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contents.nahf.or.kr/id/NAHF.iskc.d_0005

태자하 일대 고구려성 

요동성(遼東城) 
백암성(白巖城)
변우산성(邊牛山城)
태자성(太子城) 
고검지산성(高儉地山城)


태자하 일대 위치도

과거 요동(遼東)의 중심지는 심양(瀋陽)이 아니라 그 남쪽의 요양(遼陽)이었다. 고구려가 요동을 확보해가던 당시 고구려의 중심지에서 요양[당시 지명으로는 양평(襄平)] 방면으로는 혼강(渾江)과 부이강(富爾江)의 합류지점으로 나가, 혼강의 지류인 육도하(六道河)를 거쳐, 태자하 상류에 이르고, 그곳에서 태자하를 따라 내려가 닿을 수 있었다.

일부 다른 의견도 있지만, 대체로 이 루트가 342년 전연(前燕) 주력군의 침공로였다고 보여진다. 즉 이 ‘남도(南道)’는 넓고 평탄한 북도에 비해 ‘좁고 험한’ 통로여서, 당시까지 잘 이용되지 않았던 길이었다. 그런 만큼 남도 방면을 주공(主攻)으로 삼은 전연군의 전략은 고구려의 의표를 제대로 찌른 것이었다. 결국 전연군의 주공이 북도로 전개될 것이라 여긴 고구려군의 방어선은 뜻밖의 기습에 무너지고 말았다.

고구려에게 뼈아픈 패배를 안겼던 ‘남도’, 태자하를 거슬러오는 경로 상에는 여러 곳의 고구려성이 확인되고 있다. 먼저 태자하 하류 연안에는 백암성(白巖城)과 변우산성(邊牛山城)이 있고, 그 상류지역에 태자성(太子城)이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고검지산성(高儉地山城)과 마안산성(馬鞍山城) 등이 환인(桓仁)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축조되어 있다.

그런데 대전연전에서의 패배는 고구려가 전연군의 기습에 허를 찔린 탓도 있었지만, 요동에 대한 고구려의 지배가 불완전했던 데에 보다 근본적인 원인이 있었다. 이에 태자하 연안로에 대한 방비와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이 기울여졌음직하다. 현재는 그 흔적을 찾기 어렵지만 요양시에 세워진 요동성(遼東城)이나, 백암성·변우산성 그리고 태자성은 요동지역에 대한 지배강화와 관련하여 고구려가 기존의 성곽을 증축하거나 새로 쌓은 성으로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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