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813444.html?_fr=mt2

탈핵·탈석탄하면 전기료 폭등할까요?
등록 :2017-10-04 11:39 수정 :2017-10-05 21:27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와 핵발전소 - 이것이 궁금하다 ⑦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국전력거래소 중앙전력관제센터.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국전력거래소 중앙전력관제센터.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신고리 5·6호기 핵발전소 공사 중단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공론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발전소 건설 중단에 대한 찬성과 반대 논쟁이 뜨겁습니다. 쟁점은 건설 중단 찬반에 그치지 않고 발전소 건설의 타당성 문제에서부터 핵발전(원전)의 안전성과 경제성, 신재생에너지와 전기요금 등 에너지 정책 전반에 걸쳐 광범위합니다. 건설적인 토론은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합니다. <한겨레>는 몇 차례에 걸쳐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및 핵발전소와 관련한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전기는 두말할 나위 없는 생활 필수 자원입니다. 갈수록 여름 더위는 맹렬해지고 겨울 추위는 살을 에는 듯하죠. 잠깐이라도 단전이 되면 세상 그렇게 불편할 수가 없습니다. 정부의 ‘탈핵·탈석탄 및 2030년 신재생에너지 발전비중 20%’ 정책으로 전기요금이 폭등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앞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이런 걱정을 이용하는 것만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탈핵·탈석탄 정책에 따른 전기요금 인상분을 계산해 내놓고 있는데요, 일부 언론은 이런 연구들의 전제나 한계점에 대한 설명은 ‘싹둑’ 잘라낸 채 ‘이렇게나 전기요금이 많이 오른다’는 식으로 요금 인상 폭을 전달하는 데만 급급한 모습입니다.

현재까지 나온 친환경 에너지 정책에 따른 전기요금 인상 폭은 들쑥날쑥합니다. 정부 출연 연구기관인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정부 정책이 계속되면 2030년 기준 전력 ‘발전비용’이 21%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민간연구소인 현대경제연구원은 ‘가구당 전기요금’이 11%(월평균 5000원) 인상될 수 있다고 내다봤고요. 박근혜 정부 시절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지낸 윤상직 의원(자유한국당)은 전기요금이 최고 40% 인상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28일 자유한국당 정책위원회 간담회 ‘사용후핵연료, 안전하게 해결할 수 있다’를 진행한 황일순 서울대 교수(에너지시스템공학부)는 전기요금이 230% 오를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정말 전기요금이 이렇게나 폭등할까요?

■ 전기요금은 정책이다 

사실 위 연구 중 상당수는 핵발전이 가장 싸고 신재생에너지가 가장 비싼 것으로 책정된 현재의 ‘발전원별 발전단가(생산가격)’가 2029년까지 똑같이 이어질 것을 전제로 두고 나온 결과물입니다. 기술 진보와 신재생에너지 시장 확대에 따른 신재생에너지 발전단가 하락 등은 염두에 두지 않은 것이죠. 알다시피 전기요금은 단순히 시장에서 수요량과 공급량을 바탕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생활 필수 재화나 서비스가 그렇듯, 전기요금 또한 정부 정책의 결과물입니다.

각 발전원(연료)에 대한 세제를 어떻게 짜느냐, 각 발전 사업자에 대한 지원과 규제는 어떻게 하느냐, 한국전력이 전력거래소에서 사 오는 전력구매단가와 가정과 기업체 등 소비자가 한전에서 사서 쓰는 전기요금의 차액(한전에 내는 이익)은 어느 수준으로 잡느냐, 가정용 전기와 산업용 전기요금은 어떻게 산정하느냐, 불필요한 전기수요는 어떻게 조절하느냐 등등에 따라 미래의 전기요금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얼마 전 한 신문은 전력산업연구회가 지난달 28일 주최한 토론회에서 발표된 허돈 교수(광운대)의 연구 결과를 인용해 “전기료, 탈원전·탈석탄 정책 계속 땐 2030년 18% 오를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일단 사실관계부터 다시 짚으면 허돈 교수가 오를 것이라고 예상한 것은 ‘전기료’가 아니라 ‘전력구매단가’입니다.

전기료는 독자 여러분이 한전에 내는 요금이고요, 전력구매단가는 한전이 각 발전사가 공급한 전기를 전력거래소에서 사 오는 요금입니다. 당일 토론회에서도 정구형 한국전기연구원 연구위원은 “전력구매비와 전기요금을 직접 연결해선 안 된다. 최종 전기요금 중 전력구매비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긴 하지만, 실제 전기요금이 어떻게 변할지는 정책에 따라 많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허 교수의 연구 내용을 좀 더 꼼꼼히 들여다볼까요. 허 교수는 미래의 전원구성 시나리오 4개를 짜서 각각의 결과물을 계산해 봤습니다. 건설 여부가 공론화위에서 결정될 신고리 5·6호기를 계속 건설하고 신규 석탄발전소 9기를 가스복합으로 바꾸어 건설했을 때가 시나리오 1입니다.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중단하고, 가스발전소들은 가스복합으로 대체 건설했을 때가 시나리오 2고요. 신고리 5·6호기도 건설하고 신규 석탄발전소도 그대로 건설했을 때는 시나리오 3입니다. 신고리 5·6호기 건설은 중단하되 석탄발전소들은 건설하는 경우는 시나리오 4입니다.

허 교수는 각 시나리오에 반영하는 신재생에너지 발전단가는 2030년 기준 올해 단가에 견주어 40%가 하락한다고 전제하고, 위아래로 20%포인트의 편차를 두었습니다. 다시 말해, 신재생에너지 발전단가가 20%, 40%, 60% 하락하는 경우의 수를 둔 것이죠. 이는 블룸버그 신에너지금융연구소(BNEF), 국제재생에너지기구, 에너지경제연구원, 현대경제연구원 등 국내외 주요 기관의 신재생에너지 발전단가 전망 자료를 토대로 한 것입니다.

