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contents.nahf.or.kr/id/NAHF.iskc.d_0008
압록강 일대 고구려성
박작성(泊汋城) - [附 서안평성(西安平城)]
칠개정자관애(七個頂子關隘)
압록강 일대 고구려성 위치도
현재는 압록강(鴨綠江)을 사이에 두고 북한과 중국이 접하고 있어, 자연히 압록강에 대한 이미지는 국경선으로 굳어져가고 있다. 그러나 함경남도(咸鏡南道) 일원에서 발원한 압록강은 임강(臨江) 부근에서 서남쪽으로 흐르기 시작하여 단동(丹東)을 지나 황해로 나간다. 이처럼 긴 물줄기의 압록강은 댐과 같은 장애물이 생기기 전까지 상류지역과 하구를 연결하던 수로였다. 더욱이 압록강에 합류하는 혼하(渾河)와 애하(靉河)를 거슬러서는 그 연안의 내륙으로 들어갈 수도 있었다.
사실 국내성(國內城)이 압록강 가에 위치한다는 점만으로도 고구려의 발전과정에서 압록강 수로가 차지한 비중을 짐작할 수 있다. 최근 보도된 바 있는 백산시(白山市) 운봉 댐 수몰지구의 고구려 무덤떼와 평지성도 압록강 수로를 이용한 왕도와의 교통을 전제하고 나서야 그 역사적 의미가 제대로 드러난다.
그렇지만 고대 한중관계에서 이 강이 가진 특별한 의미는 한반도 서북부와 요동을 이어주고, 다시 이 둘과 중국대륙을 연결시켜주는 통로였다는 데 있다. 압록강 하구를 이용하여 고구려는 대륙과의 교류를 다각도로 전개하였다. 육로로 이어지는 북중국 방면과 달리, 남중국과의 교통은 황해를 통해 이루어졌다. 이와 관련하여 압록강 하구가 고구려의 해상교류 창구였음은 고구려와 오(吳)나라 간의 교류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훗날 발해(渤海)와 당(唐) 사이의 외교에서도 압록강은 해상 통로로서 중시되었다. 한편 고구려 말기에 이르면 압록강은 요동방어선을 무너뜨린 당군의 남진을 가로막아주는 천혜의 방어선이기도 하였다.
압록강 수로의 중요성에 비춰, 압록강 하구로부터 고구려 국내성으로 이어지는 연안로 곳곳에는 고구려인들의 자취가 남아 있다. 이 가운데 서안평성(西安平城)과 박작성(泊衮城)은 압록강 하구에 세워진 대표적인 고구려성이라 할 만하다. 반면 성곽이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압록강 수로와 육상 통로 간의 교통을 차단하던 군사시설로서 칠개정자관애(七個頂子關隘)가 있었다. 압록강 수로가 왕도로 이어지는 주요 교통로였음을 방증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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