3월5일 MBC 모든 관계사(계열사·자회사) 사장들에게 사표를 요구했고 임기가 남은 지역사 사장 6명이 대거 교체됐다.
이때 마산·진주 MBC 겸임 사장(현 MBC경남)에 임명됐던 김종국 전 MBC 사장은 2013년 김재철 전 사장이 방문진에서 해임된 뒤 MBC 사장에 취임하게 된다. 문건에 나타난 ‘건전 성향 인사의 전진 배치’가 현실화한 사례로 해석할 수 있다.
▲ 2012년 MBC 파업 당시 김재철 MBC 사장 모습. 사진=이치열 기자
국정원은 사찰 없이 알기 어려운 특정 MBC 간부 성향과 과거 행적을 들추기도 했다. 한겨레 보도 등에 따르면 국정원은 고(故) 곽동국 전 시사교양국장에 대해 “광우병 깃발시위 왜곡보도를 방관했는데도 아직 건재하다”고 평가했는데 곽 전 국장은 1985년 MBC에 PD로 입사해 ‘PD수첩’,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등을 연출한 명 PD다. 지난 1월 별세한 고인에 대해 최승호 MBC 해직PD는 “곽동국 선배에게 특히 감사하는 것은 그가 이명박 정권의 폭압적인 탄압으로 MBC가 바람 앞의 등불 신세이던 시절 시사교양국장을 맡아 PD수첩의 방패막이 역할을 해주셨다는 사실”이라며 “국장은 곽동국 선배, 부장은 김환균 PD(현 언론노조 위원장)였던 그 시절은 PD수첩의 전성기였다”고 페이스북에 밝힌 바 있다. MB 정부 입장에서 ‘껄끄러운 언론인’에 대한 사찰 정황으로 풀이된다.
PD수첩을 척결하고 싶었던 국정원
국정원 문건에는 ‘PD수첩’, ‘MBC 스페셜’, ‘후플러스’, ‘시사매거진 2580’ 등 여러 MBC 프로그램들이 “편파방송 주도 시사고발프로”로 꼽혔다. “제작진 교체, 진행자·포맷·명칭 변경으로 환골탈태”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손석희, 김미화, 김종배 등 한 시대를 대표했던 방송 진행자와 패널들이 MBC를 떠나게 한 국정원 발 ‘블랙리스트’였다. MBC는 2011년 7월 이른바 ‘소셜테이너 출연금지’ 조항까지 사규에 추가해 보수 정권에 찍힌 방송인들의 출연을 검열했다.
그 가운데 가장 눈엣가시는 ‘PD수첩’이었다. 문건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대외적 상징성 때문에 당장 폐지가 어려운 PD수첩의 경우 사전 심의 확행 및 편파 방송 책임자 문책으로 공정성 확보”, “사전 심의절차 및 사후 제재 근거를 명문화, 저질·편파 방송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적 보완책 마련”, “좌파 세력에 영합하는 편파 보도로 여론을 호도해 국론 분열에 앞장”
PD수첩에 대한 사측의 탄압은 2011년 본격화한다. 김재철 전 사장의 고교 및 대학 후배인 윤길용 시사교양국장은 그해 3월 최승호 PD를 포함한 PD수첩 PD 6명을 인사 조치했다. 절반의 PD를 물갈이하며 PD수첩 파괴 신호탄을 쐈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정원 문건에 따르면, “편파 방송 책임자 문책으로 공정성 확보”를 위한 조치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엄기영 전 MBC 사장이 사퇴한 지 일주일여 만인 2010년 2월16일 ‘MBC 신임 사장 취임을 계기로 근본적인 체질 개선 추진’을 지시했고 국정원은 ‘MBC 정상화 전략 및 추진 방안’ 문건을 작성해 3월2일 보고했다. 사진=연합뉴스
‘MBC 노조 파괴’ 사활 건 국정원
“경영권 침해 독소조항이 포함된 단협 개정에 본격 착수”, “노조 불응 시 단협 해지를 통보, 원점에서 재협상하는 방안 검토”, “노조의 불법파업·업무방해 행위는 사규에 따라 엄중 징계하고 주동자에 대해서는 적극적 사법 처리로 영구 퇴출 추진”, “공정방송노조를 통해 좌파 정부 시절 비리 의혹 및 노조 배후 인물들의 부도덕성 등 내부 비리 폭로 독려, 개혁 명분 활용.”
문건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언론노조 MBC본부에 대한 국정원의 적개심이다. 국정원은 언론노조 MBC본부의 무기가 ‘국장 책임제’ 등 MBC 보도 공정성을 보장한 ‘단체협약’임을 꿰뚫고 있었다. 실제 김 전 사장은 첫 출근 이틀 뒤인 2010년 3월4일 사원들에게 단협 개정을 시사했다. ‘국장 책임제’를 두고 노조와 공방을 벌이던 김 전 사장은 2011년 1월 단협을 ‘일방 해지’ 했다. 그해 10월 바뀐 단협에선 국장 책임제가 사라졌다.