이런 전제로 계산해본 결과 시나리오 1은 전력구매비용이 8.4∼17.0%, 시나리오 2는 9.6∼18.2%, 시나리오 3은 3.1∼13.3%, 시나리오 4는 4.4∼14.9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허 교수는 “이 분석에는 반영하지 않은 (핵발전 등에 대한) 사회적 비용도 고려해야 한다”며 연구의 한계점도 짚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내용이 “전기료, 탈원전·탈석탄 정책 계속 땐 2030년 18% 오를 것”이라는 보도로 ‘간단하게’ 이어진 것이죠.

허돈 광운대 교수가 지난달 28일 열린 전력산업연구회·대한전기학회 주최 ‘에너지전환 정책에 따른 전력분야 대응방안 대토론회’에서 발표한 전원구성 변화에 따른 전력비용 영향. 허 교수는 시나리오(S) 1∼4를 나누어 전력구매비용 증가분을 전망했다. 허돈 교수 발표자료 발췌
허돈 광운대 교수가 지난달 28일 열린 전력산업연구회·대한전기학회 주최 ‘에너지전환 정책에 따른 전력분야 대응방안 대토론회’에서 발표한 전원구성 변화에 따른 전력비용 영향. 허 교수는 시나리오(S) 1∼4를 나누어 전력구매비용 증가분을 전망했다. 허돈 교수 발표자료 발췌

■ “전기료? 전원 구성보다 신재생에너지 단가가 중요”

사실 허 교수의 연구는 ‘탈핵·탈석탄으로 전기요금이 과도하게 오른다’는 내용이 아니었습니다. 허 교수는 토론회 당일 연구 결과를 설명하며 “전원구성 시나리오 간 편차에 견주어 신재생 발전단가 하락 전제에 따른 차이가 더 크게 발생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즉, 신고리 5·6호기 건설 여부나 석탄발전소 9기 건설 여부보다는 신재생에너지 발전단가가 어떻게 되느냐가 전력구매비용을 결정하는 더 중요한 변수였다는 설명입니다.

허 교수 연구자료를 보면, 2030년 기준 시나리오 간 전력구매단가 최대 편차는 키로와트시(㎾h)당 3.1∼5.7원인데, 신재생 단가 전제에 따른 최대 편차는 6.6∼6.7원이었습니다. 허 교수는 그래서 “신재생에너지 단가 하락을 견인하는 정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미래의 전기요금 인상부담을 낮추려면 신재생에너지 산업을 잘 육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설명입니다.

지금도 신재생에너지 단가가 하락하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2010년 이후 전력거래소 자료를 모아보면, 신재생에너지 정산단가(전력거래소에서 거래되는 금액)는 2010년 117.34원에서 2016년 106.26원으로 떨어져 왔습니다. 블룸버그 신에너지금융연구소(BNEF)는 2040년에는 현재보다 풍력은 41%, 태양광은 60%나 단가가 떨어져 2020년에는 주요 국가에서 풍력과 태양광이 가장 값싼 발전원이 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다만, 한국은 지난 10년 가까이 ‘핵발전 진흥’ 정책을 써온 결과 신재생에너지 산업이 독일이나 미국처럼 성장하지 못했습니다. 알리 이자디 신에너지금융연구소 한·일 부문장이 지난 6월 “문재인 정부가 (신재생에너지 비중 확대) 목표를 달성하려면 (우라늄엔 비과세하고 신재생과 액화천연가스엔 높은 세금을 매기는) 세제를 개편해 전력믹스의 왜곡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조언한 이유입니다.

■ “값싼 산업용 전기요금부터 손봐야”

여기서 잠깐. 2030년, 그러니까 친환경 에너지 정책 전환으로 13∼15년 뒤 전기요금이 20% 오른다면 너무한 건지도 한 번 따져보면 좋겠습니다. 13년 동안 20%면 연평균 상승률이 2%를 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최근 우리 경제의 소비자물가상승률도 1∼2% 수준입니다. 한 번 사고가 나면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지고, 사용후핵연료도 계속 누적되는 핵발전소 의존에서 차츰 벗어나는 대가치고는 그리 높지 않다고 평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한 달에 부담해야 하는 전기요금이 13년 뒤 약 9000원 정도 오른다면 부담이 되는 가구가 있을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정용 전기요금’ 인상만 고려할 이유도 없다는 점 또한 중요합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가정용과 달리 산업용 전기에는 심야(오후 11시∼오전 9시·경부하 시간대)나 주말처럼 상대적으로 전력 소비가 적은 시간대에는 할인 요금이 적용되고 있습니다. 그 결과 가정용 전기요금은 평균 키로와트시(㎾h)당 125원인데 산업용 전기요금은 108원입니다. 특히 경부하 시간대 요금은 최대 세 배 이상 싸다 보니, 많은 기업이 야간에 공장을 돌려 값싼 전기요금을 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기수요는 기업이 더 많이 합니다. 전체 전기의 절반 이상을 기업이 쓰고 있죠.

상황이 이런 터라, 문재인 대통령은 6월19일 고리 1호기 퇴역식 행사에서 “산업용 전기요금을 재편해 산업 부문의 전력 과소비를 방지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지난 7월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서 “산업용 전기요금 체계 개편으로 전력 다소비형 산업 구조를 개선하겠다”는 에너지 정책 목표를 발표한 바 있고요.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의 백운규 장관도 지난달 11일 기자들을 만나 “(문재인 정부에서) 전체적인 전기요금 인상 요인은 전혀 없다. 그러나 산업계 경부하 요금은 신중하게 보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최하얀 기자 ch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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