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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기획-용산의 미래](2)기지 곳곳 근·현대사 상흔…문화재 조사 첫발도 못 떼
김기범·허진무 기자 holjjak@kyunghyang.com 입력 : 2017.10.09 22:09:01 수정 : 2017.10.09 22:51:16 


조선시대 임금이 기우제를 지낸 곳으로 추정되는 용산 미군기지 메인포스트 내 남단터(왼쪽 사진). 일제강점기 4.8m 높이의 일본군감옥으로 만들어져 현재 미군병원으로 사용 중인 위수감옥(오른쪽). 최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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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면 내년부터 시민들 품으로 돌아올 용산 미군기지는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 공간이다.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화하고 대륙으로 진출했던 증거가 물리적인 형태로 남아 있는 동시에 이를 그대로 활용한 주한미군의 시설이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세계사적 현장’이다.

하지만 이런 중요성에 비해 미군기지 내부에 대한 문화재 조사는 아직 첫발조차 떼지 못한 상태다. 제대로 된 문화재 조사에만 10년 이상의 기간이 소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국 정부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미군기지 내 1245개 건물 중 1952년 이전에 지은 건물은 일제강점기 병영시설 등 132동에 달한다. 그러나 이들 건물 내부에 대한 조사는 미군이 사용해오면서 이뤄지지 못했다. 기지 내부를 조사한 바 있는 경기대 건축대학원 안창모 교수는 “내부를 들여다봐야만 국가문화재로 할지, 시·도문화재 또는 등록문화재로 할지 등을 정할 수 있다”며 “건물 수도 많고, 자료들도 일본·미국 등에 흩어져 있어 단시간 내에 마무리할 수 있는 조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병영시설 외에 현재 확인된 일제강점기 건물로는 서대문형무소와 함께 현존하는 2개의 일제 감옥 중 하나인 위수감옥과 한미연합사 건물 옆의 일본군 장교 숙소 등이 있다. 위수감옥은 백범 김구 선생을 암살한 안두희가 수감됐던 곳이라는 기록이 남아 있으며, 일본군 장교 숙소는 미소공동위원회 당시 소련(현재의 러시아)군 대표단 숙소로 사용됐다. 

미군 주둔 이후에도 다양한 기념물이 만들어졌지만 한국 정부는 지난해 졸속적으로 미군의 기념물 반출 신청을 승인했다. 지난해 12월 미군이 68점의 기념물 반출 신청을 한 데 대해 단 하루 만에 56점을 승인해버린 것이다. 문화재청이 반출을 불허한 것은 대부분 미군 주둔 이전부터 용산에 있었던 문화재이고, 허가 대상으로 분류된 것은 1953년 미군 주둔 후 만들어진 기념물이다. 이에 따라 미군은 지난 4월25일 한국전쟁 당시 미8군 사령관이었던 월턴 해리스 워커 장군의 동상을, 5월23일 제8군 전몰자 기념비를 평택의 캠프 험프리스로 옮겼다. 

특히 논란의 초점이 된 것은 충혼비다. 일제가 1935년 세운 만주사변 전병사자 충혼비를 1953년 미군이 재건축해 세운 것이 현재의 한국전쟁 미군기념비(미8군 본부 기념비)다. 일제 침략의 역사와 미군기지의 역사를 한몸에 품고 있는 기념물인 셈이다. 안창모 교수는 “충혼비의 경우 미군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중요한 문화재”라며 “용산 미군기지의 역사가 미국만의 역사가 아니라 공동의 역사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이라도 미군 주둔 이후 문화재에 대해서도 미군과 공동으로 논의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제가 강제수용하기 전 미군기지 부지가 평범한 사람들의 주거 공간이자 공동묘지가 존재했던 곳이었던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무덤의 경우 일본군이 기지를 조성하면서 이미 상당수를 파헤쳤고, 민가도 이미 터조차 찾기 힘든 상태일 가능성이 높긴 하지만 무덤 앞에 세우는 문관 형상의 돌을 말하는 문인석 등 조선시대 흔적들이 남아 있다. 문화재 외에 아직 살아 있는 만초천 물길을 복원하고, 느티나무 군락 등 생태적으로 가치가 높은 지점들을 보존·복원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일제가 기지를 건설한 뒤의 모습이나 미군기지 초기 모습을 기억하는 인근 주민들의 구술조사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안 교수는 “10년 정도 시간을 들여 역사학자·사회학자·건축학자 등이 현장을 같이 보면서 논의를 통해 어떻게 보존하고 활용할지 정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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