국정원은 ‘선임자 권익 보호’를 기치로 내걸고 2007년 출범한 제2노조 ‘공정방송노조’를 활용해 노노 갈등을 야기했다. 최승호 MBC 해직PD 등이 국정원 문건에 대해 “국정원이 상상으로 작성한 게 아니라 MBC 내 협조자를 통해 정보를 입수해 만든 것”이라고 주장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노조의 파업과 관련해 주도자들에 대한 국정원의 “영구퇴출” 주문 역시 꼼꼼하게 이행됐다. 2010년 언론노조 MBC본부의 이근행 집행부는 4월5일 ‘김재철 퇴진’을 요구하며 총파업에 돌입했다. 5월13일까지 이어진 ‘39일 파업’이었다. 그해 6월 김재철의 MBC는 ‘불법 파업 주도’를 이유로 이근행 본부장을 해고하면서 노조에 강경하게 대응했다. 노조 조합원 41명에게 해고(2명), 정직 1~3개월(11명), 감봉 1·3개월(8개월), 구두경고(20명)를 내린 것. 2012년 170일 파업 이전까지 유례없던 대규모 징계였다. 이근행 본부장에는 구속영장까지 청구됐으나 법원은 기각했다.
2013년 ‘특별채용’으로 MBC로 복귀한 이근행 전 본부장은 지난 18일 총파업 집회에서 국정원 MBC 장악 문건을 언급하며 “청와대와 국정원이라는 야수 같은 권력이 MBC를 갈아 마시겠다고 방침을 세웠는데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날뛴 것”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 이진숙 대전 MBC 사장. 사진=이치열 기자
김재철과 국정원의 꿈, ‘민영화’
국정원은 MBC 장악 마무리 단계를 ‘민영화’로 판단했다. 김재철 전 사장 등이 “공영방송은 정권에 휘둘려 왔기 때문에 민영화돼야 한다”며 민영화 주장을 반복하는 까닭에 대한 실마리가 풀리는 대목. 국정원은 문건을 통해 “MBC 민영화 관련 정치권 반발을 막기 위해 방통위의 민영미디어렙 허가 문제를 연계, MBC 스스로 소유 구조를 개편하도록 유독”, “궁극적으로 MBC 구성원 스스로 민영화를 선택하도록 해 현재 ‘多공영 一민영’ 체제를 ‘一공영 多민영’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이진숙 당시 MBC 기획홍보본부장(현 대전 MBC 사장)이 고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과 만나 정수장학회가 소유한 MBC 지분 매각을 추진해 논란을 불렀다. 당시엔 MBC 지분 매각 수익을 통한 선심성 재원 확보 등 박근혜 대선후보 당선을 위해 경영진들이 동분서주한 것으로 해석됐으나 국정원 문건을 보면 MBC 민영화는 그 자체로 MB 정권의 숙원 과제였다.
2012년 파업 집행부였던 정영하 전 언론노조 MBC본부장은 “MBC 민영화 추진이 국정원 기획이었다는 건 생각하지 못했다”며 “대선에서 박근혜가 이겨야 MBC 경영진 뒷길이 열린다는 차원에서만 생각했었다. 이번 문건 보도를 보고나서야 국정원 프레임대로 경영진이 움직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 지난 5일 오전 서울 마포 고용노동부 서부지청에 출석한 김장겸 MBC 사장. 그는 MBC 언론인을 대상으로 한 부당노동행위 혐의를 받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민영화를 제외하면 국정원 플랜은 지난 7년 동안 지속적으로 가동됐다. 국정원은 MBC 기자와 PD 발탁의 최우선 기준을 ‘국가관’으로 규정하기도 했는데, 2012년 파업 이후 MBC가 경력 사원을 뽑는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불거졌던 사상 검증과 이를 통과한 뒤 여전히 ‘김장겸 체제’를 뒷받침하고 있는 MBC 시용·경력 기자들의 모습에서 ‘국정원 플랜’의 결과를 확인해볼 수 있다.
김재철 전 사장이 국정원이 깔아놓은 레드 카펫을 밟고 MBC에 입성했다면, 김장겸 현 MBC 사장은 김 전 사장이 사실상 실행한 ‘국정원 플랜’을 ‘MBC DNA’로 완벽히 이식한 인물로 평가할 수 있다. 언론노조 MBC본부는 19일 “집권 세력의 총체적인 MBC 장악 기도에 충실히 부응하며 내부에서 회사를 무너뜨린 범죄자들을 우리는 똑똑히 기억한다”며 “김재철을 계승해 정권과 추악하게 결탁한 MBC의 범죄 집단은 안광한·김장겸 체제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무소불위의 언론노조를 상대로 무슨 부당노동행위를 했겠느냐”며 당당했던 김장겸 MBC 사장은 국정원 문건에 대해 침묵을 지키고 있다. 영화 ‘공범자들’에서 ‘언론을 망친 파괴자’라는 비판에 대해 MB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김재철 전 사장은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다음과 같이 국정원과의 연루설을 부인했다. “내가 MBC를 경영하는 동안 국정원이나 청와대와 MBC 사태를 논의한 바 없다. MBC 출신으로서 나는 내 방식대로 MBC를 경영했을 뿐이다.” 판단은 국민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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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사찰 국정원 정보관, 문재인 정부서도 핵심 요직” - 미디어오늘 (0) | 2017.09.20 |
9월22일(금) 7시 광화문 파이낸스센터 앞 열 번째 돌마고 파티 (0) | 2017.09.20 |
언론인 탈을 쓴 ‘국정원 부역자’ 여전히 방송사 내부에 있다 - 미디어오늘 (0) | 2017.09.20 |
검찰, ‘박원순 겨냥 집회’ 어버이연합 추선희 자택 압수수색 - 한겨레 (0) | 2017.09.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