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contents.nahf.or.kr/id/NAHF.iskc.d_0009
초하·애하~대양하 일대 고구려성
강초산성(茳草山城)
오골성(烏骨城)
낭랑산성(娘娘山城)
송수구산성(松樹溝山城)
안시성(安市城) - [附 해룡천산성(海龍川山城)]
초하·애하 ~ 대양하 일대 위치도
환인(桓仁)과 집안(集安)이 고구려의 왕도(王都)였던 시절, 고구려 중심지와 요동(遼東)을 연결하던 가장 중요한 교통로는 혼하(渾河)와 태자하(太子河)의 연안로는 고구려와 요동을 연결하던 가장 중요한 교통로였다. 그러다가 고구려가 왕도를 평양성(平壤城)으로 옮긴 뒤로는, 요동평원과 압록강(鴨綠江)을 잇는 축선의 교통로가 그 자리를 대신하였다. 천산산맥(千山山脈)이 요동반도를 가로지르는데 장애가 되기 했지만, 초하와 대양하 그리고 벽류하(碧流河)의 연안로를 이용하면 산간지대를 어렵지 않게 횡단할 수 있었다.
초하의 연안로는 본계(本溪)에서 봉성으로 이어지는 교통로로 심양(瀋陽)과 요양(遼陽) 방면의 두 갈래 길과 연결된다. 고구려의 요동 석권에 앞서 한(漢)이 요동으로 진출한 이래, 이 길은 압록강과 요동을 오가는 통상적인 길이었다. 훗날 조선(朝鮮)시대에 들어와서도 이 길은 조선과 명·청(明·淸) 간의 주요 사행로(使行路)였다. 압록강 이북에 남아 있는 고구려성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인 오골성(烏骨城)이 바로 이 교통로 상에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강초산성(茳草山城)이 봉황시 북쪽의 초하구(草河口)에 남아 있다.
한편 대양하의 연안로는 요동평원에서 해성(海城)을 거쳐 수암으로 들어오는 길이었다. 요동평원의 출입구에 해당하는 곳에 안시성(安市城)으로 여겨지는 영성자산성(英城子山城)이, 수암 일대에는 낭랑산성(娘娘山城)을 비롯하여 송수구산성(松樹溝山城) 등 여러 곳의 고구려성이 남아 있다.
이들 연안로는 적의 침입에 맞서 요동방어선의 각 성이 유기적으로 호응할 수 있는 방어체제의 동맥이었다. 대당전쟁이 한창이던 612년 6월 안시성 동남쪽 벌판에서는 양국의 대군이 격돌한 대회전이 벌어졌다. 이때 고구려는 무려 15만의 병력을 전장에 투입하였는데, 대양하의 연안로가 이들의 진군로였다. 뒤이어 648년 전쟁에서는 압록강구(鴨綠江口)의 박작성(泊衮城)이 위기에 직면하자, 오골성과 안시성에서 보낸 원병이 초하와 대양하의 연안로를 이용하여 전장에 도착했던 실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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